雜卦傳
경전 원문
雜卦傳
乾剛坤柔比樂師憂臨觀之義或與或求屯見而不失其居蒙雜而著震起也艮止也損益盛衰之始也○大畜時也无妄災也萃聚而升不來也謙輕而豫怠也○噬嗑食也賁无色也兑見而巽伏也隨无故也蠱則飭也剥爛也復反也○晉晝也明夷誅也井通而困相遇也咸速也恒久也渙離也節止也解緩也蹇難也睽外也家人内也否泰反其類也大壯則止遯則退也大有衆也同人親也革去故也鼎取新也小過過也中孚信也豐多故也親寡旅也離上而坎下也小畜寡也履不處也需不進也訟不親也大過顛也姤遇也柔遇剛也漸女歸待男行也頥養正也既濟定也歸妹女之終也未濟男之窮也夬決也剛決柔也君子道長小人道憂也
잡괘전
건은 굳세고 곤은 부드럽다. 비는 즐겁고 사는 근심스럽다. 림과 관의 뜻은 혹은 베풀고 혹은 구하는 것이다. 준은 드러나면서도 제자리를 잃지 않고, 몽은 섞여 있으면서도 드러난다. 진은 일어남이고 간은 멈춤이다. 손과 익은 성하고 쇠하는 시작이다.
대축은 때이고 무망은 재앙이다. 췌는 모임이고 승은 돌아오지 않음이다. 겸은 자신을 가볍게 여기고 예는 느슨해짐이다.
서합은 먹는 것이고 비는 꾸밈의 색이 없다. 태는 드러나고 손은 엎드린다. 수는 까닭이 없는 것이고 고는 바로잡는 것이다. 박은 문드러짐이고 복은 돌아옴이다.
진은 낮이고 명이는 상함이다. 정은 통하고 곤은 서로 만남이다. 함은 빠르고 항은 오래간다. 환은 흩어짐이고 절은 멈춤이다. 해는 느슨해짐이고 건은 어려움이다. 규는 밖이고 가인은 안이다. 비와 태는 그 부류가 서로 반대다. 대장은 멈추고 돈은 물러난다. 대유는 무리가 많고 동인은 서로 친하다. 혁은 옛것을 버리고 정은 새것을 취한다. 소과는 지나침이고 중부는 믿음이다. 풍은 일이 많고 려는 친한 이가 적다. 리는 올라가고 감은 내려간다. 소축은 적고 리는 머물지 않는다. 수는 나아가지 않고 송은 친하지 않다. 대과는 뒤집힘이고 구는 만남이니, 부드러운 음이 굳센 양을 만난다. 점은 여자가 시집갈 때 남자가 행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는 바름을 기르고 기제는 안정됨이다. 귀매는 여자의 마침이고 미제는 남자의 궁함이다. 쾌는 결단함이니 굳센 양이 부드러운 음을 결단한다. 군자의 도는 자라고 소인의 도는 근심스럽다.
현대적으로 읽기
잡괘전(괘들을 짝지어 서로 다른 뜻을 짧게 드러낸 글)
현대적으로 읽으면 이 절은 복잡한 상황을 한 단어로 낙인찍는 목록이 아니라, 서로 반대되는 관점으로 다시 살펴보게 하는 색인에 가깝다. 어떤 결정이 ‘나아감’으로 보일 때 동시에 무엇을 ‘멈추는지’, 무언가를 ‘모을’ 때 누가 ‘돌아오지 못하는지’를 함께 묻는 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이 짧은 정의만으로 개별 괘의 문맥과 효사(각 효에 붙은 판단문)를 대신해서는 안 된다.
주희 《주역본의》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雜卦傳
乾剛坤柔比樂師憂〈樂音洛〉臨觀之義或與或求〈以我臨物曰與物來觀我曰求或曰二卦互有與求之義〉屯見而不失其居蒙雜而著〈見賢遍反著陟慮反○屯震遇坎震動故見坎險不行也蒙坎遇艮坎幽昧艮光明也或曰屯以初言蒙以二言〉震起也艮止也損益盛衰之始也○大畜時也无妄災也〈止健者時冇適然无妄而災自外至〉萃聚而升不來也謙輕而豫怠也○噬嗑食也賁无色也〈白受采〉兑見而巽伏也〈見賢遍反○兑陰外見巽陰内伏〉隨无故也蠱則飭也〈飭與勑同○隨前无故蠱後當飭〉剥爛也復反也○晉晝也明夷誅也〈誅傷也〉井通而困相遇也〈剛柔相遇而剛見揜也〉咸速也恒久也〈咸速恒久〉渙離也節止也解緩也蹇難也睽外也家人内也否泰反其類也〈難乃旦反〉大壯則止遯則退也〈止謂不退〉大有衆也同人親也革去故也鼎取新也小過過也中孚信也豐多故也親寡旅也〈去起呂反○既明且動其故多矣〉離上而坎下也〈上時掌反下遐嫁反○火炎上水潤下〉小畜寡也履不處也〈處上聲○不處行進之義〉需不進也訟不親也大過顛也姤遇也柔遇剛也漸女歸待男行也頥養正也既濟定也歸妹女之終也未濟男之窮也夬決也剛決柔也君子道長小人道憂也〈長丁丈反○自大過以下卦不反對或疑其錯簡今以韻協之又似非誤未詳何義〉
잡괘전
건은 굳세고 곤은 부드럽다. 비는 즐겁고 사는 근심스럽다. 여기서 樂은 ‘락’으로 읽는다. 림과 관의 뜻은 혹은 베풀고 혹은 구하는 것이다. 내가 사물에 다가가는 것을 베푼다고 하고, 사물이 와서 나를 바라보는 것을 구한다고 한다. 어떤 이는 두 괘가 모두 베풂과 구함의 뜻을 함께 지닌다고 말한다. 준은 드러나면서도 제자리를 잃지 않고, 몽은 섞여 있으면서도 드러난다. 見은 현변의 반절로 읽고 著는 척려의 반절로 읽는다. 준은 진이 감을 만나 진이 움직이지만 감의 험함 때문에 가지 못하는 것이고, 몽은 감이 간을 만나 감은 어둡고 간은 밝은 것이다. 어떤 이는 준은 초효로 말하고 몽은 이효로 말한 것이라고 한다. 진은 일어남이고 간은 멈춤이다. 손과 익은 성하고 쇠하는 시작이다.
대축은 때이고 무망은 재앙이다. 굳센 것을 멈추게 하는 데에는 때에 따라 그렇게 되는 바가 있으나, 무망한데도 재앙이 생기는 것은 재앙이 밖에서 오기 때문이다. 췌는 모임이고 승은 돌아오지 않음이다. 겸은 자신을 가볍게 여기고 예는 느슨해짐이다.
서합은 먹는 것이고 비는 꾸밈의 색이 없다. 흰색은 다른 색채를 받아들인다. 태는 드러나고 손은 엎드린다. 見은 현변의 반절로 읽는다. 태는 음이 밖에 드러나고 손은 음이 안에 엎드려 있다. 수는 까닭이 없는 것이고 고는 바로잡는 것이다. 飭은 敕과 같다. 수는 앞에 아무런 까닭이 없고, 고는 뒤에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박은 문드러짐이고 복은 돌아옴이다.
진은 낮이고 명이는 상함이다. 誅는 상하게 한다는 뜻이다. 정은 통하고 곤은 서로 만남이다. 굳센 양과 부드러운 음이 서로 만났는데 굳센 양이 가려진 것이다. 함은 빠르고 항은 오래간다. 환은 흩어짐이고 절은 멈춤이다. 해는 느슨해짐이고 건은 어려움이다. 규는 밖이고 가인은 안이다. 비와 태는 그 부류가 서로 반대다. 難은 내단의 반절로 읽는다. 대장은 멈추고 돈은 물러난다. 여기서 멈춘다는 것은 물러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유는 무리가 많고 동인은 서로 친하다. 혁은 옛것을 버리고 정은 새것을 취한다. 소과는 지나침이고 중부는 믿음이다. 풍은 일이 많고 려는 친한 이가 적다. 去는 기려의 반절로 읽는다. 풍괘는 밝으면서 움직이므로 그 일이 많다. 리는 올라가고 감은 내려간다. 上은 시장의 반절로, 下는 하가의 반절로 읽는다. 불은 위로 타오르고 물은 아래로 스며든다. 소축은 적고 리는 머물지 않는다. 處는 상성으로 읽는다.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걸어 나아간다는 뜻이다. 수는 나아가지 않고 송은 친하지 않다. 대과는 뒤집힘이고 구는 만남이니, 부드러운 음이 굳센 양을 만난다. 점은 여자가 시집갈 때 남자가 행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는 바름을 기르고 기제는 안정됨이다. 귀매는 여자의 마침이고 미제는 남자의 궁함이다. 쾌는 결단함이니 굳센 양이 부드러운 음을 결단한다. 군자의 도는 자라고 소인의 도는 근심스럽다. 長은 정장의 반절로 읽는다. 대과 이하의 괘들은 서로 뒤집어 짝을 이루지 않는다. 어떤 이는 죽간의 순서가 뒤섞인 듯하다고 의심하지만, 지금 운을 맞추어 보면 또 잘못이 아닌 듯도 하여 그 뜻을 자세히 알 수 없다.
잡괘전(괘들을 짝지어 뜻을 비교한 글)은 육십사괘(팔괘 두 개를 겹쳐 만든 64개의 괘)의 뜻을 한두 마디의 대조로 압축한다. 여기서는 괘의 전체 논증보다 ‘굳셈과 부드러움’, ‘드러남과 엎드림’, ‘나아감과 멈춤’처럼 서로 비추는 짝을 통해 각 괘의 성격을 기억하게 한다. 주희는 음가와 괘상(괘의 효 모양에서 드러나는 상징) 구조를 짧게 보충하고, 마지막 배열에는 착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도 확정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