蠱 고
아래괘 巽 바람 · 위괘 艮 산
기쁨으로 남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일이 생기므로 고괘로 이었다.
괘사
元亨。利涉大川。先甲三日,後甲三日。
원형. 이섭대천. 선갑삼일, 후갑삼일.
크게 형통한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갑일보다 사흘 앞서고, 갑일보다 사흘 뒤선다.
단전
蠱,剛上而柔下,巽而止,蠱。蠱,元亨,而天下治也。利涉大川,往有事也。先甲三日,後甲三日,終則有始,天行也。
고는 굳센 양이 올라가고 부드러운 음이 내려오며, 공손히 따르다가 멈추는 것이니, 이것이 고다. 고가 크게 형통한다는 것은 천하가 다스려지는 것이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는 것은 나아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갑일보다 사흘 앞서고 갑일보다 사흘 뒤선다는 것은 끝나면 다시 시작이 있는 하늘의 운행이다.
대상전
山下有風,蠱;君子以振民育德。
산 아래에 바람이 있는 것이 고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백성을 떨쳐 일으키고 덕을 기른다.
여섯 효
효사
幹父之蠱,有子考,无咎,厲終吉。
간부지고, 유자, 고무구, 려종길.
아버지가 남긴 폐단을 바로잡는다. 아들이 있으니 아버지는 허물이 없다. 위태로우나 끝내 길하다.
소상전
幹父之蠱,意承考也。
아버지가 남긴 폐단을 바로잡는 것은 뜻으로 아버지를 잇는 것이다.
효사
幹母之蠱,不可貞。
간모지고, 불가정.
어머니가 남긴 폐단을 바로잡는다. 한결같이 고집해서는 안 된다.
소상전
幹母之蠱,得中道也。
어머니가 남긴 폐단을 바로잡는 것은 중도를 얻었기 때문이다.
효사
幹父之蠱,小有悔,无大咎。
간부지고, 소유회, 무대구.
아버지가 남긴 폐단을 바로잡는다. 조금 뉘우침이 있으나 큰 허물은 없다.
소상전
幹父之蠱,終无咎也。
아버지가 남긴 폐단을 바로잡으니 끝내 허물이 없다.
효사
裕父之蠱,往見吝。
유부지고, 왕견린.
아버지가 남긴 폐단을 너그럽게 내버려 둔다. 나아가면 어려움을 보게 된다.
소상전
裕父之蠱,往未得也。
아버지가 남긴 폐단을 너그럽게 내버려 두면, 나아가서 뜻을 이루지 못한다.
효사
幹父之蠱,用譽。
간부지고, 용예.
아버지가 남긴 폐단을 바로잡아 이로써 칭송을 받는다.
소상전
幹父用譽,承以德也。
아버지가 남긴 폐단을 바로잡아 칭송을 받는 것은 덕 있는 이가 받들어 주기 때문이다.
효사
不事王侯,高尚其事。
불사왕후, 고상기사.
왕과 제후를 섬기지 않고, 자신의 일을 높이 숭상한다.
소상전
不事王侯,志可則也。
왕과 제후를 섬기지 않으니, 그 뜻은 본받을 만하다.
네 해석의 갈림길
갈리는 지점정약용은 괘사의 선갑·후갑을 방위와 날짜를 따지는 역법의 법례로 풀어내지만, 정이천은 그보다 원인을 캐고 결과를 내다보는 수신과 정치의 문제에 무게를 둔다.
왕필
고는 일이 어지러워져 능력 있는 사람이 제도를 새로 세워야 하는 때다. 왕필은 옛일을 무조건 답습하지 말고 명령을 충분히 알린 뒤 책임을 물으며, 각 효가 맡은 일을 감당해야 한다고 본다.
정이천
정이는 고를 이미 무너지고 어지러워져 반드시 다스릴 일이 생긴 상태로 풀이한다. 원인을 앞에서 깊이 캐고 결과를 뒤에서 멀리 내다보아야 앞선 폐단을 고치고 새 폐단을 막을 수 있다. 자신에게서는 덕을 기르고 천하에 대해서는 백성을 진작하는 것이 가장 큰 치고의 사업이다.
여섯 효는 부모가 남긴 고를 자식이 처리한다는 비유로, 과거의 잘못을 계승·교정하는 다양한 방식을 말한다. 부드러움과 강단의 중도(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알맞은 길), 현자에게 맡기는 수성,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방임, 때를 만나지 못했을 때 도를 지키며 물러나는 처신까지 포함한다.
주희
주희는 상하가 교제하지 않고 아래는 손순하기만 하며 위는 구차하게 멈춘 결과, 쌓인 폐단이 고에 이른다고 본다. 무너짐이 극에 이르면 다시 다스릴 수 있으므로 크게 형통(길이 막힘없이 통하여 일이 풀림)하지만, 앞선 실패를 거울삼고 뒤의 일을 정녕하게 경계해야 한다.
효사(각 효에 붙은 판단문)는 앞사람이 남긴 무너진 단서를 자식이 줄기처럼 떠맡아 다시 일으키는 과정이다. 고가 얕을 때의 신중함, 유약한 상대를 고칠 때의 손순함, 지나친 강단과 방임의 위험, 중덕과 현자의 보좌, 일의 바깥에서 뜻을 높이는 선택을 상과 점으로 구분한다.
정약용
고괘는 건곤이 무너져 수리할 일이 생긴 때다. 정약용은 ‘간’을 담을 다지는 널의 상으로 읽고, 선갑·후갑을 괘의 방위와 일수 법례로 해명한다.
현대적으로 읽기
고괘(오래 쌓인 잘못과 폐단을 바로잡는 상황)
고(蠱)는 이미 쌓인 기술 부채(미뤄 둔 기술 문제로 쌓인 부담), 조직 문화의 폐단, 전임자가 남긴 실패를 숨기지 않고 고쳐야 하는 상황이다. 초육(첫째 자리의 음효)의 ‘아버지가 남긴 폐단을 바로잡는다. 아들이 있으니 아버지는 허물이 없다’는 전임자를 비난하는 데 머물지 않고 책임 있게 계승하는 태도다.
반대로 육사(넷째 자리의 음효)의 ‘폐단을 너그럽게 내버려 두면 나아가도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눈앞의 증상만 없애고 방치할 때의 결과다. 시행 뒤에는 같은 실패가 재발할 조건을 점검해야 한다.
왕필(王弼) 《주역주》 — 64괘 주석
이 64괘 주석의 저자는 왕필(王弼)이다. 한강백(韓康伯)은 계사전 등 일부 십익 주석의 저자로, 이 층과 구분한다.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上剛可以斷制下柔可以施令
旣㢲又止不競爭也有事而无競爭之患故可以有為也
有為而大亨非天下治而何也
蠱者有事而待能之時也可以有為其在此時矣物已說隨則待夫作制以定其事也進徳修業往則亨矣故元亨利涉大川也甲者創制之令也創制不可責之以舊故先之三日後之三日使令洽而後乃誅也因事申令終則復始若天之行用四時也
蠱者有事而待能之時也故君子以濟民飬徳也
處事之首始見任者也以柔㢲之質幹父之事能承先軌堪其任者也故曰有子也任為事首能堪其事考乃无咎也故曰有子考无咎也當事之首是以危也能堪其事故終吉也
幹事之首時有損益不可盡承故意承而巳
居於内中宜幹母事故曰幹母之蠱也婦人之性難可全正宜屈巳剛旣幹且順故曰不可貞也幹不失中得中道也
以剛幹事而无其應故有悔也履得其位以正幹父雖小有悔終无大咎
體柔當位幹不以剛而以柔和能裕先事者也然无其應往必不合故曰往見吝
以柔處尊用中而應承先以斯用譽之道也
以柔處中不任威力也
最處事上而不累於位不事王侯髙尚其事者也
위의 강함으로 결단하고 제어할 수 있으며, 아래의 부드러움으로 명령을 펼 수 있다.
이미 공손히 들어가고 또 멈추므로 다투지 않는다. 일이 있으면서도 다툼의 근심이 없으므로 일을 해낼 수 있다.
일을 해내어 크게 형통하니 천하가 다스려진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고는 일이 생겨 능력 있는 이를 기다리는 때다. 일을 할 수 있는 때가 바로 이때다. 사물이 이미 기뻐하며 따르게 되면, 제도를 만들어 일을 안정시킬 이를 기다린다. 덕을 증진하고 일을 닦아 나아가면 형통하므로 ‘크게 형통하며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고 한다. 갑은 제도를 새로 만드는 명령이다. 제도를 새로 만들 때는 옛 명령을 기준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으므로, 시행하기 사흘 전부터 알리고 시행한 뒤 사흘을 기다려 명령이 두루 미친 뒤에야 벌한다. 일에 따라 명령을 거듭 밝혀 끝나면 다시 시작하니, 하늘이 사계절을 운행하는 것과 같다.
고는 일이 생겨 능력 있는 이를 기다리는 때다. 그러므로 군자는 백성을 구제하고 덕을 기른다.
일의 첫머리에 있어 처음으로 임무를 맡는 자다. 부드럽고 공손한 자질로 아버지의 일을 주관하며 앞선 법도를 이어받으니 그 임무를 감당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들이 있다’고 한다. 임무를 맡아 일의 첫머리가 되어 일을 감당할 수 있으니 아버지가 허물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아들이 있으니 아버지가 허물이 없다’고 한다. 일의 첫머리를 맡았으므로 위태롭지만 일을 감당할 수 있어 끝내 길하다.
일을 주관하는 처음에는 때에 따라 덜고 보탤 것이 있어 옛것을 모두 그대로 계승할 수 없다. 그러므로 뜻만 계승할 뿐이다.
안쪽의 가운데에 있으므로 어머니의 일을 주관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고를 주관한다’고 한다. 부인의 성정은 완전히 바르게 교정하기 어려우므로 자기를 굽히는 것이 마땅하다. 강함으로 주관하면서도 순응하므로 ‘바르게 고집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일을 주관하되 중도를 잃지 않아 중도를 얻는다.
강함으로 일을 주관하지만 응하는 자가 없으므로 후회가 있다. 제자리를 밟고 바름으로 아버지의 일을 주관하니, 비록 작은 후회는 있어도 끝내 큰 허물은 없다.
부드러움을 몸으로 삼고 자리가 마땅하다. 강경함이 아니라 부드러운 화합으로 일을 주관하여 앞선 일을 너그럽게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응하는 자가 없으므로 가면 반드시 뜻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가면 부끄러움을 본다’고 한다.
부드러움으로 존위에 있고 중도를 쓰며, 앞선 일을 이어받으니 이로써 명예를 얻는 길이다.
부드러움으로 중에 있어 위엄과 힘에 의존하지 않는다.
일의 맨 위에 있으면서 지위에 얽매이지 않는다. 왕과 제후를 섬기지 않고 자기 일을 고상하게 하는 자다.
고는 일이 어지러워져 능력 있는 사람이 제도를 새로 세워야 하는 때다. 왕필은 옛일을 무조건 답습하지 말고 명령을 충분히 알린 뒤 책임을 물으며, 각 효가 맡은 일을 감당해야 한다고 본다.
교감·번역 주
정이천 《이천역전》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巽下艮上〉
蠱序卦以喜隨人者必有事故受之以蠱承二卦之義以為次也夫喜悦以隨於人者必有事也无事則何喜何隨蠱所以次隨也蠱事也蠱非訓事蠱乃有事也為卦山下有風風在山下遇山而回則物亂是為蠱象蠱之義壊亂也在文為蟲皿皿之有蟲蠱壞之義左氏傳云風落山女惑男以長女下於少男亂其情也風遇山而回物皆撓亂是為有事之象故云蠱者事也既蠱而治之亦事也以卦之象言之所以成蠱也以卦之才言之所以治蠱也
蠱元亨利涉大川
既蠱則有復治之理自古治必因亂亂則開治理自然也如卦之才以治蠱則能致元亨也蠱之大者濟時之艱難險阻也故曰利涉大川
先甲三日後甲三日
甲數之首事之始也如辰之甲乙甲第甲令皆謂首也事之端也治蠱之道當思慮其先後三日蓋推原先後為救弊可乆之道先甲謂先於此究其所以然也後甲謂後於此慮其將然也一日二日至於三日言慮之深推之逺也究其所以然則知救之之道慮其將然則知備之之方善救則前弊可革善備則後利可久此古之聖王所以新天下而垂後世也後之治蠱者不明聖人先甲後甲之誡慮淺而事近故勞於救世而亂不革功未及成而弊已生矣甲者事之首庚者變更之首制作政教之類則云甲舉其首也發號施令之事則云庚庚猶更也有所更變也
象曰蠱剛上而柔下巽而止蠱
以卦變及二體之義而言剛上而柔下謂乾之初九上而為上九坤之上六下而為初六也陽剛尊而在上者也今徃居於上隂柔卑而在下者也今來居於下男雖少而居上女雖長而在下尊卑得正上下順理治蠱之道也由剛之上柔之下變而為艮巽艮止也巽順也下巽而上止止於巽順也以巽順之道治蠱是以元亨也
蠱元亨而天下治也
治蠱之道如卦之才則元亨而天下治矣夫治亂者苟能使尊卑上下之義正在下者巽順在上者能止齊安定之事皆止於順則何蠱之不治也其道大善而亨也如此則天下治矣
利涉大川徃有事也
方天下壞亂之際宜涉艱險以徃而濟之是徃有所事也
先甲三日後甲三日終則有始天行也
夫有始則必有終既終則必有始天之道也聖人知終始之道故能原始而究其所以然要終而備其將然先甲後甲而為之慮所以能治蠱而致元亨也
象曰山下有風蠱君子以振民育徳
山下有風風遇山而回則物皆散亂故為有事之象君子觀有事之象以振濟於民養育其徳也在己則養徳於天下則濟民君子之所事无大於此二者
初六幹父之蠱有子考无咎厲終吉
初六雖居最下成卦由之有主之義居内在下而為主子幹父蠱也子幹父蠱之道能堪其事則為有子而其考得无咎不然則為父之累故必惕厲則得終吉也處卑而尸尊事自當兢畏以六之才雖能巽順體乃隂柔在下无應而主幹非有能濟之義若以不克幹而言則其義甚小故專言為子幹蠱之道必克濟則不累其父能厲則可以終吉乃備見為子幹蠱之大法也
象曰幹父之蠱意承考也
子幹父蠱之道意在承當於父之事也故祗敬其事以置父於无咎之地常懷惕厲則終得其吉也盡誠於父事吉之道也
九二幹母之蠱不可貞
九二陽剛為六五所應是以陽剛之才在下而幹夫在上隂柔之事也故取子幹母蠱為義以剛陽之臣輔柔弱之君義亦相近二巽體而處柔順義為多幹母之蠱之道也夫子之於母當以柔巽輔導之使得於義不順而致敗蠱則子之罪也從容將順豈无道乎以婦人言之則隂柔可知若伸已剛陽之道遽然矯拂則傷恩所害大矣亦安能入乎在乎屈己下意巽順將承使之身正事治而已故曰不可貞謂不可貞固盡其剛直之道如是乃中道也又安能使之為甚高之事乎若於柔弱之君盡誠竭忠致之於中道則可矣又安能使之大有為乎且以周公之聖輔成王成王非甚柔弱也然能使之為成王而已守成不失道則可矣固不能使之為羲黄堯舜之事也二巽體而得中是能巽順而得中道合不可貞之義得幹母蠱之道也
象曰幹母之蠱得中道也
二得中道而不過剛幹母蠱之善者也
九三幹父之蠱小有悔无大咎
三以剛陽之才居下之上主幹者也子幹父之蠱也以陽處剛而不中剛之過也然而在巽體雖剛過而不為无順順事親之本也又居得正故无大過以剛陽之才克幹其事雖以剛過而有小小之悔終无大過咎也然有小悔已非善事親也
象曰幹父之蠱終无咎也
以三之才幹父之蠱雖小有悔終无大咎也蓋剛斷能幹不失正而有順所以終无咎也
六四裕父之蠱徃見吝
四以隂居隂柔順之才也所處得正故為寛裕以處其父事者也夫柔順之才而處正僅能循常自守而已若徃幹過常之事則不勝而見吝也以隂柔而无應助徃安能濟
象曰裕父之蠱徃未得也
以四之才守常居寛裕之時則可矣欲有所徃則未得也加其所任則不勝矣
六五幹父之蠱用譽
五居尊位以隂柔之質當人君之幹而下應於九二是能任剛陽之臣也雖能下應剛陽之賢而𠋣任之然已實隂柔故不能為創始開基之事承其舊業則可矣故為幹父之蠱夫創業垂統之事非剛明之才則不能繼世之君雖柔弱之資苟能任剛賢則可以為善繼而成令譽也太甲成王皆以臣而用譽者也
象曰幹父用譽承以徳也
幹父之蠱而用有令譽者以其在下之賢承輔之以剛中之徳也
上九不事王侯高尚其事
上九居蠱之終无繫應於下處事之外无所事之地也以剛明之才无應援而處无事之地是賢人君子不偶於時而高潔自守不累於世務者也故云不事王侯高尚其事古之人有行之者伊尹太公望之始曾子子思之徒是也不屈道以徇時既不得施設於天下則自善其身尊高敦尚其事守其志節而已士之自髙尚亦非一道有懐抱道徳不偶於時而髙潔自守者有知止足之道退而自保者有量能度分安於不求知者有清介自守不屑天下之事獨潔其身者所處雖有得失小大之殊皆自髙尚其事者也象所謂志可則者進退合道者也
象曰不事王侯志可則也
如上九之處事外不累於世務不臣事於王侯盖進退以道用舍隨時非賢者能之乎其所存之志可為法則也
고괘는 아래가 손이고 위가 간이다. 「서괘전」은 ‘기뻐하여 남을 따르는 자에게는 반드시 일이 있으므로 고괘로 받았다’고 했다. 앞의 두 괘 뜻을 이어 순서로 삼은 것이다. 기뻐하며 남을 따르는 자에게는 반드시 일이 있다. 일이 없다면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따르겠는가. 이 때문에 고괘가 수괘 다음에 온다. 蠱는 일이다. 그러나 蠱라는 글자의 훈이 곧 ‘일’이라는 뜻은 아니고, 고가 되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뜻이다. 괘는 산 아래에 바람이 있는 모습이다. 바람이 산 아래에서 산을 만나 되돌아오면 사물이 어지러워지므로 고의 상이 된다. 고의 뜻은 무너지고 어지러워짐이다. 글자의 모양은 벌레와 그릇으로 되어 있어, 그릇 속에 벌레가 생기면 썩고 무너진다는 뜻이다. 《좌씨전》은 ‘바람이 산을 떨어뜨리고 여자가 남자를 미혹한다’고 했다. 장녀가 소남 아래에 있어 그 정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바람이 산을 만나 되돌아오면 사물이 모두 흔들리고 어지러워지니, 해야 할 일이 생긴 상이다. 그래서 ‘고는 일이다’라고 했다. 이미 고가 된 뒤 이를 다스리는 것도 일이다. 괘의 상으로 말하면 고가 이루어진 까닭이고, 괘의 재질로 말하면 고를 다스릴 수 있는 까닭이다.
[괘사] ‘고는 크게 형통하고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이미 고가 되면 다시 다스려질 이치가 있다. 예로부터 다스림은 반드시 어지러움에서 비롯되었고, 어지러우면 다스림의 길이 열리는 것이 이치상 자연스럽다. 이 괘의 재질처럼 고를 다스리면 크게 형통함을 이룰 수 있다. 고 가운데 큰 것은 당시의 어려움과 험난한 장애를 구제하는 일이므로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고 했다.
‘갑보다 사흘 앞서고 갑보다 사흘 뒤에 한다.’ 甲은 수의 맨 처음이고 일의 시작이다. 간지의 갑을, 등급의 갑제, 법령의 갑령에서 모두 첫머리를 뜻하듯 일의 단서다. 고를 다스리는 도는 갑의 앞뒤 사흘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앞뒤의 원인을 미루어 살펴 폐단을 구제하고 오래 지속시킬 방도를 마련하라는 뜻이다. ‘갑보다 앞선다’는 것은 이 일이 생기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렇게 된 까닭을 끝까지 살핀다는 말이다. ‘갑보다 뒤진다’는 것은 이 일이 있은 뒤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생각한다는 말이다. 하루, 이틀, 사흘까지 나아간다는 것은 생각이 깊고 추론이 멀다는 뜻이다. 그렇게 된 까닭을 끝까지 살피면 구제할 방법을 알고, 장차 그렇게 될 일을 생각하면 대비할 방도를 안다. 잘 구제하면 앞선 폐단을 개혁할 수 있고 잘 대비하면 뒤의 이로움이 오래간다. 옛 성왕은 이 때문에 천하를 새롭게 하고 후세에 법을 드리웠다. 후세에 고를 다스린 자들은 성인의 ‘갑보다 사흘 앞서고 사흘 뒤에 하라’는 경계를 밝히 알지 못했다. 생각은 얕고 처리하는 일은 눈앞에만 머물렀으므로, 세상을 구제하느라 수고해도 혼란은 개혁되지 않았고 공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새로운 폐단이 생겼다. 甲은 일의 첫머리이고 庚은 변경의 첫머리다. 제도·법규·정치·교화를 제작하는 일에는 甲이라 하여 그 첫머리를 들고, 명령을 발표하고 시행하는 일에는 庚이라 한다. 庚은 고친다는 更과 같아서 바꾸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단전] ‘고는 굳센 것이 올라가고 부드러운 것이 내려오며, 손순하다가 멈추므로 고다.’ 괘변과 두 몸체의 뜻으로 말했다. 굳센 것이 올라가고 부드러운 것이 내려온다는 것은 건의 초구가 올라가 상구가 되고, 곤의 상육이 내려와 초육이 된 것을 말한다. 양강은 존귀하여 위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위로 가서 머물고, 음유는 비천하여 아래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아래로 와서 머문다. 남자는 비록 어리지만 위에 있고 여자는 비록 장성했지만 아래에 있어 존비가 바름을 얻고 상하가 이치에 순응하니, 고를 다스리는 도다. 굳센 것이 올라가고 부드러운 것이 내려와 변해 간과 손이 되었다. 간은 멈춤이고 손은 순종이다. 아래는 손순하고 위는 멈추니 손순함에 머무는 것이다. 손순한 도로 고를 다스리므로 크게 형통한다.
‘고는 크게 형통하여 천하가 다스려진다.’ 고를 다스리는 도가 이 괘의 재질과 같으면 크게 형통하여 천하가 다스려진다. 어지러움을 다스리는 자가 존비와 상하의 의리를 바르게 하고, 아래에 있는 자는 손순하며 위에 있는 자는 멈추어 정돈하고 안정시키는 모든 일이 순함에 머물게 한다면 어떤 고인들 다스려지지 않겠는가. 그 도가 크게 선하여 형통하니 천하가 다스려진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운 것은 가서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천하가 무너지고 어지러운 때에는 험난을 건너 가서 이를 구제해야 한다. 이것이 가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뜻이다. ‘갑보다 사흘 앞서고 갑보다 사흘 뒤에 한다. 끝나면 다시 시작이 있는 것이 하늘의 운행이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고, 이미 끝나면 반드시 다시 시작이 있으니 하늘의 도다. 성인은 끝과 시작의 도를 알았으므로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렇게 된 까닭을 끝까지 살피고, 끝을 요약하여 장차 그렇게 될 일을 대비한다. 갑의 앞뒤로 깊이 생각하므로 고를 다스려 크게 형통하게 할 수 있다.
[대상전] ‘산 아래에 바람이 있는 것이 고다. 군자는 이로써 백성을 진작시키고 덕을 기른다.’ 산 아래에 바람이 있어 바람이 산을 만나 되돌아오면 사물이 모두 흩어지고 어지러워지므로 해야 할 일이 생긴 상이다. 군자는 해야 할 일이 생긴 상을 보고 백성을 진작하여 구제하고 자신의 덕을 기른다. 자신에게서는 덕을 기르고 천하에 대해서는 백성을 구제한다. 군자가 해야 할 일 가운데 이 두 가지보다 큰 것은 없다.
[초육] ‘아버지의 고를 주관한다. 자식이 있으면 아버지가 허물이 없게 된다. 위태롭게 여기면 끝내 길하다.’ 초육은 가장 아래에 있지만 괘가 이루어진 까닭이어서 주관자의 뜻이 있다. 안에 있고 아래에 있으면서 주관하므로 자식이 아버지의 고를 주관하는 것이다. 자식이 아버지의 고를 주관할 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으면 ‘자식이 있다’고 할 수 있고 아버지는 허물이 없는 데에 놓인다.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누가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두려워하고 위태롭게 여겨야 끝내 길하다. 비천한 자리에 있으면서 존귀한 자의 일을 주관하니 본래 조심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초육은 손순할 수 있는 재질이지만 몸은 음유하고 아래에 있으며 응하는 효도 없는데 주관하여 처리한다. 본래 구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상은 아니다. 그러나 일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쪽으로만 말하면 효의 뜻이 너무 작아진다. 그래서 자식이 아버지의 고를 주관하는 도만을 말하여 반드시 일을 잘 구제해야 아버지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위태롭게 여기면 끝내 길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식이 아버지의 고를 주관하는 큰 법을 완전하게 보인 것이다. [소상전] ‘아버지의 고를 주관한다는 것은 뜻이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는 데 있다.’ 자식이 아버지의 고를 주관하는 도는 아버지의 일을 이어 맡는 데 뜻이 있다. 그러므로 일을 공경하고 삼가 아버지를 허물이 없는 곳에 놓고, 늘 두려움과 위태로움을 품으면 끝내 길하다. 아버지의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 길한 도다.
[구이] ‘어머니의 고를 주관하니 바름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구이는 양강으로 육오의 응을 받는다. 양강한 재질로 아래에 있으면서 위에 있는 음유한 자의 일을 주관하므로 자식이 어머니의 고를 주관한다는 뜻을 취했다. 양강한 신하가 유약한 임금을 돕는 뜻도 이와 가깝다. 구이는 손체이고 부드러운 자리에 머물러 순종의 뜻이 많으니, 어머니의 고를 주관하는 도가 있다. 자식이 어머니를 대할 때에는 부드럽고 손순하게 도와 이끌어 의리에 맞게 해야 한다. 순종하지 않아 실패와 고를 초래한다면 자식의 죄다. 여유롭게 받들고 순응하는 데 어찌 방법이 없겠는가. 부인으로 말하면 음유함은 알 수 있다. 자신의 양강한 도를 곧게 펴 갑자기 바로잡고 거스르면 은정을 상하게 하여 해가 크고, 말이 마음에 들어갈 수도 없다. 자신을 굽히고 뜻을 낮추어 손순하게 받들고 도와 그 몸을 바르게 하고 일을 다스리게 할 뿐이다. 그래서 ‘바름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곧고 굳세게 자신의 강직한 도를 다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며, 이렇게 하는 것이 중도다. 또 어떻게 어머니에게 지나치게 높은 일을 하게 할 수 있겠는가. 유약한 임금에게 정성과 충성을 다해 중도에 이르게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어찌 크게 일을 벌이게 할 수 있겠는가. 주공 같은 성인도 성왕을 보좌했는데, 성왕이 심하게 유약한 군주는 아니었다. 그러나 성왕으로서 수성하여 도를 잃지 않게 할 수 있었을 뿐 복희·황제·요·순의 사업을 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구이는 손체이면서 중을 얻었으니 손순하면서 중도를 얻어 ‘바름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뜻과 합한다. 어머니의 고를 주관하는 도를 얻은 것이다. [소상전] ‘어머니의 고를 주관한다는 것은 중도를 얻은 것이다.’ 구이는 중도를 얻어 지나치게 굳세지 않으니 어머니의 고를 잘 주관하는 자다.
[구삼] ‘아버지의 고를 주관하니 조금 후회가 있지만 큰 허물은 없다.’ 구삼은 양강한 재질로 하체의 맨 위에 있어 일을 주관하는 자이므로 자식이 아버지의 고를 주관하는 것이다. 양으로 양자리에 있으면서 중을 얻지 못해 굳셈이 지나치다. 그러나 손체에 있어 굳셈이 지나쳐도 순종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순종은 어버이를 섬기는 근본이다. 또 바른 자리를 얻었으므로 큰 잘못이 없다. 양강한 재질로 일을 잘 처리하지만 굳셈이 지나쳐 조금 후회할 일은 있어도 끝내 큰 과오와 허물은 없다. 그러나 작은 후회라도 있다는 것은 이미 어버이를 잘 섬기는 최선은 아니다. [소상전] ‘아버지의 고를 주관하니 끝내 허물이 없다.’ 구삼의 재질로 아버지의 고를 주관하면 조금 후회할 일은 있어도 끝내 큰 허물이 없다. 굳세고 결단력 있어 일을 주관하고 바름을 잃지 않으며 순종함도 있기 때문에 끝내 허물이 없다.
[육사] ‘아버지의 고를 너그럽게 방치하니, 나아가면 곤궁함을 본다.’ 육사는 음으로 음자리에 있어 부드럽고 순한 재질이다. 자리를 바르게 얻었으므로 아버지의 일을 너그럽게 처리하는 자다. 부드럽고 순한 재질로 바른 자리에 있어 겨우 일상을 따르며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뿐이다. 평상을 넘어선 일을 주관하러 나아가면 감당하지 못하여 곤궁함을 본다. 음유하고 응하여 돕는 효도 없으니 나아가서 어떻게 구제할 수 있겠는가. [소상전] ‘아버지의 고를 너그럽게 방치한다는 것은 나아가도 아직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육사의 재질로 평상을 지키며 너그러운 때에 머무는 것은 가능하지만, 나아가 어떤 일을 하려 하면 이루지 못한다. 맡은 바를 늘리면 감당하지 못한다.
[육오] ‘아버지의 고를 주관하여 명예를 얻는다.’ 육오는 존귀한 자리에 음유한 자질로 있으면서 임금이 처리해야 할 일을 맡고, 아래로 구이와 응하므로 양강한 신하를 임용할 수 있다. 아래의 양강한 현자와 응하여 그에게 의지하고 맡기지만 자신은 실제로 음유하므로 일을 처음 창시하여 기틀을 여는 일은 하지 못하고 옛 사업을 계승하는 일은 할 수 있다. 그래서 아버지의 고를 주관한다고 했다. 창업하여 법통을 후세에 드리우는 일은 굳세고 밝은 재질이 아니면 할 수 없다. 뒤를 이은 임금은 자질이 유약해도 양강한 현자를 임용할 수 있으면 잘 계승하여 훌륭한 명예를 이룰 수 있다. 태갑과 성왕은 모두 신하 덕분에 명예를 얻은 자다. [소상전] ‘아버지의 고를 주관하여 명예를 얻는 것은 덕으로 받들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고를 주관하여 훌륭한 명예를 얻는 것은 아래의 현자가 강중한 덕으로 받들고 보좌하기 때문이다.
[상구] ‘왕후를 섬기지 않고 자신의 일을 높이 숭상한다.’ 상구는 고괘의 끝에 있고 아래와 매이고 응하는 관계가 없으며 일의 바깥, 할 일이 없는 자리에 있다. 강명한 재질로 응원이 없고 일이 없는 곳에 있으니, 현인과 군자가 때를 만나지 못해 고결하게 자신을 지키고 세상일에 얽매이지 않는 자다. 그래서 왕후를 섬기지 않고 자신의 일을 높이 숭상한다고 했다. 옛사람 가운데 이를 행한 자로 이윤과 태공망의 처음, 증자와 자사 같은 이들이 있다. 도를 굽혀 시대를 좇지 않고, 이미 천하에 펼칠 수 없다면 스스로 자신의 몸을 선하게 하며 일을 높이 숭상하고 뜻과 절개를 지킬 뿐이다. 선비가 자신을 높이 숭상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도덕을 품었지만 때를 만나지 못해 고결하게 자신을 지키는 자가 있고, 그칠 줄 알고 만족할 줄 아는 도를 알아 물러나 자신을 보전하는 자가 있으며, 자신의 능력과 분수를 헤아려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는 데 편안한 자가 있고, 맑고 굳게 자신을 지켜 천하의 일을 하찮게 여기며 홀로 자신의 몸만 깨끗이 하는 자도 있다. 처신에 옳고 그름, 크고 작음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자신의 일을 높이 숭상하는 자다. 「상전」이 ‘뜻이 본받을 만하다’고 한 것은 나아가고 물러남이 도에 맞는 자를 말한다. [소상전] ‘왕후를 섬기지 않는 것은 뜻이 본받을 만하기 때문이다.’ 상구처럼 일의 바깥에 있어 세상일에 얽매이지 않고 왕후에게 신하로 섬기지 않는 것은 나아가고 물러남을 도로써 하며 쓰임과 버려짐을 때에 따르는 일이다. 현자가 아니면 할 수 있겠는가. 마음에 보존한 뜻이 법칙으로 삼을 만하다.
정이는 고를 이미 무너지고 어지러워져 반드시 다스릴 일이 생긴 상태로 풀이한다. 원인을 앞에서 깊이 캐고 결과를 뒤에서 멀리 내다보아야 앞선 폐단을 고치고 새 폐단을 막을 수 있다. 자신에게서는 덕을 기르고 천하에 대해서는 백성을 진작하는 것이 가장 큰 치고의 사업이다.
여섯 효는 부모가 남긴 고를 자식이 처리한다는 비유로, 과거의 잘못을 계승·교정하는 다양한 방식을 말한다. 부드러움과 강단의 중도(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알맞은 길), 현자에게 맡기는 수성,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방임, 때를 만나지 못했을 때 도를 지키며 물러나는 처신까지 포함한다.
주희 《주역본의》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巽下艮上〉
蠱元亨利涉大川先甲三日後甲三日〈先息薦反後胡豆反○蠱壞極而有事也其卦艮剛居上巽柔居下上下不交下卑巽而上苟止故其卦為蠱或曰剛上柔下謂卦變自賁來者初上二下自井來者五上上下自既濟来者兼之亦剛上而柔下皆所以為蠱也蠱壊之極亂當復治故其占為元亨而利涉大川甲日之始事之端也先甲三日辛也後甲三日丁也前事過中而將壊則可自新以為後事之端而不使至于大壊後事方始而尚新然更當致其丁寧之意以監其前事之失而不使至於速壊聖人之戒深也〉○彖曰蠱剛上而柔下巽而止蠱〈以卦體卦變卦徳釋卦名義蓋如此則積弊而至於蠱矣〉蠱元亨而天下治也利涉大川往有事也先甲三日後甲三日終則有始天行也〈釋卦辭治蠱至於元亨則亂而復治之象也亂之終治之始天運然也〉○象曰山下有風蠱君子以振民育德〈山下有風物壊而有事矣而事莫大於二者乃治已治人之道也〉○初六幹父之蠱有子考无咎厲終吉〈幹如木之幹枝葉之所附而立者也蠱者前人已壊之緒故諸爻皆有父母之象子能幹之則飭治而振起矣初六蠱未深而事易濟故其占為有子則能治蠱而考得无咎然亦危矣戒占者宜如是又知危而能戒則終吉也〉象曰幹父之蠱意承考也○九二幹母之蠱不可貞〈九二剛中上應六五子幹母蠱而得中之象以剛承柔而治其壞故又戒以不可堅貞言當巽以入之也〉象曰幹母之蠱得中道也○九三幹父之蠱小有悔无大咎〈過剛不中故小有悔巽體得正故无大咎〉象曰幹父之蠱終无咎也○六四裕父之蠱往見吝〈以隂居隂不能有為寛裕以治蠱之象也如是則蠱将日深故往則見吝戒占者不可如是也〉象曰裕父之蠱往未得也○六五幹父之蠱用譽〈柔中居尊而九二承之以徳以此幹蠱可致聞譽故其象占如此〉象曰幹父用譽承以徳也○上九不事王侯高尚其事〈剛陽居上在事之外故為此象而占與戒皆在其中矣〉象曰不事王侯志可則也
고괘는 아래가 손이고 위가 간이다. [괘사] ‘고는 크게 형통하고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갑보다 사흘 앞서고 갑보다 사흘 뒤에 한다.’ 先은 식천의 반절로, 後는 호두의 반절로 읽는다. 고는 무너짐이 극에 이르러 해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괘는 간의 굳센 것이 위에 있고 손의 부드러운 것이 아래에 있어 상하가 교제하지 않는다. 아래는 자신을 낮추어 손순하기만 하고 위는 구차하게 멈추므로 고가 된다. 어떤 이는 ‘굳센 것이 올라가고 부드러운 것이 내려온다’는 말을 괘변으로 본다. 비괘에서 왔다면 초효가 올라가고 이효가 내려왔고, 정괘에서 왔다면 오효가 올라가고 상효가 내려왔으며, 기제괘에서 왔다면 이 두 변화가 모두 들어 있다. 모두 굳센 것이 올라가고 부드러운 것이 내려온 것이 고가 된 까닭이다. 무너짐이 극에 이르면 혼란은 마땅히 다시 다스려져야 하므로 그 점이 크게 형통하고 큰 내를 건너는 데 이롭다. 甲은 날의 시작이고 일의 단서다. 갑보다 사흘 앞은 신일이고 갑보다 사흘 뒤는 정일이다. 앞선 일이 중간을 지나 무너지려 할 때에는 스스로 새롭게 하여 뒤에 올 일의 단서를 마련하고 크게 무너지는 데 이르지 않게 해야 한다. 뒤의 일이 막 시작되어 아직 새로울 때에는 다시 정녕한 뜻을 다해 앞선 일의 잘못을 거울삼고 빨리 무너지는 데 이르지 않게 해야 한다. 성인의 경계가 깊다.
[단전] ‘고는 굳센 것이 올라가고 부드러운 것이 내려오며, 손순하다가 멈추므로 고다.’ 괘체·괘변·괘덕으로 괘 이름의 뜻을 풀이했다. 이와 같으면 쌓인 폐단이 고에 이른다. ‘고는 크게 형통하여 천하가 다스려진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운 것은 가서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갑보다 사흘 앞서고 갑보다 사흘 뒤에 한다. 끝나면 다시 시작이 있는 것이 하늘의 운행이다.’ 괘사를 풀이한 것이다. 고를 다스려 크게 형통함에 이르면 혼란 뒤에 다시 다스려지는 상이다. 혼란의 끝이 다스림의 시작이 되는 것은 천운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대상전] ‘산 아래에 바람이 있는 것이 고다. 군자는 이로써 백성을 진작시키고 덕을 기른다.’ 산 아래에 바람이 있어 사물이 무너지고 해야 할 일이 생겼다. 해야 할 일 가운데 이 두 가지보다 큰 것은 없다. 이는 자신을 다스리고 남을 다스리는 도다.
[초육] ‘아버지의 고를 주관한다. 자식이 있으면 아버지가 허물이 없게 된다. 위태롭게 여기면 끝내 길하다.’ 幹은 나무의 줄기와 같아서 가지와 잎이 기대어 서는 것이다. 고는 앞사람이 이미 무너뜨린 단서이므로 여러 효에 모두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이 있다. 자식이 이를 주관할 수 있으면 정돈하고 다스려 다시 일으킨다. 초육에서는 고가 아직 깊지 않아 일을 쉽게 구제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점은 자식이 있으면 고를 다스릴 수 있고 아버지는 허물이 없게 된다. 그러나 이 일도 위태롭다. 점친 사람에게 마땅히 이와 같이 하고, 또 위태로움을 알아 경계할 수 있어야 끝내 길하다고 한 것이다.
[구이] ‘어머니의 고를 주관하니 바름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구이는 굳세고 가운데이며 위로 육오와 응한다. 자식이 어머니의 고를 주관하면서 중도를 얻은 상이다. 굳센 것으로 부드러운 것을 받들어 그 무너짐을 다스리므로, 다시 굳고 곧게 고집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손순함으로 상대의 마음에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구삼] ‘아버지의 고를 주관하니 조금 후회가 있지만 큰 허물은 없다.’ 지나치게 굳세고 중을 얻지 못했으므로 조금 후회가 있다. 그러나 손체에 있고 바른 자리를 얻었으므로 큰 허물은 없다.
[육사] ‘아버지의 고를 너그럽게 방치하니 나아가면 곤궁함을 본다.’ 음으로 음자리에 있어 일을 해낼 수 없고, 너그럽게 방치하여 고를 다스리는 상이다. 이렇게 하면 고가 날마다 깊어지므로 나아갈수록 곤궁함을 보게 된다. 점친 사람에게 이처럼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한 것이다.
[육오] ‘아버지의 고를 주관하여 명예를 얻는다.’ 부드럽고 가운데이며 존귀한 자리에 있고 구이가 덕으로 받든다. 이로써 고를 주관하면 명예를 이룰 수 있으므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다.
[상구] ‘왕후를 섬기지 않고 자신의 일을 높이 숭상한다.’ 굳센 양으로 맨 위에 있고 일의 바깥에 있으므로 이러한 상이 된다. 점과 경계가 모두 이 문장 속에 들어 있다.
주희는 상하가 교제하지 않고 아래는 손순하기만 하며 위는 구차하게 멈춘 결과, 쌓인 폐단이 고에 이른다고 본다. 무너짐이 극에 이르면 다시 다스릴 수 있으므로 크게 형통(길이 막힘없이 통하여 일이 풀림)하지만, 앞선 실패를 거울삼고 뒤의 일을 정녕하게 경계해야 한다.
효사(각 효에 붙은 판단문)는 앞사람이 남긴 무너진 단서를 자식이 줄기처럼 떠맡아 다시 일으키는 과정이다. 고가 얕을 때의 신중함, 유약한 상대를 고칠 때의 손순함, 지나친 강단과 방임의 위험, 중덕과 현자의 보좌, 일의 바깥에서 뜻을 높이는 선택을 상과 점으로 구분한다.
정약용(丁若鏞) 《주역사전》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序卦傳曰蠱者事也。〇雜卦傳曰蠱則飭也。〈蠱修也。又致堅也。〉〇春秋傳晉侯有蠱疾。〈昭元年〉醫和曰皿蟲爲蠱。〈象器物蛀壞〉穀之飛亦爲蠱。〈爾雅云康謂之蠱。郭云米皮。〉女惑男。風落山。謂之蠱。〈此本義〉〇程子曰蠱非訓事。蠱乃有事也。以卦象言之。所以成蠱也。以卦才言之。所以治蠱也。〈蘇軾云器久不用則蟲生之。人久宴溺則疾生之。天下久安無爲。則弊生之。皆蠱也。〉〇朱子曰蠱。壞極而有事也。〇鏞案卦自泰來。〈一之上〉乾壞其下。〈下今柔〉坤壞其上。〈上今剛〉此蠱壞也。〈三陽旣進。一陰復生。此物將成而壞也。〉又以長女。悅彼少男。〈互兌悅〉此蠱惑也。〈左傳莊二十八年。楚令尹子元欲蠱文夫人。〇蠱惑也。〉秋風所損。〈兌秋而巽風〉山木盡落。〈艮山而震木。〉此蠱蛀也。〈如蟲食木然。〉物壞則飭。所以爲事也。〈臨者大也。頤者養也。皆卦德。非字義也。〉以物象則巽本爲蟲。〈大傳蚇蠖亦取巽之象。〉故風字從虫。〈巽爲風〉卦有下巽。所以蠱也。
{〔卦象:䷑〕}蠱。元亨。利涉大川。先甲三日。後甲三日。
此蠱之不變者也。卦自泰來。〈一之上〉震德方進。〈自復臨〉善之長也。移之爲蠱。〈一之上〉又成嘉會。〈上大离〉二五相應。〈本相應〉君道之亨也。不言利貞者。剛往柔來。〈一六交〉皆失其位。〈陽居六而陰居一。〉非其正也。隨則反是。〈柔往剛來。皆得位。〉故四德全備。〇泰之乾人。〈泰初剛〉早泛震舟。〈三五互〉移之爲蠱。爰得巽風。〈下今巽〉涉此坎川。〈初四夾〉登彼艮岸。〈上今艮〉利涉大川也。〇卦自泰來。〈一之上〉泰有互震。〈三五互〉居卦中央。〈間於上下卦〉所謂甲也。〈東方爲甲乙〉據說卦方位。自震而逆。〈逆數之〉歷艮與坎。乃得至乾。〈歷三宮〉先甲三日也。〈法以一宮爲一日。〉自震而順。〈順數之〉歷巽與离。乃得至坤。後甲三日也。泰之爲卦。乾在震先。〈下卦先成。而互卦次之。〉坤在震後。〈互卦旣著。而上卦乃成。〉所以爲先後也。移之爲蠱。震甲如舊。〈三五互〉甲之先後。仍可推也。天地壞亂。〈乾與坤皆壞〉震主居中。〈位乎三〉此有事之時也。幹事之法。必先事而慮始。亦後事而愼終。此所以由震甲而推之。以察乾坤之先後也。〇卦亦有兌。〈二四互〉兌則爲庚。〈西方爲庚辛〉據說卦方位。先庚三日者巽也。〈坤离巽〉後庚三日者艮也。〈乾坎艮〉是卦也。下巽而上艮。其實先庚三日。後庚三日。乃此卦之今象。〈謂現在之象〉先甲三日。後甲三日。卽此卦之本象。〈謂泰卦〉聖人引而不發。至巽之九五。始畢其說。〈云先庚三日。後庚三日。〉巽之九五者。巽之蠱也。〈巽五變則爲山風〉以大義則慮始愼終之戒。寓於其間。以占法則凡所謂三日不食。〈明夷之初九〉七日得〈震旣濟〉之類。皆以文王卦位。推定日數。〈詳本卦〉則先甲先庚。又所以揭六十四卦三百八十四爻之通例也。〇案先甲後甲之義。先儒解之不同。馬融云艮在東北爲先甲。巽在東南爲後甲。〈甲東方〉若然三日不可解也。鄭玄云令甲之首。必先令三日。後令三日。以示取信。〈又云前三用辛。取更新之義。後三用丁。取丁寧之義。〉漢儒皆主納甲之說。〈此緯書邪說〉而王弼以先甲後甲。爲漢制甲乙之令。然令甲之名起於漢。〈漢武帝冬至立泰畤于甘泉。詔曰先甲三日後甲三日。朕念年歲未咸登。飭躬齊戒。丁酉拜況于郊。〉未必周易用漢制也。自此以降。益復紛紜。胡炳文又以先天方位。〈离東而坎西〉說艮巽之位。未必文王之易。下遵卲子之圖也。〇唯虞仲翔之言曰下卦變乾。爲前三甲。〈下本乾〉上卦變坤。爲後三甲。〈上本坤〉此爲近之。
春秋傳〈僖十五年〉秦伯伐晉。卜徒父筮之遇蠱。曰蠱之貞風也。〈內曰貞〉其悔山也。〈外曰悔〉歲云秋矣。〈二四兌〉我落其實。〈艮果遇巽風〉而取其材。〈兌金克震木〉所以克也。
彖曰蠱。剛上而柔下。巽而止蠱。蠱元亨而天下治也。利涉大川。往有事也。先甲三日。後甲三日。終則有始。天行也。
剛上而柔下者。謂自泰卦初往而上來也。〇天下者坤也。泰之上坤。今成离治。〈今大离〉此元亨而天下治也。〈震离之故天下治〉〇一剛旣升。〈一之上〉遂成坎勞。〈今大坎〉往有事也。〇巽之一陰。坤所始也。〈下今巽〉艮之一陽。乾所終也。〈上今艮〉巽以始之。由艮爲坤。〈泰上坤。〉震以始之。由兌爲乾。〈震兌兩互象〉終則有始。天行也。〇案虞仲翔曰隨爲否上之初。蠱爲泰初之上。
{〔卦象:䷙〕}初六。幹父之蠱。有子。考無咎。厲終吉。〇象曰幹父之蠱。意承考也。
此蠱之大畜也。卦從泰來。〈一之上〉乾壞其下。〈下今柔〉父之蠱也。〈乾爲父〉初之旣變。壞者復完。〈下今乾〉如幹夾墻。〈義見下〉幹父之蠱也。〇泰之乾君。前有震男。〈三五互〉是有子也。〈乾君之長子〉移之爲蠱。〈一之上〉乾君乃死。〈終乎艮〉升于艮廟。〈上今艮〉父死曰考也。〈見曲禮〉初之旣變。乾君又立。〈下今乾〉是有子也。〈考有子〉父之所壞。〈乾體毁〉子能完之。〈下今乾〉又何咎焉。〈善補父之過〉鯀之圮族。禹實幹之。姬度壞德。子仲是蓋。〈蓋父愆〉此蠱初六之無咎也。〇大畜自大壯來。〈四之上〉大壯之時。兌德乘剛。〈本大兌〉此左傳所謂雷乘乾之厲也。〈昭三十二年〉移之大畜。陽升陰降。〈上之四〉是終吉也。艮則爲終。〈上今艮〉〇意者离志也。〈三六夾〉巽以順之。〈下本巽〉艮以承之。〈艮爲手〉意承考也。〇案幹者築墻版也。築墻之法。兩木相夾。而中成堅剛。故文言以坎爲幹。〈貞者事之幹〉又墻之爲物。兩剛扃外。而用爲防閑。故易例以离爲墻。〈見同人九四〉皆所以扞其壞也。卦有大坎。〈初四夾〉兩巽之木。〈二四互倒巽〉夾成中剛。此幹築之象也。卦有大离。〈三六夾〉兩震之木。〈上倒震〉夾持坤土。〈中二陰〉亦幹築之象也。故卦之本象。原有幹蠱之形。不待爻變而後。方得爲幹也。〈如剝之剝牀。漸之鴻漸。〉
{〔卦象:䷳〕}九二。幹母之蠱。不可貞。〇象曰幹母之蠱。得中道也。
此蠱之艮也。艮自觀來。〈五之三〉觀之時。坤母在內。〈風地卦〉移之爲艮。〈三之五〉坤體乃壞。〈下今艮〉母之壞也。〈坤所毁〉雖則壞矣。坎之堅木。〈二四互〉立於坤土之中。〈在四陰之中〉如幹持墻。〈義見上〉幹母之蠱也。孰爲之子。艮少男也。婦人之情。偏愛少子。母之壞德。多由於此。〈由少男〉子苟賢矣。可以幹蠱。〈補母過〉如晉之王覽。〈王祥弟〉當此占也。〇卦者坎貞。〈今二四〉艮又可貞。〈事成于艮堅〉然二五之應。〈本有應〉今焉失之。凡男子之事。不可貞也。故曰幹母之蠱。〇得中道者坎也。〈今二四〉上下四陰。〈一二與四五〉中銜一幹。〈三獨剛〉得中道也。互震爲道。
{〔卦象:䷑〕}九三。幹父之蠱。小有悔。無大咎。〇象曰幹父之蠱。終無咎也。
此蠱之蒙也。蠱之兩互。卽成歸妹〔卦象:䷵〕。〈上雷而下澤〉歸妹之卦。亦自泰來。〈三之四〉泰之乾父。旣移則壞。〈變爲兌〉父之蟲也。〈乾所毁〉三之又變。乾體復完。〈兌變乾〉幹父之蠱也。孰爲之子。震長男也。歸妹而變。其三卽成大壯。〈雷天卦〉震在上也。〇小者坤陰也。〈泰之坤〉大者乾陽也。〈泰之乾〉坤體未完。〈歸妹大壯皆上震〉小有悔也。〈陰有變〉乾德如舊。〈如泰時〉無大咎也。〈在乾陽則無所失。〉〇終者下卦之終也。〈第三爻〉壞而善補。又何咎焉。
{〔卦象:䷱〕}六四。裕父之蠱。往見吝。〇象曰裕父之蠱。往未得也。
此蠱之鼎也。鼎自遯來。〈二之五〉遯自姤進。〈加一陰〉姤自乾生。〈一陰生〉爲姤爲遯。乾體大壞。〈二陽亡〉父之蠱也。〈乾爲父〉如蟲蝕木。勢方急迫。〈將爲否爲觀爲剝〉將誰寬之也。移之爲鼎。〈二之五〉則剛反乎內。〈五之二〉上成离寬。〈見乾卦〉乾步旣回。〈退一步至二〉急勢乃緩。〈無爲否爲剝之憂。〉裕父之蠱也。裕者寬也。孰爲之子。艮少男也。〈遯下艮〉父或有急。而子能寬之。則當此占也。〇遯之一陰。往而成离。〈上今离〉离爲相見。〈說卦文〉是往見也。本不得位。〈陰居五〉其變亦然。〈二之五居陽〉不改過也。故曰吝。〇往未得者。陰失其位也。〈二之五〉
{〔卦象:䷸〕}六五。幹父之蠱。用譽。〇象曰幹父用譽。承以德也。
此蠱之巽也。巽自遯來。〈二之四〉遯者乾壞之卦也。〈義與六四同〉移之爲巽。〈二之四〉則巽木防外。〈上今巽〉如幹築墻。〈義見上〉幹父之蠱也。〇巽之兩互。爲离爲兌。〈二四兌〉喜而言則爲譽。〈离喜而兌言〉是用譽也。〇巽以順命。中又剛直。〈二與五〉直心爲德也。〈見說文〉兩巽相承。〈上今巽〉承以德也。〈下大坎亦德〉本由遯來。〈二之四〉艮則爲承。〇案險言爲讒。故坎而兌則讒也。嘉言爲譽。故离而兌則譽也。
{〔卦象:䷑〕}上九。不事王侯。高尙其事。〇象曰不事王侯。志可則也。
此蠱之升也。卦自泰來。〈一之上〉泰一陽之升于上也。辭乾王而不願。〈下本乾〉過震侯而不顧。〈三五震〉以巽爲高。〈下今巽〉坎志是尙。〈今大坎〉高擧遠引。〈升于上〉至于艮山之上。〈上今艮〉玆所謂不事王侯。高尙其事也。雖有坎事。〈卦今餘大坎〉非王侯之事也。上爲卦主。故取其本象。〇志者坎志也。巽以隱伏。終遂坎志。〈本大离〉是可法也。
表記曰處其位而不履其事則亂也。〈泰之初剛。得其位而無坎事。〉故君使其臣得志。則愼慮而從之。〈升爲大坎乃得志〉否則孰慮而從之。〈志慮也〉終事而退。臣之原也。〈艮以終坎事〉易曰不事王侯。高尙其事。
「서괘전」은 “고(蠱)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잡괘전」은 “고는 닦아 바로잡음이다”라고 하였다. 〈고는 수리함이며 또 견고하게 함이다.〉 ○《춘추전》에서 진후가 고질을 앓자 〈소공 원년이다〉 의화가 “그릇에 벌레가 생긴 것이 고다”라고 했다. 〈기물이 벌레 먹어 망가진 상이다.〉 곡식 껍질이 날리는 것도 고라 한다. 〈《이아》는 쌀겨를 고라 했고 곽박은 쌀의 껍질이라 했다.〉 여자가 남자를 미혹하고 바람이 산의 나무를 떨어뜨리는 것도 고라 한다. 〈이것이 본뜻이다.〉 ○정자는 “고는 곧 ‘일’이라는 풀이가 아니라 일이 생긴 상태다. 괘상으로 말하면 고가 생기는 까닭이고, 괘의 재질로 말하면 고를 다스리는 방도다”라고 했다. 〈소식은 “그릇을 오래 쓰지 않으면 벌레가 생기고, 사람이 오래 안일과 향락에 빠지면 병이 생기며, 천하가 오래 편안하여 하는 일이 없으면 폐단이 생긴다. 모두 고다”라고 했다.〉 ○주자는 “고는 무너짐이 극에 달해 일이 생긴 것이다”라고 하였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괘는 태괘에서 왔다. 〈초효가 상효로 갔다.〉 건은 그 아래가 무너지고 〈아래가 이제 유다〉 곤은 그 위가 무너졌으니 〈위가 이제 강이다〉 이것이 고의 파괴다. 〈세 양이 다 나아간 뒤 한 음이 다시 생기니, 사물이 이루어지려다 무너지는 때다.〉 또 장녀가 소남을 기쁘게 하니 〈호괘 태가 기뻐한다〉 이것이 고의 미혹이다. 〈《좌전》 장공 28년에 초나라 영윤 자원이 문부인을 미혹하려 했다고 했다. 고는 미혹함이다.〉 가을바람에 손상되고 〈태는 가을이고 손은 바람이다〉 산의 나무가 모두 떨어지니 〈간은 산이고 진은 나무다〉 이것이 고의 좀먹음이다. 〈벌레가 나무를 먹는 것과 같다.〉 사물이 무너지면 닦아 바로잡으므로 일이 된다. 〈임을 큼, 이를 기름이라 하는 것도 괘덕이지 글자 자체의 뜻은 아니다.〉 물상으로는 손이 본래 벌레다. 〈「대전」에서 자벌레도 손의 상을 취했다.〉 그러므로 풍(風)자는 충(虫)을 따른다. 〈손은 바람이다.〉 괘에 하손이 있으므로 고가 된다.
{〔괘상:䷑〕} 고는 크게 형통하고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 갑일보다 사흘 앞서 하고 갑일보다 사흘 뒤에 한다.
이것은 고괘가 변하지 않은 경우다. 괘는 태괘에서 왔다. 〈초효가 상효로 갔다.〉 진의 덕이 막 자라나니 〈복괘와 임괘를 거쳤다〉 선의 으뜸이다. 고괘로 옮기면 〈초효가 상효로 갔다〉 다시 아름다운 만남을 이루고 〈위에 큰 리가 있다〉 이효와 오효가 호응하니 〈본래 서로 응한다〉 임금의 도가 형통하다. 이정을 말하지 않은 것은 강이 가고 유가 와서 〈초효와 상효가 바뀌었다〉 모두 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양은 상효, 음은 초효에 있다.〉 바른 자리가 아니다. 수괘는 이와 반대로 〈유가 가고 강이 오며 모두 자리를 얻는다〉 네 덕이 온전히 갖추어진다. ○태괘의 건인은 〈태괘 초효의 강이다〉 일찍 진의 배를 띄우고 〈삼효에서 오효까지의 호괘다〉 고괘로 옮겨 손의 바람을 얻어 〈아래가 이제 손이다〉 감의 큰 내를 건너고 〈초효와 사효가 끼운다〉 간의 언덕에 오른다. 〈위가 이제 간이다.〉 이것이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는 말이다. ○괘는 태괘에서 왔고 〈초효가 상효로 갔다〉 태괘에는 가운데 호괘 진이 있다. 〈삼효에서 오효까지다.〉 이는 상괘와 하괘 사이인 괘의 중앙에 있으므로 갑(甲)이다. 〈동방이 갑을이다.〉 「설괘전」의 방위에 따라 진에서 거꾸로 세면 간과 감을 지나 건에 이르니 〈세 궁을 거친다〉 갑일보다 사흘 앞이다. 〈한 궁을 하루로 계산한다.〉 진에서 순서대로 세면 손과 리를 지나 곤에 이르니 갑일보다 사흘 뒤다. 태괘에서는 건이 진보다 앞에 있고 〈하괘가 먼저 이루어지고 호괘가 다음에 드러난다〉 곤이 진보다 뒤에 있다. 〈호괘가 드러난 뒤 상괘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선후의 까닭이다. 고괘로 옮겨도 진갑은 전과 같아 〈삼효에서 오효까지의 호괘다〉 갑의 앞뒤를 그대로 미루어 알 수 있다. 건곤이 무너져 어지럽고 〈건과 곤이 모두 무너졌다〉 진의 주인이 가운데 있으니 〈삼효 자리에 있다〉 일을 해야 할 때다. 일을 주관하는 법은 반드시 일이 시작되기 전에 처음을 염려하고, 일이 끝난 뒤에도 끝을 삼간다. 그러므로 진갑에서 미루어 건곤의 선후를 살핀 것이다. ○괘에는 태도 있다. 〈이효에서 사효까지의 호괘다.〉 태는 경(庚)이다. 〈서방이 경신이다.〉 「설괘전」의 방위에 따르면 경일보다 사흘 앞은 손이고 〈곤·리·손의 차례다〉 경일보다 사흘 뒤는 간이다. 〈건·감·간의 차례다.〉 이 괘는 아래가 손이고 위가 간이므로 실제로는 경일보다 사흘 앞과 사흘 뒤가 이 괘의 현재 상이고, 갑일보다 사흘 앞과 사흘 뒤는 이 괘의 본래 상인 태괘다. 성인은 뜻만 이끌고 다 밝히지 않다가 손괘 구오에서 비로소 설명을 마쳤다. 〈“경일보다 사흘 앞, 경일보다 사흘 뒤”라 했다.〉 손괘 구오는 손괘가 고괘로 변한 것이다. 〈손괘의 오효가 변하면 산풍고다.〉 대의로는 처음을 염려하고 끝을 삼가라는 경계가 그 안에 들어 있다. 점법으로는 “사흘 동안 먹지 못한다” 〈명이괘 초구다〉, “이레 만에 얻는다” 〈진괘와 기제괘다〉 같은 말도 모두 문왕의 괘 방위로 날짜 수를 확정한 것이다. 〈본괘에 자세하다.〉 그러므로 선갑과 선경은 64괘 384효에 두루 적용되는 법례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선갑·후갑의 뜻에 대한 선유의 해석은 서로 다르다. 마융은 동북의 간을 선갑, 동남의 손을 후갑이라 했으나 〈갑은 동방이다〉 이렇게 보면 사흘을 설명할 수 없다. 정현은 명령의 첫머리인 갑일에 반드시 사흘 앞서 먼저 명하고 사흘 뒤에 다시 명하여 믿음을 보이는 것이라 했다. 〈또 앞의 사흘에는 신(辛)을 써 새롭게 고친다는 뜻을 취하고, 뒤의 사흘에는 정(丁)을 써 거듭 당부한다는 뜻을 취한다고 했다.〉 한대 유자들은 모두 납갑설을 주장했는데 〈위서의 그릇된 설이다〉 왕필은 선갑·후갑을 한나라 법제의 갑을 명령으로 보았다. 그러나 ‘영갑’이라는 명칭은 한대에 생겼으니 〈한 무제가 동짓날 감천에 태치를 세우며 내린 조서의 사례다〉 《주역》이 한나라 제도를 썼을 리 없다. 그 뒤의 설은 더욱 어지러워졌다. 호병문은 선천 방위로 〈리는 동쪽, 감은 서쪽이다〉 간과 손의 자리를 설명했으나, 문왕의 역이 소옹의 도식을 따랐을 리 없다. ○오직 우중상은 “하괘가 변하기 전의 건이 앞의 세 갑이고 〈하괘가 본래 건이다〉, 상괘가 변하기 전의 곤이 뒤의 세 갑이다 〈상괘가 본래 곤이다〉”라고 했으니 이 설이 가깝다.
《춘추전》 희공 15년에 진목공이 진나라를 치려 하여 복도부가 점쳐 고괘를 얻었다. 그는 “고괘의 정괘는 바람이고 〈안괘를 정이라 한다〉 회괘는 산이다. 〈밖괘를 회라 한다.〉 계절은 이제 가을이므로 〈이효에서 사효까지가 태다〉 우리가 그 열매를 떨어뜨리고 〈간의 과실이 손의 바람을 만난다〉 그 재목을 취할 것이니 〈태의 쇠가 진의 나무를 이긴다〉 이 때문에 이긴다”고 하였다.
「단전」은 말하였다. “고는 강이 올라가고 유가 내려오며, 공손히 들어가 멈추는 것이 고다. 고가 크게 형통한 것은 천하가 다스려지기 때문이다. 큰 내를 건넘이 이로운 것은 가서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갑일보다 사흘 앞서 하고 갑일보다 사흘 뒤에 하는 것은 끝나면 다시 시작하는 하늘의 운행이다.”
‘강이 올라가고 유가 내려온다’는 것은 태괘의 초효가 위로 가고 상효가 아래로 온 것을 말한다. ○천하는 곤이다. 태괘의 상괘는 곤이었는데 이제 큰 리를 이루어 다스려진다. 이것이 크게 형통하여 천하가 다스려진다는 뜻이다. 〈진과 리 때문에 천하가 다스려진다.〉 ○강 하나가 올라가 큰 감의 수고로움을 이루니 가서 할 일이 있다. ○손의 한 음은 곤이 시작하는 곳이고 〈하괘가 이제 손이다〉 간의 한 양은 건이 끝나는 곳이다. 〈상괘가 이제 간이다.〉 손으로 시작하여 간을 거쳐 곤이 되고 〈태괘의 상괘가 곤이다〉, 진으로 시작하여 태를 거쳐 건이 된다. 〈진과 태는 두 호괘의 상이다.〉 이것이 끝나면 다시 시작하는 하늘의 운행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우중상은 “수괘는 비괘의 상효가 초효로 간 것이고, 고괘는 태괘의 초효가 상효로 간 것이다”라고 하였다.
{〔괘상:䷙〕} 초육은 아버지가 망쳐 놓은 일을 바로잡는다. 훌륭한 아들이 있으면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도 허물이 없다. 위태롭지만 끝내 길하다. ○「상전」은 “아버지의 일을 바로잡는 것은 그 뜻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받들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고괘가 대축괘로 변한 것이다. 괘는 태괘에서 왔는데 〈초효가 상효로 갔다〉 건의 아래가 무너졌으니 〈아래가 이제 유다〉 아버지의 파괴다. 〈건은 아버지다.〉 초효가 변하면 무너진 곳이 다시 온전해져 〈아래가 이제 건이다〉 담을 양쪽 널로 끼워 다지는 것처럼 아버지의 일을 바로잡는다. 〈뜻은 아래에 보인다.〉 ○태괘의 건군 앞에는 진의 아들이 있으니 〈삼효에서 오효까지의 호괘다〉 아들이 있는 상이다. 〈건군의 장자다.〉 고괘로 옮기면 건군은 죽어 〈만물이 간에서 마친다〉 간의 사당으로 올라가니 〈위가 이제 간이다〉 아버지가 죽은 것을 ‘고(考)’라 한다. 〈《곡례》에 보인다.〉 초효가 변하면 건군이 다시 서므로 〈아래가 이제 건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아들이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망친 것을 〈건의 몸체가 헐렸다〉 아들이 온전히 고치니 〈아래가 이제 건이다〉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아버지의 잘못을 훌륭히 보완한다.〉 곤이 집안을 무너뜨린 일을 우가 바로잡았고, 희도가 덕을 망친 허물을 아들 중이 덮어 준 일이 〈아버지의 허물을 덮었다〉 곧 초육의 무구다. ○대축괘는 대장괘에서 왔다. 〈사효가 상효로 갔다.〉 대장괘 때에는 태의 덕이 강을 올라탔으니 〈본래 큰 태다〉 《좌전》에서 말한 “우레가 건을 타는 위태로움”이다. 〈소공 32년이다.〉 대축괘로 옮기면 양은 올라가고 음은 내려가므로 〈상효가 사효로 갔다〉 끝내 길하다. 간은 마침이다. 〈위가 이제 간이다.〉 ○뜻은 리의 뜻이다. 〈삼효와 상효가 끼운다.〉 손으로 순종하고 〈아래가 본래 손이다〉 간의 손으로 받드니 〈간은 손이다〉 뜻이 아버지를 받든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간(幹)’은 담을 쌓는 널이다. 담을 쌓을 때 두 나무로 양쪽을 끼우고 그 가운데를 단단히 다지므로 「문언전」은 감을 간으로 삼았다. 〈정은 일의 줄기다.〉 또 담은 두 단단한 것이 바깥을 막아 방어하므로 역례에서는 리를 담으로 삼았다. 〈동인괘 구사에 보인다.〉 모두 무너짐을 막는 상이다. 괘에는 큰 감이 있고 〈초효와 사효가 끼운다〉 두 손의 나무가 〈이효에서 사효까지의 호괘와 거꾸로 본 손이다〉 가운데의 강을 끼우니 담을 다지는 상이다. 괘에는 큰 리도 있고 〈삼효와 상효가 끼운다〉 두 진의 나무가 〈상괘를 거꾸로 보면 진이다〉 곤의 흙을 사이에 끼워 붙드니 〈가운데 두 음이다〉 역시 담을 다지는 상이다. 그러므로 괘의 본래 상에 이미 고를 바로잡는 모양이 갖추어져 있어 효가 변해야만 비로소 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박괘의 ‘침상을 깎음’과 점괘의 ‘기러기가 나아감’도 같다.〉
{〔괘상:䷳〕} 구이는 어머니가 망쳐 놓은 일을 바로잡으니, 일을 고집하여 끝까지 해서는 안 된다. ○「상전」은 “어머니의 일을 바로잡는 것은 가운데의 도를 얻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고괘가 간괘로 변한 것이다. 간괘는 관괘에서 왔다. 〈오효가 삼효로 갔다.〉 관괘 때에는 곤모가 안에 있는데 〈풍지관괘다〉 간괘로 옮기면 〈삼효가 오효로 갔다〉 곤의 몸체가 무너지니 〈아래가 이제 간이다〉 어머니의 파괴다. 비록 무너졌으나 감의 굳은 나무가 〈이효에서 사효까지의 호괘다〉 곤의 흙 한가운데 서서 〈네 음의 한가운데다〉 널로 담을 붙드는 것처럼 어머니의 일을 바로잡는다. 누가 아들인가. 간은 소남이다. 부인의 정은 막내아들을 편애하므로 어머니의 잘못된 덕은 흔히 이 때문에 생긴다. 〈소남 때문이다.〉 아들이 어질면 어머니의 허물을 보완할 수 있으니 진나라 왕람과 같은 이가 이 점에 해당한다. 〈왕상의 아우다.〉 ○괘에는 감의 바름이 있고 〈이효에서 사효까지다〉 간도 일을 굳게 이룰 수 있다. 그러나 본래 있던 이효와 오효의 호응을 이제 잃었다. 모든 남자의 일을 고집해 끝까지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므로 ‘어머니의 고를 바로잡는다’고 했다. ○가운데의 도를 얻었다는 것은 감이다. 〈이효에서 사효까지다.〉 위아래 네 음의 〈초·이효와 사·오효다〉 가운데에 널 하나를 물고 있으니 〈삼효만 강이다〉 가운데의 도를 얻은 것이다. 호괘 진은 도가 된다.
{〔괘상:䷑〕} 구삼은 아버지가 망쳐 놓은 일을 바로잡는다. 조금 뉘우칠 일은 있으나 큰 허물은 없다. ○「상전」은 “아버지의 일을 바로잡으니 끝내 허물이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고괘가 몽괘로 변한 것이다. 고괘의 두 호괘를 합하면 곧 귀매괘〔괘상:䷵〕가 된다. 〈위는 우레고 아래는 못이다.〉 귀매괘도 태괘에서 왔다. 〈삼효가 사효로 갔다.〉 태괘의 건부는 옮기고 나면 무너져 〈태로 변한다〉 아버지의 파괴가 된다. 〈건이 헐렸다.〉 삼효가 다시 변하면 건의 몸체가 온전해지니 〈태가 건으로 변한다〉 아버지의 일을 바로잡은 것이다. 누가 아들인가. 진의 장남이다. 귀매괘의 삼효가 변하면 곧 대장괘가 되어 〈뇌천대장이다〉 진이 위에 있다. ○작은 것은 곤음이고 〈태괘의 곤이다〉 큰 것은 건양이다. 〈태괘의 건이다.〉 곤의 몸체는 온전해지지 못했으니 〈귀매괘와 대장괘의 상괘는 모두 진이다〉 조금 뉘우침이 있다. 〈음에 변화가 있다.〉 건의 덕은 전과 같으니 〈태괘 때와 같다〉 큰 허물은 없다. 〈건양에는 잃은 것이 없다.〉 ○끝은 하괘의 끝인 삼효다. 무너진 것을 잘 보완했으니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괘상:䷱〕} 육사는 아버지가 망쳐 놓은 일을 너그럽게 처리한다. 가면 인색함을 보게 된다. ○「상전」은 “아버지의 일을 너그럽게 처리하는 것은 가서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고괘가 정괘로 변한 것이다. 정괘는 둔괘에서 왔고 〈이효가 오효로 갔다〉 둔괘는 구괘에서 음이 더 자란 것이며, 구괘는 건괘에서 한 음이 생긴 것이다. 구괘에서 둔괘가 되면 건의 몸체가 크게 무너지니 〈양 둘이 없어졌다〉 아버지의 파괴다. 〈건은 아버지다.〉 벌레가 나무를 먹듯 형세가 급박하여 〈장차 비·관·박괘가 된다〉 누가 이것을 늦출 수 있겠는가. 정괘로 옮기면 〈이효가 오효로 갔다〉 강이 안으로 돌아오고 〈오효가 이효로 갔다〉 위에는 리의 너그러움이 이루어져 〈건괘에 보인다〉 건의 걸음이 이미 한 걸음 뒤로 돌아왔으므로 〈이효까지 물러났다〉 급한 형세가 완화된다. 〈비괘나 박괘가 될 근심이 없다.〉 이것이 아버지의 고를 너그럽게 처리함이다. 유는 너그러움이다. 누가 아들인가. 둔괘 하간의 소남이다. 아버지에게 급한 일이 있을 때 아들이 이를 늦추어 주는 경우가 이 점에 해당한다. ○둔괘의 한 음이 가서 리를 이루니 〈위가 이제 리다〉 리는 서로 봄이다. 그러므로 ‘가서 본다’고 하였다. 본래도 자리를 얻지 못했고 〈음이 오효에 있다〉 변한 뒤에도 그러하니 〈이효에서 오효로 가 양 자리에 있다〉 허물을 고치지 않아 인색하다. ○가서 얻지 못한다는 것은 음이 자리를 잃었다는 뜻이다. 〈이효가 오효로 갔다.〉
{〔괘상:䷸〕} 육오는 아버지가 망쳐 놓은 일을 바로잡아 명예를 얻는다. ○「상전」은 “아버지의 일을 바로잡아 명예를 얻는 것은 덕으로 받들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고괘가 손괘로 변한 것이다. 손괘는 둔괘에서 왔다. 〈이효가 사효로 갔다.〉 둔괘는 건이 무너지는 괘다. 〈뜻은 육사와 같다.〉 손괘로 옮기면 손의 나무가 바깥을 막아 〈위가 이제 손이다〉 널로 담을 쌓듯 아버지의 일을 바로잡는다. 〈뜻은 앞에 보인다.〉 ○손괘의 두 호괘는 리와 태이니 〈이효에서 사효까지가 태다〉 기뻐하면서 말하면 명예가 된다. 〈리는 기쁨이고 태는 말이다.〉 이것이 명예를 얻는다는 뜻이다. ○손은 명령에 순종하고 가운데의 강은 곧으니 〈이효와 오효다〉 곧은 마음이 덕이다. 〈《설문》에 보인다.〉 두 손이 서로 이어 받으므로 〈위가 이제 손이다〉 덕으로 받든다. 〈아래의 큰 감도 덕이다.〉 본래 둔괘에서 왔고 〈이효가 사효로 갔다〉 간은 받듦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험한 말은 참소이므로 감과 태가 함께 있으면 참소가 되고, 아름다운 말은 명예이므로 리와 태가 함께 있으면 명예가 된다.
{〔괘상:䷑〕} 상구는 왕과 제후를 섬기지 않고 자신의 일을 높이 숭상한다. ○「상전」은 “왕과 제후를 섬기지 않는 그 뜻은 본받을 만하다”고 하였다.
이것은 고괘가 승괘로 변한 것이다. 괘는 태괘에서 왔으니 〈초효가 상효로 갔다〉 태괘의 한 양이 위로 올라간 것이다. 건왕의 부름을 사양하고 원하지 않으며 〈아래가 본래 건이다〉 진후를 지나면서도 돌아보지 않고 〈삼효에서 오효까지가 진이다〉 손으로 높은 데 오르며 〈아래가 이제 손이다〉 감의 뜻을 숭상한다. 〈이제 큰 감이다.〉 높이 들려 멀리 떠나 〈위로 올라간다〉 간산 꼭대기에 이르니 〈위가 이제 간이다〉 이것이 왕과 제후를 섬기지 않고 자기 일을 높이 숭상한다는 뜻이다. 비록 감의 일이 남아 있어도 〈괘에 이제 큰 감이 남았다〉 왕후의 일은 아니다. 상효가 괘의 주인이므로 본래 상을 취했다. ○뜻은 감의 뜻이다. 손으로 숨어 엎드려 마침내 감의 뜻을 이루니 〈본래 큰 리였다〉 본받을 만하다.
「표기」는 말하였다. “자리에 있으면서 그 일을 이행하지 않으면 어지러워진다. 〈태괘의 초강은 자리는 얻었으나 감의 일이 없다.〉 그러므로 임금은 신하가 뜻을 얻으면 신중히 생각한 뒤 따르고 〈승괘가 큰 감이 되어 비로소 뜻을 얻는다〉, 그렇지 못하면 충분히 생각한 뒤 따른다. 〈지는 생각이다.〉 일을 마치고 물러나는 것이 신하의 소원이다. 〈간으로 감의 일을 마친다.〉 《역》에 ‘왕후를 섬기지 않고 자기 일을 높이 숭상한다’고 했다.”
고괘는 건곤이 무너져 수리할 일이 생긴 때다. 정약용은 ‘간’을 담을 다지는 널의 상으로 읽고, 선갑·후갑을 괘의 방위와 일수 법례로 해명한다.
교감·번역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