乾 건
아래괘 乾 하늘 · 위괘 乾 하늘
천지가 있은 뒤에 만물이 생긴다.
괘사
元亨。利貞。
원형. 이정.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롭다.
단전
大哉乾元,萬物資始,乃統天。雲行雨施,品物流形,大明終始,六位時成。
위대하도다, 건의 원(元)이여. 만물이 이에 힘입어 시작되니, 곧 하늘을 거느린다. 구름이 움직이고 비가 내리자 온갖 사물이 흘러 형체를 이루고, 시작과 끝이 크게 밝아지며, 여섯 자리가 때에 맞추어 이루어진다.
단전
時乘六龍以御天,乾道變化,各正性命,保合大和,乃利貞。
때에 맞추어 여섯 용을 타고 하늘을 다스린다. 건의 도가 변하고 화함에 저마다 성(性)과 명(命)을 바르게 하며, 큰 조화를 보전하고 합하니, 이에 바르게 함이 이롭다.
단전
首出庶物,萬國咸寧。
만물보다 먼저 나서니, 만국이 모두 평안하다.
대상전
天行健,君子以自強不息。
하늘의 운행은 굳세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힘써 쉬지 않는다.
여섯 효
효사
潛龍勿用。
잠룡물용.
물속에 잠긴 용이다. 쓰지 말라.
소상전
潛龍勿用,陽在下也。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는 것은 양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효사
見龍在田,利見大人。
현룡재전, 이견대인.
용이 밭에 나타났다.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
소상전
見龍在田,德施普也。
용이 밭에 나타났다는 것은 덕이 널리 베풀어진다는 뜻이다.
효사
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无咎。
군자종일건건, 석척약. 려, 무구.
군자는 온종일 굳세고 또 굳세며, 저녁에도 두려워하듯 경계한다.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다.
소상전
終日乾乾,反復道也。
온종일 굳세고 또 굳세다는 것은 도를 거듭 되풀이한다는 뜻이다.
효사
或躍在淵,无咎。
혹약재연, 무구.
혹 뛰어오르고 못에 있다. 허물이 없다.
소상전
或躍在淵,進无咎也。
혹 뛰어오르고 못에 있다는 것은 나아가도 허물이 없다는 뜻이다.
효사
飛龍在天,利見大人。
비룡재천, 이견대인.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
소상전
飛龍在天,大人造也。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대인이 일어나 일을 이룬다는 뜻이다.
효사
亢龍,有悔。
항룡, 유회.
지나치게 오른 용이다. 뉘우침이 있다.
소상전
亢龍有悔,盈不可久也。
지나치게 오른 용에게 뉘우침이 있다는 것은 가득 찬 상태가 오래갈 수 없기 때문이다.
효사
見羣龍无首,吉。
견군룡무수, 길.
여러 용을 보는데 우두머리가 없다. 길하다.
소상전
用九,天德不可為首也。
용구는 하늘의 덕이 우두머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문언전 1
元者,善之長也。亨者,嘉之會也。利者,義之和也。貞者,事之幹也。君子體仁足以長人,嘉會足以合禮,利物足以和義,貞固足以幹事。君子行此四德者,故曰:「乾,元、亨、利、貞。」
원은 선의 으뜸이다. 형은 아름다운 것들의 모임이다. 리는 의로움의 조화다. 정은 일의 줄기다. 군자가 인을 몸소 구현하면 사람들의 으뜸이 될 수 있고, 아름다운 것들을 모으면 예에 합할 수 있으며, 사물을 이롭게 하면 의와 조화를 이룰 수 있고, 바르고 굳게 지키면 일을 주관할 수 있다. 군자는 이 네 덕을 행하므로 이르기를, “건은 원·형·리·정이다”라고 했다.
문언전 2
初九曰:「潛龍,勿用。」何謂也?子曰:「龍德而隱者也。不易乎世,不成乎名,遯世无悶,不見是而无悶,樂則行之,憂則違之,確乎其不可拔,潛龍也。」
초구에서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자가 말했다. “용의 덕을 지니고도 숨어 있는 사람이다. 세상 때문에 뜻을 바꾸지 않고 명성을 이루려 하지 않으며, 세상을 피해 숨어도 답답해하지 않고 옳다고 인정받지 못해도 답답해하지 않는다. 즐거우면 행하고 근심스러우면 떠나며, 그 뜻이 확고하여 뽑아낼 수 없으니, 이것이 잠긴 용이다.”
문언전 3
九二曰:「見龍在田,利見大人。」何謂也?子曰:「龍德而正中者也。庸言之信,庸行之謹;閑邪存其誠,善世而不伐,德博而化。易曰:『見龍在田,利見大人。』君德也。」
구이에서 “용이 밭에 나타났으니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자가 말했다. “용의 덕을 지니고 바른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다. 평상시의 말도 믿음직하고 평상시의 행동도 삼가며, 사악함을 막고 그 성실함을 보존한다. 세상을 선하게 하면서도 자랑하지 않고, 덕이 넓어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역》에서 ‘용이 밭에 나타났으니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고 했으니, 임금이 될 덕이다.”
문언전 4
九三曰:「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无咎。」何謂也?子曰:「君子進德脩業。忠信,所以進德也;脩辭立其誠,所以居業也。知至至之,可與言幾也。知終終之,可與存義也。是故居上位而不驕,在下位而不憂,故乾乾因其時而惕,雖危无咎矣。」
구삼에서 “군자는 온종일 굳세고 또 굳세며 저녁에도 두려워하듯 경계한다.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다”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덕을 진전시키고 일을 닦는다. 충성과 믿음은 덕을 진전시키는 방법이고, 말을 닦아 성실함을 세우는 것은 일을 지켜 나가는 방법이다. 이를 곳을 알고 그곳에 이르니 함께 기미를 말할 수 있고, 마칠 곳을 알고 그곳에서 마치니 함께 의를 보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높은 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낮은 자리에 있어도 근심하지 않는다. 굳세고 또 굳세면서 때에 따라 경계하므로, 비록 위태로워도 허물이 없다.”
문언전 5
九四曰:「或躍在淵,无咎。」何謂也?子曰:「上下无常,非為邪也。進退无恒,非離羣也。君子進德脩業,欲及時也。故无咎。」
구사에서 “혹 뛰어오르고 못에 있으니 허물이 없다”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자가 말했다. “오르내림에 일정함이 없는 것은 사악한 일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고 물러남에 일정함이 없는 것은 무리를 떠나려는 것이 아니다. 군자는 덕을 진전시키고 일을 닦아 때에 미치고자 한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다.”
문언전 6
九五曰:「飛龍在天,利見大人。」何謂也?子曰:「同聲相應,同氣相求;水流濕,火就燥,雲從龍,風從虎;聖人作而萬物覩;本乎天者親上,本乎地者親下,則各從其類也。」
구오에서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자가 말했다. “같은 소리는 서로 호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한다. 물은 젖은 곳으로 흐르고 불은 마른 곳으로 나아가며,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 성인이 일어나면 만물이 우러러본다. 하늘에 근본을 둔 것은 위와 가까워지고 땅에 근본을 둔 것은 아래와 가까워지니, 저마다 제 부류를 따르는 것이다.”
문언전 7
上九曰:「亢龍,有悔。」何謂也?子曰:「貴而无位,高而无民,賢人在下位而无輔,是以動而有悔也。」
상구에서 “지나치게 오른 용이니 뉘우침이 있다”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자가 말했다. “귀하지만 자리가 없고 높지만 백성이 없으며, 현명한 이들이 아래 자리에 있어도 보좌를 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움직이면 뉘우침이 있다.”
문언전 8
「潛龍勿用」,下也。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는 것은 아래에 있다는 뜻이다.
문언전 9
「見龍在田」,時舍也。
“용이 밭에 나타났다”는 것은 때에 맞게 머문다는 뜻이다.
문언전 10
「終日乾乾」,行事也。
“온종일 굳세고 또 굳세다”는 것은 일을 행한다는 뜻이다.
문언전 11
「或躍在淵」,自試也。
“혹 뛰어오르고 못에 있다”는 것은 스스로를 시험한다는 뜻이다.
문언전 12
「飛龍在天」,上治也。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위에서 다스린다는 뜻이다.
문언전 13
「亢龍有悔」,窮之災也。
“지나치게 오른 용에게 뉘우침이 있다”는 것은 궁극에 이른 데서 생기는 재앙이다.
문언전 14
「乾元用九」,天下治也。
“건의 원에서 용구를 쓴다”는 것은 천하가 다스려진다는 뜻이다.
문언전 15
「潛龍勿用」,陽氣潛藏。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는 것은 양기가 잠겨 감추어진 것이다.
문언전 16
「見龍在田」,天下文明。
“용이 밭에 나타났다”는 것은 천하가 밝아지는 것이다.
문언전 17
「終日乾乾」,與時偕行。
“온종일 굳세고 또 굳세다”는 것은 때와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문언전 18
「或躍在淵」,乾道乃革。
“혹 뛰어오르고 못에 있다”는 것은 건의 도가 이에 변하는 것이다.
문언전 19
「飛龍在天」,乃位乎天德。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곧 하늘의 덕에 자리한 것이다.
문언전 20
「亢龍有悔」,與時偕極。
“지나치게 오른 용에게 뉘우침이 있다”는 것은 때와 함께 극점에 이른 것이다.
문언전 21
「乾元用九」,乃見天則。
“건의 원에서 용구를 쓴다”는 것은 곧 하늘의 법칙을 드러내는 것이다.
문언전 22
乾元者,始而亨者也。利貞者,性情也。乾始能以美利利天下,不言所利,大矣哉!大哉乾元,剛健中正,純粹精也。六爻發揮,旁通情也。時乘六龍,以御天也。雲行雨施,天下平也。
건의 원은 시작하여 형통하게 하는 것이다. 이롭고 바름은 그 성정이다. 건의 시작하는 힘은 아름다운 이로움으로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으면서도 무엇을 이롭게 한다고 말하지 않으니, 위대하도다. 위대하도다, 건의 원이여. 굳세고 힘차며 가운데이고 바르며, 순수하고 정밀하다. 여섯 효가 뜻을 펼쳐 사물의 정황에 두루 통한다. 때에 맞추어 여섯 용을 타고 하늘을 다스린다. 구름이 움직이고 비가 내리니 천하가 평안하다.
문언전 23
君子以成德為行,日可見之行也。潛之為言也,隱而未見,行而未成,是以君子弗用也。
군자는 이루어진 덕을 행위로 삼아 날마다 드러나는 행동으로 실천한다. 잠긴다는 말은 숨어서 아직 드러나지 않고, 행하더라도 아직 이루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나서서 쓰이지 않는다.
문언전 24
君子學以聚之,問以辯之,寬以居之,仁以行之,易曰:「見龍在田,利見大人。」君德也。
군자는 배움으로 [덕을] 모으고, 물음으로 분별하며, 너그러움으로 그 안에 머물고, 인으로 그것을 행한다. 《역》에서 “용이 밭에 나타났으니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고 했으니, 임금이 될 덕이다.
문언전 25
九三,重剛而不中,上不在天,下不在田;故乾乾因其時而惕,雖危,无咎矣。
구삼은 굳센 양이 거듭되었으나 가운데 자리를 얻지 못했고, 위로는 하늘 자리에 있지 않으며 아래로는 밭의 자리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굳세고 또 굳세면서 때에 따라 경계하니, 비록 위태로워도 허물이 없다.
문언전 26
九四,重剛而不中,上不在天,下不在田,中不在人,故或之。或之者,疑之也,故无咎。
구사는 굳센 양이 거듭되었으나 가운데 자리를 얻지 못했고, 위로는 하늘 자리에 있지 않으며 아래로는 밭의 자리에 있지 않고, 중간으로도 사람의 자리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혹’이라고 했다. ‘혹’이라고 한 것은 의심하여 살핀다는 뜻이므로 허물이 없다.
문언전 27
夫大人者,與天地合其德,與日月合其明,與四時合其序,與鬼神合其吉凶;先天而天弗違,後天而奉天時,天且弗違,而況於人乎?況於鬼神乎?
무릇 대인은 천지와 그 덕을 함께하고, 해와 달과 그 밝음을 함께하며, 사계절과 그 차례를 함께하고, 귀신과 그 길흉을 함께한다. 하늘보다 앞서 행해도 하늘이 어기지 않고, 하늘보다 뒤에 행하면 하늘의 때를 받든다. 하늘도 어기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하물며 귀신이겠는가?
문언전 28
亢之為言也,知進而不知退,知存而不知亡,知得而不知喪;其唯聖人乎?知進退存亡而不失其正者,其唯聖人乎!
‘지나치게 오른다’는 말은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 모르며, 보존될 줄만 알고 망할 줄 모르며, 얻을 줄만 알고 잃을 줄 모른다는 뜻이니, 그것이 어찌 성인이겠는가? 나아감과 물러남, 존속과 멸망을 알면서 그 바름을 잃지 않는 이는 오직 성인뿐일 것이다.
네 해석의 갈림길
갈리는 지점건괘 여섯 효를 주희는 변효 여부를 가리는 점서의 조건으로 다잡지만, 정약용은 효가 실제로 변한 뒤의 괘를 근거로 삼고, 정이천은 그 흐름을 성인이 진퇴를 살피는 수양의 과정으로 읽는다.
왕필
건은 순수한 강건함이 때와 자리에 따라 숨고·나타나고·경계하고·나아가는 운동을 보여 준다. 왕필은 강건함을 고정된 세로 보지 않고, 시위(때와 자리)에 맞게 쓰여야 하는 하늘의 덕으로 풀었다.
정이천
정이천은 건을 하늘의 형체가 아니라 하늘이 쉬지 않고 작용하는 성정(사물이 타고난 성질과 작용)으로 규정한다. 원·형·리·정(시작·성장·성취·바름을 가리키는 네 덕목)은 만물이 시작하고 자라며 이루고 완성되는 네 국면이고, 여섯 효는 성인이 숨어 때를 기다리는 자리에서 천하를 다스리는 자리로 나아갔다가 다시 지나침을 경계하는 과정이다. 그의 논증은 각 효의 때와 자리를 순임금의 진퇴(나아감과 물러남)에 견주면서, 굳셈도 때를 잃으면 항진이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문언전 주석에서 정이천은 건의 도를 수양의 전 과정으로 확장한다. 충신으로 덕을 진전시키고 말을 닦아 성실함을 세움으로써 업을 지키며, 나아감과 물러남·존속과 소멸을 모두 알아 바름을 잃지 않는 것이 성인의 경지다. 용구의 핵심도 강함을 앞세우는 데 있지 않고, 강유가 서로 돕도록 하여 우두머리가 되려 하지 않는 데 있다.
주희
주희는 복희가 홀수 획과 짝수 획을 거듭하여 팔괘(세 효로 이룬 여덟 기본 괘)와 육십사괘(팔괘 두 개를 겹쳐 만든 64개의 괘)를 이루는 과정부터 설명하고, 건의 여섯 획이 모두 양이라는 구조에서 순수하고 지극한 굳셈의 상을 읽는다. 원·형·리·정(시작·성장·성취·바름을 가리키는 네 덕목)의 훈고를 제시한 뒤, 건괘를 얻어 여섯 효가 모두 변하지 않을 때 크게 통하되 바르고 굳게 지켜야 끝을 보전한다는 점의 조건을 명시한다. 각 효에서도 상과 점, 변효의 적용 대상을 구별한다.
문언전 주석에서는 네 덕을 계절과 인·예·의·지에 대응시키고, 여섯 효를 성인의 덕이 드러나는 정도가 아니라 같은 성인에게 생기는 은현과 시위의 차이로 읽는다. 건의 모든 효가 변하는 용구는 강함이 부드러움으로 바뀌는 조건이므로 길하다. 주희는 공자의 철학적 확장이 문왕의 원래 점사와 문맥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두 뜻은 함께 성립해 어긋나지 않는다고 본다.
정약용
정약용은 건을 단순히 하늘이나 순양(음이 섞이지 않은 온전한 양)의 상으로만 보지 않고, 복에서 임·태·대장·쾌를 거쳐 건에 이르는 양의 추이(효가 옮겨 변한 관계를 살펴 괘를 읽는 법) 과정으로 풀이한다. 이 과정에서 진을 용과 운동의 근원으로, 리를 성실·문명·교화로, 태를 의와 조화로, 감을 견고함과 일의 성취로 읽어 ‘원형리정(시작·성장·성취·바름을 가리키는 네 덕목)’의 구조를 설명한다. 「단전」과 「문언전」의 문구도 추이·물상·호체·효변의 네 방법에 따라 세밀하게 다시 배치한다.
각 효는 실제로 변한 뒤의 괘를 중심으로 해석한다. 초구는 손으로 변해 숨고 들어가므로 잠긴 용이고, 구이는 리로 변해 드러난 용이며, 구삼은 리괘가 되어 종일 실천하고 저녁에 반성한다. 구사는 소축의 진퇴가 확정되지 않아 ‘혹’이라 하고, 구오는 대유의 리에서 성군과 성인이 서로 만나며, 상구는 쾌의 가득 참과 결단 때문에 오래갈 수 없다. 용구는 여섯 효가 모두 변해 곤이 되는 순수 변괘의 점법이다. 정약용은 특히 구삼을 복서에만 국한되지 않는 수양의 효사로 보며, 《역》의 쓰임이 점에 그치지 않는다고 밝힌다.
현대적으로 읽기
건괘(창조적 힘을 때에 맞게 펼치는 상황)
막 역량을 갖추었다고 해서 언제나 곧바로 전면에 나서야 하는 것은 아니다. 건의 여섯 효는 준비, 공개, 책임 확대, 시험, 최고 책임, 과도한 상승을 서로 다른 국면으로 구분한다. 새로운 역할을 맡을 때는 능력만 확인할 게 아니라 지금의 권한과 책임, 주변의 신뢰, 물러날 조건까지 함께 점검해야 한다.
용구(여섯 양효가 모두 변할 때 쓰는 특별 판단)와 항룡(너무 높이 올라 후회하게 된 용의 비유)의 경계는 강한 추진력이 타인의 판단을 지우는 순간을 살피게 한다. 목표를 분명히 세우되 자신이 언제나 앞장서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고, 반대 의견과 승계 구조가 실제로 작동하게 해야 한다. 핵심은 강함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때에 맞게 쓰고 멈출 수 있는가에 있다.
왕필(王弼) 《주역주》 — 64괘 주석
이 64괘 주석의 저자는 왕필(王弼)이다. 한강백(韓康伯)은 계사전 등 일부 십익 주석의 저자로, 이 층과 구분한다.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文言備矣
出潛離隱故曰見龍處於地上故曰在田徳施周普居中不偏雖非君位君之徳也初則不彰三則乾乾四則或躍上則過亢利見大人唯二五焉
處下體之極居上體之下在不中之位履重剛之險上不在天未可以安其尊也下不在田未可以寧其居也純修下道則居上之徳廢純修上道則處下之禮曠故終日乾乾至于夕愓猶若厲也居上不驕在下不憂因時而惕不失其㡬雖危而勞可以无咎處下卦之極愈於上九之亢故竭知力而後免於咎也乾三以處下卦之上故免亢龍之悔坤三以處下卦之上故免龍戰之災
去下體之極居上體之下乾道革之時也上不在天下不在田中不在人履重剛之險而无定位所處斯誠進退无常之時也近乎尊位欲進其道廹乎在下非躍所及欲靜其居居非所安持疑猶與未敢決志用心存公進不在私疑以為慮不謬於果故元咎也
不行不躍而在乎天非飛如何故曰飛龍也龍徳在天則大人之路亨也夫位以徳興徳以位叙以至徳而處盛位萬物之覩不亦宜乎
九天之徳也能用天徳乃見羣龍之義焉夫以剛健而居人之首則物之所不與也以柔順而為不正則佞邪之道也故乾吉在无首坤利在永貞
天也者形之名也健也者用形者也夫形也者物之累也有天之形而能永保无虧為物之首統之者豈非至健哉大明乎終始之道故六位不失其時而成升降无常隨時而用處則乘潛龍出則乘飛龍故曰時乘六龍也乘變化而御大器靜專動直不失大和豈非正性命之情者邪
不和而剛暴
萬國所以寜各以有君也
以上言之則不驕以下言之則不憂反復皆通也
不為世俗所移易也
處一體之極是至也居一卦之盡是終也處事之至而不犯咎知至者也故可與成務矣處終而能全其終知終者也夫進物之速者義不若利存物之終者利不及義故靡不有初鮮克有終夫可與存義者其唯知終者乎
居下體之上在上體之下明夫終敝故不驕也知夫至至故不憂也
惕𪫟惕之謂也處事之極失時則廢懈怠則曠故因其時而愓雖危無咎
下无陰也
賢人雖在下而當位不為之助
處上卦之極而不當位故盡陳其闕也獨立而動物莫之與矣乾文言首不論乾而先說元下乃曰乾何也夫乾者統行四事者也君子以自强不息行此四者故首不論乾而下曰乾元亨利貞餘爻皆說龍至於九三獨以君子為目何也夫易者象也象之所生生於義也有斯義然後明之以其物故以龍叙乾以馬明坤隨其事義而取象焉是故初九九二龍徳皆應其義故可論龍以明之也至於九三乾乾夕愓非龍徳也明以君子當其象矣統而舉之乾體皆龍别而叙之各隨其義
此一章全以人事明之也九陽也陽剛直之物也夫能全用剛直放遠善柔非天下至理未之能也故乾元用九則天下治也夫識物之動則其所以然之理皆可知也龍之為徳不為妄者也潛而勿用何乎必窮處於下也見而在田必以時之通舍也以爻為人以位為時人不妄動則時皆可知也文王明夷則主可知矣仲尼旅人則國可知矣
與天時俱不息
與時運俱終極
此一章全説天氣以明之也九剛直之物唯乾體能用之用純剛以觀天天則可見矣
不為乾元何能通物之始不性其情何能久行其正是故始而亨者必乾元也利而正者必性情也
以君徳而處下體資納於物者也
「문언전」에 이미 갖추어져 있다.
잠김에서 나와 숨은 곳을 떠났으므로 ‘드러난 용’이라 했고, 땅 위에 처했으므로 ‘밭에 있다’고 했다. 덕이 두루 퍼지고, 가운데에 있어 치우치지 않으니, 비록 임금의 자리는 아니지만 임금의 덕을 갖추었다. 초효에서는 드러나지 않고, 삼효에서는 건건하며, 사효에서는 혹 뛰어오르고, 상효에서는 너무 높이 올라간다. 대인을 만나기에 이로운 것은 오직 이효와 오효다.
하괘의 끝에 있으면서 상괘의 아래에 있고, 가운데가 아닌 자리에서 겹친 강건함의 위험을 밟고 있다. 위로는 하늘에 있지 않아 존귀한 자리에 편안히 머물 수 없고, 아래로는 밭에 있지 않아 그 거처에 편안히 있을 수 없다. 하위의 도만 오로지 닦으면 위에 있는 자의 덕을 폐하고, 상위의 도만 닦으면 아래에 있는 자의 예를 허물게 한다. 그러므로 종일 건건하여 저녁에 이르기까지 두려워하기를 위태로운 듯이 한다. 위에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아래에 있어도 근심하지 않으며, 때에 따라 경계하여 기미를 잃지 않는다. 위태롭고 수고롭지만 허물은 없을 수 있다. 하괘의 끝에 있기 때문에 상구의 항룡보다 나으므로, 지혜와 힘을 다한 뒤에야 허물을 면한다. 건의 삼효는 하괘의 위에 있어 항룡의 뉘우침을 면하고, 곤의 삼효는 하괘의 위에 있어 용이 싸우는 재앙을 면한다.
하괘의 끝을 떠나 상괘의 아래에 있으니, 건의 도가 바뀌는 때다. 위로는 하늘, 아래로는 밭, 가운데로는 사람의 자리에도 있지 않으며, 겹친 강건함의 위험을 밟되 정해진 자리가 없다. 진퇴가 무상한 때다. 존위에 가까워 도를 펼치고 싶지만 아래에 묶여 있어 뛰어오를 수 없고, 고요히 머물고 싶지만 안정된 거처가 아니다. 주저하여 결단하지 않는 것은 마음을 공에 두고 사사로이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의심을 사려의 도구로 삼아 과감함에서 그르치지 않으므로 허물이 없다.
걷지도 뛰지도 않았는데 하늘에 있으니, 날지 않고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날아오른 용’이라 한다. 용의 덕이 하늘에 있으면 대인의 길이 형통한다. 자리는 덕으로써 일어나고 덕은 자리로써 차서를 이룬다. 지극한 덕으로 성대한 자리에 있으니 만물이 우러러보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구는 하늘의 덕이다. 하늘의 덕을 쓸 수 있어야 비로소 뭇 용을 본다는 뜻이 드러난다. 강건함으로 사람들의 머리가 되면 만물이 함께하지 않고, 유순함으로 바름을 잃으면 첨녕과 사악의 길이 된다. 그러므로 건의 길함은 머리를 세우지 않는 데 있고, 곤의 이로움은 영원히 바르게 하는 데 있다.
하늘은 형체의 이름이고, 건은 그 형체를 운용하는 작용이다. 형체는 사물의 누가 된다. 하늘의 형체를 갖추고도 영원히 결함 없이 보존하며 만물의 으뜸이 되어 통솔하는 것은 지극한 건실함이 아니겠는가. 시작과 끝의 도를 크게 밝혔으므로 여섯 자리가 때를 잃지 않고 이루어진다.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이 무상하여 때에 따라 쓴다. 머물 때는 잠룡을 타고, 나갈 때는 비룡을 타므로 ‘때에 따라 여섯 용을 탄다’고 한다. 변화를 타고 큰 기물을 운용하며, 고요할 때는 전일하고 움직일 때는 곧아 큰 조화를 잃지 않으니, 이것이 성명의 정을 바르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조화롭지 않으면 강폭해진다.
만국이 편안한 까닭은 각기 임금이 있기 때문이다.
위로 말하면 교만하지 않고, 아래로 말하면 근심하지 않으니, 반복하여 어느 쪽으로나 통한다.
세속에 옮겨 바뀌지 않는다.
한 몸의 끝에 처함이 ‘지극함에 이름’이고, 한 괘의 다함에 처함이 ‘끝’이다. 일의 지극함에 처하고도 허물을 범하지 않는 것이 지극함을 아는 것이므로, 함께 일을 이룰 수 있다. 끝에 처하여 그 끝을 온전히 하는 것이 끝을 아는 것이다. 사물을 적극적으로 나아가게 하는 속도에서는 의가 이익만 못하지만, 사물의 끝을 보존하는 데서는 이익이 의에 미치지 못한다. 시작이 없는 것은 없지만 끝을 온전히 하는 것은 드무니, 의를 보존할 수 있는 자는 오직 끝을 아는 자일 것이다.
상괘의 아래에 있어 끝을 알므로 교만하지 않고, 하괘의 위에 있어 지극함에 이름을 알므로 근심하지 않는다.
‘두려워함’은 경계하고 또 경계함을 뜻한다. 일의 끝에 처하여 때를 잃으면 폐하고 게으르면 일을 비우게 된다. 그러므로 그 때에 따라 두려워하면 위태로워도 허물이 없다.
아래에 음효가 없다.
현자가 비록 아래에 있으나 당당한 자리를 점하여 그를 돕지 않는다.
상괘의 끝에 있으며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므로 그 결함을 모두 나열한 것이다. 혼자 서서 움직이면 사물이 함께하지 않는다. 건의 「문언전」이 처음에 건을 논하지 않고 먼저 원을 말한 뒤 아래에서 비로소 건이라 한 까닭은 무엇인가. 건은 원·형·리·정의 네 일을 통솔하는 것이다. 군자는 스스로 힘써 쉬지 않음으로써 이 네 가지를 행한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건을 논하지 않다가 아래에서 ‘건은 으뜸이고 형통하며 이롭고 바르다’고 한다. 나머지 효는 모두 용을 말하는데 구삼에 이르러 혼자 군자를 표제로 삼은 까닭은 무엇인가. 《역》은 상이고, 상은 의에서 생겨난다. 그런 의가 있은 뒤에 사물로써 그것을 밝힌다. 그러므로 용으로 건을 펼치고 말로 곤을 밝히며, 일의 의에 따라 상을 취한다. 초구와 구이는 용의 덕이 모두 그 의에 맞으므로 용으로 논해 밝힐 수 있다. 구삼의 ‘종일 건건하고 저녁에 두려워함’은 용의 덕이 아니므로 군자로써 그 상에 당하게 했다. 전체로 들면 건의 몸은 모두 용이지만, 따로 풀면 각각 그 의에 따른다.
이 장은 전체를 인사로써 밝힌 것이다. 구는 양이고, 양은 강하고 곧은 사물이다. 강직함을 완전히 쓰고 유순함을 좋아하는 것을 멀리하는 일은 천하의 지극한 이치를 아는 이가 아니면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건의 으뜸이 구를 쓰면 천하가 다스려진다. 사물의 움직임을 식별하면 그것이 그렇게 된 이치를 모두 알 수 있다. 용의 덕은 망령되이 행하지 않는다. 잠김에 있어 쓰지 않는 것은 반드시 아래에 궁하게 처해서이고, 드러나 밭에 있는 것은 반드시 때가 통해서다. 효를 사람으로 삼고 자리를 때로 삼으면, 사람이 망령되이 움직이지 않을 때 모든 때를 알 수 있다. 문왕이 명이의 때를 만나면 그 임금을 알 수 있고, 중니가 나그네가 되면 그 나라를 알 수 있다.
하늘의 때와 함께 쉬지 않는다.
때의 운행과 함께 끝까지 간다.
이 장은 전체를 하늘의 기운으로써 밝힌 것이다. 구는 강하고 곧은 사물이며, 오직 건의 몸만이 이것을 쓸 수 있다. 순수한 강함으로 하늘을 관찰하면 하늘의 법칙을 볼 수 있다.
건의 으뜸이 아니면 어찌 사물의 시작을 통하게 할 수 있겠으며, 그 정을 본성대로 하지 않으면 어찌 그 바름을 오래 행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시작하여 형통하게 하는 것은 반드시 건의 으뜸이고, 이롭고 바른 것은 반드시 성정이다.
임금의 덕을 갖추고 하괘에 처하여, 사물로부터 받아들임을 취하는 자다.
건은 순수한 강건함이 때와 자리에 따라 숨고·나타나고·경계하고·나아가는 운동을 보여 준다. 왕필은 강건함을 고정된 세로 보지 않고, 시위(때와 자리)에 맞게 쓰여야 하는 하늘의 덕으로 풀었다.
교감·번역 주
정이천 《이천역전》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乾下乾上〉
乾元亨利貞
上古聖人始畫八卦三才之道備矣因而重之以盡天下之變故六畫而成卦重乾為乾乾天也天者天之形體乾者天之性情乾健也健而无息之謂乾夫天專言之則道也天且弗違是也分而言之則以形體謂之天以主宰謂之帝以功用謂之鬼神以妙用謂之神以性情謂之乾乾者萬物之始故為天為陽為父為君元亨利貞謂之四德元者萬物之始亨者萬物之長利者萬物之遂貞者萬物之成惟乾坤有此四德在他卦則隨事而變焉故元專為善大利主於正固亨貞之體各稱其事四德之義廣矣大矣
初九潛龍勿用
下爻為初九陽數之盛故以名陽爻理无形也故假象以顯義乾以龍為象龍之為物靈變不測故以象乾道變化陽氣消息聖人進退初九在一卦之下為始物之端陽氣方萌聖人側微若龍之潛隱未可自用當晦飬以俟時
九二見龍在田利見大人
田地上也出見於地上其德已著以聖人言之舜之田漁時也利見大德之君以行其道君亦利見大德之臣以共成其功天下利見大德之人以被其澤大德之君九五也乾坤純體不分剛柔而以同德相應
九三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无咎
三雖臣位已在下體之上未離於下而尊顯者也舜之𤣥德升聞時也日夕不懈而兢惕則雖處危地而无咎在下之人而君德已著天下將歸之其危懼可知雖言聖人事苟不設戒則何以為教作易之義也
九四或躍在淵无咎
淵龍之所安也或疑辭謂非必也躍不躍惟及時以就安耳聖人之動無不時也舜之歴試時也
九五飛龍在天利見大人
進位乎天位也聖人既得天位則利見在下大徳之人與共成天下之事天下固利見夫大徳之君也
上九亢龍有悔
九五者位之極中正者得時之極過此則亢矣上九至於亢極故有悔也有過則有悔唯聖人知進退存亡而无過則不至於悔也
用九見羣龍无首吉
用九者處乾剛之道以陽居乾體純乎剛者也剛柔相濟為中而乃以純剛是過乎剛也見羣龍謂觀諸陽之義无為首則吉也以剛為天下先凶之道也
彖曰大哉乾元萬物資始乃統天
雲行雨施品物流形
大明終始六位時成時乗六龍以御天
乾道變化各正性命保合太和乃利貞
首出庶物萬國咸寧
卦下之辭為彖夫子從而釋之通謂之彖彖者言一卦之義故知者觀其彖辭則思過半矣大哉乾无贊乾元始萬物之道大也四徳之元猶五常之仁偏言則一事專言則包四者萬物資始乃統天言元也乾元統言天之道也天道始萬物物資始於天也雲行雨施品物流形言亨也天道運行生育萬物也大明天道之終始則見卦之六位各以時成卦之初終乃天道終始乗此六爻之時乃天運也以御天謂以當天運乾道變化生育萬物洪纎髙下各以其類各正性命也天所賦為命物所受為性保合太和乃利貞保謂常存合謂常和保合太和是以利且貞也天地之道常久而不已者保合太和也天為萬物之祖王為萬邦之宗乾道首出庶物而萬彚亨君道尊臨天位而四海從王者體天之道則萬國咸寧也
象曰天行健君子以自彊不息
卦下象解一卦之象爻下象解一爻之象諸卦皆取象以為法乾道覆育之象至大非聖人莫能體欲人皆可取法也故取其行健而已至健固足以見天道也君子以自彊不息法天行之健也
潛龍勿用陽在下也
陽氣在下君子處微未可用也
見龍在田徳施普也
見於地上徳化及物其施已普也
終日乾乾反復道也
進退動息必以道也
或躍在淵進无咎也
量可而進適其時則无咎也
飛龍在天大人造也
大人之為聖人之事也
亢龍有悔盈不可久也
盈則變有悔也
用九天徳不可為首也
用九天徳也天徳陽剛復用剛而好先則過矣
文言曰元者善之長也亨者嘉之會也利者義之和也貞者事之幹也
他卦彖象而已獨乾坤更設文言以發明其義推乾之道施於人事元亨利貞乾之四徳在人則元者衆善之首也亨者嘉美之會也利者和合於義也貞者幹事之用也
君子體仁足以長人
體法於乾之仁乃為君長之道足以長人也體仁體元也比而效之謂之體
嘉會足以合禮
得會通之嘉乃合於禮也不合禮則非理豈得為嘉非理安有亨乎
利物足以和義
和於義乃能利物豈有不得其宜而能利物者乎
貞固足以幹事
貞固所以能幹事也
君子行此四徳者故曰乾元亨利貞
行此四徳乃合於乾也
初九曰潛龍勿用何謂也子曰龍徳而隱者也不易乎世不成乎名遯世无悶不見是而无悶樂則行之憂則違之確乎其不可拔潛龍也
自此以下言乾之用用九之道也初九陽之微龍徳之潛隱乃聖賢之在側陋也守其道不隨世而變晦其行不求知於時自信自樂見可而動知難而避其守堅不可奪潛龍之徳也
九二曰見龍在田利見大人何謂也子曰龍徳而正中者也庸言之信庸行之謹閑邪存其誠善世而不伐徳博而化易曰見龍在田利見大人君徳也
以龍徳而處正中者也在卦之正中為得正中之義庸信庸謹造次必於是也既處无過之地則唯在閑邪邪既閑則誠存矣善世而不伐不有其善也徳博而化正己而物正也皆大人之事雖非君位君之徳也
九三曰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无咎何謂也子曰君子進徳修業忠信所以進徳也修辭立其誠所以居業也知至至之可與幾也知終終之可與存義也是故居上位而不驕在下位而不憂故乾乾因其時而惕雖危无咎矣
三居下之上而君徳已著將何為哉唯進徳修業而已内積忠信所以進徳也擇言篤志所以居業也知至至之致知也求知所至而後至之知之在先故可與幾所謂始條理者知之事也知終終之力行也既知所終則力進而終之守之在後故可與存義所謂終條理者聖之事也此學之始終也君子之學如是故知處上下之道而无驕憂不懈而知懼雖在危地而无咎也
九四曰或躍在淵无咎何謂也子曰上下无常非為邪也進退無恒非離羣也君子進徳修業欲及時也故无咎
或躍或處上下无常或進或退去就從宜非為邪枉非離羣類進徳修業欲及時耳時行時止不可恒也故云或深淵者龍之所安也在淵謂躍就所安淵在深而言躍但取進就所安之義或疑辭隨時而未可必也君子之順時猶影之隨形可離非道也
九五曰飛龍在天利見大人何謂也子曰同聲相應同氣相求水流濕火就燥雲從龍風從虎聖人作而萬物覩本乎天者親上本乎地者親下則各從其類也人之與聖人類也五以龍徳升尊位人之類莫不歸仰况同徳乎上應於下下從於上同聲相應同氣相求也流濕就燥從龍從虎皆以氣類故聖人作而萬物皆覩上既見下下亦見上物人也古語云人物物論謂人也易中利見大人其言則同義則有異如訟之利見大人謂宜見大徳中正之人則其辯明言在見前乾之二五則聖人既出上下相見其成其事所利者見大人也言在見後本乎天者如日月星辰本乎地者如蟲獸草木陰陽各從其類人物莫不然也
上九曰亢龍有悔何謂也子曰貴而无位髙而无民賢人在下位而无輔是以動而有悔也
九居上而不當尊位是以无民無輔動則有悔也
潛龍勿用下也
此以下言乾之時勿用以在下未可用也
見龍在田時舍也
隨時而止也
終日乾乾行事也
進徳修業也
或躍在淵自試也
隨時自用也
飛龍在天上治也
得位而行上之治也
亢龍有悔窮之災也
窮極而災至也
乾元用九天下治也
用九之道天與聖人同得其用則天下治也
潛龍勿用陽氣潛藏
此以下言乾之義方陽微潛藏之時君子亦當晦隱未可用也
見龍在田天下文明
龍徳見於地上則天下見其文明之化也
終日乾乾與時偕行
隨時而進也
或躍在淵乾道乃革
離下位而升上位上下革矣
飛龍在天乃位乎天徳
正位乎上位當天徳
亢龍有悔與時偕極
時既極則處時者亦極矣
乾元用九乃見天則
用九之道天之則也天之法則謂天道也或問乾之六爻皆聖人之事乎曰盡其道者聖人也得失則吉凶存焉豈特乾哉諸卦皆然也
乾元者始而亨者也
又反覆詳說以盡其義既始則必亨不亨則息矣
利貞者性情也
乾之性情也既始而亨非利貞其能不息乎
乾始能以美利利天下不言所利大矣哉
乾始之道能使庻類生成天下蒙其美利而不言所利者蓋无所不利非可指名也故贊其利之大曰大矣哉
大哉乾乎剛健中正純粹精也
六爻發揮旁通情也
時乗六龍以御天也雲行雨施天下平也
大哉贊乾道之大也以剛健中正純粹六者形容乾道精謂六者之精極以六爻發揮旁通盡其情義乗六爻之時以當天運則天之功用著矣故見雲行雨施陰陽溥暢天下和平之道也
君子以成徳為行日可見之行也潛之為言也隱而未見行而未成是以君子弗用也
徳之成其事可見者行也徳成而後可施於用初方潛隱未見其行未成未成未著也是以君子弗用也
君子學以聚之問以辨之寛以居之仁以行之易曰見龍在田利見大人君徳也
聖人在下雖已顯而未得位則進徳修業而已學聚問辨進徳也寛居仁行修業也君徳已著利見大人而進以行之耳進居其位者舜禹也進行其道者伊傅也
九三重剛而不中上不在天下不在田故乾乾因其時而惕雖危无咎矣
三重剛剛之盛也過中而居下之上上未至於天而下已離於田危懼之地也因時順處乾乾兢惕以防危故雖危而不至於咎君子順時兢惕所以能泰也
九四重剛而不中上不在天下不在田中不在人故或之或之者疑之也故无咎
四不在天不在田而出人之上矣危地也疑者未決之辭處非可必也或進或退唯所安耳所以无咎也
夫大人者與天地合其徳與日月合其明與四時合其序與鬼神合其吉凶先天而天弗違後天而奉天時天且弗違而况於人乎况於鬼神乎
大人與天地日月四時鬼神合者合乎道也天地者道也鬼神者造化之迹也聖人先於天而天同之後於天而能順天者合於道而已合於道則人與鬼神豈能違也
亢之為言也知進而不知退知存而不知亡知得而不知喪
其唯聖人乎知進退存亡而不失其正者其唯聖人乎極之甚為亢至於亢者不知進退存亡得喪之理也聖人則知而處之皆不失其正故不至於亢也
건(乾)이 아래에 있고 건이 위에 있다.
“건은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롭다.”
상고의 성인이 처음 팔괘를 그리자 하늘·땅·사람이라는 삼재의 도가 갖추어졌다. 이를 거듭하여 천하의 모든 변화를 다 드러냈으므로 여섯 획으로 한 괘가 이루어졌다. 건을 거듭한 괘가 건이다. 건의 상은 하늘이다. 하늘은 하늘의 형체이고, 건은 하늘의 성정이다. 건은 굳세다는 뜻이다. 굳세어 쉬지 않는 것을 건이라 한다. 하늘을 하나로 온전히 말하면 곧 도이니, ‘하늘도 또한 어기지 않는다’고 할 때가 이것이다. 나누어 말하면 형체로는 하늘이라 하고, 주재하는 면으로는 상제라 하며, 공용으로는 귀신이라 하고, 신묘한 작용으로는 신이라 하며, 성정으로는 건이라 한다. 건은 만물의 시작이므로 하늘·양·아버지·임금이 된다. 원·형·리·정을 네 덕이라 한다. 원은 만물이 시작함이고, 형은 만물이 자라남이며, 리는 만물이 이루어져 감이고, 정은 만물이 완성됨이다. 오직 건과 곤만 이 네 덕을 모두 지닌다. 다른 괘에서는 일에 따라 뜻이 달라지므로, ‘원’은 오로지 선함과 큼을 뜻하고 ‘리’는 주로 바르고 굳음을 뜻하며, ‘형’과 ‘정’의 본뜻도 각각 해당하는 일에 맞추어 일컬어진다. 네 덕의 뜻은 넓고도 크다.
“초구는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
맨 아래의 효를 초라고 한다. 구는 양수의 성대한 수이므로 양효를 이름 짓는다. 이치는 형체가 없으므로 상을 빌려 뜻을 드러낸다. 건은 용을 상으로 삼는다. 용이라는 동물은 신령하게 변화하여 헤아릴 수 없으므로 건도의 변화, 양기의 사라지고 자람, 성인의 나아가고 물러남을 상징한다. 초구는 한 괘의 맨 아래에서 시작이고 사물의 단서다. 양기가 막 싹트고 성인이 낮고 미천한 자리에 있는 때이니, 용이 잠겨 숨은 것처럼 스스로 나서서 쓰일 수 없다. 빛을 감추고 수양하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
“구이는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
밭은 땅 위다. 땅 위로 나와 나타나 그 덕이 이미 드러났으니, 성인으로 말하면 순임금이 밭을 갈고 물고기를 잡던 때다. 큰 덕을 지닌 임금을 만나 자기 도를 행하는 것이 이롭다. 임금 역시 큰 덕을 지닌 신하를 만나 함께 공을 이루는 것이 이롭다. 천하도 큰 덕을 지닌 사람을 만나 그 은택을 입는 것이 이롭다. 큰 덕을 지닌 임금은 구오다. 건과 곤은 순수한 몸체이므로 강유를 나누지 않고 같은 덕끼리 서로 호응한다.
“구삼은 군자가 종일 힘쓰고 힘쓰며 저녁에도 두려워하면, 위태로워도 허물이 없다.”
삼은 비록 신하의 자리지만 이미 아래 괘의 위에 있어, 아직 아래를 떠나지 않았으면서도 존귀함과 명성이 드러난 사람이다. 순임금의 깊은 덕이 위에 알려지던 때와 같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게을리하지 않고 두려워하며 경계하면 위태로운 자리에 있어도 허물이 없다. 아래에 있는 사람인데 임금의 덕이 이미 드러나 천하가 장차 그에게 돌아가려 하니, 그 위태로움과 두려움을 알 수 있다. 비록 성인의 일을 말했지만 경계를 세우지 않는다면 어떻게 가르침이 되겠는가? 이것이 《역》을 지은 뜻이다.
“구사는 혹 뛰어오르거나 못에 있으면 허물이 없다.”
못은 용이 편안히 있는 곳이다. ‘혹’은 의심하여 단정하지 않는 말이니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뛰어오르거나 뛰어오르지 않는 것은 오직 때에 맞추어 편안한 곳으로 나아갈 뿐이다. 성인의 움직임은 때에 맞지 않음이 없다. 순임금이 여러 관직을 거치며 시험받던 때와 같다.
“구오는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
나아가 하늘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성인이 이미 천자의 자리를 얻으면 아래에 있는 큰 덕의 사람을 만나 함께 천하의 일을 이루는 것이 이롭다. 천하도 참으로 큰 덕을 지닌 임금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
“상구는 너무 높이 오른 용이니 뉘우침이 있다.”
구오는 지위의 극치이고 중정은 때를 얻음의 극치다. 이를 지나면 너무 높이 오른다. 상구는 높이 오르기를 극진히 하였으므로 뉘우침이 있다. 지나침이 있으면 뉘우침이 생긴다. 오직 성인은 나아감과 물러남, 존속과 멸망을 알아 잘못이 없으므로 뉘우침에 이르지 않는다.
“용구는 여러 용을 보되 우두머리가 없으면 길하다.”
용구는 건의 굳센 도에 처하는 법이다. 양으로 건의 몸체에 있으니 순전히 굳센 것이다. 굳셈과 부드러움이 서로 구제해야 중도가 되는데 순수한 굳셈만 있으니 굳셈이 지나치다. 여러 용을 본다는 것은 여러 양효의 뜻을 살핀다는 말이다. 그 가운데 우두머리가 되려 하지 않으면 길하다. 굳셈으로 천하의 앞에 서려는 것은 흉한 도다.
「단전」에서 말하였다. “크도다, 건의 원이여! 만물이 이에 의지해 시작하니 곧 하늘을 통괄한다.”
“구름이 흐르고 비가 내려 온갖 사물이 형체를 이룬다.”
“마침과 시작을 크게 밝혀 여섯 자리가 때에 맞추어 이루어지니, 때에 맞추어 여섯 용을 타고 하늘을 운행한다.”
“건도가 변화하여 만물이 각각 성과 명을 바르게 하고 큰 조화를 보전해 합하니, 이에 이롭고 바르다.”
“뭇 사물보다 먼저 나와 만국이 모두 편안하다.”
괘 아래에 붙은 말을 괘사라고 하며 공자가 이를 따라 풀이한 것까지 통틀어 「단」이라 한다. ‘단’은 한 괘의 뜻을 말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이 괘사를 보면 생각의 절반을 넘게 얻는다. ‘크도다, 건의 원이여’는 만물을 시작하는 건원의 도가 큼을 찬탄한 말이다. 네 덕에서 원은 오상에서 인과 같다. 한 측면만 말하면 하나의 일이지만 온전히 말하면 네 덕을 모두 포괄한다. 만물이 이에 의지해 시작하여 하늘을 통괄한다는 것은 ‘원’을 말한다. ‘건원’은 하늘의 도를 통틀어 이른다. 하늘의 도가 만물을 시작하게 하고 만물은 하늘에 의지하여 시작한다. 구름이 흐르고 비가 내려 온갖 사물이 형체를 이룬다는 것은 ‘형’을 말한다. 하늘의 도가 운행하며 만물을 낳고 기르는 것이다. 하늘 도의 마침과 시작을 크게 밝히면 괘의 여섯 자리가 각각 때에 맞추어 이루어짐을 알게 된다. 괘의 처음과 끝이 곧 하늘 도의 마침과 시작이다. 이 여섯 효의 때를 타는 것이 하늘의 운행이며, ‘하늘을 운행한다’는 것은 하늘의 운행에 맞춘다는 뜻이다. 건도가 변화하여 만물을 낳고 기르면 크고 작은 것, 높고 낮은 것이 각각 자기 종류에 따라 성과 명을 바르게 한다. 하늘이 부여한 것이 명이고 사물이 받은 것이 성이다. 큰 조화를 보전해 합하므로 이롭고 또 바르다. ‘보전’은 늘 보존함이고 ‘합함’은 늘 조화함이다. 큰 조화를 보전해 합하는 것이 하늘과 땅의 도가 오래도록 그치지 않는 까닭이다. 하늘은 만물의 조상이고 왕은 만국의 으뜸이다. 건도가 뭇 사물보다 먼저 나와 온갖 종류가 형통하듯, 임금의 도가 천자의 자리에 높이 임하면 사해가 따른다. 왕이 하늘의 도를 체득하면 만국이 모두 편안하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하늘의 운행은 굳세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
괘 아래의 「상전」은 한 괘의 상을 풀이하고, 효 아래의 「상전」은 한 효의 상을 풀이한다. 모든 괘가 상을 취하여 법으로 삼는다. 건도가 덮고 기르는 상은 지극히 커서 성인이 아니면 체득할 수 없지만, 모든 사람이 본받을 수 있게 하고자 하였으므로 그 운행이 굳센 점만 취하였다. 지극한 굳셈만으로도 하늘의 도를 보기에 충분하다. 군자가 스스로 힘쓰며 쉬지 않는 것은 하늘 운행의 굳셈을 본받은 것이다.
“잠긴 용을 쓰지 말라는 것은 양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양기가 아래에 있고 군자가 미천한 자리에 있으므로 아직 쓰일 수 없다.
“나타난 용이 밭에 있다는 것은 덕의 베풂이 넓기 때문이다.”
땅 위에 나타나 덕의 교화가 사물에 미치므로 그 베풂이 이미 넓다.
“종일 힘쓰고 힘쓴다는 것은 도를 거듭 실천하는 것이다.”
나아가고 물러나며 움직이고 쉬는 일을 반드시 도에 따라 한다.
“혹 뛰어오르거나 못에 있으면 나아가도 허물이 없다.”
가능함을 헤아려 나아가 때에 맞으면 허물이 없다.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대인이 성인의 일을 행하는 것이다.”
대인이 성인의 일을 하는 것이다.
“너무 높이 오른 용에게 뉘우침이 있다는 것은 가득 참이 오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가득 차면 변하므로 뉘우침이 있다.
“용구는 하늘의 덕이니 우두머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용구는 하늘의 덕이다. 하늘의 덕은 양강인데 다시 굳셈을 써 앞서기를 좋아하면 지나치게 된다.
「문언전」에서 말하였다. “원은 선함의 으뜸이고, 형은 아름다움이 모인 것이며, 리는 의로움의 조화이고, 정은 일을 세우는 줄기다.”
다른 괘에는 「단전」과 「상전」만 있지만 건과 곤에만 따로 「문언전」을 두어 그 뜻을 밝혔다. 건의 도를 미루어 사람의 일에 베풀면, 원·형·리·정은 건의 네 덕이다. 사람에게서 원은 여러 선의 으뜸이고, 형은 아름다운 것들이 모이는 것이며, 리는 의로움에 조화되는 것이고, 정은 일을 주관해 세우는 쓰임이다.
“군자가 인을 몸으로 삼으면 사람의 어른이 되기에 충분하다.”
건의 인을 몸으로 본받아야 비로소 군장 노릇을 할 도가 되어 사람의 어른이 되기에 충분하다. 인을 몸으로 삼는다는 것은 원을 몸으로 삼는 것이다. 가까이 견주어 본받는 것을 ‘몸으로 삼는다’고 한다.
“아름다움을 모으면 예에 합하기에 충분하다.”
모이고 통하는 아름다움을 얻어야 예에 합한다. 예에 합하지 않으면 이치가 아닌데 어찌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치가 아니라면 어찌 형통함이 있겠는가?
“사물을 이롭게 하면 의로움을 조화시키기에 충분하다.”
의로움에 조화되어야 사물을 이롭게 할 수 있다. 마땅함을 얻지 못하고도 사물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
“바르고 굳으면 일을 세우기에 충분하다.”
바르고 굳은 것이 일을 주관해 세울 수 있게 한다.
“군자는 이 네 덕을 행하므로 ‘건은 원·형·리·정이다’라고 한다.”
이 네 덕을 행해야 건에 합한다.
“초구의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공자가 말하였다. 용의 덕을 지니고도 숨은 사람이다. 세상 때문에 지키는 바를 바꾸지 않고 명성을 이루려 하지 않는다. 세상을 피해 살아도 답답해하지 않고, 옳음을 인정받지 못해도 답답해하지 않는다. 즐거우면 행하고 근심스러우면 어긴다. 확고하여 그 뜻을 빼앗을 수 없으니, 잠긴 용이다.”
여기서부터 아래는 건의 작용, 곧 용구의 도를 말한다. 초구는 양이 미약하고 용의 덕이 잠겨 숨은 때이니, 성현이 낮고 누추한 곳에 있는 경우다. 자기 도를 지켜 세상에 따라 바꾸지 않고 행실을 감추어 당시에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는다. 스스로 믿고 스스로 즐기며, 가능함을 보면 움직이고 어려움을 알면 피한다. 그 지킴이 굳어 빼앗을 수 없으니 잠긴 용의 덕이다.
“구이의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공자가 말하였다. 용의 덕을 지니고 바르고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다. 일상적인 말도 믿음직하고 일상적인 행동도 삼가며, 사악함을 막아 그 정성을 보존한다. 세상을 선하게 하면서도 자랑하지 않고, 덕이 넓어 교화한다. 《역》에서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고 했으니, 임금의 덕이다.”
용의 덕으로 바르고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다. 괘의 바른 가운데에 있으므로 ‘바르고 가운데’라는 뜻을 얻는다. 일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삼가니 잠깐의 순간에도 반드시 이 도에 따른다. 이미 허물이 없는 자리에 있으면 오직 사악함을 막는 일이 남는다. 사악함을 막으면 정성이 보존된다. 세상을 선하게 하되 자랑하지 않는 것은 자기 선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다. 덕이 넓어 교화한다는 것은 자신을 바르게 하여 사물도 바르게 만드는 것이다. 모두 대인의 일이다. 비록 임금의 자리는 아니지만 임금의 덕이다.
“구삼의 ‘군자가 종일 힘쓰고 힘쓰며 저녁에도 두려워하면 위태로워도 허물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덕을 나아가게 하고 업을 닦는다. 충성과 믿음은 덕을 나아가게 하는 것이고, 말을 닦아 그 정성을 세우는 것은 업을 지키는 것이다. 이를 곳을 알아 그곳에 이르면 기미에 함께할 수 있고, 끝날 곳을 알아 그곳에서 끝마치면 의로움을 보존하는 데 함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윗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아랫자리에 있어도 근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힘쓰고 힘쓰며 때에 따라 두려워하니, 비록 위태로워도 허물이 없다.”
삼은 아래 괘의 위에 있어 임금의 덕이 이미 드러났으니, 장차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직 덕을 나아가게 하고 업을 닦을 뿐이다. 안에 충성과 믿음을 쌓는 것이 덕을 나아가게 하는 방법이고, 말을 가려 뜻을 돈독히 하는 것이 업을 지키는 방법이다. 이를 곳을 알고 그곳에 이르는 것은 앎을 이루는 일이다. 먼저 이를 곳을 알려고 구한 뒤 그곳에 이르니 앎이 앞에 있다. 그러므로 기미에 함께할 수 있다. 이른바 조리를 시작하는 것은 지혜의 일이다. 끝날 곳을 알고 거기서 끝마치는 것은 힘써 행하는 일이다. 이미 끝날 곳을 알면 힘써 나아가 끝마치니 지킴이 뒤에 있다. 그러므로 의로움을 보존하는 데 함께할 수 있다. 이른바 조리를 끝마치는 것은 성인의 일이다. 이것이 배움의 시작과 끝이다. 군자의 배움이 이와 같으므로 위아래에 처하는 도를 알아 교만하거나 근심하지 않고,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두려워할 줄 안다. 그러므로 위태로운 자리에 있어도 허물이 없다.
“구사의 ‘혹 뛰어오르거나 못에 있으면 허물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공자가 말하였다. 오르내림에 일정함이 없으나 사악함을 행하는 것이 아니고, 나아가고 물러남에 항구함이 없으나 무리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 군자가 덕을 나아가게 하고 업을 닦는 것은 때에 미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다.”
혹 뛰어오르고 혹 머물며, 혹 올라가고 혹 내려와 일정함이 없다. 혹 나아가고 혹 물러나며, 떠나고 나아감을 마땅함에 따르게 한다. 사악하고 굽은 일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자기 무리를 떠나려는 것도 아니다. 오직 덕을 나아가게 하고 업을 닦아 때에 미치려는 것이다. 때에 맞추어 행하고 때에 맞추어 멈추므로 일정할 수 없다. 그래서 ‘혹’이라 하였다. 깊은 못은 용이 편안한 곳이다. 못에 있다는 것은 뛰어올라 편안한 곳으로 나아감을 말한다. 못은 깊은 곳에 있는데도 ‘뛴다’고 한 것은 오직 나아가 편안한 곳으로 간다는 뜻을 취했기 때문이다. ‘혹’은 의심하여 단정하지 않는 말이니, 때를 따라야 하며 반드시 어느 한쪽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군자가 때를 따르는 것은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으니, 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구오의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공자가 말하였다. 같은 소리는 서로 호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한다. 물은 젖은 곳으로 흐르고 불은 마른 곳으로 나아간다.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 성인이 일어나면 만물이 바라본다. 하늘에 근본한 것은 위를 가까이하고 땅에 근본한 것은 아래를 가까이하니, 각각 자기 무리를 따른다.” 사람은 성인과 같은 무리다. 오는 용의 덕으로 존위에 올랐으니 사람의 무리가 우러러 귀의하지 않음이 없는데, 하물며 같은 덕을 가진 사람이겠는가? 위에서는 아래에 호응하고 아래에서는 위를 따르니 같은 소리가 서로 호응하고 같은 기운이 서로 구한다. 물이 젖은 곳으로 흐르고 불이 마른 곳으로 나아가며, 구름이 용을 따르고 바람이 범을 따르는 것은 모두 기운과 무리가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일어나면 만물이 모두 본다. 위도 아래를 보고 아래도 위를 본다. ‘물’은 사람이다. 옛말의 ‘인물’, 《논어》의 ‘인물’도 사람을 가리킨다. 《역》에서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는 말은 같아도 뜻은 다르다. 송괘에서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는 것은 큰 덕을 갖춘 중정한 사람을 만나야 시비가 밝혀진다는 뜻이므로 ‘본다’는 말 앞에 ‘이롭다’는 뜻이 있다. 건괘의 구이와 구오에서는 성인이 이미 나와 위아래가 서로 만나 함께 일을 이루며, 이롭게 여기는 대상이 대인을 만나는 일이므로 ‘본다’는 말 뒤에 ‘이롭다’는 뜻이 있다. 하늘에 근본한 것은 해·달·별과 같은 것이고, 땅에 근본한 것은 벌레·짐승·초목과 같은 것이다. 음과 양이 각각 자기 무리를 따르며 사람과 사물도 그렇지 않음이 없다.
“상구의 ‘너무 높이 오른 용이니 뉘우침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공자가 말하였다. 귀하지만 지위가 없고 높지만 백성이 없으며, 현인이 아래 자리에 있어도 보좌하지 않으니, 이 때문에 움직이면 뉘우침이 있다.”
구가 맨 위에 있으나 존위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백성도 보좌도 없다. 움직이면 뉘우침이 있다.
“잠긴 용을 쓰지 말라는 것은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아래는 건의 때를 말한다. 쓰지 말라는 것은 아래에 있어 아직 쓰일 수 없기 때문이다.
“나타난 용이 밭에 있다는 것은 때에 따라 머무는 것이다.”
때를 따라 멈춘다.
“종일 힘쓰고 힘쓴다는 것은 일을 행하는 것이다.”
덕을 나아가게 하고 업을 닦는다.
“혹 뛰어오르거나 못에 있다는 것은 스스로 시험하는 것이다.”
때에 맞추어 스스로를 쓴다.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위에서 다스리는 것이다.”
자리를 얻어 윗사람의 다스림을 행한다.
“너무 높이 오른 용에게 뉘우침이 있다는 것은 궁극에 이른 재앙이다.”
궁극에 이르면 재앙이 닥친다.
“건원의 용구는 천하가 다스려지는 것이다.”
용구의 도는 하늘과 성인이 함께 얻는 것이다. 그 작용을 얻으면 천하가 다스려진다.
“잠긴 용을 쓰지 말라는 것은 양기가 잠겨 감추어진 것이다.”
여기서부터 아래는 건의 의리를 말한다. 양이 미약하여 잠겨 감추어진 때에는 군자도 빛을 감추고 숨어 아직 쓰이지 않아야 한다.
“나타난 용이 밭에 있다는 것은 천하가 문명해지는 것이다.”
용의 덕이 땅 위에 나타나면 천하가 그 문명한 교화를 본다.
“종일 힘쓰고 힘쓴다는 것은 때와 함께 행하는 것이다.”
때를 따라 나아간다.
“혹 뛰어오르거나 못에 있다는 것은 건도가 이에 변혁하는 것이다.”
아래 자리를 떠나 윗자리로 오르니 위아래가 바뀐다.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곧 하늘의 덕에 자리한 것이다.”
윗자리에 바르게 자리하여 하늘의 덕에 합당하다.
“너무 높이 오른 용에게 뉘우침이 있다는 것은 때와 함께 극에 이른 것이다.”
때가 이미 극에 이르면 그때에 처한 사람도 극에 이른다.
“건원의 용구에서 비로소 하늘의 법칙을 본다.”
용구의 도가 하늘의 법칙이다. 하늘의 법칙이란 하늘의 도를 말한다. 어떤 이가 ‘건괘의 여섯 효는 모두 성인의 일입니까?’라고 물었다. 답한다. 그 도를 다한 이는 성인이다. 그러나 얻고 잃음에 따라 길흉이 있으니 어찌 건괘만 그러하겠는가? 모든 괘가 다 그러하다.
“건원은 시작하여 형통하는 것이다.”
다시 반복해 자세히 설명하여 뜻을 다한 것이다. 이미 시작하면 반드시 형통한다. 형통하지 않으면 그친다.
“리정은 성정이다.”
건의 성정이다. 이미 시작해 형통하더라도 이롭고 바르지 않다면 어찌 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건의 시작은 아름다운 이로움으로 천하를 이롭게 하면서도 무엇을 이롭게 하는지 말하지 않으니, 크도다!”
건이 시작하는 도는 온갖 무리를 낳고 이루어 천하가 그 아름다운 이로움을 입게 한다. 무엇을 이롭게 하는지 말하지 않은 것은 이롭지 않은 것이 없어 특정한 이름을 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이로움의 큼을 찬미하여 ‘크도다’라고 하였다.
“크도다, 건이여! 굳세고 건실하며 중정하고 순수하여 정미하다.”
“여섯 효가 뜻을 발휘해 두루 통한다.”
“때에 맞추어 여섯 용을 타고 하늘을 운행하니, 구름이 흐르고 비가 내려 천하가 평안하다.”
‘크도다’는 건도의 큼을 찬탄한다. 굳셈·건실함·중도·바름·순수함·온전함의 여섯 가지로 건도를 형용한다. ‘정미함’은 이 여섯 가지가 지극히 정밀하다는 뜻이다. 여섯 효로 발휘하고 두루 통하여 그 정과 의리를 다한다. 여섯 효의 때를 타고 하늘의 운행에 맞추면 하늘의 공용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구름이 흐르고 비가 내려 음양이 널리 통하고 천하가 화평해지는 도를 볼 수 있다.
“군자는 이룬 덕을 행동으로 삼으니 날마다 볼 수 있는 것이 행동이다. ‘잠긴다’는 말은 숨어서 아직 나타나지 않고 행하여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쓰지 않는다.”
덕이 이루어져 그 일을 볼 수 있는 것이 행동이다. 덕이 이루어진 뒤에야 쓰임에 베풀 수 있다. 초구는 이제 막 잠겨 숨어 아직 나타나지 않고 그 행동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쓰지 않는다.
“군자는 배워서 덕을 모으고, 물어서 분별하며, 너그러움으로 머물고, 인으로 행한다. 《역》에서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고 했으니, 임금의 덕이다.”
성인이 아래에 있어 이미 드러났으나 아직 지위를 얻지 못했다면 오직 덕을 나아가게 하고 업을 닦을 뿐이다. 배워 모으고 물어 분별하는 것은 덕을 나아가게 하는 일이며, 너그러움으로 머물고 인으로 행하는 것은 업을 닦는 일이다. 임금의 덕이 이미 드러났으므로 대인을 만나 나아가 그것을 행하는 것이 이로울 뿐이다. 나아가 그 자리에 오른 이는 순임금과 우임금이고, 나아가 그 도를 행한 이는 이윤과 부열이다.
“구삼은 거듭 굳세면서도 가운데가 아니다. 위로는 하늘에 있지 않고 아래로는 밭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힘쓰고 힘쓰며 때에 따라 두려워하면, 비록 위태로워도 허물이 없다.”
삼은 거듭 굳세어 굳셈이 성대하다. 가운데를 지나 아래 괘의 위에 있으며, 위로는 아직 하늘에 이르지 못하고 아래로는 이미 밭을 떠났으니 위태롭고 두려운 자리다. 때에 따라 순리대로 처하며 힘쓰고 힘쓰고 경계하고 두려워하여 위험을 막으므로, 비록 위태로워도 허물에 이르지 않는다. 군자가 때를 따라 경계하고 두려워하므로 편안할 수 있다.
“구사는 거듭 굳세면서도 가운데가 아니다. 위로는 하늘에 있지 않고 아래로는 밭에 있지 않으며, 가운데로는 사람의 자리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혹’이라 하였다. ‘혹’이라는 것은 의심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다.”
사는 하늘에도 밭에도 있지 않고 사람의 자리 위로 나왔으니 위태로운 곳이다. ‘의심한다’는 것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처지가 반드시 한쪽으로 정할 수 없으므로 혹 나아가고 혹 물러나되 오직 편안한 바를 따를 뿐이다. 그래서 허물이 없다.
“대인은 하늘과 땅에 그 덕을 합하고, 해와 달에 그 밝음을 합하며, 사계절에 그 차례를 합하고, 귀신에 그 길흉을 합한다. 하늘보다 앞서도 하늘이 어기지 않고 하늘보다 뒤에 있어도 하늘의 때를 받든다. 하늘조차 어기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이겠으며, 하물며 귀신이겠는가?”
대인이 하늘과 땅, 해와 달, 사계절, 귀신에 합한다는 것은 도에 합한다는 뜻이다. 하늘과 땅이 곧 도이고 귀신은 조화가 이루어진 자취다. 성인이 하늘보다 앞서도 하늘이 그와 함께하고, 하늘보다 뒤에 있어 하늘을 순히 따를 수 있는 것은 오직 도에 합하기 때문이다. 도에 합하면 사람과 귀신이 어찌 어길 수 있겠는가?
“‘너무 높이 오른다’는 말은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 모르며, 존속만 알고 멸망을 모르고, 얻음만 알고 잃음을 모른다는 뜻이다.”
“오직 성인뿐인가! 나아감과 물러남, 존속과 멸망을 알고 그 바름을 잃지 않는 이는 오직 성인뿐인가!”
지극히 지나친 것을 ‘항’이라 한다. 너무 높이 오른 사람은 나아감과 물러남, 존속과 멸망, 얻음과 잃음의 이치를 모른다. 성인은 이를 알고 처하여 어느 경우에도 바름을 잃지 않으므로 너무 높이 오르는 데 이르지 않는다.
정이천은 건을 하늘의 형체가 아니라 하늘이 쉬지 않고 작용하는 성정(사물이 타고난 성질과 작용)으로 규정한다. 원·형·리·정(시작·성장·성취·바름을 가리키는 네 덕목)은 만물이 시작하고 자라며 이루고 완성되는 네 국면이고, 여섯 효는 성인이 숨어 때를 기다리는 자리에서 천하를 다스리는 자리로 나아갔다가 다시 지나침을 경계하는 과정이다. 그의 논증은 각 효의 때와 자리를 순임금의 진퇴(나아감과 물러남)에 견주면서, 굳셈도 때를 잃으면 항진이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문언전 주석에서 정이천은 건의 도를 수양의 전 과정으로 확장한다. 충신으로 덕을 진전시키고 말을 닦아 성실함을 세움으로써 업을 지키며, 나아감과 물러남·존속과 소멸을 모두 알아 바름을 잃지 않는 것이 성인의 경지다. 용구의 핵심도 강함을 앞세우는 데 있지 않고, 강유가 서로 돕도록 하여 우두머리가 되려 하지 않는 데 있다.
주희 《주역본의》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乾下乾上〉
乾元亨利貞〈乾渠焉反○六畫者伏羲所畫之卦也一者奇也陽之數也乾者健也陽之性也本註乾字三畫卦之名也下者内卦也上者外卦也經文乾字六畫卦之名也伏羲仰觀俯察見隂陽有奇耦之數故畫一奇以象陽畫一耦以象隂見一隂一陽有各生一隂一陽之象故自下而上再倍而三以成八卦見陽之性健而其成形之大者為天故三奇之卦名之曰乾而擬之於天也三畫已具八卦已成則又三倍其畫以成六畫而於八卦之上各加八卦以成六十四卦也此卦六畫皆奇上下皆乾則陽之純而健之至也故乾之名天之象皆不易焉元亨利貞文王所繫之辭以斷一卦之吉凶所謂彖辭者也元大也亨通也利宜也貞正而固也文王以為乾道大通而至正故於筮得此卦而六爻皆不變者言其占當得大通而必利在正固然後可以保其終也此聖人所以作易教人卜筮而可以開物成務之精意餘卦放此〉○初九潛龍勿用〈潛捷言反○初九者卦下陽爻之名凡畫卦者自下而上故以下爻為初陽數九為老七為少老變而少不變故謂陽爻為九潛龍勿用周公所繫之辭以㫁一爻之吉凶所謂爻辭者也潛藏也龍陽物也初陽在下未可施用故其象為潛龍其占曰勿用凡遇乾而此爻變者常觀此象而玩其占也餘爻放此〉○九二見龍在田利見大人〈見龍之見賢遍反卦内見龍並同○二謂自下而上第二爻也後放此九二剛健中正出潛離隱澤及於物物所利見故其象為見龍在田其占為利見大人九二雖未得位而大人之德已著常人不足以當之故値此爻之變者但為利見此人而已蓋亦謂在下之大人也此以爻與占者相為主賔自為一例若有見龍之德則為利見九五在上之大人矣〉○九三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无咎〈九陽爻三陽位重剛不中居下之上乃危地也然性體剛健有能乾乾惕厲之象故其占如此君子指占者而言言能憂懼如是則雖處危地而无咎也〉○九四或躍在淵无咎〈躍羊灼反○或者疑而未定之辭躍者无所緣而絶於地特未飛爾淵者上空下洞深昧不測之所龍之在是若下於田或躍而起則向乎天矣九陽四隂居上之下改革之際進退未定之時也故其象如此其占能隨時進退則无咎也〉○九五飛龍在天利見大人〈剛健中正以居尊位如以聖人之德居聖人之位故其象如此而占法與九二同特所利見者在上之大人爾若有其位則為利見九二在下之大人也〉○上九亢龍有悔〈亢苦浪反○上者最上一爻之名亢者過於上而不能下之意也陽極於上動必有悔故其象占如此〉○用九見羣龍无首吉〈用九言凡筮得陽爻者皆用九而不用七蓋諸卦百九十二陽爻之通例也以此卦純陽而居首故於此𤼵之而聖人因繫之辭使遇此卦而六爻皆變者即此占之蓋六陽皆變剛而能柔吉之道也故為羣龍无首之象而其占為如是則吉也春秋傳曰乾之坤曰見羣龍无首吉蓋即純坤卦辭牝馬之貞先迷後得東北喪朋之意〉○彖曰大哉乾元萬物資始乃統天〈彖吐亂反○彖即文王所繫之辭傳者孔子所以釋經之辭也後凡言傳者放此○此専以天道明乾義又析元亨利貞為四德以𤼵明之而此一節首釋元義也大哉歎辭元大也始也乾元天徳之大始故萬物之生皆資之以為始也又為四德之首而貫乎天德之始終故曰統天〉雲行雨施品物流形〈施始䜴反卦内同○此釋乾之亨也〉大明終始六位時成時乘六龍以御天〈始即元也終謂貞也不終則无始不貞則无以為元也此言聖人大明乾道之終始則見卦之六位各以時成而乗此六陽以行天道是乃聖人之元亨也〉乾道變化各正性命保合太和乃利貞〈變者化之漸化者變之成物所受為性天所賦為命太和陰陽會合沖和之氣也各正者得於有生之初保合者全於己生之後此言乾道變化无所不利而萬物各得其性命以自全以釋利貞之義也〉首出庶物萬國咸寧〈聖人在上高出於物猶乾道之變化也萬國各得其所而咸寧猶萬物之各正性命而保合太和也此言聖人之利貞也蓋嘗統而論之元者物之始生亨者物之暢茂利則向於實也貞則實之成也實之既成則其根蔕脱落可復種而生矣此四德之所以循環而无端也然而四者之間生氣流行初无間㫁此元之所以包四德而統天也其以聖人而言則孔子之意蓋以此卦為聖人得天位行天道而致太平之占也雖其文義有非文王之舊者然讀者各以其意求之則並行而不悖也坤卦放此〉○象曰天行健君子以自彊不息〈象者卦之上下兩象及兩象之六爻周公所繫之辭也○天乾卦之象也凡重卦皆取重義此獨不然者天一而已但言天行則見其一日一周而明日又一周若重複之象非至健不能也君子法之不以人欲害其天德之剛則自彊而不息矣〉○潛龍勿用陽在下也〈陽謂九下謂潛〉○見龍在田德施普也○終日乾乾反復道也〈復芳服反本亦作覆○反復重複踐行之意〉○或躍在淵進无咎也〈可以進而不必進也〉○飛龍在天大人造也〈造徂早反○造猶作也〉○亢龍有悔盈不可久也○用九天德不可為首也〈言陽剛不可為物先故六陽皆變而吉○天行以下先儒謂之大象潛龍以下先儒謂之小象後放此〉○文言曰元者善之長也亨者嘉之會也利者義之和也貞者事之幹也〈長丁文反下長人同幹古旦反○此篇申彖傳象傳之意以盡乾坤二卦之藴而餘卦之説因可以例推云○元者生物之始天地之德莫先於此故於時為春於人則為仁而衆善之長也亨者生物之通物至於此莫不嘉美故於時為夏於人則為禮而衆美之會也利者生物之遂物各得宜不相妨害故於時為秋於人則為義而得其分之和貞者生物之成實理具備隨在各足故於時為冬於人則為智而為衆事之幹幹木之身而枝葉所依以立者也〉君子體仁足以長人嘉會足以合禮利物足以和義貞固足以幹事〈以仁為體則无一物不在所愛之中故足以長人嘉其所會則无不合禮使物各得其所利則義无不和貞固者知正之所在而固守之所謂知而弗去者也故足以為事之幹〉君子行此四德者故曰乾元亨利貞〈非君子之至健无以行此故曰乾元亨利貞○此第一節申彖傳之意與春秋傳所載穆姜之言不異疑古者巳有此語穆姜稱之而夫子亦有取焉故下文别以子曰表孔子之辭蓋傳者欲以明此章之為古語也〉○初九曰潛龍勿用何謂也子曰龍德而隱者也不易乎世不成乎名遯世无悶不見是而无悶樂則行之憂則違之確乎其不可拔潛龍也〈樂音洛苦學反○龍德聖人之德也在下故隱易謂變其所守大抵乾卦六爻文言皆以聖人明之有隱顯而无淺深也〉○九二曰見龍在田利見大人何謂也子曰龍德而正中者也庸言之信庸行之謹閑邪存其誠善世而不伐德博而化易曰見龍在田利見大人君德也〈行下孟反邪以嗟反○正中不潛而未躍之時也常言亦信常行亦謹盛德之至也閑邪存其誠无斁亦保之意言君德也者釋大人之為九二也〉○九三曰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无咎何謂也子曰君子進德脩業忠信所以進德也脩辭立其誠所以居業也知至至之可與幾也知終終之可與存義也是故居上位而不驕在下位而不憂故乾乾因其時而惕雖危无咎矣〈幾音機○忠信主於心者无一念之不誠也脩辭見於事者无一言之不實也雖有忠信之心然非脩辭立誠則无以居之知至至之進德之事知終終之居業之事所以終日乾乾而夕猶惕若者以此故也可上可下不驕不憂所謂无咎也〉○九四曰或躍在淵无咎何謂也子曰上下无常非為邪也進退无恒非離羣也君子進德脩業欲及時也故无咎〈離去聲○内卦以德學言外卦以時位言進德脩業九三備矣此則欲其及時而進也〉○九五曰飛龍在天利見大人何謂也子曰同聲相應同氣相求水流濕火就燥雲從龍風從虎聖人作而萬物覩本乎天者親上本乎地者親下則各從其類也〈應去聲○作起也物猶人也覩釋利見之意也本乎天者謂動物本乎地者謂植物物各從其𩔖聖人人𩔖之首也故興起於上則人皆見之〉○上九曰亢龍有悔何謂也子曰貴而无位髙而无民賢人在下位而无輔是以動而有悔也〈賢人在下位謂九五以下无輔以上九過高志滿不來輔助之也○此第二節申象傳之意〉○潛龍勿用下也○見龍在田時舍也〈舍音捨○言未為時用也〉○終日乾乾行事也○或躍在淵自試也〈未遽有為姑試其可〉○飛龍在天上治也〈治平聲○居上以治下〉○亢龍有悔窮之災也○乾元用九天下治也〈治去聲○言乾元用九見與他卦不同君道剛而能柔天下无不治矣○此第三節再申前意〉○潛龍勿用陽氣潛藏○見龍在田天下文明〈雖不在上位然天下已被其化〉○終日乾乾與時偕行〈時當然也〉○或躍在淵乾道乃革〈離下而上變革之時〉○飛龍在天乃位乎天德〈天德即天位也蓋唯有是德乃宜居是位故以名之〉○亢龍有悔與時偕極○乾元用九乃見天則〈剛而能柔天之法也○此第四節又申前意〉○乾元者始而亨者也〈始則必亨理勢然也〉利貞者性情也〈收斂歸藏乃見性情之實〉乾始能以美利利天下不言所利大矣哉〈始者元而亨也利天下者利也不言所利者貞也或曰坤利牝馬則言所利矣〉大哉乾乎剛健中正純粹精也〈剛以體言健兼用言中者其行无過不及正者其立不偏四者乾之德也純者不雜於隂柔粹者不雜於邪惡蓋剛健中正之至極而精者又純粹之至極也或疑乾剛无柔不得言中正者不然也天地之間本一氣之流行而有動靜爾以其流行之統體而言則但謂之乾而无所不包矣以其動靜分之然後有陰陽剛柔之别也〉六爻𤼵揮旁通情也〈旁通猶言曲盡〉時乗六龍以御天也雲行雨施天下平也〈言聖人時乗六龍以御天則如天之雲行雨施而天下平也○此第五節復申首章之意〉○君子以成德為行日可見之行也潛之為言也隱而未見行而未成是以君子弗用也〈行並去聲未見之見音現○成德已成之德也初九固成德但其行未可見爾〉○君子學以聚之問以辨之寛以居之仁以行之易曰見龍在田利見大人君德也〈蓋由四者以成大人之德再言君德以深明九二之為大人也〉○九三重剛而不中上不在天下不在田故乾乾因其時而惕雖危无咎矣〈重平聲下同○重剛謂陽爻陽位〉○九四重剛而不中上不在天下不在田中不在人故或之或之者疑之也故无咎〈九四非重剛重字疑衍在人謂三或者隨時而未定也〉○夫大人者與天地合其德與日月合其明與四時合其序與神合其吉凶先天而天弗違後天而奉天時天且弗違而況於人乎況於神乎〈夫音扶先後並去聲○大人即釋爻辭所利見之大人也有是德而當其位乃可以當之人與天地神本无二理特蔽於有我之私是以梏於形體而不能相通大人无私以道為體曽何彼此先後之可言哉先天不違謂意之所為黙與道契後天奉天謂知理如是奉而行之囘紇謂郭子儀曰卜者言此行當見一大人而還其占蓋與此合若子儀者雖未及乎夫子之所論然其至公无我亦可謂當時之大人矣〉○亢之為言也知進而不知退知存而不知亡知得而不知喪〈喪去聲○所以動而有悔也〉其唯聖人乎知進退存亡而不失其正者其唯聖人乎〈知其理勢如是而處之以道則不至於有悔矣固非計私以避害者也再言其唯聖人乎始若設問而卒自應之也○此第六節復申第二第三第四節之意〉
건(乾)이 아래에 있고 건이 위에 있다.
“건은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롭다.” 乾은 渠와 焉의 반절이다. 여섯 획으로 된 것은 복희가 그린 괘다. 하나의 이어진 획은 홀수이며 양의 수다. 건은 굳셈이고 양의 성질이다. 본주에서 乾자는 세 획 괘의 이름이다. 아래는 내괘이고 위는 외괘다. 경문에서 乾자는 여섯 획 괘의 이름이다. 복희가 위로 하늘을 우러러보고 아래로 땅을 살펴 음양에 홀수와 짝수의 수가 있음을 보았다. 그러므로 홀수인 한 획을 그어 양을 상징하고, 짝수인 두 조각의 획을 그어 음을 상징했다. 하나의 음과 하나의 양이 각각 다시 하나의 음과 하나의 양을 낳는 상이 있음을 보고, 아래에서 위로 두 배씩 세 번 늘려 팔괘를 이루었다. 양의 성질이 굳세고 그것이 이룬 형체 가운데 큰 것은 하늘임을 보았으므로, 세 획이 모두 홀수인 괘를 건이라 이름 짓고 하늘에 견주었다. 세 획이 갖추어져 팔괘가 이루어진 뒤에는 다시 그 획을 두 배씩 세 번 늘려 여섯 획을 이루고, 팔괘 각각의 위에 다시 팔괘를 더하여 육십사괘를 이루었다. 이 괘는 여섯 획이 모두 홀수이고 위아래가 모두 건이니 순수한 양이고 지극한 굳셈이다. 그러므로 건이라는 이름과 하늘이라는 상이 모두 바뀌지 않는다. 원·형·리·정은 문왕이 붙인 말로 한 괘의 길흉을 판단한 것이니, 이른바 괘사다. 원은 큼이고, 형은 통함이며, 리는 마땅함이고, 정은 바르고 굳음이다. 문왕은 건의 도가 크게 통하고 지극히 바르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점을 쳐 이 괘를 얻고 여섯 효가 모두 변하지 않은 경우의 점을 말하기를, 크게 통하겠지만 반드시 바르고 굳게 하는 데 이로워야 그 끝을 보전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이 성인이 《역》을 지어 사람에게 점을 가르치고, 사물의 뜻을 열어 일을 이루게 한 정밀한 뜻이다. 나머지 괘도 이를 따른다.
“초구는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 潛은 捷과 言의 반절이다. 초구는 괘 맨 아래 양효의 이름이다. 무릇 괘를 그을 때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므로 아래 효를 초라 한다. 양의 수에서 구는 늙은 양이고 칠은 젊은 양이다. 늙은 것은 변하고 젊은 것은 변하지 않으므로 양효를 구라 한다.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는 주공이 붙인 말로 한 효의 길흉을 판단한 것이니 이른바 효사다. ‘잠긴다’는 것은 감춘다는 뜻이고, 용은 양의 동물이다. 초효의 양이 아래에 있어 아직 베풀어 쓸 수 없으므로 그 상이 잠긴 용이고, 그 점은 ‘쓰지 말라’이다. 무릇 건괘를 만나 이 효가 변하면 늘 이 상을 살피고 그 점을 음미한다. 나머지 효도 이를 따른다.
“구이는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 ‘見龍’의 見은 賢과 遍의 반절이며 이 괘 안의 ‘見龍’은 모두 같다. 이는 아래에서 위로 두 번째 효를 말한다. 뒤에도 이를 따른다. 구이는 굳세고 건실하며 중정하다. 잠긴 데서 나와 숨은 곳을 떠났고 은택이 사물에 미쳐 사물이 만나기를 이롭게 여긴다. 그러므로 그 상은 나타난 용이 밭에 있는 것이고, 그 점은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는 것이다. 구이는 비록 지위를 얻지는 못했으나 대인의 덕이 이미 드러났으므로 보통 사람은 이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효가 변하는 때를 만난 이는 오직 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 이는 아래에 있는 대인을 말한다. 여기서는 효와 점치는 사람이 서로 주인과 손님이 되니 하나의 별도 사례다. 만일 점치는 이 자신에게 나타난 용의 덕이 있다면 위에 있는 구오의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
“구삼은 군자가 종일 힘쓰고 힘쓰며 저녁에도 두려워하면, 위태로워도 허물이 없다.” 구는 양효이고 삼은 양의 자리이므로 굳셈이 거듭되었고 중도를 얻지 못했으며, 아래 괘의 위에 있어 위태로운 자리다. 그러나 성질과 몸체가 굳세고 건실하여 힘쓰고 힘쓰며 두려워하고 위태로움을 경계할 수 있는 상이 있다. 그러므로 그 점이 이와 같다. 군자는 점치는 이를 가리킨다. 이처럼 근심하고 두려워할 수 있다면 비록 위태로운 자리에 있어도 허물이 없다는 말이다.
“구사는 혹 뛰어오르거나 못에 있으면 허물이 없다.” 躍은 羊과 灼의 반절이다. ‘혹’은 의심하여 아직 정하지 못한 말이다. ‘뛴다’는 것은 기대어 오를 곳 없이 땅에서 떨어졌으나 아직 날지는 못한 것이다. 못은 위가 비고 아래가 뚫려 깊고 어두워 헤아릴 수 없는 곳이다. 용이 여기에 있으면 밭보다 아래에 있는 듯하지만, 혹 뛰어 일어나면 하늘로 향한다. 구는 양이고 사는 음의 자리이며, 위 괘의 아래에 있어 바뀌는 경계이자 진퇴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때다. 그러므로 그 상이 이와 같다. 그 점은 때에 따라 나아가고 물러날 수 있으면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구오는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 굳세고 건실하며 중정한 덕으로 존위에 있으니 성인의 덕으로 성인의 자리에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 상이 이와 같고, 점치는 법은 구이와 같다. 다만 만나서 이로운 대상이 위에 있는 대인일 뿐이다. 만일 점치는 이 자신에게 그 지위가 있다면 아래에 있는 구이의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
“상구는 너무 높이 오른 용이니 뉘우침이 있다.” 亢은 苦와 浪의 반절이다. 상은 맨 위 효의 이름이다. 항은 위를 지나쳐 아래로 내려올 수 없다는 뜻이다. 양이 위에서 극에 이르면 움직일 때 반드시 뉘우침이 있으므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다.
“용구는 여러 용을 보되 우두머리가 없으면 길하다.” 용구는 무릇 점을 쳐 양효를 얻으면 모두 구를 쓰고 칠을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러 괘의 백구십이 양효에 두루 적용되는 규칙이다. 이 괘가 순수한 양이고 첫머리에 자리하므로 여기에서 밝혔다. 성인이 여기에 말을 붙여, 이 괘를 만나 여섯 효가 모두 변하면 바로 이 말로 점치게 했다. 여섯 양이 모두 변하여 굳세면서도 부드러울 수 있는 것이 길한 도다. 그러므로 여러 용에게 우두머리가 없다는 상이 되고, 그 점은 이와 같으면 길하다는 것이다. 《춘추전》에 ‘건괘가 곤괘로 변한 것을 “여러 용을 보되 우두머리가 없으면 길하다”라고 한다’고 했다. 이는 순수한 곤괘의 괘사인 ‘암말의 바름’, ‘앞서면 미혹되고 뒤따르면 얻는다’, ‘동북에서는 벗을 잃는다’는 뜻이다.
「단전」에서 말하였다. “크도다, 건의 원이여! 만물이 이에 의지해 시작하니 곧 하늘을 통괄한다.” 彖은 吐와 亂의 반절이다. ‘단’은 곧 문왕이 붙인 말이고, ‘전’은 공자가 경문을 풀이한 말이다. 뒤에서 ‘전’이라 말하는 경우도 모두 이를 따른다. 여기서는 오로지 하늘의 도로 건의 뜻을 밝히고, 원·형·리·정을 나누어 네 덕으로 삼아 드러냈다. 이 한 절에서는 먼저 ‘원’의 뜻을 풀이한다. ‘크도다’는 감탄이고 원은 큼이자 시작이다. 건원은 하늘 덕의 큰 시작이므로 만물이 생겨날 때 모두 이에 의지하여 시작한다. 또 네 덕의 으뜸으로 하늘 덕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므로 ‘하늘을 통괄한다’고 하였다.
“구름이 흐르고 비가 내려 온갖 사물이 형체를 이룬다.” 施는 始와 豉의 반절이며 이 괘 안에서는 모두 같다. 이는 건의 ‘형’을 풀이한다.
“마침과 시작을 크게 밝혀 여섯 자리가 때에 맞추어 이루어지니, 때에 맞추어 여섯 용을 타고 하늘을 운행한다.” 시작은 원이고 마침은 정이다. 끝나지 않으면 시작도 없고, 바르지 않으면 원이 될 수 없다. 이는 성인이 건도의 마침과 시작을 크게 밝히면 괘의 여섯 자리가 각각 때에 맞추어 이루어짐을 보고, 이 여섯 양효를 타고 하늘의 도를 행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곧 성인의 원과 형이다.
“건도가 변화하여 만물이 각각 성과 명을 바르게 하고 큰 조화를 보전해 합하니, 이에 이롭고 바르다.” ‘변’은 변화가 점차 진행되는 것이고 ‘화’는 변함이 완성된 것이다. 사물이 받은 것이 성이고 하늘이 부여한 것이 명이다. 큰 조화는 음양이 모여 합한 충화의 기운이다. ‘각각 바르게 한다’는 것은 생겨나는 처음에 얻는 것이고, ‘보전해 합한다’는 것은 이미 생긴 뒤 자신에게 온전히 하는 것이다. 이는 건도가 변화하여 이롭지 않은 것이 없고 만물이 각각 자기 성과 명을 얻어 스스로 온전히 한다는 말로 ‘리정’의 뜻을 풀이한다.
“뭇 사물보다 먼저 나와 만국이 모두 편안하다.” 성인이 위에 있어 사물보다 높이 솟아남은 건도가 변화하는 것과 같다. 만국이 각각 자기 자리를 얻어 모두 편안함은 만물이 각각 성과 명을 바르게 하고 큰 조화를 보전해 합하는 것과 같다. 이는 성인의 ‘리정’을 말한다. 네 덕을 통틀어 논하면, 원은 사물이 처음 생겨남이고 형은 사물이 막힘없이 무성해짐이며, 리는 열매를 향해 감이고 정은 열매가 완성됨이다. 열매가 완성되면 뿌리와 꼭지가 떨어져 다시 심어 생겨날 수 있다. 이것이 네 덕이 끝없이 순환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네 단계 사이에는 생기가 흘러 다니며 애초에 끊김이 없다. 이것이 원이 네 덕을 포괄하고 하늘을 통괄하는 까닭이다. 성인으로 말하면, 공자의 뜻은 이 괘를 성인이 천자의 자리를 얻고 하늘의 도를 행하여 태평을 이루는 점으로 본 것이다. 비록 그 글의 뜻 가운데 문왕의 옛 뜻과 다른 것이 있지만, 읽는 사람이 각각 그 뜻에 따라 구하면 두 해석이 함께 행해져도 어긋나지 않는다. 곤괘도 이를 따른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하늘의 운행은 굳세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 ‘상’은 괘의 위아래 두 상과 두 상의 여섯 효에 주공이 붙인 말이다. 하늘은 건괘의 상이다. 무릇 중괘는 모두 거듭되었다는 뜻을 취하지만 이 괘만은 그렇지 않다. 하늘은 하나일 뿐이다. 다만 하늘의 운행이라고 하면 하루에 한 바퀴 돌고 다음 날 다시 한 바퀴 도는 거듭됨의 상이 드러난다. 지극히 굳세지 않으면 이렇게 할 수 없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사람의 욕심으로 하늘이 준 굳센 덕을 해치지 않으므로 스스로 힘쓰며 쉬지 않는다.
“잠긴 용을 쓰지 말라는 것은 양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양은 구를 말하고 아래는 잠김을 말한다.
“나타난 용이 밭에 있다는 것은 덕의 베풂이 넓기 때문이다.”
“종일 힘쓰고 힘쓴다는 것은 도를 거듭 실천하는 것이다.” 復은 芳과 服의 반절이며 판본에 따라 覆으로도 쓴다. ‘반복’은 거듭 실천한다는 뜻이다.
“혹 뛰어오르거나 못에 있으면 나아가도 허물이 없다.” 나아갈 수 있지만 반드시 나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대인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造는 徂와 早의 반절이다. ‘조’는 일어남과 같다.
“너무 높이 오른 용에게 뉘우침이 있다는 것은 가득 참이 오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용구는 하늘의 덕이니 우두머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양강이 사물보다 앞장서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여섯 양효가 모두 변하면 길하다. ‘하늘의 운행’ 이하는 선대 학자들이 대상을 일컫고, ‘잠긴 용’ 이하는 소상을 일컫는다. 뒤에도 이를 따른다.
「문언전」에서 말하였다. “원은 선함의 으뜸이고, 형은 아름다움이 모인 것이며, 리는 의로움의 조화이고, 정은 일을 세우는 줄기다.” 長은 丁과 文의 반절이며 아래 ‘사람의 어른이 된다’의 長도 같다. 幹은 古와 旦의 반절이다. 이 편은 「단전」과 「상전」의 뜻을 거듭 밝혀 건·곤 두 괘가 품은 뜻을 다한 것이며, 나머지 괘의 설명도 이에 따라 유추할 수 있다. 원은 사물을 낳는 시작이니 하늘과 땅의 덕 가운데 이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때로는 봄이고 사람에게서는 인이며 여러 선의 으뜸이다. 형은 사물을 낳아 통하게 함이니, 사물이 이때에 이르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때로는 여름이고 사람에게서는 예이며 여러 아름다움이 모인 것이다. 리는 사물이 생겨남을 완수하여 각각 마땅함을 얻고 서로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가을이고 사람에게서는 의이며 각자의 분수를 얻은 조화다. 정은 사물이 생겨남을 완성하여 실리가 갖추어지고 어느 곳에서든 각각 충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겨울이고 사람에게서는 지이며 여러 일의 줄기가 된다. 줄기는 나무의 몸통으로 가지와 잎이 의지해 서는 것이다.
“군자가 인을 몸으로 삼으면 사람의 어른이 되기에 충분하고, 아름다움을 모으면 예에 합하기에 충분하며, 사물을 이롭게 하면 의로움을 조화시키기에 충분하고, 바르고 굳으면 일을 세우기에 충분하다.” 인을 몸으로 삼으면 사랑하는 범위 안에 들지 않는 사물이 하나도 없으므로 사람의 어른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 모이는 바를 아름답게 하면 예에 합하지 않는 것이 없다. 사물이 각각 이로운 자리를 얻게 하면 의가 조화되지 않는 일이 없다. ‘바르고 굳다’는 것은 바름이 있는 곳을 알아 굳게 지키는 것이니, 이른바 ‘알고서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의 줄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군자는 이 네 덕을 행하므로 ‘건은 원·형·리·정이다’라고 한다.” 지극히 굳센 군자가 아니면 이를 행할 수 없으므로 ‘건은 원·형·리·정이다’라고 했다. 이 첫째 절은 「단전」의 뜻을 거듭 밝힌 것으로, 《춘추전》에 실린 목강의 말과 다르지 않다. 아마 옛날에 이미 이 말이 있었고 목강이 이를 인용했으며 공자도 취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래 글에서 ‘공자가 말하였다’를 따로 표시해 공자의 말임을 밝혔다. 전을 지은 이가 이 장은 옛말임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초구의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공자가 말하였다. 용의 덕을 지니고도 숨은 사람이다. 세상 때문에 지키는 바를 바꾸지 않고 명성을 이루려 하지 않는다. 세상을 피해 살아도 답답해하지 않고, 옳음을 인정받지 못해도 답답해하지 않는다. 즐거우면 행하고 근심스러우면 어긴다. 확고하여 그 뜻을 빼앗을 수 없으니, 잠긴 용이다.” 樂은 洛의 음이고 또 苦와 學의 반절이다. 용의 덕은 성인의 덕이다. 아래에 있으므로 숨었다. ‘역’은 지키는 바를 바꾼다는 뜻이다. 대체로 건괘 여섯 효의 「문언전」은 모두 성인으로 밝혔으므로 숨고 드러남의 차이는 있지만 덕의 얕고 깊음에는 차이가 없다.
“구이의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공자가 말하였다. 용의 덕을 지니고 바르고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다. 일상적인 말도 믿음직하고 일상적인 행동도 삼가며, 사악함을 막아 그 정성을 보존한다. 세상을 선하게 하면서도 자랑하지 않고, 덕이 넓어 교화한다. 《역》에서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고 했으니, 임금의 덕이다.” 行은 下와 孟의 반절이고, 邪는 以와 嗟의 반절이다. ‘바르고 가운데’는 잠기지는 않았지만 아직 뛰어오르지도 않은 때다. 평상시의 말까지 믿음직하고 평상시의 행동까지 삼가는 것은 성대한 덕의 지극함이다. 사악함을 막아 정성을 보존한다는 것은 《시경》의 ‘싫증 내지 않고 또한 보전한다’는 뜻과 같다. ‘임금의 덕’이라고 한 것은 대인이 구이를 가리킴을 풀이한 것이다.
“구삼의 ‘군자가 종일 힘쓰고 힘쓰며 저녁에도 두려워하면 위태로워도 허물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덕을 나아가게 하고 업을 닦는다. 충성과 믿음은 덕을 나아가게 하는 것이고, 말을 닦아 그 정성을 세우는 것은 업을 지키는 것이다. 이를 곳을 알아 그곳에 이르면 기미에 함께할 수 있고, 끝날 곳을 알아 그곳에서 끝마치면 의로움을 보존하는 데 함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윗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아랫자리에 있어도 근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힘쓰고 힘쓰며 때에 따라 두려워하니, 비록 위태로워도 허물이 없다.” 幾는 機의 음이다. 충성과 믿음은 마음을 주재하여 한 생각도 정성스럽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말을 닦는 것은 일에 나타나 한마디 말도 진실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비록 충성과 믿음의 마음이 있어도 말을 닦아 정성을 세우지 않으면 그것을 지킬 수 없다. 이를 곳을 알아 그곳에 이르는 것은 덕을 나아가게 하는 일이고, 끝날 곳을 알아 거기서 끝마치는 것은 업을 지키는 일이다. 이 때문에 종일 힘쓰고 힘쓰며 저녁에도 여전히 두려워하는 것이다. 위로도 갈 수 있고 아래에도 있을 수 있어 교만하지 않고 근심하지 않는 것이 이른바 허물이 없음이다.
“구사의 ‘혹 뛰어오르거나 못에 있으면 허물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공자가 말하였다. 오르내림에 일정함이 없으나 사악함을 행하는 것이 아니고, 나아가고 물러남에 항구함이 없으나 무리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 군자가 덕을 나아가게 하고 업을 닦는 것은 때에 미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다.” 離는 거성으로 읽는다. 내괘에서는 덕과 배움을 말하고 외괘에서는 때와 자리를 말한다. 덕을 나아가게 하고 업을 닦는 일은 구삼에서 갖추어졌고, 여기서는 때에 미쳐 나아가려는 것이다.
“구오의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공자가 말하였다. 같은 소리는 서로 호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한다. 물은 젖은 곳으로 흐르고 불은 마른 곳으로 나아간다.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 성인이 일어나면 만물이 바라본다. 하늘에 근본한 것은 위를 가까이하고 땅에 근본한 것은 아래를 가까이하니, 각각 자기 무리를 따른다.” 應은 거성으로 읽는다. ‘작’은 일어남이다. ‘물’은 사람과 같다. ‘본다’는 것은 ‘보는 것이 이롭다’는 뜻을 풀이한다. 하늘에 근본한 것은 동물을 말하고 땅에 근본한 것은 식물을 말한다. 사물은 각각 자기 무리를 따른다. 성인은 사람 무리의 으뜸이므로 위에서 일어나면 사람들이 모두 그를 본다.
“상구의 ‘너무 높이 오른 용이니 뉘우침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공자가 말하였다. 귀하지만 지위가 없고 높지만 백성이 없으며, 현인이 아래 자리에 있어도 보좌하지 않으니, 이 때문에 움직이면 뉘우침이 있다.” ‘현인이 아래 자리에 있다’는 것은 구오 이하를 말한다. ‘보좌가 없다’는 것은 상구가 지나치게 높고 뜻이 가득 차 현인들이 와서 돕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둘째 절은 「상전」의 뜻을 거듭 밝힌 것이다.
“잠긴 용을 쓰지 말라는 것은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나타난 용이 밭에 있다는 것은 아직 때에 쓰이지 않는 것이다.” 舍는 捨의 음으로 읽는다. 아직 때에 쓰이지 못했다는 말이다.
“종일 힘쓰고 힘쓴다는 것은 일을 행하는 것이다.”
“혹 뛰어오르거나 못에 있다는 것은 스스로 시험하는 것이다.” 갑자기 일을 벌이지 않고 우선 가능한지를 시험한다.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위에서 다스리는 것이다.” 治는 평성으로 읽는다. 위에 있으면서 아래를 다스린다.
“너무 높이 오른 용에게 뉘우침이 있다는 것은 궁극에 이른 재앙이다.”
“건원의 용구는 천하가 다스려지는 것이다.” 治는 거성으로 읽는다. ‘건원의 용구’라고 하여 다른 괘와 다르게 드러낸 말이다. 임금의 도가 굳세면서도 부드러울 수 있으면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다. 이 셋째 절은 앞의 뜻을 다시 거듭 밝혔다.
“잠긴 용을 쓰지 말라는 것은 양기가 잠겨 감추어진 것이다.”
“나타난 용이 밭에 있다는 것은 천하가 문명해지는 것이다.” 비록 윗자리에 있지는 않지만 천하가 이미 그 교화를 입는다.
“종일 힘쓰고 힘쓴다는 것은 때와 함께 행하는 것이다.” 때가 마땅히 그러하다.
“혹 뛰어오르거나 못에 있다는 것은 건도가 이에 변혁하는 것이다.” 아래를 떠나 위로 올라가는 변혁의 때다.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곧 하늘의 덕에 자리한 것이다.” 하늘의 덕은 곧 하늘의 자리다. 오직 이 덕을 지녀야 이 자리에 있어야 하므로 이렇게 이름 붙였다.
“너무 높이 오른 용에게 뉘우침이 있다는 것은 때와 함께 극에 이른 것이다.”
“건원의 용구에서 비로소 하늘의 법칙을 본다.” 굳세면서도 부드러울 수 있는 것이 하늘의 법칙이다. 이 넷째 절은 다시 앞의 뜻을 거듭 밝혔다.
“건원은 시작하여 형통하는 것이다.” 시작하면 반드시 형통하는 것이 이치와 형세가 그러하다.
“리정은 성정이다.” 거두어 수렴하고 돌아가 간직할 때 비로소 성정의 진실을 볼 수 있다.
“건의 시작은 아름다운 이로움으로 천하를 이롭게 하면서도 무엇을 이롭게 하는지 말하지 않으니, 크도다!” ‘시작’은 원이면서 형이고, ‘천하를 이롭게 한다’는 것은 리이며, ‘무엇을 이롭게 하는지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이다. 어떤 이는 ‘곤괘에서는 암말이 이롭다고 하여 이로운 바를 말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하였다.
“크도다, 건이여! 굳세고 건실하며 중정하고 순수하여 정미하다.” 굳셈은 본체를 말하고 건실함은 작용까지 겸해 말한다. 중은 그 행함이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는 것이고, 정은 그 섬이 치우치지 않은 것이다. 이 네 가지가 건의 덕이다. ‘순’은 부드러운 음이 섞이지 않은 것이고, ‘수’는 사악함이 섞이지 않은 것이다. 곧 굳셈·건실함·중도·바름이 지극한 것이며, ‘정미함’은 다시 순수함이 지극한 것이다. 혹자는 건은 굳세어 부드러움이 없으므로 중정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의심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본래 하나의 기운이 흘러 다니며 움직임과 고요함이 있을 뿐이다. 그 흘러 다니는 전체로 말하면 다만 건이라 하여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다. 움직임과 고요함을 나누어 말한 뒤에야 음양과 강유의 구별이 생긴다.
“여섯 효가 뜻을 발휘해 두루 통한다.” ‘두루 통한다’는 것은 곡진하게 다한다는 말과 같다.
“때에 맞추어 여섯 용을 타고 하늘을 운행하니, 구름이 흐르고 비가 내려 천하가 평안하다.” 성인이 때에 맞추어 여섯 용을 타고 하늘을 운행하면, 하늘이 구름을 흐르게 하고 비를 내리듯 천하가 평안해진다는 말이다. 이 다섯째 절은 첫 장의 뜻을 다시 거듭 밝혔다.
“군자는 이룬 덕을 행동으로 삼으니 날마다 볼 수 있는 것이 행동이다. ‘잠긴다’는 말은 숨어서 아직 나타나지 않고 행하여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쓰지 않는다.” 行은 모두 거성으로 읽고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의 見은 現의 음으로 읽는다. ‘이룬 덕’은 이미 성취한 덕이다. 초구는 본래 이룬 덕이 있지만 그 행동이 아직 나타날 수 없을 뿐이다.
“군자는 배워서 덕을 모으고, 물어서 분별하며, 너그러움으로 머물고, 인으로 행한다. 《역》에서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고 했으니, 임금의 덕이다.” 대체로 이 네 가지를 통해 대인의 덕을 이룬다. ‘임금의 덕’이라고 다시 말해 구이가 대인임을 깊이 밝혔다.
“구삼은 거듭 굳세면서도 가운데가 아니다. 위로는 하늘에 있지 않고 아래로는 밭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힘쓰고 힘쓰며 때에 따라 두려워하면, 비록 위태로워도 허물이 없다.” 重은 평성으로 읽으며 아래도 같다. ‘거듭 굳세다’는 것은 양효가 양의 자리에 있다는 뜻이다.
“구사는 거듭 굳세면서도 가운데가 아니다. 위로는 하늘에 있지 않고 아래로는 밭에 있지 않으며, 가운데로는 사람의 자리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혹’이라 하였다. ‘혹’이라는 것은 의심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다.” 구사는 거듭 굳센 것이 아니므로 ‘重’자는 아마 잘못 더해진 듯하다. ‘사람의 자리’는 삼을 말한다. ‘혹’은 때를 따라 아직 정하지 않은 것이다.
“대인은 하늘과 땅에 그 덕을 합하고, 해와 달에 그 밝음을 합하며, 사계절에 그 차례를 합하고, 귀신에 그 길흉을 합한다. 하늘보다 앞서도 하늘이 어기지 않고 하늘보다 뒤에 있어도 하늘의 때를 받든다. 하늘조차 어기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이겠으며, 하물며 귀신이겠는가?” 夫는 扶의 음이고 先과 後는 모두 거성으로 읽는다. 대인은 곧 효사에서 만나서 이롭다고 한 대인을 풀이한 것이다. 이 덕을 지니고 그 지위에 있어야 비로소 이 말에 해당할 수 있다. 사람과 하늘·땅·귀신은 본래 두 이치가 아니다. 다만 ‘나’라는 사사로움에 가려지기 때문에 형체에 갇혀 서로 통하지 못한다. 대인은 사사로움이 없어 도를 몸으로 삼으니, 어찌 저것과 이것, 앞과 뒤를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늘보다 앞서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뜻이 향하는 바가 말없이 도에 부합한다는 말이고, ‘하늘보다 뒤에 있어 하늘을 받든다’는 것은 이치가 이와 같음을 알아 받들어 행한다는 말이다. 회흘 사람이 곽자의에게 ‘점쟁이가 이번 길에 대인 한 사람을 만나고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 점은 이 말과 부합한다. 곽자의가 비록 공자가 논한 경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지극히 공정하고 자아가 없었으므로 당시의 대인이라 할 만했다.
“‘너무 높이 오른다’는 말은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 모르며, 존속만 알고 멸망을 모르고, 얻음만 알고 잃음을 모른다는 뜻이다.” 喪은 거성으로 읽는다. 이것이 움직이면 뉘우침이 있는 까닭이다.
“오직 성인뿐인가! 나아감과 물러남, 존속과 멸망을 알고 그 바름을 잃지 않는 이는 오직 성인뿐인가!” 이치와 형세가 이와 같음을 알고 도로써 거기에 처하면 뉘우침에 이르지 않는다. 본래 사사로운 계산으로 해를 피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직 성인뿐인가’를 두 번 말한 것은 처음에는 물음을 세운 듯하다가 마침내 스스로 답한 것이다. 이 여섯째 절은 둘째·셋째·넷째 절의 뜻을 다시 거듭 밝혔다.
주희는 복희가 홀수 획과 짝수 획을 거듭하여 팔괘(세 효로 이룬 여덟 기본 괘)와 육십사괘(팔괘 두 개를 겹쳐 만든 64개의 괘)를 이루는 과정부터 설명하고, 건의 여섯 획이 모두 양이라는 구조에서 순수하고 지극한 굳셈의 상을 읽는다. 원·형·리·정(시작·성장·성취·바름을 가리키는 네 덕목)의 훈고를 제시한 뒤, 건괘를 얻어 여섯 효가 모두 변하지 않을 때 크게 통하되 바르고 굳게 지켜야 끝을 보전한다는 점의 조건을 명시한다. 각 효에서도 상과 점, 변효의 적용 대상을 구별한다.
문언전 주석에서는 네 덕을 계절과 인·예·의·지에 대응시키고, 여섯 효를 성인의 덕이 드러나는 정도가 아니라 같은 성인에게 생기는 은현과 시위의 차이로 읽는다. 건의 모든 효가 변하는 용구는 강함이 부드러움으로 바뀌는 조건이므로 길하다. 주희는 공자의 철학적 확장이 문왕의 원래 점사와 문맥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두 뜻은 함께 성립해 어긋나지 않는다고 본다.
정약용(丁若鏞) 《주역사전》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序卦傳曰有天地然後。萬物生焉。〇雜卦傳曰乾剛坤柔。〇說卦傳曰乾健也。〇程子曰乾天也。健而無息之謂乾。〇鏞案乾健者。六書之諧聲也。八卦消長之序。亦如重卦。陽起於震。〈如復臨〉壯於兌。〈如大壯〉究於乾。〈如重乾〉故說卦傳曰震其究爲健。健者乾也。以重卦則卦由復始。〈一而六〉爲臨爲泰。以至於乾。其行甚健。〈震以行〉故謂之乾也。乾者氣也。古篆氣作〔圖版:MO_0597A_A283_0035_010_24.GIF〕作〔圖版:MO_0597A_A283_0035_020_24.GIF〕又作〔圖版:MO_0597A_A283_0035_030_24.GIF〕作〔圖版:MO_0597A_A283_0035_040_24.GIF〕。𠦝者〔圖版:MO_0597A_A283_0035_030_24.GIF〕〔圖版:MO_0597A_A283_0035_040_24.GIF〕之轉隷也。〈古文氣早二字。皆作〔圖版:MO_0597A_A283_0035_040_16.GIF〕。〉乞者〔圖版:MO_0597A_A283_0035_010_24.GIF〕〔圖版:MO_0597A_A283_0035_020_24.GIF〕之轉隷也。〈篆又作〔圖版:MO_0597A_A283_0035_050_16.GIF〕。此以卦爲字也。〉萬物之生。皆受氣化。故爲天爲父。與坤爲配也。又乾者燥也涸也。坤陰旣燥。兌澤今涸。〈震兌而爲乾〉所以爲乾也。夏易首艮。〈連山易〉商易首坤。〈歸藏易〉以乾爲首者。文王之易也。
{〔卦象:䷀〕}乾。元亨利貞。
此乾之彖也。蓍卦六畫。皆得少陽者。〈皆得七〉乾而不變。占之以彖也。〇亨者通也。感而遂通也。离虛其心。爲誠爲信。〈見中孚〉則至誠所格。天心克享。〈亨享古字通〉時與命會。〈嘉之會〉運乃通焉。此所謂嘉之會也。其在乾卦。雖無离形。〈卦無斷〉於离之位。〈一二三〉三陽自強。此至誠無息也。至誠無息。則感而遂通。必享天心。故其占亨也。〇貞者正也。居正以幹事也。〈貞正諧聲也〉坎堅其心。〈說卦文〉爲敬爲直。〈坤六二文言〉則動罔不正。事功以凝。〈坎爲功〉如幹築墻。乃堅乃固。〈事之固〉此所謂勞乎坎也。謂事爲貞者。卜筮之義。事必以正。不正不筮也。〈又詳屯九五〉其在乾卦。雖無坎形。〈六陽純〉於坎之位。〈四五六〉三剛堅固。此勞勩不息也。勞勩不息。則事功必成。故其占利貞也。〇其謂之元亨者何也。元者始也大也。〈朱子云〉坤之將乾也。復一陽始生。〈卽天根〉此震德之元也。〈善之長〉元而遂亨。其占元亨也。〇其謂之利貞者何也。利者和也宜也。〈朱子云〉復之爲乾也。夬一陰未合。〈夬五陽〉此兌德之利也。〈義之和〉利於爲貞。其占利貞也。
文言曰元者善之長也。〈震爲仁。又爲長子。〉亨者嘉之會也。〈离爲禮。又爲相見。〉利者義之和也。〈兌爲義。又爲和悅。〉貞者事之幹也。〈坎爲勞。又爲堅固。〉君子體仁。足以長人。〈震德爲人主。〉嘉會足以合禮。〈离爲喜。嘉者喜也。〉利物足以和義。〈利字象以刀刈禾。和字象以口食禾。皆兌秋之德。〉貞固足以幹事。〈幹築墻木。所以爲堅固。〉君子行此四德者。故曰乾元亨利貞。〇案文言者。古之字書。若爾雅說文之類。而專爲易詁者也。〈若爾雅之有詩詁。〉故孔子之生。〈襄二十二年〉十三年之前。〈襄九年〉穆姜預說文言之詞。斯可驗也。史記孔子世家及漢書儒林傳。〈費直傳〉竝別之於十翼。〈唯藝文志以文言序卦等爲十篇。〉蓋孔子引用文言。以爲易傳。而後之儒者。遂認爲孔子所作。謬矣。君子行此四德者以下。孔子文也。四方之卦。〈卽震离兌坎〉配於四時。〈震爲春〉配於四端。〈震爲仁〉故又以四德配於四卦也。〈震爲元〉元亨者。猶言春而夏也。〈始而亨〉利貞者。猶言秋以冬也。又詳易例。
孔子曰乾元者。始而亨者也。〈萬物始乎震。〉利貞者性情也。〈行健。故能成六陽。〉乾始〈復一陽〉能以美利。〈自臨至夬。皆有兌。〉利天下。〈五陽實於坤〉不言所利。〈夬之兌口亦合。是不言也。〉大矣哉。〈陽曰大。〉大哉乾乎。剛健中正。純粹精也。〈六陽純〉六爻發揮。〈爻者。變卦也。發起也。揮奮也。〉旁通情也。〈達乾之性情。〉時乘六龍。〈陰在上曰乘。〉以御天也。〈五六爲天位。〉雲行雨施。〈六陰以震行。〉天下平也。〈天下坤也。坤盡變爲陽。〉〇胡炳文曰夫子於文言。旣分而四之。於此又分而二之。〈又曰乾性情。只一健字。〉〇案始而亨者。明元亨爲一句也。性情也者。明利貞爲一句也。下三陽之至誠。〈下位离〉起於震元。〈復一陽〉始而亨也。〈震而离〉上三陽之堅固。〈上位坎〉合以兌利。〈夬一陰〉乃利貞也。〈兌而坎〉以利貞爲性情者。六位旣終而後。其剛健不息之德乃著也。〈上卦爲利貞〉丘氏以下卦爲元亨。上卦爲利貞。〈見大全〉
彖曰大哉乾元。萬物資始。乃統天。雲行雨施。品物流形。大明終始。六位時成。時乘六龍。以御天。乾道變化。各正性命。保合太和。乃利貞。首出庶物。萬國咸寧。
彖者。斷也。〈六書之諧聲〉本卦之斷詞也。〈占所決〉又彖者豕頭也。〈見說文〉彖詞在六繇之上。如豕頭在六體之上也。〈大傳云彖者。材也。〉彖詞本文王所作。〈卽卦詞〉此云彖曰者。孔子釋彖之文也。〇乾元者復也。〈乾之姤〉說卦傳曰萬物出乎震。〈復下震〉復之一陽。萬物之所資始也。〈六陽始於復〉一陽旣立。六陽乃成。故六陽之乾。〈天〉此一陽爲之綱紀。〈如網之有綱〉乃統天也。大哉者。天德也。〈天字從大。又至字從土。〉〇陰不得陽。不成雲雨。〈陽氣下燭而後。山川蒸濕。上而爲雲雨。〉坤之時。有陰而已。爲復爲臨。以至於泰。則陽乃交陰。〈天地交〉陰以震發。〈三得震〉此雲行而雨施也。〈震爲行〉流者。陰之行也。〈水行曰流〉旣至於泰。則震生蕃鮮。〈震至三〉坤陰流動。〈震以動〉此品物之流形也。〈皆變其形質〉乾者一氣也。氣所施行。莫顯乎雲雨。而雲雨之發育萬物。最在离夏之時。〈一二三位离〉故陽進至三。〈卽离位〉其德爲亨也。〇大明者日也。〈卽太陽〉冬至之時。日躔極南。日晷極短。於是終而復始。至於夏至。則日躔極北。日晷極長。此大明終始也。以此之故。十二辟卦。配於四時。〈見括例〉周而復始。循環無端。以此之故。自復而泰。爲壯爲夬。以至於乾。〈重卦成〉此六位時成也。〈時是同〉〇六龍者。六震也。〈說卦震爲龍〉坤得一震以爲復。〈復下震〉復得一震以爲臨。〈下互震〉臨得一震以爲泰。〈上互震〉泰得一震以爲大壯。〈上卦震〉大壯得一震以爲夬。〈雖少一陰仍是震〉夬得一震以爲乾卦。〈震以一陽爲卦主。故雖無二陰。仍是震。〉此之謂六龍也。〈荀九家云乾爲龍。謬矣。〉自復至夬。陰每乘陽。〈陰在上〉此之謂時乘주-D003也。〈龍陽物〉至夬至乾。遂達天位。〈五六爲天位〉時乘六龍。以御天也。〈御進也〉〇乾由坤變。然推其本則坤由乾變。〈自姤而剝而爲坤。〉乾陽旣極。爲姤爲剝爲復爲夬。十辟以成。〈自姤至夬爲十辟〉此乾道變化。各正性命也。〈十辟如萬物〉天道變遷。以化萬物。而萬物芸芸。各受性命。此其象也。〇保者全也。和者兌也。〈兌爲悅〉利物和義。〈文言云〉其德和也。夬爲大兌。〈全卦如兌形〉是又太和也。〈大壯亦大兌〉陽進至夬。〈至於五〉合其兌和。〈上坼者又合〉以成乾卦。〈夬而乾〉此保合太和。乃利貞也。兌則爲秋。〈夬上兌〉坎則爲冬。〈四五六位坎〉卦體到此。有如秋冬之成物。故乃利貞也。〈秋利而冬貞〉〇首出庶物者。復一陽之始生也。〈震長子〉萬物出乎震。〈說卦文〉又帝出乎震。〈說文卦〉首出庶物。豈非震主乎。〈天地之長子〉復之先坤也。坤爲萬國。〈虞氏云〉國而無主。其克寧乎。〈坤無陽〉一陽初出。衆陰有主。〈震爲主〉於是羣賢竝進。〈乾六陽〉坤國大變。此首出庶物。萬國咸寧也。〇或曰復至大壯。固皆龍也。〈皆得震〉夬少一陰。乾遂無陰。尙可曰震龍乎。曰復臨泰大壯。皆於坤卦之上。只加一陽。便成震龍。若其陰畫。仍是坤卦之舊。〈如所云地不改闢〉非新造也。以此言之。自復臨而至夬乾。皆以一陽爲震。非有完缺之殊也。
{〔卦象:䷫〕}初九。潛龍勿用。〇象曰潛龍勿用。陽在下也。〇潛龍勿用。下也。〇潛龍勿用。陽氣潛藏。
此乾之姤也。〈初爻變〉蓍卦第一畫三掛之策。皆得天數。〈一三五七九〉曰初九也。〈參天故〉〇卦以震成。〈復臨泰〉本皆龍也。〈震爲龍〉變而爲巽。〈下今巽〉巽則爲隱。〈大傳云巽稱而隱〉爲伏爲入。〈雜卦說卦文〉是潛龍也。入而不出。〈出者震德也〉不爲時用。〈不以震行之〉潛龍勿用也。本在下位。〈一二爲地位〉所以爲潛也。〇象者似也。韓子曰象者南方大獸。中國不識。但見圖寫者。故假借其義。訓爲形似也。〈見六書正譌〉象詞本周公所作。〈卽爻詞〉此云象曰者。孔子釋象之文也。〇震之一陽。是名爲龍。〈義見前〉龍者陽也。位在地底。〈一二地〉陽在下也。〈九者老陽也。老陽亦陽。〉〇下者降也。〈第二節〉巽爲卑讓。〈伏於陽〉降於陽也。〈下去聲〉〇乾則爲氣。〈字從气〉是陽氣也。姤之旣潛。〈下今巽〉將以坤藏。〈姤者坤之始。〉陽氣潛藏也。〈說卦云坤以藏之。〉〇案賈誼新書曰。潛龍入而不能出。故易曰勿用。〈巽爲入〉京房易傳云潛龍勿用。厥異風行不解。〈厥異爲風者。以變巽也。〉二家似知爻變。
孔子曰龍德而隱者也。〈巽爲隱〉不易乎世。〈巽德高潔。不爲世俗所變易。〉不成乎名。〈巽不果〉遯世無悶。〈大巽爲遯卦。〉不見是而無悶。〈巽撓屈。故不見是。〉樂則行之。〈復臨至夬。皆震行。〉憂則違之。〈與彼時相反。〉確乎其不可拔。〈巽爲入〉潛龍也。〇案巽德不壅。〈下不塞〉風以散之。〈說卦文〉故其象爲无悶也。〈悶者。心鬱也。〉臨泰以往。皆有兌悅。〈至夬皆有兌〉斯以震行。〈六震乃爲乾〉樂則行之也。今旣爲姤憂則違之也。〈道相反〉
孔子曰君子以。成德爲行。〈六震之行以成乾。〉曰可見之行也。〈不入之謂行。不隱之謂見也。〉潛之爲言也。隱而未見。〈巽爲隱〉行而未成。〈巽進退〉是以君子弗用也。〇案雜卦傳曰兌見而巽伏。〈見現也〉卦相反也。姤與夬反。〈反易卦〉隱而未見也。〈夬上兌〉巽與震反。〈德相反〉行而未成也。〈震爲行。巽爲不果。〉君子之道。欲現也欲行也。隱而不行。非其願也。唯其時也。
{〔卦象:䷌〕}九二。見龍在田。利見大人。〇象曰見龍在田。德施普也。〇見龍在田。時舍也。〇見龍在田。天下文明。
此乾之同人也。〈二爻變〉蓍卦第二畫三掛之策。皆得天數。曰九二也。〇卦以震積。〈復臨泰〉二亦龍也。〈震爲龍〉變而爲离。〈下今离〉离以相見。〈离爲目〉是見龍也。〈見音現〉三才之位。二爲地面。〈鄭玄云初在地下。二在地上。〉地面曰田。〈在地上〉見龍在田也。左傳云龍見于絳郊。〈昭二十九年〉見龍在田。亦實事也。〇乾則爲君。〈說卦文〉是大人也。亦乾爲德。〈乾直心〉是君子也。〈在下之聖人〉相見乎离。〈說卦文〉嘉會以禮。〈下今离〉利見大人也。〈利宜也〉見龍在田者象也。〈如詩之興體〉利見大人者占也。〇德者乾德也。〈虞氏云〉巽以施之。〈二四互〉离則爲寬。〈虛中故〉德施普也。聖人見于世。則雖未及擧而用之。〈在下位〉學問化導。〈如孔子〉其德施已普也。〇五爲君位。四三爲臣位。〈九家易〉而今玆聖人。尙在二位。〈民位也〉如龍在田。此時舍而不用也。〈如舜耕歷山〉〇乾下爲离。〈上今离〉天下文明也。〈离爲文爲明〉
孔子曰龍德而正中者也。〈离者四正之卦。又二爲中。〉庸言之信。〈离爲信〉庸行之謹。〈离爲防〉閑邪〈离之兩剛爲防閑〉存其誠。〈离虛中爲誠〉善世而不伐。〈离爲治〉德博而化。〈离爲寬〉易曰見龍在田。利見大人。君德也。〈位卑而德尊〉〇案同人自夬來。〈上之二〉庸言者兌也。〈夬上兌〉庸行者震也。〈夬五六亦震〉移之同人。乃信乃謹也。〈下今离〉又自姤來。〈一之二〉巽德撓曲。〈巽爲屈〉邪而不正。〈卦形斜〉移之同人。則閑以防之也。〈下今离〉夬之旣移。〈上之二〉兌口亦嗑。〈上兌合〉是不伐也。〈不自言〉化者訛也。〈堯典曰南訛〉南方离火之德。能令物化。故易例离則爲化。
孔子曰君子學以聚之。〈乾爲聚〉問以辨之。〈离爲辨〉寬以居之。〈离爲寬〉仁以行之。〈初與二爲震〉易曰見龍在田。利見大人。君德也。〇案同人自姤夬來。巽則設敎。〈見觀卦〉可以學也。〈姤下巽〉兌則說言。可以問也。〈夬上兌〉离今文明。〈下今离〉所以爲學問也。
{〔卦象:䷉〕}九三。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無咎。〇象曰終日乾乾。反復道也。〇終日乾乾。行事也。〇終日乾乾。與時偕行。
此乾之履也。〈三爻變〉卦以震成。六爻皆君子之用也。〈震君子〉於此特言君子者。此詞爲進德修業之用。非爲筮也。〇下卦位离也。〈一二三奇偶奇〉离則爲日。〈說卦文〉故初爲日出。〈見左傳〉二爲日中。〈見豐卦〉三爲日夕。〈見離卦〉易例然也。卦自復始。〈義見前〉遂以震行。自強不息。健而又健。〈行又行〉是乾乾也。爲臨爲泰。遂竟离位。〈下卦終〉終日乾乾也。〇离位旣終。日之夕矣。〈离之末〉离虛其心。〈今互离〉念其兌咎。〈下今兌〉若蹈虎尾。〈履之象〉如履薄氷。〈見履卦〉上畏乾天。〈履上乾〉順其巽命。〈上互巽〉夕惕若也。履者踐履之卦也。故其義如此。〇厲者危也。兌以一陰。〈下今兌〉下乘二剛。〈初與二〉位亦匪據。〈陰居陽〉其象危也。然而无咎者。履自夬來。〈上之三〉夬之時。柔乘五剛。〈夬上兌〉驕之至也。移之爲履。〈卦今履〉則全一卦而降之。〈上兌今下兌。〉上下以辨。〈离爲辨〉仰順巽命。〈履互巽〉是無咎也。〈善補過〉〇乾之本坤也。爲臨爲泰。將以爲乾。終而復始。循環無端。〈十二辟〉反復道也。〇乾以震行。〈復臨泰〉履乃踐禮。〈中互离〉是行事也。〈震爲行〉終日之所言行。夕而思之。不能無過。〈兌震爲言行〉玆所以惕若也。此一繇乃古聖人嚴恭寅畏。進德修業之要旨大法也。〇十二辟卦。與四時而偕行。〈復臨泰。周正爲春。〉此卦象也。四時嬗變。流光迅速。君子之進德修業。豈有間哉。孜孜不怠。勉勉不已。〈卽終日乾乾〉一息不斷。有進無退。〈文王之純亦不已。〉與流光而偕行。死而後息焉。此踐履也。故曰終日乾乾。與時偕行。〇案班固之賦曰尸祿負乘。夕惕若厲。淮南子曰終日乾乾。以陽動也。夕惕若厲。以陰息也。張衡思玄賦曰夕惕若厲。以省愆兮。皆以夕惕若厲爲句。漢儒之疏謬如此。〈孔子曰雖危無咎。故今以厲無咎爲句。〉〇學稼云兌則爲西。离則爲日。〈今互离〉日在西則夕也。
孔子曰君子進德修業。〈柔進而离修〉忠信所以進德也。〈离忠信〉修辭立其誠。〈兌言而离修〉所以居業也。〈离爲誠〉知至至之。〈柔自坎位來〉可與幾也。〈坎爲幾〉知終終之。〈下卦終〉可與存義也。〈兌爲義〉是故居上位〈下卦之上位〉而不驕。〈互巽爲遜順〉在下位〈全卦之下卦〉而不憂。〈兌悅而离喜〉故乾乾。因其時而惕。雖危无咎矣。〇案此繇以之爲筮則於出處進退祭祀婚姻戰伐之等。皆無所當。周公撰詞之初。蓋恐學易者。專主卜筮。特於乾卦之內。揷此一繇。使學者知易之爲用。不止於卜筮也。故孔子解易。多主義理。〈彖傳大象傳〉其源出於文王周公。非自孔子始也。
孔子曰九三。重剛而不中。〈非二五〉上不在天。〈非五六〉下不在田。〈非一二〉故乾乾。因其時而惕。雖危无咎矣。〇案大傳曰三多凶四多懼。以不得中也。故乾卦三四。皆言無咎。孔子所言。亦此義也。
{〔卦象:䷈〕}九四。或躍在淵。無咎。〇象曰或躍在淵。進無咎也。〇或躍在淵。自試也。〇或躍在淵。乾道乃革。
此乾之小畜也。〈四爻變〉小畜自姤來。〈一之四〉姤之時。巽股在下。〈說卦巽爲股〉移之小畜。〈一之四〉則巽股忽超。〈下巽今上巽〉幾及天位。〈五六爲天位〉其象躍也。本皆震龍。〈義見前〉龍之躍也。又自夬來。〈上之四〉上兌之澤。〈夬上兌〉移亦爲淵。〈今互兌〉躍在淵也。〈淵止水〉自姤來則爲進。〈自下升〉自夬來則爲退。〈自上降〉象不確定。其位可疑。〈如上亦如下〉疑則或之。〈占法也〉或躍在淵也。〇姤之時。柔居陽位。〈初數奇〉進而小畜。〈一之四〉柔乃得位。〈四數偶〉進無咎也。〈善補過〉〇試者。將用而先嘗之也。姤之時。伏而在下。〈姤下巽〉移之小畜。忽自超騰。〈一之四〉自試之道也。〈將以飛〉四則多懼。〈大傳文〉疑而試之也。〇四者外卦之始也。內乾旣竟。外乾又始。乾道乃革也。〈天道變〉乾之旣改。〈四爻動〉巽命又新。〈上今巽〉乾道乃革也。〇案初爻四爻。均之爲巽。〈彼下巽〉而彼爲潛龍者。位在地底也。〈三才位〉此爲躍龍者。位近天中也。〈四近五〉〇學圃云巽則爲魚。〈虞氏云〉或躍在淵者魚也。故蔡墨對龍。〈昭二十九年〉不言九四。
孔子曰上下無常。〈躍乍上而下〉非爲邪也。〈巽爲屈〉進退無恒。〈說卦云巽爲進退〉非離羣也。〈乾羣而非離〉君子進德修業。〈离爲修〉欲及時也。〈畜其德以待時至〉故无咎。〇案小畜自姤夬來。〈法見表〉以姤則上進也。〈一之四〉以夬則下退也。〈上之四〉柔旣得位。〈陰居四〉雖巽非邪也。〈得其正〉乾羣猶完。〈下乾全〉雖离非離也。進修及時。以小畜也。〈畜其德〉
孔子曰九四。重剛而不中。〈非二五〉上不在天。〈非五六〉下不在田。〈非一二〉中不在人。〈四者卿相之位。故三爲衆人之位。〉故或之。或之者疑之也。故无咎。〇案四則多懼。所以疑也。
{〔卦象:䷍〕}九五。飛龍在天。利見大人。〇象曰飛龍在天。大人造也。〇飛龍在天。上治也。〇飛龍在天。乃位乎天德。
此乾之大有也。〈五爻變〉卦以震成。五亦龍也。變而爲离。〈上今离〉离則爲飛。〈荀九家〉是飛龍也。〈震爲龍〉三才之位。五六爲天。〈見大傳〉飛龍在天也。〇上乾聖君也。〈卽大人〉下乾聖人也。相見乎离。〈上今离〉正而有禮。〈易例坎离皆爲正。〉利見大人也。〈利宜也〉九二九五。皆變爲离。故其占皆利見也。〇离則爲化。〈書所云南訛〉造者化也。大人造者。聖人之變化也。又造猶作也。〈大人造。卽聖人作。〉篆文化與作相近。〇聖人南面而治。蓋取諸离。〈說卦文〉故离則爲治。〈上今离〉此之謂上治也。〈治道明於上〉〇二五皆离。而彼爲見龍者。尙位乎地面也。〈二位地〉此爲飛龍者。乃位乎天德也。〈五位天〉〇案离則爲雉。〈說卦文〉飛鳥之卦也。離字從隹。禽字從离。荀九家之离爲飛。其有徵矣。〇又按伊尹就見殷湯。師尙父遇見文王。若於此時。筮而遇是則其占吉也。〈九二同〉
孔子曰同聲相應。同氣相求。水流濕。火就燥。雲從龍。風從虎。〈兌爲虎〉聖人作而萬物覩。〈离爲見〉本乎天者親上。〈天與火〉本乎地者親下。〈水附地〉則各從其類也。〇案大有之卦。姤夬其本也。〈移之五〉風雷相會。〈姤巽而夬震〉同聲相應也。四正之卦。火天其類也。〈火天一類。又水地一類。〉火天相遇。〈今大有〉同氣相求也。兌澤之水。〈夬上兌〉移之爲淵。〈今互兌〉水流濕也。〈自上而流下〉离火之焰。〈姤之時。一陰在离位。〉上延乾燥。〈乾純陽故燥。〉火就燥也。〈上今巽〉巽之密雲。〈姤下巽〉上而從震。〈夬五六爲震〉雲從龍也。〈小畜以巽爲密雲。〉遂以巽風。〈姤下巽〉上而從兌。〈夬上兌。今互兌。〉風從虎也。〈兌爲虎〉乾之聖君。〈上本乾〉化以离文。〈上今离〉聖人作也。〈作化也〉羣陽在下。〈下亦乾〉相見乎离。〈說卦文〉萬物覩也。表記曰火土親而不尊。〈卑近也〉火天尊而不親。此所謂本乎天者親上。本乎地者親下也。火天大有。氣類相感也。〈火天爲一類〉飛龍在天。利見大人。亦氣類相感也。世有聖君則聖人必與相見。此各從其類也。〇程子曰聖人旣得天位。則利見在下大德之人。〈程子於九二則通上下而言之。〉朱子曰所利見者。在上之大人。〈朱子於此爻則通上下而言之。〉王昭素之對宋太祖。又欲互用於君臣之占。〈見永樂大全〉此疑案也。然當以孔子之言決之。孔子曰聖人作而萬物覩。聖人者。在上之聖君也。〈卽飛龍〉物覩者。在下者之利見也。〇又按近儒之說。以風雷爲同聲。山澤爲同氣。坎离爲水火。遂有乾龍坤虎之說。其義非也。八卦之德。非此爻之所得專。況以乾坤爲龍虎哉。乾本非龍。坤又何虎。〈兌虎之義。見履頤革卦。〉
孔子曰夫大人者。與天地合其德。〈二五剛柔應〉與日月合其明。〈离在坎位。爲日月。〉與四時合其序。〈乾元亨利貞〉與鬼神合其吉凶。〈五與六。爲艮鬼。〉先天而天不違。〈下之乾。先於上乾。〉後天而奉天時。〈上之乾。後於下乾。〉天且不違。〈嘉會以合。又二五應。〉而況於人乎。況於鬼神乎。〇案大人者聖君也。必有聖君而後。爲聖人之所利見。故形容其德之盛如此。
{〔卦象:䷪〕}上九。亢龍有悔。〇象曰亢龍有悔。盈不可久也。〇亢龍有悔。窮之災也。〇亢龍有悔。與時偕極。
此乾之夬也。〈上爻變〉卦以震成。上亦龍也。〈震爲龍〉其位高極。是亢龍也。〈亢極也〉變而爲兌。〈上今兌〉兌則爲決。〈說卦文〉盈之決也。〈乾爲盈〉人之修德。悔則必改。故卦爻之變。亦名爲悔。〈此易之大義〉悔者變也。〈何楷云〉乾變爲夬。亢龍有悔也。〇盈者六陽皆滿也。滿則必潰。何可久也。雜卦傳曰夬決也。〇窮者極也。憂患極者。或反致福。〈見震卦〉名位極者。必反致災。〈盈不久〉亢龍之悔。〈上剛變〉窮之災也。〇時者四時也。冬至一陽始生。〈復一陽〉至于夏至。六陽已極。〈日長極〉乾之上剛。與時偕極也。〇案洪範曰貞曰悔。悔者其變也。貞者其不變也。又改過曰悔。不改過曰吝。〇學稼云上一陽。本震龍之無陰者。〈義見前〉陽道太亢。是亢龍也。〈如亢旱之亢〉
孔子曰貴而無位。〈六者陰位也。乾之上剛。以陽居陰。〉高而無民。〈坤爲民也。乾至於六。無一陰。〉賢人在下位而無輔。〈衆陽在下。而皆不爲臣也。坤爲臣。〉是以動而有悔也。〈動者爻變也。〉〇案亢龍驕傲自亢。不少卑降。故無民無臣也。
孔子曰亢之爲言也。知進而不知退。〈夬旣足矣。又進一步。〉知存而不知亡。知得而不知喪。〈兌爲失〉其唯聖人乎。知進退存亡而不失其正者。其唯聖人乎。〇案聖人謂下乾之聖人也。乾變爲兌。上失其正。〈卦形斜〉不失正者。下卦也。
{〔卦象:䷁〕}用九。見羣龍無首吉。〇象曰用九。天德不可爲首也。〇乾元用九。天下治也。〇乾元用九。乃見天則。
此乾之坤也。〈蔡墨云〉蓍卦十八變。成卦之時。〈三六爲十八〉其十八卦之策。皆得天數。〈一三五七九〉則六位盡變。〈皆老陽〉此之謂用九也。〇乾本六震。〈義見前〉見羣龍也。〈見音現〉乾亦爲首。〈說卦文〉龍有首也。變而爲坤。〈六盡變〉遂無乾剛。〈無一陽〉見羣龍無首也。龍而無龍則神龍也。〈張氏云神龍。見尾而不見首。〉故吉。〇本是乾卦。固天德也。雖曰天德。今旣無乾。〈無一陽〉不可以爲首也。〈乾爲首〉〇天下者坤也。〈卦今坤〉本以君德。〈卦本乾〉施以巽敎。〈初之變爲姤〉以漸濡潤。〈六陽次第變爲陰。〉丕化坤民。〈卦今坤〉化民曰治。天下治也。〇天道好變。四時萬物。莫不變易。此易之所以主乎變也。今六陽皆變。〈變之極〉天道天法。於此乎可驗。〈神變而無形〉乃見天則也。〇案春秋傳蔡墨對龍。〈昭二十九年〉以此爲乾之坤。〈朱子曰六爻皆變者。卽此占之。〉則乾坤之有純變審矣。然六爻純變則用之。其或雜變者。皆所不用。〈詳見蓍卦箋〉故謂其所用者曰用九也。〇學稼云其或雜變者。九六參錯。不可指名。〈曰九不可。曰六亦不可。〉故以法求變。卒歸于九六。〈非九則六〉若六位皆變者。九六之名得立。故因而用之也。
「서괘전」에서 말하였다. “하늘과 땅이 있은 뒤에 만물이 생겨났다.” ○「잡괘전」에서 말하였다. “건은 굳세고 곤은 부드럽다.” ○「설괘전」에서 말하였다. “건은 굳셈이다.” ○정자는 말하였다. “건은 하늘이다. 굳세어 쉬지 않는 것을 건이라 한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건(乾)’과 ‘건(健)’은 육서에서 해성 관계다. 팔괘가 소멸하고 자라나는 차례도 중괘와 같다. 양은 진에서 일어나고 〈복괘와 임괘 같은 경우다〉, 태에서 왕성해지며 〈대장괘 같은 경우다〉, 건에서 다한다 〈중건괘 같은 경우다〉. 그러므로 「설괘전」에서 “진은 그 끝에서 굳셈이 된다”고 했으니, 굳셈이 곧 건이다. 중괘로 말하면 괘는 복에서 시작하여 〈하나에서 여섯이 된다〉 임이 되고 태가 되며 건에 이르니, 그 운행이 매우 굳세다 〈진으로 움직인다〉. 그러므로 건이라 했다. 건은 기운이다. 옛 전서에서 ‘기(氣)’는 〔원문 외자 도판—아래 공개 원문 이미지 참조〕, 〔원문 외자 도판—아래 공개 원문 이미지 참조〕, 또 〔원문 외자 도판—아래 공개 원문 이미지 참조〕, 〔원문 외자 도판—아래 공개 원문 이미지 참조〕로 썼다. ‘𠦝’은 〔원문 외자 도판—아래 공개 원문 이미지 참조〕와 〔원문 외자 도판—아래 공개 원문 이미지 참조〕가 예서로 바뀐 것이다. 〈고문에서 ‘기(氣)’와 ‘조(早)’ 두 글자는 모두 〔원문 외자 도판—아래 공개 원문 이미지 참조〕로 썼다.〉 ‘걸(乞)’은 〔원문 외자 도판—아래 공개 원문 이미지 참조〕와 〔원문 외자 도판—아래 공개 원문 이미지 참조〕가 예서로 바뀐 것이다. 〈전서에서는 또 〔원문 외자 도판—아래 공개 원문 이미지 참조〕로 썼다. 여기서는 괘를 글자로 삼았다.〉 만물이 생겨날 때에는 모두 기의 변화를 받으므로 하늘이 되고 아버지가 되어 곤과 짝한다. 또 건은 마름이고 물이 고갈됨이다. 곤의 음이 이미 마르고 태의 못이 이제 고갈되었으니 〈진과 태를 거쳐 건이 된다〉, 이 때문에 건이라 했다. 하나라의 역은 간을 첫머리로 삼았고 〈《연산역》이다〉, 상나라의 역은 곤을 첫머리로 삼았다 〈《귀장역》이다〉. 건을 첫머리로 삼은 것은 문왕의 역이다.
{〔괘상:䷀〕} 건은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롭다.
이것은 건괘의 단사다. 시초점으로 얻은 괘의 여섯 획이 모두 소양이면 〈모두 7을 얻은 것이다〉 건이 되어 변하지 않으므로 단사로 점친다. ○‘형(亨)’은 통함이다. 감응하여 마침내 통하는 것이다. 리는 마음을 비워 성실함이 되고 믿음이 되므로 〈중부괘에 보인다〉 지극한 정성이 감응시키면 하늘의 마음이 흠향한다 〈형(亨)과 향(享)은 고자에서 통한다〉. 때와 천명이 만나면 〈아름다운 것들이 모임이다〉 운수가 마침내 통한다. 이것이 이른바 아름다운 것들의 모임이다. 건괘에는 리의 형체가 없지만 〈괘획이 끊어지지 않았다〉 리의 자리인 〈초·이·삼효다〉 세 양이 스스로 힘쓴다. 이것이 지극한 정성이 쉬지 않는 것이다. 지극한 정성이 쉬지 않으면 감응하여 마침내 통하고 반드시 하늘의 마음에 흠향되므로 그 점이 형통하다. ○‘정(貞)’은 바름이다. 바른 자리에 있어 일을 주관하는 것이다 〈정(貞)과 정(正)은 해성 관계다〉. 감은 마음을 굳게 하여 〈「설괘전」의 글이다〉 공경이 되고 곧음이 되므로 〈곤괘 육이의 「문언전」이다〉 움직임마다 바르지 않음이 없고 일의 공이 엉긴다 〈감은 공로가 된다〉. 담을 쌓는 줄기처럼 견고해진다 〈일이 견고해진다는 뜻이다〉. 이것이 이른바 감에서 수고한다는 것이다. 일을 ‘정’이라 한 것은 복서의 뜻이니, 일은 반드시 바름으로 해야 하고 바르지 않으면 점치지 않는다 〈둔괘 구오에도 자세하다〉. 건괘에는 감의 형체가 없지만 〈여섯 양이 순수하다〉 감의 자리인 〈사·오·상효다〉 세 강이 굳고 단단하다. 이것이 수고하면서 쉬지 않는 것이다. 수고하면서 쉬지 않으면 일의 공이 반드시 이루어지므로 그 점이 바르게 함에 이롭다. ○‘원형’이라 한 것은 무엇인가. ‘원’은 시작이며 큼이다 〈주자가 말했다〉. 곤이 건이 되려 할 때 복에서 하나의 양이 처음 생기니 〈곧 천근이다〉, 이것이 진의 덕인 원이다 〈선의 으뜸이다〉. 원에서 마침내 형에 이르므로 그 점이 ‘원형’이다. ○‘이정’이라 한 것은 무엇인가. ‘리’는 조화이며 마땅함이다 〈주자가 말했다〉. 복이 건이 될 때 쾌의 한 음은 아직 합하지 않았으니 〈쾌에는 다섯 양이 있다〉, 이것이 태의 덕인 리다 〈의의 조화다〉. 정을 행하는 데 이로우므로 그 점이 ‘이정’이다.
「문언전」에서 말하였다. “원은 선의 으뜸이고 〈진은 인이며 또 장남이다〉, 형은 아름다운 것들의 모임이며 〈리는 예이며 또 서로 만남이다〉, 리는 의의 조화이고 〈태는 의이며 또 화열이다〉, 정은 일을 주관하는 줄기다 〈감은 수고로움이며 또 견고함이다〉. 군자가 인을 체득하면 사람의 어른이 되기에 충분하고 〈진의 덕은 사람의 주인이 된다〉, 아름답게 모이면 예에 합하기에 충분하며 〈리는 기쁨이니, 가(嘉)는 기쁨이다〉, 만물을 이롭게 하면 의를 조화시키기에 충분하고 〈‘리’자는 칼로 벼를 베는 모양이고 ‘화’자는 입으로 벼를 먹는 모양이니 모두 태가 지닌 가을의 덕이다〉, 바르고 굳으면 일을 주관하기에 충분하다 〈간(幹)은 담을 쌓을 때 쓰는 나무이므로 견고함이 된다〉. 군자는 이 네 덕을 행하므로 ‘건은 원형이정이다’라고 했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문언’은 옛 자서로서 《이아》와 《설문》 같은 것이되 오로지 《역》의 글자를 풀이한 책이다 〈《이아》에 「시고」가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공자가 태어나기 〈양공 22년이다〉 13년 전에도 〈양공 9년이다〉 목강이 미리 「문언」의 말을 설명했으니, 이것으로 증명할 수 있다. 《사기》 「공자세가」와 《한서》 「유림전」은 〈비직의 전이다〉 모두 「문언」을 십익과 구별했다 〈다만 「예문지」는 「문언」·「서괘」 등을 열 편으로 보았다〉. 공자가 「문언」을 인용해 《역전》으로 삼았는데 후대 유자들이 마침내 공자가 지은 것으로 여겼으니 잘못이다. “군자는 이 네 덕을 행한다” 이하가 공자의 글이다. 네 방위의 괘를 〈곧 진·리·태·감이다〉 사계절에 배속하고 〈진은 봄이다〉 사단에 배속했으므로 〈진은 인이다〉 다시 네 덕을 네 괘에 배속했다 〈진은 원이다〉. ‘원형’은 봄에서 여름으로 간다는 말과 같고 〈시작하여 형통한다〉, ‘이정’은 가을로 겨울을 이룬다는 말과 같다. 「역례」에 더 자세히 보인다.
공자는 말하였다. “건원의 뜻은 시작하여 형통한다는 것이다 〈만물이 진에서 시작한다〉. 이정은 성정이다 〈굳세게 운행하므로 여섯 양을 이룰 수 있다〉. 건이 시작하여 〈복의 한 양이다〉 아름다운 이로움으로 〈임에서 쾌에 이르기까지 모두 태가 있다〉 천하를 이롭게 하면서도 〈다섯 양이 곤에 차 있다〉 이롭게 한 바를 말하지 않으니 〈쾌의 태구도 닫히므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위대하다 〈양을 크다고 한다〉. 위대하도다, 건이여! 강건하고 중정하며 순수하고 정밀하다 〈여섯 양이 순수하다〉. 여섯 효가 발휘되어 〈효는 변한 괘이며, 발은 일으킴이고 휘는 떨침이다〉 두루 성정에 통한다 〈건의 성정에 통한다〉. 때에 맞추어 여섯 용을 타고 〈음이 위에 있는 것을 승이라 한다〉 하늘로 나아간다 〈오·육은 하늘의 자리다〉. 구름이 가고 비가 내려 〈여섯 음이 진으로 움직인다〉 천하가 평안하다 〈천하는 곤인데 곤이 모두 변하여 양이 된다〉.” ○호병문은 말하였다. “부자는 「문언」에서 이미 넷으로 나누었고, 여기서는 다시 둘로 나누었다.” 〈또 “건의 성정은 오직 한 ‘건(健)’자다”라고 했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시작하여 형통한다”는 것은 ‘원형’이 한 구절임을 밝힌 것이고, “성정이다”라는 것은 ‘이정’이 한 구절임을 밝힌 것이다. 아래 세 양의 지극한 정성은 〈아랫자리의 리다〉 진의 원에서 일어나므로 〈복의 한 양이다〉 시작하여 형통하고 〈진에서 리로 간다〉, 위 세 양의 견고함은 〈윗자리의 감이다〉 태의 리와 합하므로 〈쾌의 한 음이다〉 마침내 이정이 된다 〈태에서 감으로 간다〉. 이정을 성정이라 한 것은 여섯 자리가 모두 끝난 뒤에 강건하여 쉬지 않는 덕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상괘가 이정이 된다〉. 구씨는 하괘를 원형으로, 상괘를 이정으로 보았다 〈《대전》에 보인다〉.
「단전」에서 말하였다. “위대하도다, 건원이여! 만물이 힘입어 시작하니 마침내 하늘을 통괄한다. 구름이 가고 비가 내려 온갖 사물이 흘러 형체를 이룬다. 큰 밝음이 끝과 시작을 밝히고 여섯 자리가 때에 맞추어 이루어진다. 때에 맞추어 여섯 용을 타고 하늘로 나아간다. 건의 도가 변하고 화하여 각각 성과 명을 바르게 하고 큰 조화를 온전히 보전해 합하니 마침내 이정이다. 뭇 사물보다 먼저 나와 만국이 모두 평안하다.”
‘단(彖)’은 결단함이다 〈육서에서 해성 관계다〉. 본괘를 판정하는 말이다 〈점에서 결정하는 것이다〉. 또 단은 돼지의 머리다 〈《설문》에 보인다〉. 단사가 여섯 효의 위에 있는 것이 돼지 머리가 여섯 몸체 위에 있는 것과 같다 〈「대전」에서는 “단은 재목이다”라고 했다〉. 단사의 본문은 문왕이 지었다 〈곧 괘사다〉. 여기서 “단에서 말하였다”고 한 것은 공자가 단사를 풀이한 글이다. ○건원은 복이다 〈건에서 구로 간다〉. 「설괘전」은 “만물이 진에서 나온다”고 했다 〈복의 하괘가 진이다〉. 복의 한 양은 만물이 힘입어 시작하는 바다 〈여섯 양은 복에서 시작한다〉. 한 양이 서고 나면 여섯 양이 이루어지므로 여섯 양인 건에서 〈하늘이다〉 이 한 양이 기강이 되어 〈그물에 벼리가 있는 것과 같다〉 하늘을 통괄한다. “위대하다”는 하늘의 덕이다 〈‘천’자는 ‘대’를 따르고 또 ‘지’자는 ‘토’를 따른다〉. ○음은 양을 얻지 못하면 구름과 비를 이루지 못한다 〈양기가 아래로 비춘 뒤에 산천의 습기가 쪄 올라 구름과 비가 된다〉. 곤의 때에는 음만 있다. 복이 되고 임이 되어 태에 이르면 양이 비로소 음과 사귄다 〈천지가 사귄다〉. 음이 진으로 발동하니 〈세 효가 진을 이룬다〉 이것이 구름이 가고 비가 내리는 것이다 〈진은 움직임이다〉. ‘흐름’은 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물이 가는 것을 흐른다 한다〉. 태에 이르면 진이 생생하게 번성하고 〈진이 셋에 이른다〉 곤의 음이 흘러 움직이니 〈진은 움직이게 한다〉 이것이 온갖 사물이 흘러 형체를 이루는 것이다 〈모두 그 형질을 바꾼다〉. 건은 하나의 기운이다. 기운이 운행하는 것은 구름과 비보다 드러나는 것이 없고, 구름과 비가 만물을 발육하는 일은 리와 여름의 때에 가장 왕성하다 〈초·이·삼의 자리가 리다〉. 그러므로 양이 삼효까지 나아가면 〈곧 리의 자리다〉 그 덕이 형이 된다. ○큰 밝음은 해다 〈곧 태양이다〉. 동지에는 해가 지나는 길이 지극히 남쪽에 있고 해 그림자가 가장 짧다. 이때 끝나면서 다시 시작하여 하지에 이르면 해가 지나는 길이 지극히 북쪽에 있고 해 그림자가 가장 길다. 이것이 큰 밝음의 끝과 시작이다. 이 때문에 열두 벽괘를 사계절에 배속하여 〈「괄례」에 보인다〉 두루 돈 뒤 다시 시작하고 순환하여 끝이 없다. 이 때문에 복에서 태가 되고 장이 되고 쾌가 되어 건에 이르니 〈중괘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여섯 자리가 때에 맞추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시’는 ‘때에 맞다’는 뜻이다〉. ○여섯 용은 여섯 진이다 〈「설괘」에서 진을 용이라 했다〉. 곤이 진 하나를 얻어 복이 되고 〈복의 하괘가 진이다〉, 복이 진 하나를 얻어 임이 되고 〈하호가 진이다〉, 임이 진 하나를 얻어 태가 되고 〈상호가 진이다〉, 태가 진 하나를 얻어 대장이 되고 〈상괘가 진이다〉, 대장이 진 하나를 얻어 쾌가 되며 〈음 하나가 부족해도 여전히 진이다〉, 쾌가 진 하나를 얻어 건괘가 된다 〈진은 한 양을 괘주로 삼으므로 두 음이 없어도 여전히 진이다〉. 이것이 여섯 용이다 〈순구가의 “건은 용이다”라는 말은 잘못이다〉. 복에서 쾌에 이르기까지 음이 매번 양 위에 타니 〈음이 위에 있다〉 이것이 “때에 맞추어 용을 탄다”는 말이다 〈용은 양물이다〉. 쾌와 건에 이르러 마침내 하늘의 자리에 도달하니 〈오·육은 하늘의 자리다〉 때에 맞추어 여섯 용을 타고 하늘로 나아가는 것이다 〈어(御)는 나아감이다〉. ○건은 곤에서 변하지만 근본을 미루어 보면 곤도 건에서 변한다 〈구에서 박이 되어 곤이 된다〉. 건의 양이 극에 이르면 구가 되고 박이 되며 복이 되고 쾌가 되어 열 벽괘가 이루어진다 〈구에서 쾌까지가 열 벽괘다〉. 이것이 건의 도가 변하고 화하여 각각 성과 명을 바르게 한다는 것이다 〈열 벽괘가 만물과 같다〉. 하늘의 도가 변천하여 만물을 변화시키면 수많은 만물이 각각 성과 명을 받으니, 이것이 그 상이다. ○‘보’는 온전함이고 ‘화’는 태다 〈태는 기쁨이다〉. 만물을 이롭게 하고 의를 조화시키므로 〈「문언」에서 말했다〉 그 덕이 화하다. 쾌는 큰 태이니 〈전괘의 형체가 태와 같다〉 이것이 또한 큰 조화다 〈대장도 큰 태다〉. 양이 쾌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오효에 이른다〉 태의 조화를 합하여 〈위에서 갈라진 것이 다시 합한다〉 건괘를 이룬다 〈쾌에서 건이 된다〉. 이것이 큰 조화를 온전히 보전해 합하여 마침내 이정이 된다는 말이다. 태는 가을이고 〈쾌의 상괘가 태다〉 감은 겨울이다 〈사·오·육의 자리가 감이다〉. 괘의 몸체가 여기에 이르면 가을과 겨울이 만물을 이루는 것과 같으므로 마침내 이정이다 〈가을은 리이고 겨울은 정이다〉. ○뭇 사물보다 먼저 나온다는 것은 복의 한 양이 처음 생긴다는 말이다 〈진은 장남이다〉. 만물이 진에서 나오며 〈「설괘전」의 글이다〉 또 제왕도 진에서 나온다 〈「설문괘」다〉. 뭇 사물보다 먼저 나오는 것이 어찌 진이라는 주체가 아니겠는가 〈천지의 장남이다〉. 복 이전은 곤이며 곤은 만국이다 〈우씨가 말했다〉. 나라에 주인이 없다면 어찌 평안할 수 있겠는가 〈곤에는 양이 없다〉. 한 양이 처음 나오면 여러 음에게 주인이 생기고 〈진이 주인이 된다〉 이에 여러 현인이 함께 나아가 〈건의 여섯 양이다〉 곤의 나라가 크게 변한다. 이것이 뭇 사물보다 먼저 나오고 만국이 모두 평안하다는 말이다. ○어떤 이가 물었다. “복에서 대장까지는 참으로 모두 용이지만 〈모두 진을 얻었다〉, 쾌는 음 하나가 적고 건에는 마침내 음이 없는데도 진룡이라 할 수 있는가?” 답하였다. “복·임·태·대장은 모두 곤괘에 양 하나만 더하면 곧 진룡이 된다. 그 음획은 여전히 예전 곤괘의 것이지 〈이른바 땅을 다시 열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새로 만든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복과 임에서 쾌와 건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 양을 진으로 삼으니, 완전하거나 부족한 차이가 없다.”
{〔괘상:䷫〕} 초구는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 ○「상전」에서 말하였다.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는 것은 양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는 것은 내려감이다.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는 것은 양기가 잠겨 감추어진 것이다.
이것은 건이 구괘로 변한 것이다 〈초효가 변한다〉. 시초점에서 첫째 획을 이루는 세 번의 괘에서 얻은 책수가 모두 천수이면 〈1·3·5·7·9다〉 초구라 한다 〈하늘을 셋으로 한 까닭이다〉. ○괘는 진이 쌓여 이루어졌으므로 〈복·임·태다〉 본래 모두 용이다 〈진은 용이다〉. 변하여 손이 되면 〈하괘가 이제 손이다〉 손은 숨음이 되고 〈「대전」에서 손은 헤아려 숨는다고 했다〉 엎드림과 들어감이 된다 〈「잡괘전」과 「설괘전」의 글이다〉. 이것이 잠긴 용이다. 들어가고 나오지 않아 〈나옴은 진의 덕이다〉 때에 쓰이지 않으니 〈진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잠긴 용이라 쓰지 말라는 것이다. 본래 아랫자리에 있어 〈초·이는 땅의 자리다〉 잠겼다. ○‘상(象)’은 닮음이다. 한자는 “상은 남방의 큰 짐승인데 중국 사람이 알지 못하고 그림으로 그린 것만 보았으므로 그 뜻을 빌려 형상이 닮았다는 풀이로 삼았다”고 했다 〈《육서정와》에 보인다〉. 상사의 본문은 주공이 지었다 〈곧 효사다〉. 여기서 “상에서 말하였다”고 한 것은 공자가 상사를 풀이한 글이다. ○진의 한 양을 용이라 한다 〈뜻이 앞에 보인다〉. 용은 양이며 자리는 땅 밑이다 〈초·이는 땅의 자리다〉. 이것이 양이 아래에 있다는 말이다 〈9는 노양이며 노양도 양이다〉. ○‘하(下)’는 내려감이다 〈제2절이다〉. 손은 낮추고 양보하므로 〈양에게 엎드린다〉 양에게 내려간다 〈하는 거성으로 읽는다〉. ○건은 기운이므로 〈글자가 ‘气’를 따른다〉 양기다. 건이 구가 되어 이미 잠기면 〈하괘가 이제 손이다〉 장차 곤으로 감추어지니 〈구는 곤의 시작이다〉 양기가 잠겨 감추어진다 〈「설괘」에서 곤은 감춘다고 했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가의의 《신서》는 “잠긴 용은 들어가서 나올 수 없으므로 《역》에서 쓰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손은 들어감이다〉. 경방의 《역전》은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 그 재이는 바람이 가면서 풀리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다 〈재이를 바람이라 한 것은 손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효변을 알았던 듯하다.
공자는 말하였다. “용의 덕을 지니고도 숨은 사람이다 〈손은 숨음이다〉. 세상 때문에 바뀌지 않고 〈손의 덕은 높고 깨끗하여 세속 때문에 바뀌지 않는다〉, 명성을 이루려 하지 않으며 〈손은 과단하지 못하다〉, 세상을 피해도 답답해하지 않고 〈큰 손이 둔괘가 된다〉, 옳다고 인정받지 못해도 답답해하지 않는다 〈손은 휘어 굽히므로 옳다고 인정받지 못한다〉. 즐거우면 행하고 〈복에서 쾌에 이르기까지 모두 진으로 움직인다〉 근심스러우면 어긋나며 〈그때와 서로 반대된다〉, 확고하여 뽑을 수 없으니 〈손은 들어감이다〉 잠긴 용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손의 덕은 막히지 않고 〈아래가 막히지 않는다〉 바람으로 흩으므로 〈「설괘전」의 글이다〉 그 상이 답답함 없음이다 〈민은 마음이 울결됨이다〉. 임과 태 이후에는 모두 태의 기쁨이 있어 〈쾌까지 모두 태가 있다〉 진으로 움직이니 〈여섯 진이 건이 된다〉 즐거우면 행한다는 말이다. 이제 구가 되었으니 근심스러우면 어긋난다는 말이다 〈도가 서로 반대된다〉.
공자는 말하였다. “군자는 덕을 이루는 것을 행동으로 삼고 〈여섯 진의 움직임으로 건을 이룬다〉, 드러나게 행하는 것이라 한다 〈들어가지 않는 것을 행함이라 하고 숨지 않는 것을 드러남이라 한다〉. ‘잠긴다’는 말은 숨어서 아직 드러나지 않고 〈손은 숨음이다〉 행하되 아직 이루지 못했다는 뜻이다 〈손은 나아가고 물러난다〉. 그러므로 군자는 쓰지 않는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잡괘전」은 “태는 드러나고 손은 엎드린다”고 했다 〈견(見)은 나타남이다〉. 괘가 서로 반대되니 구와 쾌가 반괘다 〈반역괘다〉. 숨어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은 〈쾌의 상괘가 태다〉 손과 진이 반대되기 때문이며 〈덕이 서로 반대된다〉, 행하되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은 〈진은 행함이고 손은 과단하지 못함이다〉 그 때문이다. 군자의 도는 드러나고 행하려 하지만 숨어서 행하지 않는 것은 그의 바람이 아니라 오직 때 때문이다.
{〔괘상:䷌〕} 구이는 드러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드러난 용이 밭에 있다는 것은 덕의 베풂이 넓기 때문이다.” ○“드러난 용이 밭에 있다”는 것은 때가 내버려 둔 것이다. ○“드러난 용이 밭에 있다”는 것은 천하가 문명해진 것이다.
이것은 건이 동인괘로 변한 것이다 〈이효가 변한다〉. 시초점에서 둘째 획의 세 번 괘에서 얻은 책수가 모두 천수이면 구이라 한다. ○괘는 진이 쌓여 이루어졌으므로 〈복·임·태다〉 이효도 용이다 〈진은 용이다〉. 변하여 리가 되면 〈하괘가 이제 리다〉 리로 서로 만나므로 〈리는 눈이다〉 드러난 용이다 〈견은 현으로 읽는다〉. 삼재의 자리에서 이는 지면이다 〈정현은 초효가 땅 아래, 이효가 땅 위라고 했다〉. 지면을 밭이라 하므로 〈땅 위에 있다〉 드러난 용이 밭에 있다. 《좌전》에서 “용이 강 땅 교외에 나타났다”고 했으니 〈소공 29년이다〉, 드러난 용이 밭에 있다는 것은 실제 일로도 있었다. ○건은 임금이고 〈「설괘전」의 글이다〉 곧 대인이다. 또 건은 덕이며 〈건은 곧은 마음이다〉 곧 군자다 〈아래에 있는 성인이다〉. 리에서 서로 만나고 〈「설괘전」의 글이다〉 아름답게 모여 예로써 하니 〈하괘가 이제 리다〉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 〈리는 마땅함이다〉. 드러난 용이 밭에 있다는 것은 상이고 〈《시경》의 흥체와 같다〉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는 것은 점이다. ○덕은 건의 덕이다 〈우씨가 말했다〉. 손으로 베풀고 〈이·사효가 호괘다〉 리는 너그러움이 되므로 〈속이 빈 까닭이다〉 덕의 베풂이 넓다. 성인이 세상에 나타나면 아직 천거되어 쓰이지 않더라도 〈아랫자리에 있다〉 학문으로 교화하고 이끌어 〈공자와 같다〉 그 덕의 베풂이 이미 넓다. ○오는 임금의 자리, 사와 삼은 신하의 자리인데 〈순구가의 《역》이다〉 지금 이 성인은 아직 이효의 자리에 있으니 〈백성의 자리다〉 용이 밭에 있는 것과 같다. 이것이 때가 내버려 두어 쓰지 않는 것이다 〈순이 역산에서 밭을 간 것과 같다〉. ○건의 하괘가 리로 변하니 〈상괘가 이제 리다〉 천하가 문명해진다 〈리는 문채이며 밝음이다〉.
공자는 말하였다. “용의 덕을 지니고 바르고 가운데를 얻은 사람이다 〈리는 사정괘이고 또 이는 가운데다〉. 일상적인 말에도 믿음이 있고 〈리는 믿음이다〉, 일상적인 행동도 삼가며 〈리는 막음이다〉, 사악함을 막아 〈리의 두 강이 막고 지키는 울타리가 된다〉 그 성실함을 보존하고 〈리는 속이 비어 성실함이 된다〉, 세상을 잘되게 하면서도 자랑하지 않으며 〈리는 다스림이다〉, 덕이 넓어 교화한다 〈리는 너그러움이다〉. 《역》에서 ‘드러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고 했으니 임금의 덕이다 〈자리는 낮으나 덕은 높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동인은 쾌에서 왔다 〈상효가 이효로 갔다〉. 일상적인 말은 태이고 〈쾌의 상괘가 태다〉 일상적인 행동은 진인데 〈쾌의 오·상효도 진이다〉 동인으로 옮기면 믿고 삼가게 된다 〈하괘가 이제 리다〉. 또 구에서 왔으므로 〈초효가 이효로 갔다〉 손의 덕은 휘어 굽어 〈손은 굽힘이다〉 사악하고 바르지 못하지만 〈괘의 모양이 기울었다〉 동인으로 옮기면 울타리로 막는다 〈하괘가 이제 리다〉. 쾌가 이미 옮겨지면 〈상효가 이효로 갔다〉 태구가 닫혀 〈상태가 닫힌다〉 자랑하지 않는다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화(化)’는 ‘와(訛)’와 같다 〈《요전》에서 ‘남와’라 했다〉. 남방 리화의 덕은 만물을 변화시킬 수 있으므로 역례에서 리는 교화가 된다.
공자는 말하였다. “군자는 배워서 모으고 〈건은 모음이다〉, 물어서 분별하며 〈리는 분별이다〉, 너그러움으로 머물고 〈리는 너그러움이다〉, 인으로 행한다 〈초·이효가 진이다〉. 《역》에서 ‘드러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고 했으니 임금의 덕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동인은 구와 쾌에서 왔다. 손은 가르침을 베푸니 〈관괘에 보인다〉 배울 수 있고 〈구의 하괘가 손이다〉, 태는 말로 기뻐하니 물을 수 있다 〈쾌의 상괘가 태다〉. 지금 리가 문명하므로 〈하괘가 이제 리다〉 학문이 된다.
{〔괘상:䷉〕} 구삼은 군자가 종일 굳세고 또 굳세며 저녁에도 두려워하는 듯하니, 위태로워도 허물이 없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종일 굳세고 또 굳센 것은 도를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종일 굳세고 또 굳세다”는 것은 일을 행함이다. ○“종일 굳세고 또 굳세다”는 것은 때와 함께 행함이다.
이것은 건이 리괘로 변한 것이다 〈삼효가 변한다〉. 괘는 진으로 이루어졌으며 여섯 효가 모두 군자가 쓰는 것이다 〈진은 군자다〉. 여기서 특별히 군자를 말한 것은 이 말이 덕을 진전시키고 업을 닦는 데 쓰이며 점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괘의 자리는 리다 〈초·이·삼은 기·우·기다〉. 리는 해가 되므로 〈「설괘전」의 글이다〉 초효는 해가 뜸이고 〈《좌전》에 보인다〉 이효는 한낮이며 〈풍괘에 보인다〉 삼효는 해질녘이다 〈리괘에 보인다〉. 역례가 그러하다. 괘는 복에서 시작하여 〈뜻이 앞에 보인다〉 마침내 진으로 움직이고 스스로 힘써 쉬지 않으며 굳세고 또 굳세니 〈행하고 또 행한다〉 이것이 ‘건건’이다. 임이 되고 태가 되어 마침내 리의 자리를 끝내니 〈하괘의 끝이다〉 종일 굳세고 또 굳센 것이다. ○리의 자리가 이미 끝났으니 해가 저문 때다 〈리의 끝이다〉. 리는 마음을 비워 〈이제 호괘가 리다〉 태에서 생길 허물을 생각하고 〈하괘가 이제 태다〉 호랑이 꼬리를 밟는 듯하며 〈리괘의 상이다〉 살얼음을 밟는 듯하다 〈리괘에 보인다〉. 위로 건천을 두려워하고 〈리괘의 상괘가 건이다〉 손의 명을 따르니 〈상호괘가 손이다〉 저녁에도 두려워하는 듯하다. 리는 예를 실천하는 괘이므로 그 뜻이 이와 같다. ○‘려’는 위태로움이다. 태의 한 음이 〈하괘가 이제 태다〉 아래의 두 강을 타고 〈초·이효다〉 자리도 차지해서는 안 될 곳이므로 〈음이 양의 자리에 있다〉 그 상이 위태롭다. 그러나 허물이 없는 것은 리가 쾌에서 왔기 때문이다 〈상효가 삼효로 갔다〉. 쾌의 때에는 유가 다섯 강을 타서 〈쾌의 상괘가 태다〉 교만이 지극하지만, 리로 옮기면 〈괘가 이제 리다〉 전괘를 내려 〈위의 태가 이제 아래의 태다〉 상하를 분별하고 〈리는 분별이다〉 우러러 손의 명을 따르므로 〈리의 호괘가 손이다〉 허물이 없다 〈허물을 잘 보충한다〉. ○건의 근본은 곤이다. 임이 되고 태가 되어 장차 건이 되며, 끝나면 다시 시작해 순환하여 끝이 없다 〈열두 벽괘다〉. 이것이 도를 되풀이한다는 말이다. ○건은 진으로 움직이고 〈복·임·태다〉 리는 예를 실천하므로 〈중호괘가 리다〉 일을 행하는 것이다 〈진은 행함이다〉. 종일 한 말과 행동을 저녁에 생각하면 허물이 없을 수 없으니 〈태와 진은 말과 행동이 된다〉, 이 때문에 두려워하는 듯하다. 이 한 효사는 옛 성인이 엄숙하고 공경하며 두려워하고, 덕을 진전시키고 업을 닦는 요지이며 큰 법이다. ○열두 벽괘는 사계절과 함께 운행한다 〈복·임·태는 주나라 정월법으로 봄이다〉. 이것이 괘상이다. 사계절은 바뀌고 흐르는 빛은 빠르니 군자가 덕을 진전시키고 업을 닦는 데 어찌 틈이 있겠는가. 부지런히 힘쓰며 게으르지 않고 애써 그치지 않아 〈곧 종일 건건함이다〉 한 호흡도 끊지 않고 나아가기만 하며 물러나지 않는다 〈문왕의 순수함도 그치지 않는다〉. 흐르는 빛과 함께 행하다 죽은 뒤에야 쉬니, 이것이 예를 실천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종일 굳세고 또 굳세며 때와 함께 행한다고 했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반고의 부에는 “녹만 차지하고 분수에 넘는 자리에 있으면서 저녁에도 두려워하는 듯 위태롭다”고 했고, 《회남자》에는 “종일 건건한 것은 양으로 움직이기 때문이고, 저녁에도 두려워하는 듯 위태로운 것은 음으로 쉬기 때문이다”라고 했으며, 장형의 「사현부」에는 “저녁에도 두려워하는 듯 위태로워 허물을 살핀다”고 했다. 모두 ‘석척약려’를 한 구절로 삼았으니 한나라 유자들의 소략함과 오류가 이와 같다 〈공자는 “비록 위태로워도 허물이 없다”고 했으므로 이제 ‘려무구’를 한 구절로 삼는다〉. ○아들 정학연(學稼)이 말하였다. “태는 서쪽이고 리는 해다 〈이제 호괘가 리다〉. 해가 서쪽에 있으면 저녁이다.”
공자는 말하였다. “군자는 덕을 진전시키고 업을 닦는다 〈유가 나아가 리로 닦는다〉. 충신은 덕을 진전시키는 수단이고 〈리는 충신이다〉, 말을 닦아 성실함을 세우는 일은 〈태의 말이 리로 닦인다〉 업에 머무는 수단이다 〈리는 성실함이다〉. 이를 데를 알아 그곳에 이르면 〈유가 감의 자리에서 왔다〉 기미에 함께할 수 있고 〈감은 기미다〉, 마칠 데를 알아 그곳에서 마치면 〈하괘의 끝이다〉 의를 보존할 수 있다 〈태는 의다〉. 그러므로 위 자리에 있어도 〈하괘의 윗자리다〉 교만하지 않고 〈호손은 겸손하고 순함이다〉, 아래 자리에 있어도 〈전괘의 하괘다〉 근심하지 않는다 〈태는 기뻐하고 리는 즐거워한다〉. 그러므로 굳세고 또 굳세며 때에 맞추어 두려워하니, 비록 위태로워도 허물이 없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이 효사를 점에 사용하면 출처와 진퇴, 제사·혼인·전쟁 등의 일에 모두 맞지 않는다. 주공이 처음 효사를 지을 때 《역》을 배우는 사람이 오로지 복서만을 주로 삼을까 염려하여 특별히 건괘 안에 이 효사를 넣어 《역》의 쓰임이 복서에만 그치지 않음을 알게 한 듯하다. 그러므로 공자가 《역》을 해석할 때 의리를 주로 한 경우가 많다 〈「단전」과 「대상전」이다〉. 그 근원은 문왕과 주공에게서 나왔지 공자에게서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다.
공자는 말하였다. “구삼은 강이 겹치고도 가운데를 얻지 못했으며 〈이효나 오효가 아니다〉, 위로 하늘에 있지 않고 〈오효나 상효가 아니다〉, 아래로 밭에 있지 않으므로 〈초효나 이효가 아니다〉 굳세고 또 굳세다. 때에 맞추어 두려워하면 비록 위태로워도 허물이 없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대전」은 “삼효에는 흉함이 많고 사효에는 두려움이 많다”고 했으니 가운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건괘의 삼효와 사효에서 모두 허물이 없다고 했으며, 공자가 말한 것도 이 뜻이다.
{〔괘상:䷈〕} 구사는 혹 뛰어오르거나 못에 있으면 허물이 없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혹 뛰어오르거나 못에 있다는 것은 나아가도 허물이 없다는 뜻이다.” ○“혹 뛰어오르거나 못에 있다”는 것은 스스로 시험함이다. ○“혹 뛰어오르거나 못에 있다”는 것은 건의 도가 이에 바뀐 것이다.
이것은 건이 소축괘로 변한 것이다 〈사효가 변한다〉. 소축은 구에서 왔다 〈초효가 사효로 갔다〉. 구의 때에는 손의 넓적다리가 아래에 있었는데 〈「설괘」에서 손은 넓적다리다〉 소축으로 옮기면 〈초효가 사효로 갔다〉 손의 넓적다리가 갑자기 뛰어올라 〈아래 손이 이제 위 손이 되었다〉 거의 하늘의 자리에 이르므로 〈오·육은 하늘의 자리다〉 그 상이 뜀이다. 본래 모두 진룡이므로 〈뜻이 앞에 보인다〉 용이 뛴다. 또 쾌에서 왔으니 〈상효가 사효로 갔다〉 위의 태택이 〈쾌의 상괘가 태다〉 옮겨져 못이 되므로 〈이제 호괘가 태다〉 뛰어 못에 있는 것이다 〈연은 고인 물이다〉. 구에서 왔다고 보면 나아감이고 〈아래에서 올라간다〉 쾌에서 왔다고 보면 물러남이므로 〈위에서 내려간다〉 상이 확정되지 않고 자리가 의심스럽다 〈위와 같기도 하고 아래와 같기도 하다〉. 의심스러우므로 ‘혹’이라 하니 〈점법이다〉 혹 뛰어오르거나 못에 있다는 말이다. ○구의 때에는 유가 양의 자리에 있었는데 〈초효의 수가 홀수다〉 소축으로 나아가면 〈초효가 사효로 갔다〉 유가 제자리를 얻으므로 〈사효의 수가 짝수다〉 나아가도 허물이 없다 〈허물을 잘 보충한다〉. ○‘시험’은 장차 쓰려고 먼저 시도하는 것이다. 구의 때에는 엎드려 아래에 있다가 〈구의 하괘가 손이다〉 소축으로 옮기면 갑자기 뛰어오르므로 〈초효가 사효로 갔다〉 자신을 시험하는 도다 〈장차 날려는 것이다〉. 사효에는 두려움이 많으므로 〈「대전」의 글이다〉 의심하면서 시험한다. ○사는 외괘의 시작이다. 내건이 이미 끝나고 외건이 다시 시작하니 건의 도가 이에 바뀐다 〈천도가 변한다〉. 건이 이미 바뀌고 〈사효가 움직인다〉 손의 명도 새로워지니 〈상괘가 이제 손이다〉 건의 도가 이에 바뀐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초효와 사효는 모두 손이지만 〈저것은 아래의 손이다〉 저것이 잠긴 용인 까닭은 자리가 땅 밑이기 때문이고 〈삼재의 자리다〉, 이것이 뛰는 용인 까닭은 자리가 하늘 가운데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는 오와 가깝다〉. ○아들 정학유(學圃)가 말하였다. “손은 물고기다 〈우씨가 말했다〉. 혹 뛰어오르거나 못에 있다는 것은 물고기다. 그러므로 채묵이 용에 대해 답할 때 〈소공 29년이다〉 구사를 말하지 않았다.”
공자는 말하였다. “오르내림에 일정함이 없지만 〈뛰었다가 갑자기 위로 갔다 아래로 내려온다〉 사악하기 때문이 아니며 〈손은 굽힘이다〉, 나아가고 물러남에 일정함이 없지만 〈「설괘」에서 손은 진퇴라고 했다〉 무리를 떠나기 때문이 아니다 〈건의 무리여서 떠나지 않는다〉. 군자가 덕을 진전시키고 업을 닦는 것은 〈리는 닦음이다〉 때에 미치고자 하기 때문이므로 〈그 덕을 쌓아 때가 이르기를 기다린다〉 허물이 없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소축은 구와 쾌에서 왔다 〈법은 표에 보인다〉. 구로 보면 위로 나아가고 〈초효가 사효로 갔다〉 쾌로 보면 아래로 물러난다 〈상효가 사효로 갔다〉. 유가 이미 제자리를 얻었으므로 〈음이 사효에 있다〉 비록 손이지만 사악하지 않고 〈바름을 얻었다〉 건의 무리가 그대로 온전하므로 〈하건이 온전하다〉 비록 리지만 떠나지 않는다. 진전하고 닦아 때에 미치는 것으로써 소축한다 〈그 덕을 쌓는다〉.
공자는 말하였다. “구사는 강이 겹치고도 가운데를 얻지 못했으며 〈이효나 오효가 아니다〉, 위로 하늘에 있지 않고 〈오효나 상효가 아니다〉, 아래로 밭에 있지 않고 〈초효나 이효가 아니다〉, 가운데로 사람에게 있지 않다 〈사는 경상의 자리이므로 삼이 여러 사람의 자리다〉. 그러므로 ‘혹’이라 했다. ‘혹’은 의심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사효에는 두려움이 많으므로 의심한다.
{〔괘상:䷍〕} 구오는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대인이 일어남이다.”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위에서 다스림이다.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마침내 하늘의 덕에 자리한 것이다.
이것은 건이 대유괘로 변한 것이다 〈오효가 변한다〉. 괘가 진으로 이루어졌으므로 오효도 용이다. 변하여 리가 되면 〈상괘가 이제 리다〉 리는 날아오름이 되므로 〈순구가의 설이다〉 나는 용이다 〈진은 용이다〉. 삼재의 자리에서 오·육은 하늘이므로 〈「대전」에 보인다〉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 ○상건은 성군이고 〈곧 대인이다〉 하건은 성인이다. 리에서 서로 만나 〈상괘가 이제 리다〉 바르고 예가 있으므로 〈역례에서 감과 리는 모두 바름이다〉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 〈리는 마땅함이다〉. 구이와 구오는 모두 변하여 리가 되므로 그 점이 모두 만나는 데 이롭다. ○리는 변화시킴이다 〈《서경》에서 말한 ‘남와’다〉. ‘조(造)’는 변화시킴이다. ‘대인이 조한다’는 것은 성인이 변화시킨다는 말이다. 또 조는 작과 같다 〈대인이 조한다는 말은 곧 성인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전서에서 화와 작은 서로 가깝다. ○성인이 남면하여 다스리는 것은 리에서 취한 듯하다 〈「설괘전」의 글이다〉. 그러므로 리는 다스림이 되며 〈상괘가 이제 리다〉 이것을 위에서 다스린다고 한다 〈다스리는 도가 위에서 밝다〉. ○이효와 오효가 모두 리인데 저것을 드러난 용이라 한 것은 아직 지면에 있기 때문이고 〈이효는 땅의 자리다〉, 이것을 나는 용이라 한 것은 마침내 하늘의 덕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오효는 하늘의 자리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리는 꿩이다 〈「설괘전」의 글이다〉. 날짐승의 괘다. ‘리(離)’자는 추(隹)를 따르고 ‘금(禽)’자는 리를 따른다. 순구가에서 리를 비상이라 한 것은 근거가 있다. ○또 이윤이 은나라 탕왕을 찾아가 만나고 태공망이 문왕을 우연히 만났을 때 이 괘를 점쳐 얻었다면 그 점은 길했을 것이다 〈구이도 같다〉.
공자는 말하였다. “같은 소리는 서로 호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한다. 물은 젖은 곳으로 흐르고 불은 마른 곳으로 나아간다.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 〈태는 호랑이다〉. 성인이 일어나면 만물이 바라본다 〈리는 봄이다〉. 하늘에 근본한 것은 위를 가까이하고 〈하늘과 불이다〉 땅에 근본한 것은 아래를 가까이하니 〈물은 땅에 붙는다〉 각각 그 부류를 따른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대유괘는 구와 쾌가 그 근본이다 〈오효로 옮긴다〉. 바람과 우레가 서로 만나니 〈구는 손이고 쾌는 진이다〉 같은 소리가 서로 호응하는 것이다. 사정괘에서 불과 하늘은 한 부류다 〈불과 하늘이 한 부류이고 물과 땅도 한 부류다〉. 불과 하늘이 만나니 〈지금 대유다〉 같은 기운이 서로 구하는 것이다. 태택의 물이 〈쾌의 상괘가 태다〉 옮겨져 못이 되니 〈이제 호괘가 태다〉 물이 젖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리화의 불꽃이 〈구의 때에는 한 음이 리의 자리에 있다〉 위로 뻗어 건조해지니 〈건은 순양이어서 마른다〉 불이 마른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손의 빽빽한 구름이 〈상괘가 이제 손이다〉 위로 진을 따르니 〈쾌의 오·상효가 진이다〉 구름이 용을 따르는 것이다 〈소축은 손을 빽빽한 구름으로 삼았다〉. 이어 손풍이 〈구의 하괘가 손이다〉 위로 태를 따르니 〈쾌의 상괘가 태이고 지금 호괘도 태다〉 바람이 호랑이를 따르는 것이다 〈태는 호랑이다〉. 건의 성군이 〈상괘가 본래 건이다〉 리의 문채로 변화하니 〈상괘가 이제 리다〉 성인이 일어나는 것이다 〈작은 변화시킴이다〉. 여러 양이 아래에 있고 〈하괘도 건이다〉 리에서 서로 만나니 〈「설괘전」의 글이다〉 만물이 바라본다. 「표기」에서 “불과 땅은 가깝지만 높지 않고 〈낮고 가깝다〉 불과 하늘은 높지만 가깝지 않다”고 했다. 이것이 이른바 하늘에 근본한 것은 위를 가까이하고 땅에 근본한 것은 아래를 가까이한다는 것이다. 화천대유에서는 기운의 부류가 서로 감응한다 〈불과 하늘이 한 부류다〉. 나는 용이 하늘에 있어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는 말도 기운의 부류가 서로 감응한다는 뜻이다. 세상에 성군이 있으면 성인은 반드시 그와 서로 만나니, 이것이 각각 그 부류를 따르는 것이다. ○정자는 “성인이 이미 천자의 자리를 얻으면 아래에 있는 큰 덕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고 했다 〈정자는 구이에서는 위아래에 통용해 말했다〉. 주자는 “만나는 것이 이로운 대상은 위에 있는 대인이다”라고 했다 〈주자는 이 효에서는 위아래에 통용해 말했다〉. 왕소소는 송 태조에게 답하면서 임금과 신하의 점에 서로 통용하고자 했다 〈《영락대전》에 보인다〉. 이것은 의심스러운 논의다. 그러나 마땅히 공자의 말로 결정해야 한다. 공자는 “성인이 일어나면 만물이 바라본다”고 했다. 성인은 위에 있는 성군이고 〈곧 나는 용이다〉, 만물이 바라본다는 것은 아래에 있는 이가 만나기를 이롭게 여긴다는 뜻이다. ○또 정약용이 살피건대, 근세 유자들은 바람과 우레를 같은 소리로, 산과 못을 같은 기운으로, 감과 리를 물과 불로 보아 마침내 건은 용이고 곤은 호랑이라는 설을 냈다. 그 뜻은 옳지 않다. 팔괘의 덕은 이 한 효가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어찌 건과 곤을 용과 호랑이로 삼겠는가. 건은 본래 용이 아니며 곤은 또 어찌 호랑이겠는가 〈태가 호랑이라는 뜻은 리·이·혁괘에 보인다〉.
공자는 말하였다. “대인은 천지와 그 덕을 합하고 〈이효와 오효의 강유가 호응한다〉, 일월과 그 밝음을 합하며 〈리가 감의 자리에 있어 일월이 된다〉, 사계절과 그 차례를 합하고 〈건의 원형이정이다〉, 귀신과 그 길흉을 합한다 〈오효와 상효가 간귀가 된다〉. 하늘보다 앞서도 하늘이 어기지 않고 〈하괘의 건이 상괘의 건보다 앞선다〉, 하늘보다 뒤에 있어도 하늘의 때를 받든다 〈상괘의 건이 하괘의 건보다 뒤에 있다〉. 하늘도 어기지 않는데 〈아름답게 모여 합하며 또 이효와 오효가 호응한다〉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하물며 귀신이겠는가.” ○정약용이 살피건대, 대인은 성군이다. 반드시 성군이 있은 뒤에 성인이 만나기를 이롭게 여기므로 그 덕의 성대함을 이처럼 형용했다.
{〔괘상:䷪〕} 상구는 높이 오른 용이니 뉘우침이 있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높이 오른 용에게 뉘우침이 있는 것은 가득 차면 오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높이 오른 용에게 뉘우침이 있다”는 것은 궁극에 이른 재앙이다. ○“높이 오른 용에게 뉘우침이 있다”는 것은 때와 함께 극에 이른 것이다.
이것은 건이 쾌괘로 변한 것이다 〈상효가 변한다〉. 괘가 진으로 이루어졌으므로 상효도 용이다 〈진은 용이다〉. 그 자리가 높음의 극이므로 높이 오른 용이다 〈항은 극이다〉. 변하여 태가 되면 〈상괘가 이제 태다〉 태는 터뜨림이 되므로 〈「설괘전」의 글이다〉 가득 찬 것이 터지는 것이다 〈건은 가득 참이다〉. 사람이 덕을 닦을 때 뉘우치면 반드시 고치므로 괘효의 변화도 ‘회’라 한다 〈이것이 《역》의 큰 뜻이다〉. 회는 변화다 〈하해가 말했다〉. 건이 변하여 쾌가 되는 것이 높이 오른 용에게 뉘우침이 있다는 말이다. ○가득 참은 여섯 양이 모두 찼다는 것이다. 가득 차면 반드시 무너지니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잡괘전」은 “쾌는 터뜨림이다”라고 했다. ○‘궁’은 극이다. 근심과 환난이 극에 이른 사람은 도리어 복에 이를 수 있지만 〈진괘에 보인다〉 명예와 지위가 극에 이른 사람은 반드시 도리어 재앙에 이른다 〈가득 차면 오래가지 못한다〉. 높이 오른 용의 뉘우침은 〈위의 강이 변한다〉 궁극에 이른 재앙이다. ○‘때’는 사계절이다. 동지에 한 양이 처음 생겨 〈복의 한 양이다〉 하지에 이르면 여섯 양이 이미 극에 이르니 〈낮의 길이가 극에 이른다〉, 건의 상강은 때와 함께 극에 이른 것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홍범」에는 ‘정’과 ‘회’가 있다. 회는 변함이고 정은 변하지 않음이다. 또 허물을 고치는 것을 회라 하고 허물을 고치지 않는 것을 린이라 한다. ○아들 정학연(學稼)이 말하였다. “맨 위의 한 양은 본래 음이 없는 진룡이다 〈뜻이 앞에 보인다〉. 양의 도가 너무 높이 오르니 높이 오른 용이다 〈심한 가뭄의 ‘항’과 같다〉.”
공자는 말하였다. “귀하지만 자리가 없고 〈육은 음의 자리인데 건의 상강은 양으로 음의 자리에 있다〉, 높지만 백성이 없으며 〈곤은 백성인데 건이 육효에 이르면 음이 하나도 없다〉, 현인들이 아래 자리에 있지만 돕는 이가 없다 〈여러 양이 아래에 있지만 모두 신하가 되지 않으며 곤은 신하다〉. 그러므로 움직이면 뉘우침이 있다 〈움직임은 효변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높이 오른 용은 교만하여 스스로 높이고 조금도 낮추지 않으므로 백성도 없고 신하도 없다.
공자는 말하였다. “‘높이 오른다’는 말은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 모르며 〈쾌에서 이미 충분한데 다시 한 걸음 나아간다〉, 보존할 줄만 알고 망할 줄 모르며, 얻을 줄만 알고 잃을 줄 모른다는 뜻이다 〈태는 잃음이다〉. 오직 성인뿐인가. 나아감과 물러남, 보존과 멸망을 알고 그 바름을 잃지 않는 이는 오직 성인뿐인가.” ○정약용이 살피건대, 성인은 하건의 성인을 말한다. 건이 변하여 태가 되면 위는 바름을 잃는다 〈괘의 모양이 기울었다〉. 바름을 잃지 않는 것은 하괘다.
{〔괘상:䷁〕} 용구는 여러 용이 나타났으나 우두머리가 없으면 길하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용구는 하늘의 덕이 우두머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건원이 용구를 쓰면 천하가 다스려진다.” ○“건원이 용구를 쓰면 마침내 하늘의 법칙이 드러난다.”
이것은 건이 곤괘로 변한 것이다 〈채묵이 말했다〉. 시초점의 열여덟 변으로 괘를 이룰 때 〈3×6이 18이다〉 열여덟 괘에서 얻은 책수가 모두 천수이면 〈1·3·5·7·9다〉 여섯 자리가 모두 변하며 〈모두 노양이다〉 이를 용구라 한다. ○건은 본래 여섯 진이므로 〈뜻이 앞에 보인다〉 여러 용이 나타난 것이다 〈견은 현으로 읽는다〉. 건은 또한 머리가 되고 〈「설괘전」의 글이다〉 용에게 머리가 있다. 변하여 곤이 되면 〈여섯 효가 모두 변한다〉 마침내 건의 굳셈이 없어지므로 〈양이 하나도 없다〉 여러 용이 나타났으나 우두머리가 없는 것이다. 용이면서 용이 아니면 신룡이므로 〈장씨는 “신룡은 꼬리는 보이지만 머리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길하다. ○본래 건괘이므로 참으로 하늘의 덕이다. 하늘의 덕이라 해도 이제 이미 건이 없으므로 〈양이 하나도 없다〉 우두머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건은 머리다〉. ○천하는 곤이다 〈괘가 이제 곤이다〉. 본래 임금의 덕으로 〈괘가 본래 건이다〉 손의 가르침을 베풀고 〈초효가 변하여 구가 된다〉 점차 젖어들게 하여 〈여섯 양이 차례로 변해 음이 된다〉 곤의 백성을 크게 교화한다 〈괘가 이제 곤이다〉. 백성을 교화하는 것을 다스림이라 하므로 천하가 다스려진다. ○하늘의 도는 변화를 좋아하여 사계절과 만물이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이것이 《역》이 변화를 주로 삼는 까닭이다. 이제 여섯 양이 모두 변하니 〈변화의 극이다〉 하늘의 도와 하늘의 법을 여기에서 증험할 수 있다 〈신묘하게 변하여 형체가 없다〉. 이것이 마침내 하늘의 법칙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춘추전》에서 채묵이 용에 대해 답하면서 〈소공 29년이다〉 이를 건이 곤으로 변한 것으로 보았으니 〈주자는 “여섯 효가 모두 변하면 바로 이 말로 점친다”고 했다〉 건과 곤에 순수한 변화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여섯 효가 순수하게 변할 때에는 이 말을 쓰고 변화가 섞여 있으면 모두 쓰지 않는다 〈「시괘전」에 자세히 보인다〉. 그러므로 쓸 수 있는 것을 ‘용구’라 했다. ○아들 정학연(學稼)이 말하였다. “변화가 섞이면 구와 육이 뒤섞여 어느 하나의 이름을 가리킬 수 없다 〈구라고 해도 안 되고 육이라고 해도 안 된다〉. 그러므로 법으로 변화를 구하면 마침내 구나 육으로 귀결된다 〈구가 아니면 육이다〉. 여섯 자리가 모두 변하면 구와 육의 이름이 설 수 있으므로 이에 따라 쓴다.”
원문 도판
정약용은 건을 단순히 하늘이나 순양(음이 섞이지 않은 온전한 양)의 상으로만 보지 않고, 복에서 임·태·대장·쾌를 거쳐 건에 이르는 양의 추이(효가 옮겨 변한 관계를 살펴 괘를 읽는 법) 과정으로 풀이한다. 이 과정에서 진을 용과 운동의 근원으로, 리를 성실·문명·교화로, 태를 의와 조화로, 감을 견고함과 일의 성취로 읽어 ‘원형리정(시작·성장·성취·바름을 가리키는 네 덕목)’의 구조를 설명한다. 「단전」과 「문언전」의 문구도 추이·물상·호체·효변의 네 방법에 따라 세밀하게 다시 배치한다.
각 효는 실제로 변한 뒤의 괘를 중심으로 해석한다. 초구는 손으로 변해 숨고 들어가므로 잠긴 용이고, 구이는 리로 변해 드러난 용이며, 구삼은 리괘가 되어 종일 실천하고 저녁에 반성한다. 구사는 소축의 진퇴가 확정되지 않아 ‘혹’이라 하고, 구오는 대유의 리에서 성군과 성인이 서로 만나며, 상구는 쾌의 가득 참과 결단 때문에 오래갈 수 없다. 용구는 여섯 효가 모두 변해 곤이 되는 순수 변괘의 점법이다. 정약용은 특히 구삼을 복서에만 국한되지 않는 수양의 효사로 보며, 《역》의 쓰임이 점에 그치지 않는다고 밝힌다.
교감·번역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