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孚 중부
아래괘 兌 못 · 위괘 巽 바람
절도가 있으면 그것을 믿으므로 중부괘로 이었다.
괘사
豚魚吉,利涉大川,利貞。
돈어길, 이섭대천, 이정.
돼지와 물고기에게까지 믿음이 미치면 길하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고, 바름을 지키는 것이 이롭다.
단전
中孚,柔在內而剛得中。說而巽,孚,乃化邦也。豚魚吉,信及豚魚也。利涉大川,乘木舟虛也。中孚以利貞,乃應乎天也。
중부는 부드러운 효가 안에 있고 굳센 효가 가운데를 얻은 것이다. 기뻐하면서 공손하니 믿음으로 나라를 교화한다. ‘돼지와 물고기에게까지 믿음이 미치면 길하다’고 한 것은 믿음이 미물에게까지 이르기 때문이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고 한 것은 나무를 타고 빈 배로 가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마음속 믿음으로 바름을 지키는 것이 이로운 것은 하늘에 호응하기 때문이다.
대상전
澤上有風,中孚;君子以議獄緩死。
못 위에 바람이 있는 것이 중부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옥사를 논의하고 사형의 집행을 늦춘다.
여섯 효
효사
虞吉,有他不燕。
우길, 유타불연.
미리 헤아리고 삼가면 길하다. 다른 데 마음을 두면 편안하지 않다.
소상전
初九虞吉,志未變也。
초구가 미리 헤아리고 삼가서 길한 것은 그 뜻이 아직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효사
鳴鶴在陰,其子和之,我有好爵,吾與爾靡之。
명학재음, 기자화지, 아유호작, 오여이미지.
학이 그늘에서 울자 그 새끼가 화답한다. 나에게 좋은 술잔이 있으니 내가 너와 함께 나누리라.
소상전
其子和之,中心愿也。
그 새끼가 화답하는 것은 마음속으로 바라기 때문이다.
효사
得敵,或鼓或罷,或泣或歌。
득적, 혹고혹파, 혹읍혹가.
맞상대를 만나 북을 치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며, 울기도 하고 노래하기도 한다.
소상전
可鼓或罷,位不當也。
북을 치다가 혹 멈추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효사
月几望,馬匹亡,无咎。
월기망, 마필망, 무구.
달이 거의 보름에 이르고 말의 짝을 잃지만 허물이 없다.
소상전
馬匹亡,絕類上也。
말의 짝을 잃는 것은 같은 무리와 끊고 위를 따르기 때문이다.
효사
有孚攣如,无咎。
유부련여, 무구.
믿음이 있어 단단히 이어져 있으니 허물이 없다.
소상전
有孚攣如,位正當也。
믿음이 있어 단단히 이어져 있는 것은 자리가 바르고 마땅하기 때문이다.
효사
翰音登于天,貞凶。
한음등우천, 정흉.
닭 울음소리가 하늘에 오른다. 바르게 하더라도 흉하다.
소상전
翰音登于天,何可長也。
닭 울음소리가 하늘에 오르지만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네 해석의 갈림길
갈리는 지점하늘에 오르려는 닭처럼 속이 빈 채 치솟는 상구의 믿음은 왕필부터 주희까지 한목소리로 경계하는 대목인데, 정약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돈어를 강돌고래로 보는 설까지 경전을 근거로 따로 반박한다.
왕필
중부는 굳센 중심과 안의 부드러운 고요함에서 믿음이 우러나 미세하고 숨어 있는 사물에까지 미치는 괘다. 사사로운 권리보다 덕을 따르고 존귀한 자리에 있을수록 믿음을 단단히 매어야 하며, 실질을 잃고 명성만 높아지면 믿음의 끝에서 바름도 사라진다.
정이천
정이천은 중부를 가운데가 비어 정성을 받아들이는 근본과 가운데가 차 있어 믿음을 실천하는 바탕이 함께 있는 상태로 풀이한다. 위는 지극한 정성으로 아래에 겸손하고 아래는 기뻐 따르므로 믿음이 나라를 교화하며, 그 믿음이 감응시키기 어려운 돼지와 물고기까지 미치면 험난한 큰 내도 건널 수 있다. 다만 믿음은 반드시 바름과 함께해야 하늘의 도에 호응한다.
효에서는 믿을 대상을 처음부터 헤아리는 초구(첫째 자리의 양효), 숨은 곳에서도 정성으로 감응하는 구이(둘째 자리의 양효), 상대에게 감정과 행동을 맡겨 버린 육삼(셋째 자리의 음효), 사사로운 정응을 끊고 임금을 따르는 육사, 천하의 마음을 단단히 결속하는 구오를 차례로 논한다. 상구는 실제 충실함 없이 소리만 하늘에 오르는 믿음의 극단이다. 믿음을 고집하되 배우고 변할 줄 모르면 도리어 해치게 된다.
주희
주희는 네 양 밖에 두 음이 안에 있고 이효와 오효의 양이 중도(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알맞은 길)를 얻은 괘체(효와 상·하괘가 이룬 괘의 전체 구조)를, 전체로는 가운데가 비고 두 몸체로는 가운데가 찬 믿음의 형상으로 풀이한다. 태의 기쁨과 손의 겸손, 나무가 못 위에 놓인 빈 배의 형상도 믿음과 큰 내를 건너는 점의 근거다. 점치는 이는 지극한 믿음으로 무지한 동물까지 감응시키되 반드시 바름을 지켜야 한다.
효의 상도 구조적으로 밝힌다. 구이(둘째 자리의 양효)와 구오는 같은 충실한 덕으로 감응하고, 육사는 초효와의 짝을 끊고 위로 구오를 믿어야 허물이 없다. 상구의 한음은 닭과 손괘의 형상으로, 하늘에 오를 수 없는 닭이 오르려는 것처럼 믿어서는 안 될 것을 믿고 변하지 않는 잘못을 경계한다.
정약용
정약용은 중부를 단순한 심리적 신뢰가 아니라 ‘속이 비어 감응하는 구조’로 읽는다. 대과괘를 교역하면 가운데를 막던 네 양이 풀리고 큰 리괘의 밝음과 믿음이 드러난다. 그래서 새끼돼지와 물고기처럼 박한 제물만 올려도 정성이 신명에게 미치고, 속 빈 배가 험한 내를 건널 수 있다고 해석한다. 돈어를 강돌고래로 풀이한 설은 경전과 제례의 등급을 들어 배척한다.
여섯 효에서는 우제, 학의 모자 화답, 전쟁터의 북과 곡성, 보름 무렵 사라지는 말, 이웃을 돕는 굽은 손, 하늘에 오른 닭을 차례로 해명한다. 괘의 교역·도상·예제와 글자 고증을 촘촘히 결합하며, 말과 행실이 먼 곳까지 감응한다는 원리를 중부의 핵심으로 삼는다. 그러나 신뢰는 허황한 상승이 아니라 비움과 절제에 뿌리내려야 하므로, 분수 밖으로 오른 닭은 오래갈 수 없다고 경계한다.
현대적으로 읽기
중부괘(속마음과 행동을 일치시켜 신뢰를 만드는 상황)
중부(中孚)는 신뢰를 큰 선언보다 안팎의 일치에서 찾는다. 상대를 설득하기 전에 무엇을 믿을지 헤아리고, 한 번 정한 신뢰는 다른 속셈으로 흔들지 않으며, 말과 실제 행동이 함께 가야 한다.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을 외면하거나 관계에 종속되면 상구(맨 위 자리의 양효)의 ‘한음등우천’(닭 울음소리가 하늘에 오른다)처럼 소리만 높고 오래가지 못한다.
왕필(王弼) 《주역주》 — 64괘 주석
이 64괘 주석의 저자는 왕필(王弼)이다. 한강백(韓康伯)은 계사전 등 일부 십익 주석의 저자로, 이 층과 구분한다.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有上四徳然後乃孚
信立而後邦乃化也柔在内而剛得中各當其所也剛得中則直而正柔在内則靜而順説而以巽則乖爭不作如此則物无巧競敦實之行著而篤信𤼵乎其中矣
魚者蟲之隱者也豚者獸之微賤者也爭競之道不興中信之徳淳著則雖微隱之物信皆及之
乗木於用舟之虛則終已无溺也用中孚以涉難若乗木舟虚也
盛之至也
信𤼵於中雖過可亮
虞猶專也為信之始而應在四得乎専吉者也志未能變繫心於一故有它不燕也
處内而居重隂之下而履不失中不徇於外任其真者也立誠篤志雖在闇昧物亦應焉故曰鳴鶴在隂其子和之也不私權利唯徳是與誠之至也故曰我有好爵與物散之
三居少隂之上四居長隂之下對而不相比敵之謂也以隂居陽欲進者也欲進而閡敵故或鼔也四履正而承五非已所克故或罷也不勝而退懼見侵陵故或泣也四履乎順不與物校退而不見害故或歌也不量其力進退无恒憊可知也
居中孚之時處巽之始應説之初居正履順以承於五内毗元首外宣徳化者也充乎隂徳之盛故曰月幾望馬匹亡者弃羣類也若夫居盛徳之位而與物校其競爭則失其所盛矣故曰絶類而上履正承尊不與三爭乃得无咎也
類謂三俱隂爻故曰類也
攣如者繫其信之辭也處中誠以相交之時居尊位以為羣物之主信何可舎故有孚攣如乃得无咎也
翰髙飛也飛音者音飛而實不從之謂也居卦之上處信之終信終則衰忠篤内喪華美外揚故曰翰音登于天也翰音登天正亦滅矣
위의 네 덕이 있은 뒤에야 믿게 된다.
믿음이 선 뒤에야 나라가 교화된다. 부드러운 음이 안에 있고 굳센 양이 가운데를 얻어 각자 제자리를 얻었다. 굳센 양이 가운데를 얻으면 곧고 바르며, 부드러운 음이 안에 있으면 고요하고 순하다. 기뻐하면서 공손하면 어긋남과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와 같으면 사물에 교묘한 경쟁이 없고 돈독하고 성실한 행실이 드러나며 두터운 믿음이 그 가운데에서 나온다.
물고기는 벌레 가운데 숨어 있는 것이고 돼지는 짐승 가운데 미천한 것이다. 다투고 경쟁하는 도가 일어나지 않고 마음속 믿음의 덕이 순수하게 드러나면, 비록 미세하고 숨어 있는 사물이라도 믿음이 모두 미친다.
나무를 타고 속이 빈 배를 쓰면 끝내 빠지지 않는다. 중부를 써서 어려움을 건너는 것은 나무를 타고 배를 비운 것과 같다.
성대함이 지극하다.
믿음이 마음속에서 나오면 비록 지나치더라도 밝힐 수 있다.
우(虞)는 오로지함과 같다. 믿음의 시작에 있고 호응은 육사에 있어 오로지함을 얻어 길한 자다. 뜻이 아직 변할 수 없어 마음을 한곳에 매었으므로 다른 것이 있으면 편안하지 못하다.
안에 있고 겹친 음의 아래에 있으면서도 중도를 잃지 않고, 바깥을 좇지 않으며 참됨을 맡긴 자다. 정성을 세우고 뜻을 돈독히 하면 비록 어둡고 희미한 데 있어도 사물이 호응한다. 그러므로 그늘에서 학이 울면 새끼가 화답한다고 한다. 권세와 이익을 사사롭게 여기지 않고 오직 덕 있는 이에게 함께하니 정성이 지극하다. 그러므로 나에게 좋은 벼슬이 있어 사물과 나눈다고 한다.
육삼은 어린 음의 위에 있고 육사는 장성한 음의 아래에 있어 서로 마주하지만 가까이하지 않으니 적이라고 한다. 음으로 양의 자리에 있어 나아가려는 자다. 나아가려 하지만 적에게 막히므로 때로 북을 친다. 육사는 바름을 밟고 구오를 받들어 자신이 이길 수 없으므로 때로 그친다. 이기지 못해 물러나면 침범과 능멸을 당할까 두려워 때로 운다. 육사는 순종을 밟아 사물과 겨루지 않으니 물러나도 해를 입지 않아 때로 노래한다. 자기 힘을 헤아리지 못해 나아가고 물러남에 일정함이 없으니 피폐함을 알 수 있다.
중부의 때에 있고 손괘의 시작이며 태괘에 호응하는 처음이다. 바름에 있고 순종을 밟아 구오를 받든다. 안으로 원수를 돕고 밖으로 덕의 교화를 펴는 자다. 음의 덕이 성대하게 가득하므로 달이 거의 찬다고 한다. 말의 짝을 잃는다는 것은 자기 무리를 버리는 일이다. 성대한 덕의 자리에 있으면서 사물과 경쟁을 겨루면 성대한 바를 잃는다. 그러므로 무리를 끊고 위로 올라가 바름을 밟고 존귀한 자를 받들며 육삼과 다투지 않아야 허물이 없다.
무리는 육삼을 말한다. 둘 다 음효이므로 무리라고 한다.
연여(攣如)는 그 믿음을 단단히 매는 말이다. 마음속 정성으로 서로 사귀는 때에 존귀한 자리에 있어 여러 사물의 주인이 된다. 어찌 믿음을 버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 단단히 매어야 허물이 없다.
한(翰)은 높이 난다는 뜻이다. 비음(飛音)은 소리만 날고 실제로는 따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괘의 위에 있고 믿음의 끝에 있다. 믿음이 끝나면 쇠하여 충성과 돈독함은 안에서 사라지고 화려한 아름다움만 밖으로 드날린다. 그러므로 닭의 소리가 하늘에 오른다고 한다. 닭의 소리가 하늘에 오르면 바름 또한 사라진다.
중부는 굳센 중심과 안의 부드러운 고요함에서 믿음이 우러나 미세하고 숨어 있는 사물에까지 미치는 괘다. 사사로운 권리보다 덕을 따르고 존귀한 자리에 있을수록 믿음을 단단히 매어야 하며, 실질을 잃고 명성만 높아지면 믿음의 끝에서 바름도 사라진다.
교감·번역 주
정이천 《이천역전》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兌下㢲上〉
中孚序卦節而信之故受之以中孚節者為之制節使不得過越也信而後能行上能信守之下則信從之節而信之也中孚所以次節也為卦澤上有風風行澤上而感于水中為中孚之象感謂感而動也内外皆實而中虛為中孚之象又二五皆陽中實亦為孚義在二體則中實在全體則中虚中虛信之本中實信之質
中孚豚魚吉利涉大川利貞
豚躁魚㝠物之難感者也孚信能感於豚魚則无不至矣所以吉也忠信可以蹈水火况涉川乎守信之道在乎堅正故利於貞也
象曰中孚柔在内而剛得中
二柔在内中虛為誠之象二剛得上下體之中中實為孚之象卦所以為中孚也
說而㢲孚乃化邦也
以二體言卦之用也上㢲下說為上至誠以順㢲於下下有孚以說從其上如是其孚乃能化於邦國也若人不說從或違拂事理豈能化天下乎
豚魚吉信及豚魚也
信能及於豚魚信道至矣所以吉也
利涉大川乗木舟虛也
以中孚涉險難其利如乗木濟川而以虚舟也舟虛則无沉覆之患卦虛中為虛舟之象
中孚以利貞乃應乎天也
中孚而貞則應乎天矣天之道孚貞而已
象曰澤上有風中孚君子以議獄緩死
澤上有風感于澤中水體虚故風能入之人心虛故物能感之風之動乎澤猶物之感于中故為中孚之象君子觀其象以議獄與緩死君子之於議獄盡其忠而已於決死極於惻而已故誠意常求於緩緩寛也於天下之事无所不盡其忠而議獄緩死最其大者也
初九虞吉有他不燕
九當中孚之初故戒在審其所信虞度也度其可信而後從也雖有至信苦不得其所則有悔咎故虞度而後信則吉也既得所信則當誠一若有他則不得其燕安矣燕安裕也有他志不定也人志不定則惑而不安初與四為正應四㢲體而居正无不善也爻以謀始之義大故不取相應之義若用應則非虞也
象曰初九虞吉志未變也
當信之始志未有所從而虞度所信則得其正是以吉也蓋其志未有變動志有所從則是變動虞之不得其正矣在初言求所信之道也
九二鳴鶴在陰其子和之我有好爵吾與爾靡之二剛實中孚之至者也孚至則能感通鶴鳴於幽隱之處不聞也而其子相應和中心之願相通也好爵我有而彼亦繫慕說好爵之意同也有孚於中物无不應誠同故也至誠无逺近幽深之間故繫辭云善則千里之外應之不善則千里之外違之言誠通也至誠感通之理知道者為能識之
象曰其子和之中心願也
中心願謂誠意所願也故通而相應
六三得敵或鼓或罷或泣或歌
敵對敵也謂所交孚者正應上九是也三四皆以虛中為成孚之主然所處則異四得位居正故亡匹以從上三不中失正故得敵以累志以柔說之質既有所繫唯所信是從或鼓張或罷廢或悲泣或歌樂動息憂樂皆繫乎所信也唯繫所信故未知吉凶然非明達君子之所為也
象曰或鼔或罷位不當也
居不當位故无所主唯所信是從所處得正則所信有方矣
六四月幾望馬匹亡无咎
四為成孚之主居近君之位處得其正而上信之至當孚之任者也如月之幾望盛之至也已望則敵矣臣而敵君禍敗必至故以幾望為至盛馬匹亡四與初為正應匹也古者駕車用四馬不能備純色則兩服兩驂各一色又小大必相稱故兩馬為匹謂對也馬者行物也初上應四而四亦進從五皆上行故以馬為象孚道在一四既從五若復下繫於初則不一而害於孚為有咎矣故馬匹亡則无咎也上從五而不繫於初是亡其匹也繫初則不進不能成孚之功也
象曰馬匹亡絶類上也
絶其類而上從五也類謂應也
九五有孚攣如无咎
五居君位人君之道當以至誠感通天下使天下之心信之固結如拘攣然則為无咎也人君之孚不能使天下固結如是則億兆之心安能保其不離乎
象曰有孚攣如位正當也
五居君位之尊由中正之道能使天下信之如拘攣之固乃稱其位人君之道當如是也
上九翰音登于天貞凶
翰音者音飛而實不從處信之終信終則衰忠篤内喪華美外颺故云翰音登天正亦滅矣陽性上進風體飛颺九居中孚之時處於最上孚於上進而不知止者也其極至於羽翰之音登聞於天貞固於此而不知變凶可知矣夫子曰好信不好學其蔽也賊固守而不通之謂也
象曰翰音登于天何可長也
守孚至於窮極而不知變豈可長久也固守而不通如是則凶也
【정이천】
䷼ 〈아래는 태괘(兌), 위는 손괘(巽)다〉
중부괘(中孚卦). 『서괘전』에서 “절제하고서 믿게 되므로 중부괘로 받았다”고 했다. 절은 법도와 한계를 정하여 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믿은 뒤라야 행할 수 있으니, 위에서 믿고 지키면 아래도 믿고 따른다. 절제한 뒤 믿는 것이므로 중부가 절괘 다음에 놓였다. 괘는 못 위에 바람이 있어 바람이 못 위를 지나며 물속까지 감동시키니 중부의 형상이다. 감동은 느껴 움직인다는 뜻이다. 안과 밖은 모두 차 있고 가운데는 비었으므로 중부의 형상이다. 또 이와 오가 모두 양으로 가운데가 차 있으니 믿음의 뜻이다. 두 몸체로 보면 가운데가 차고, 괘 전체로 보면 가운데가 비었다. 가운데가 빈 것은 믿음의 근본이고 가운데가 찬 것은 믿음의 바탕이다.
「중부는 돼지와 물고기까지 믿게 하니 길하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고 바르게 함이 이롭다.」
돼지는 조급하고 물고기는 어두워 감동시키기 어려운 동물이다. 믿음이 돼지와 물고기까지 감동시키면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길하다. 충성과 믿음이 있으면 물과 불도 밟을 수 있는데 하물며 내를 건넘에랴. 믿음을 지키는 도는 견고하고 바르게 하는 데 있으므로 바르게 함이 이롭다.
「단전에서 말하였다. ‘중부는 부드러운 것이 안에 있고 굳센 것이 가운데를 얻었다.’」
두 부드러운 효가 안에 있어 가운데가 비었으니 정성의 형상이고, 두 굳센 효가 위아래 몸체의 가운데를 얻어 속이 충실하니 믿음의 형상이다. 이 때문에 괘가 중부가 되었다.
「기뻐하면서 겸손하니 믿음이 나라를 교화한다.」
두 몸체로 괘의 쓰임을 말했다. 위는 겸손하고 아래는 기뻐한다. 위가 지극한 정성으로 아래 사람에게 겸손히 순응하고 아래 사람은 믿음을 지녀 기쁘게 윗사람을 따른다. 이와 같아야 그 믿음이 나라를 교화할 수 있다. 사람들이 기뻐 따르지 않거나 사리에 어긋나고 거스른다면 어찌 천하를 교화하겠는가.
「돼지와 물고기까지 믿게 하여 길하다는 것은 믿음이 돼지와 물고기에게 미친 것이다.」
믿음이 돼지와 물고기에게까지 미치면 믿음의 도가 지극하므로 길하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운 것은 나무를 타고 빈 배를 탔기 때문이다.」
중부로 험난함을 건너면 그 이로움이 나무배로 내를 건너되 빈 배를 타는 것과 같다. 배가 비면 가라앉거나 뒤집힐 걱정이 없다. 괘의 가운데가 비어 빈 배의 형상이 된다.
「중부에서 바르게 함이 이로워야 하늘에 호응한다.」
중부하면서 바르면 하늘에 호응한다. 하늘의 도는 믿고 바를 뿐이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못 위에 바람이 있는 것이 중부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옥사를 의논하고 사형을 늦춘다.’」
못 위의 바람이 못 속까지 감동시킨다. 물의 몸체가 비어 있어 바람이 들어가고 사람 마음이 비어 있어 사물의 감응을 받는다. 바람이 못을 움직이는 것은 사물이 마음속을 감동시키는 것과 같으므로 중부의 형상이다. 군자는 이를 보고 옥사를 의논하고 사형을 늦춘다. 옥사를 논할 때는 충성을 다하고 사형을 판결할 때는 측은함을 극진히 하므로, 정성스러운 뜻은 늘 늦추기를 구한다. 완(緩)은 너그럽게 한다는 뜻이다. 천하의 일에서 충성을 다하지 않는 것이 없지만 옥사를 의논하고 사형을 늦추는 일은 그중 가장 크다.
「초구는 헤아리면 길하고, 다른 마음이 있으면 편안하지 않다.」
구는 중부의 처음이므로 믿을 대상을 살피라고 경계한다. 우(虞)는 헤아림이다. 믿을 만한지를 헤아린 뒤 따른다. 지극한 믿음이 있어도 그 대상을 얻지 못하면 후회와 허물이 있다. 헤아린 뒤 믿으면 길하다. 믿을 대상을 얻었으면 마음을 하나로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 다른 마음이 있으면 편안함을 얻지 못한다. 연(燕)은 편안하고 여유로움이며, 다른 마음이 있다는 것은 뜻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뜻이 정해지지 않으면 미혹되어 편안하지 않다. 초와 사는 정응이고 사는 손괘 몸체로 바른 자리에 있어 좋지 않음이 없다. 그러나 이 효에서는 처음에 꾀하는 뜻이 크므로 호응의 뜻을 취하지 않았다. 호응을 그대로 쓴다면 헤아린다는 뜻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초구가 헤아려 길한 것은 뜻이 아직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음의 처음에는 뜻이 아직 따르는 바가 없다. 믿을 대상을 헤아리면 바름을 얻어 길하다. 뜻이 아직 움직여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뜻이 이미 따르는 바가 생기면 움직여 변한 것이니 헤아림이 바름을 얻지 못한다. 초효에서는 믿을 대상을 구하는 도를 말했다.
「구이는 그늘에서 학이 울자 그 새끼가 화답한다. 내게 좋은 술잔이 있으니 내가 너와 함께 나누겠다.」
이는 굳세고 충실하여 중부가 지극한 자다. 믿음이 지극하면 감응하여 통한다. 학이 깊고 숨은 곳에서 울어 들리지 않아도 새끼가 서로 화답하니 마음속 소원이 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좋은 술잔은 내가 가졌어도 저쪽 또한 사모하고 좋아하여 그 뜻이 같다. 마음속에 믿음이 있으면 사물이 호응하지 않음이 없으니 정성이 같기 때문이다. 지극한 정성에는 멀고 가까움이나 깊고 숨음의 간격이 없다. 그러므로 『계사전』에서 “선하면 천 리 밖에서도 호응하고, 선하지 않으면 천 리 밖에서도 어긴다”고 했으니 정성이 통함을 말한다. 지극한 정성이 감통하는 이치는 도를 아는 자라야 알 수 있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그 새끼가 화답하는 것은 마음속으로 원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 소원이란 정성스러운 뜻이 원하는 바이므로 통하여 서로 호응한다.
「육삼은 적수를 만나 혹 북을 치고 혹 그치며, 혹 울고 혹 노래한다.」
적은 맞서는 상대이며, 믿음으로 사귀는 정응인 상구를 말한다. 삼과 사는 모두 가운데가 비어 믿음을 이루는 주인이지만 처한 곳이 다르다. 사는 바른 자리를 얻어 짝을 잃고 위를 따르지만, 삼은 중도를 잃고 바르지 않아 상대를 얻고 뜻이 얽힌다. 부드럽고 기뻐하는 자질로 얽매인 바가 있어 오직 믿는 상대가 하는 대로 따른다. 혹 기세를 펴고 혹 그치며, 혹 슬피 울고 혹 노래하며 즐거워한다. 움직임과 쉼, 근심과 즐거움이 모두 믿는 상대에게 매인다. 믿는 대상에게 매일 뿐이므로 아직 길흉을 알 수 없지만 밝게 통달한 군자가 할 일은 아니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혹 북을 치고 혹 그치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땅하지 않은 자리에 있어 주관하는 바가 없고 오직 믿는 상대를 따른다. 처한 자리가 바르면 믿는 데에도 일정한 방향이 있다.
「육사는 달이 거의 보름이고 말의 짝을 잃으면 허물이 없다.」
사는 믿음을 이루는 주인이고 임금 가까운 자리에 바르게 처했으며 위에서 믿음이 지극해 믿음의 임무를 맡는다. 달이 거의 보름에 이른 것처럼 성대함이 지극하다. 이미 보름이 되면 임금과 맞선다. 신하가 임금과 맞서면 화패가 반드시 이르므로 ‘거의 보름’으로 지극한 성대함을 나타냈다. 말의 짝은 사와 정응인 초다. 옛 수레에는 네 말을 썼는데 같은 빛깔을 모두 갖추지 못하면 가운데 두 말과 바깥 두 말을 각각 같은 빛으로 맞추고 크기도 서로 걸맞게 했으므로 두 말을 한 짝이라 했다. 말은 가는 동물이다. 초는 위로 사와 호응하고 사도 위로 오를 따르므로 모두 위로 간다. 그래서 말의 형상을 취했다. 믿음의 도는 한결같음에 있다. 사가 이미 오를 따르면서 다시 아래로 초에게 매이면 한결같지 않아 믿음을 해치고 허물이 된다. 그러므로 말의 짝을 잃어야 허물이 없다. 위로 오를 따르고 초에게 매이지 않는 것이 짝을 잃는 것이다. 초에게 매이면 나아가지 못해 믿음의 공을 이룰 수 없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말의 짝을 잃는 것은 같은 부류를 끊고 위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자기 부류인 정응을 끊고 위로 오를 따른다.
「구오는 믿음으로 굳게 묶으니 허물이 없다.」
오는 임금 자리다. 임금의 도는 지극한 정성으로 천하를 감통하여 천하의 마음이 그를 믿고 단단히 맺어 붙잡아 묶은 것과 같게 해야 허물이 없다. 임금의 믿음이 천하를 이처럼 굳게 결속하지 못하면 억조의 마음이 떠나지 않으리라고 어찌 보장하겠는가.
「상전에서 말하였다. ‘믿음으로 굳게 묶는 것은 자리가 바르고 마땅하기 때문이다.’」
오는 존귀한 임금 자리에 있고 중정의 도로 천하가 자신을 믿어 묶은 것처럼 굳게 하니 그 자리에 걸맞는다. 임금의 도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상구는 날개 달린 소리가 하늘에 오른다. 그대로 고집하면 흉하다.」
한음(翰音)은 소리만 날아가고 실제는 따르지 않는 것이다. 믿음의 끝에 있어 믿음이 다하면 쇠한다. 충실함은 안에서 사라지고 화려한 소리만 밖으로 날리므로 날개 달린 소리가 하늘에 오른다고 했다. 양은 위로 나아가고 바람은 날아오르는 몸체다. 구가 중부의 때에 가장 위에 있어 위로 나아감을 믿고 그칠 줄 모르므로, 극에 이르면 날개 달린 소리가 하늘까지 들린다. 이를 바르고 굳게 지키면서 바꿀 줄 모르면 흉함을 알 수 있다. 공자는 “믿기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해치는 데 있다”고 했다. 굳게 지킬 뿐 통하지 못함을 말한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날개 달린 소리가 하늘에 오르니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믿음을 지키다가 궁극에 이르러도 변할 줄 모르니 어찌 오래가겠는가. 굳게 지켜 통하지 못하면 흉하다.
정이천은 중부를 가운데가 비어 정성을 받아들이는 근본과 가운데가 차 있어 믿음을 실천하는 바탕이 함께 있는 상태로 풀이한다. 위는 지극한 정성으로 아래에 겸손하고 아래는 기뻐 따르므로 믿음이 나라를 교화하며, 그 믿음이 감응시키기 어려운 돼지와 물고기까지 미치면 험난한 큰 내도 건널 수 있다. 다만 믿음은 반드시 바름과 함께해야 하늘의 도에 호응한다.
효에서는 믿을 대상을 처음부터 헤아리는 초구(첫째 자리의 양효), 숨은 곳에서도 정성으로 감응하는 구이(둘째 자리의 양효), 상대에게 감정과 행동을 맡겨 버린 육삼(셋째 자리의 음효), 사사로운 정응을 끊고 임금을 따르는 육사, 천하의 마음을 단단히 결속하는 구오를 차례로 논한다. 상구는 실제 충실함 없이 소리만 하늘에 오르는 믿음의 극단이다. 믿음을 고집하되 배우고 변할 줄 모르면 도리어 해치게 된다.
주희 《주역본의》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兌下巽上〉
中孚豚魚吉利涉大川利貞〈孚信也為卦二隂在内四陽在外而二五之陽皆得其中以一卦言之為中虛以二體言之為中實皆孚信之象也又下説以應上上巽以順下亦為孚義豚魚无知之物又木在澤上外實内虛皆舟楫之象至信可感豚魚涉險難而不可以失其貞故占者能致豚魚之應則吉而利涉大川又必利於貞也〉○彖曰中孚柔在内而剛得中説而巽孚乃化邦也〈説音悦○以卦體卦徳釋卦名義〉豚魚吉信及豚魚也利涉大川乘木舟虛也〈以卦象言〉中孚以利貞乃應乎天也〈信而正則應乎天矣〉○象曰澤上有風中孚君子以議獄緩死〈風感水受中孚之象議獄緩死中孚之意〉○初九虞吉有他不燕〈他湯何反○當中孚之初上應六四能度其可信而信之則吉復有他焉則失其所以度之之正而不得其所安矣戒占者之辭也〉象曰初九虞吉志未變也○九二鳴鶴在隂其子和之我有好爵吾與爾靡之〈和胡卧反靡亡池反○九二中孚之實而九五亦以中孚之實應之故有鶴鳴子和我爵爾靡之象鶴在隂謂九居二好爵謂得中靡與縻同言懿徳人之所好故好爵雖我之所獨有而彼亦係戀之也〉象曰其子和之中心願也○六三得敵或鼓或罷或泣或歌〈敵謂上九信之窮者六三隂柔不中正以居説極而與之為應故不能自主而其象如此〉象曰或鼓或罷位不當也○六四月幾望馬匹亡无咎〈幾音機望无方反○六四居隂得正位近於君為月幾望之象馬匹謂初與已為匹四乃絶之而上以信於五故為馬匹亡之象占者如是則无咎也〉象曰馬匹亡絶類上也〈上上聲〉○九五有孚攣如无咎〈攣力圓反○九五剛健中正中孚之實而居尊位為孚之主者也下應九二與之同徳故其象占如此〉象曰有孚攣如位正當也○上九翰音登于天貞凶〈居信之極而不知變雖得其貞亦凶道也故其象占如此雞曰翰音乃巽之象居巽之極為登于天雞非登天之物而欲登天信非所信而不知變亦猶是也〉象曰翰音登于天何可長也
【주희】
䷼ 〈아래는 태괘(兌), 위는 손괘(巽)다〉
「중부는 돼지와 물고기까지 믿게 하니 길하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고 바르게 함이 이롭다.」 〈부는 믿음이다. 이 괘는 두 음이 안에 있고 네 양이 밖에 있으며, 이효와 오효의 양이 모두 가운데를 얻었다. 한 괘로 말하면 가운데가 비고 두 몸체로 말하면 가운데가 차 있으니 모두 믿음의 형상이다. 또 아래의 태는 기뻐하며 위에 호응하고 위의 손은 겸손하여 아래를 따르니 역시 믿음의 뜻이다. 돼지와 물고기는 무지한 동물이다. 또 나무가 못 위에 있고 밖은 차고 안은 비었으니 모두 배의 형상이다. 지극한 믿음은 돼지와 물고기도 감응시키고 험난함을 건너지만 바름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점치는 이가 돼지와 물고기의 감응까지 이르게 할 수 있으면 길하고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우며, 또 반드시 바르게 함이 이롭다.〉 ○ 「단전에서 말하였다. ‘중부는 부드러운 것이 안에 있고 굳센 것이 가운데를 얻었다. 기뻐하면서 겸손하니 믿음이 나라를 교화한다.’」 〈열(說)의 음은 열(悅)이다. ○ 괘의 몸체와 덕으로 괘 이름의 뜻을 풀이했다.〉 「돼지와 물고기까지 믿게 하여 길하다는 것은 믿음이 돼지와 물고기에게 미친 것이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운 것은 나무를 타고 빈 배를 탔기 때문이다.」 〈괘의 형상으로 말했다.〉 「중부에서 바르게 함이 이로워야 하늘에 호응한다.」 〈믿으면서 바르면 하늘에 호응한다.〉 ○ 「상전에서 말하였다. ‘못 위에 바람이 있는 것이 중부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옥사를 의논하고 사형을 늦춘다.’」 〈바람이 감동시키고 물이 받아들이는 것이 중부의 형상이며, 옥사를 의논하고 사형을 늦추는 것이 중부의 뜻이다.〉 ○ 「초구는 헤아리면 길하고, 다른 마음이 있으면 편안하지 않다.」 〈타(他)는 탕하반(湯何反)이다. ○ 중부의 처음에 있어 위로 육사와 호응한다. 그가 믿을 만한지를 헤아려 믿으면 길하지만 다시 다른 마음을 두면 헤아림의 바름을 잃어 편안할 바를 얻지 못한다. 점치는 이를 경계하는 말이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초구가 헤아려 길한 것은 뜻이 아직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구이는 그늘에서 학이 울자 그 새끼가 화답한다. 내게 좋은 술잔이 있으니 내가 너와 함께 나누겠다.」 〈화(和)는 호와반(胡卧反), 미(靡)는 망지반(亡池反)이다. ○ 구이는 중부의 충실함이고 구오도 중부의 충실함으로 호응한다. 그러므로 학이 울어 새끼가 화답하고, 내가 가진 좋은 술잔을 네가 사모하는 형상이 있다. 학이 그늘에 있다는 것은 구가 이의 자리에 있음을 말하고, 좋은 술잔은 중도를 얻음을 말한다. 미(靡)는 미(縻)와 같다. 아름다운 덕은 사람이 좋아하므로 ‘좋은 술잔’이라 했고, 비록 나만 지녔어도 저쪽도 그것에 매여 사모한다는 뜻이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그 새끼가 화답하는 것은 마음속으로 원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 「육삼은 적수를 만나 혹 북을 치고 혹 그치며, 혹 울고 혹 노래한다.」 〈적은 믿음이 궁극에 이른 상구를 말한다. 육삼은 음유하고 중정하지 않으면서 기쁨의 극에 있고 상구와 호응하므로 스스로 주관하지 못해 그 형상이 이와 같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혹 북을 치고 혹 그치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 「육사는 달이 거의 보름이고 말의 짝을 잃으면 허물이 없다.」 〈기(幾)의 음은 기(機)이고, 망(望)은 무방반(无方反)이다. ○ 육사는 음으로 바른 자리를 얻고 임금과 가까워 달이 거의 보름인 형상이 있다. 말의 짝은 초효가 자기와 짝이 됨을 말한다. 사가 이를 끊고 위로 올라 오효를 믿으므로 말의 짝을 잃는 형상이 된다. 점치는 이가 이와 같으면 허물이 없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말의 짝을 잃는 것은 같은 부류를 끊고 위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상(上)은 상성이다.〉 ○ 「구오는 믿음으로 굳게 묶으니 허물이 없다.」 〈련(攣)은 역원반(力圓反)이다. ○ 구오는 강건하고 중정하여 중부의 충실함이고 존위에서 믿음의 주인이며, 아래로 구이와 호응하여 덕이 같다. 그러므로 그 형상과 점이 이와 같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믿음으로 굳게 묶는 것은 자리가 바르고 마땅하기 때문이다.’」 ○ 「상구는 날개 달린 소리가 하늘에 오른다. 그대로 고집하면 흉하다.」 〈믿음의 극에 있으면서 변할 줄 모르니 비록 바름을 얻어도 흉한 길이다. 그러므로 그 형상과 점이 이와 같다. 닭을 한음이라 하는데 이는 손괘의 형상이다. 손괘의 극에 있어 하늘에 오른다고 했다. 닭은 하늘에 오르는 동물이 아닌데도 하늘에 오르려 한다. 믿어서는 안 될 것을 믿으면서 변할 줄 모르는 일도 이와 같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날개 달린 소리가 하늘에 오르니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주희는 네 양 밖에 두 음이 안에 있고 이효와 오효의 양이 중도(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알맞은 길)를 얻은 괘체(효와 상·하괘가 이룬 괘의 전체 구조)를, 전체로는 가운데가 비고 두 몸체로는 가운데가 찬 믿음의 형상으로 풀이한다. 태의 기쁨과 손의 겸손, 나무가 못 위에 놓인 빈 배의 형상도 믿음과 큰 내를 건너는 점의 근거다. 점치는 이는 지극한 믿음으로 무지한 동물까지 감응시키되 반드시 바름을 지켜야 한다.
효의 상도 구조적으로 밝힌다. 구이(둘째 자리의 양효)와 구오는 같은 충실한 덕으로 감응하고, 육사는 초효와의 짝을 끊고 위로 구오를 믿어야 허물이 없다. 상구의 한음은 닭과 손괘의 형상으로, 하늘에 오를 수 없는 닭이 오르려는 것처럼 믿어서는 안 될 것을 믿고 변하지 않는 잘못을 경계한다.
정약용(丁若鏞) 《주역사전》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雜卦傳曰中孚。信也。〇朱子曰孚字。從爪從子。如鳥抱子之象。今之乳字亦從孚。〈鄭東卿云中孚有卵象。〉〇鏞案衍卦五十。皆有推移之本。故升降往來。各有情變。而四時之卦。亦有進退消長之勢。至於中孚小過。旣無推移。亦無消長。故唯以交易之法。察其變動。中孚者。大過之交也。〈澤風交〉大過之卦。四剛中梗。坎疑極大。〈爲大坎〉疑則不信。物莫能孚。交之中孚。則大离之信。〈兼畫离〉洞然中虛。〈三四柔〉此之謂中孚也。邑虛中曰郛。〈外城也〉葭虛中曰莩。〈中皮也〉腹虛中曰脬。〈又物之虛中者。入水剛浮。〉中孚者虛中也。又此二卦。無所從來。特從坎離二卦。升降而往來之。復成坎離。〈兼畫三〉夫坎離者日月也。〈說卦云〉日之氣盈。月之朔虛。非所以立閏乎。故曰小過中孚者。閏月之卦也。
{〔卦象:䷼〕}中孚。豚魚吉。利涉大川。利貞。
此中孚之不變者也。內外齊潔。〈下倒巽〉中以离孚。〈二五夾〉祭祀之卦也。卦以大過交易。〔卦象:䷛〕〈澤風交〉大過之卦。通體爲坎。〈上下夾〉是爲大豕。〈坎爲豕〉下巽上巽。〈上顚巽〉亦有魚鱻。〈虞易巽爲魚〉交而中孚。則魚雖如舊。〈上下巽〉昔之大豕。今爲小豶。〈大畜以巽爲豶豕〉豕小曰豚。〈豕之子〉祭之所薦。豚魚而已。牲羞之薄。莫此若也。〈義見下〉雖然大過之時。誠信未孚。〈大坎疑〉今也大离之誠。〈兼畫三〉虛中以治。〈祭義文〉中旣孚矣。雖豚魚而亦吉。此筮牲之占也。〇大過之時。大坎之川。〈上下夾〉無以過涉。〈見大過上六〉交而中孚。則震舟虛中。〈互震木〉坎險遂過。〈今無坎〉利涉大川也。〇大過之時。坎德貞固。交而中孚。則民志以悅。〈兌在下〉仰順天命。〈巽在上〉其事遂已。〈今無坎〉利幹事也。〈利於貞〉〇案胡炳文以豚魚。爲河豚江豚。謬矣。古者牲牢有五等。〈見儀禮〉大牢小牢特牲。其厚者也。特豚一鼎。其物最薄。〈三鼎則有魚〉國語觀射父曰士食魚。祀以特豚。庶人食菜。祀以魚。〈王制云庶人薦麥以魚〉又楚屈建曰士有豚犬之奠。庶人有魚炙之薦。豚魚者牲羞之薄品也。若論冥頑之物。奚特豚魚哉。
{〔卦象:䷼〕}彖曰中孚。柔在內而剛得中也。주-D002說而巽。孚乃化邦也。豚魚吉。信及豚魚也。利涉大川。乘木舟虛也。中孚以利貞。乃應乎天也。
離之爲卦。剛則在內。〈三四剛〉柔乃得中。〈二五柔〉變之爲中孚。離則離矣。〈兼畫三〉柔內而剛中也。孔子言之者。明卦以離變也。彖詞用交易之象。〈大過交〉故孔子補明之。〈小過同〉〇艮之城邑。〈三五互〉震主在內。〈二四互〉离信以化之。〈二五夾〉孚乃化邦也。〈悅巽命〉〇信及豚魚者。离之明信。〈今大离〉雖於豚魚之薄薦。無所不及也。春秋傳曰苟以明信。澗谿沼沚之毛。可薦神明。亦此意也。易凡言有孚。皆祭祀之占也。孚乃利用禴。〈萃與升〉有孚盈缶。〈毛初六〉有孚顒若〈觀之彖〉之類。無非人神感應之理。況於中孚哉。今之讀易者。以信及豚魚。爲如韓愈祭鰐之事。失之遠矣。〇二陰乘剛。〈二四互〉是乘木也。〈互震木〉通卦虛中。〈三四柔〉是舟虛也。虛舟涉川。豈有臭載之理。〇按胡氏江豚之說。近儒頗宗之。本草云江豚一名猪魚。東風則張口向東。〈震爲東〉西風則張口向西。〈兌爲西〉風起則見。〈現〉有如影響。〈巽爲風〉其於此卦之象。雖若偶合。江豚之名。不見九經。且豚魚吉三字。不成文理。不可讀也。至於薄祭之義。易詞屢言之。如東鄰殺牛。西鄰禴祭。〈旣濟爻〉二簋可用享。〈損之彖〉孚乃利用禴。〈萃與升〉羸豕孚蹢躅〈姤初六〉之類。不可殫述。豚魚之吉。亦此義也。後世憲章壞亂。庶人之祭。恥不殺牛。卿相之家。縟於王室。持世敎者宜有以矯救也。
{〔卦象:䷺〕}初九。虞吉。有他。不燕。〇象曰初九虞吉。志未變也。
此中孚之渙也。虞吉者。虞祭之吉也。渙自否來。〈四之二〉否以泰交。〈地天交〉國門之北。〈坤艮上〉乾父是出。〈乾出外〉葬父之卦也。〈檀弓云葬於北方北首。〉移之爲渙。〈四之二〉則迎精而反。〈乾爲精〉歸于坎宮。〈四之二〉以見艮廟。〈互艮而离見〉非反虞乎。坤牛坎豕。〈下本坤〉巽以潔之。〈上今巽〉虞而祭也。古者葬日必虞。日中行事。〈見檀弓〉离位之中。〈二爲中〉行此坎事。〈坎爲事〉日中而虞也。〇渙自否來。〈二之四〉否之時。乾賓巽主。〈三五巽〉將受坤養。〈否下坤〉移之爲渙。則坎患猝至。〈下今坎〉乾賓遂去。〈今無乾〉此有他而不燕也。〈不宴飮〉或疾或雨。〈皆坎象〉其象不定。故謂之有他。〈比大過亦然〉中孚之卦。本是相見之禮。〈兼畫离〉而兌食巽讓。又是燕樂之象。故其占如此。〇大离未改。〈二五夾〉志未變也。孝子之虞其親。誠信而已。
{〔卦象:䷩〕}九二。鳴鶴在陰。其子和之。我有好爵。吾與爾靡之。〇象曰其子和之。中心願也。
此中孚之益也。离爲飛鳥。〈荀九家〉中孚者大鳥也。巽爲潔白。〈說卦文〉其象鶴也。兩口相向。〈上顚兌〉兩震對鳴。〈上倒震〉和鳴之象也。其變爲益。坤則爲母。〈今互坤〉母鶴之鳴也。〈震爲鳴〉兌澤在北。〈上顚兌〉水南曰陰。〈爾雅云〉鳴鶴在陰也。艮則爲子。〈三五互〉彼和鳴者子鶴也。〇益自否來。〈四之一〉我者乾王也。乾王在上。以其巽命。〈否互巽〉封其艮男。〈二四互〉使爲震侯。〈四之一〉以主坤國。〈二四互〉我有好爵也。〈爾者艮男也〉靡者順也。震艸在下。〈下今震〉仰順巽風。〈上本巽〉其象靡也。〈草偃風曰靡〉乾王震侯。〈否上乾〉咸順巽命。〈本天命〉吾與爾靡之也。天王之家。其長子主器。〈爲太子〉不以封侯。唯小子列爵分土。此所以艮少男之受爵也。〇中心者誠也。願者愛也。离則爲誠。〈二五夾〉兩兌相悅。〈無反對故取倒象〉中心願也。〇案陸績本靡作䌕。〈埤倉又作縻〉縻者繫也。〈程子云係慕〉京房本作劘。〈音磨與和叶〉劘者分散也。於卦象無當。兩義皆非也。〇胡炳文云卵生爲孚。故取鶴母子之象。
孔子曰君子居其室。〈震夫巽妻同居曰室〉出其言。〈兌言以震出〉善。〈震爲仁〉則千里之外〈互艮在坤疆之外〉應之。〈二柔而五剛〉況其邇者乎。〈初剛而二柔〉居其室。出其言〈下本兌〉不善。〈本非震〉則千里之外違之。〈二五本皆剛〉況其邇者乎。〈初與二俱剛〉言出乎身。〈出乎震〉加乎民。〈二四坤〉行發乎邇。〈震爲行〉見乎遠。〈坤國外〉言行。〈兌與震〉君子之樞機。〈艮門之開閉〉樞機之發。榮辱之主也。〈震爲榮。巽爲屈辱。〉言行。君子之所以動天地也。〈否之天地動爲益〉可不愼乎。〈互艮節〉〇案中孚者。感應之卦也。風雷益者。同聲相應之卦也。故其象爲鳴鶴相和。孔子所謂善則千里之外應之者。亦同聲相應也。〈風雷本同聲〉
{〔卦象:䷼〕}六三。得敵。或鼓或罷。或泣或歌。〇象曰或鼓或罷。位不當也。
此中孚之小畜也。大离之兵。〈兼畫三〉兩帥對陣。〈上互亦倒震〉兌金巽木。互相剋伐。〈金克木〉得敵之卦也。〇卦之兩互。卽成頤卦。〈山雷卦〉頤之六三。其卦賁也。〔卦象:䷕〕無反之卦。本取倒象。〈中孚無反對〉賁倒則噬嗑也。〔卦象:䷔〕以噬嗑則离革震鳴。其象爲鼓。〈离虛中有鼓象〉离喜震聲。其象爲歌。〈喜而聲曰歌〉以賁則雖有离革。不以震鳴。〈賁上艮〉或罷者也。〈罷止也艮爲止〉离目有水。〈賁互坎〉不以震聲。〈賁上艮〉或泣者也。〈有淚無聲曰泣〉正卦倒卦。〈倒噬嗑正賁〉象不一定。〈象相反〉或之者疑之也。曷云哉。震帥旣亡。〈頤上艮〉坎輿載尸。〈賁互坎〉秘之不發。以欺敵人。〈如姜維諱孔明死〉故或鼓或罷。或泣或歌也。〇位不當者本象也。〈陰居三〉本不當位。故諸象不吉。〇案此爻與離九三。其象相同者。〈彼亦鼓與歌〉彼爲重離。此爲兼離。〈兼畫三〉卦德不殊也。〈彼亦賁噬嗑〉〇又按荀九家以震爲鼓。非矣。离有鼓象。
{〔卦象:䷉〕}六四。月幾望。馬匹亡。無咎。〇象曰馬匹亡。絶類上也。
此中孚之履也。履自夬來。〈上之三〉亦其交也。〈澤天交〉夬之時。〔卦象:䷪〕坎月之位。〈四五六〉兌缺未盈。〈夬上兌〉幾乎乾圓。〈震而兌而乾〉月幾望也。〈見括例〉乾馬在下。〈夬下乾〉我有馬匹也。〈匹之義見下〉交之爲履。則我之馬匹。〈內爲我〉忽亡在彼。〈履上乾〉馬匹亡也。是何日也。月幾望之時也。〇夬以一陰。下乘五剛。今降于乾。〈上之三〉義無咎也。〈善補過〉〇夬之一剛。〈第三畫〉絶其群類。〈下本乾〉上從二陽。〈三之上〉絶類上也。〈上升也〉离則爲絶。〇案月幾望。固爲盛滿之戒。然其在筮家。仍可以占其日期。小畜之凶。謂月幾望之夕。不可出征也。歸妹之吉。謂月幾望之夕。可以嫁妹也。〇又按程子以兩馬爲匹。然周禮校人注。四匹爲乘。〈又三乘爲皁〉一馬爲一匹也。謂馬爲匹者。兩服兩驂。必以其耦。故雖一馬亦名爲匹馬也。
{〔卦象:䷨〕}九五。有孚攣如。無咎。〇象曰有孚攣如。位正當也。
此中孚之損也。攣者手曲也。〈說文云〉五之旣變。艮肱遂折。〈本互艮〉其象攣也。一肱雖折。一肱尙完。〈上今艮〉恃以爲手。左右相救。〈一手救一手〉有孚攣如也。〈孚恃也〉大离猶舊。〈損大离〉所以孚也。〈离爲孚〉曷云哉。損自泰來。〈三之上〉泰之時。南鄰富實。〈下三陽〉北鄰耗虛。〈上三陰〉〔卦象:䷨〕移之爲損。則損南益北。〈三之上〉富不獨擅。〈救其鄰〉志相孚矣。〈六位皆應故有孚〉小畜九五宜參看。〇泰之時。柔以乘剛。〈坤在上〉今剛旣升。〈三之上〉是無咎也。〇位正當者。本象也。〈陽居五〉
{〔卦象:䷻〕}上九。翰音登于天。貞凶。〇象曰翰音登于天。何可長也。
此中孚之節也。卦以大過交易。〈澤風交〉大過之時。巽雞在下。〔卦象:䷛〕交而易之。巽雞升矣。〈今上巽〉雞曰翰音。〈曲禮文〉其位在天。〈五六天〉翰音登于天也。震以鳴之。〈二四互〉是有音也。中以离飛。〈二五夾〉飛上天也。變而爲坎。〈上今坎〉雞則亡矣。卦象〈巽今亡〉如此。雖有坎貞。〈上今坎〉於事凶也。〇雞以股行。〈巽爲股〉不能高飛。暫登必墜。何可長也。〈如亢龍之不可久〉〇案世說以朱博驟至三公。爲翰音登天。亦此義也。
「잡괘전」에서 말하였다. “중부(中孚)는 믿음이다.” 주자는 “부(孚) 자는 손톱 조(爪)와 아들 자(子)를 따르니, 새가 새끼를 품는 모양과 같다. 지금의 젖 유(乳) 자도 부(孚)를 따른다”라고 하였다. 〈정동경은 “중부에는 알의 형상이 있다”라고 하였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연괘(衍卦) 오십 괘에는 모두 미루어 옮겨 온 근본괘가 있다. 그러므로 오르고 내리며 가고 오는 데마다 각각 정상과 변화가 있고, 사시의 괘에도 또한 나아가고 물러나며 사라지고 자라는 형세가 있다. 그러나 중부와 소과에 이르면 이미 효를 옮겨 온 것도 없고 또한 소멸하거나 성장하는 것도 없으므로, 오직 교역하는 법으로 그 변동을 살핀다. 중부는 대과괘를 서로 교역한 것이다. 〈택풍괘를 교역한다.〉 대과괘는 네 양강이 가운데를 막고 있어 감괘의 의심이 지극히 크다. 〈큰 감괘가 된다.〉 의심하면 믿지 못하므로 어떠한 사물도 믿음을 이루지 못한다. 이를 교역하여 중부가 되면 큰 리괘의 믿음이 생기고, 〈세 획을 겸하여 그린 리괘다〉 속이 훤히 비게 된다. 〈삼효와 사효가 유효다.〉 이것을 중부라 한다. 읍의 속이 빈 바깥 성을 부(郛)라 하고, 〈바깥 성이다〉 갈대의 속이 빈 속껍질을 부(莩)라 하며, 〈속껍질이다〉 배의 속이 빈 오줌통을 포(脬)라 한다. 〈또한 사물 가운데 속이 빈 것은 물에 넣으면 굳세게 뜬다.〉 중부란 속이 빈 것이다. 또한 이 두 괘는 어디에서 옮겨 온 바가 없고, 다만 감괘와 리괘 두 괘에서 오르내리고 왕래하여 다시 감괘와 리괘를 이룬다. 〈세 획을 겸하여 그린다.〉 감과 리는 해와 달이다. 〈「설괘전」에서 말하였다.〉 해의 기운은 차고 달은 초하루에 비니, 이것이 윤달을 세우는 까닭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소과와 중부는 윤달의 괘다”라고 하였다.
{〔괘상:䷼〕} 중부는 새끼돼지와 물고기를 제물로 올려도 길하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고, 바르게 함이 이롭다.
이는 중부괘가 변하지 않은 경우다. 안과 밖을 가지런히 정결하게 하고, 〈아래의 거꾸로 된 손괘다〉 가운데에서는 리괘의 믿음으로 정성을 다하니, 〈이효와 오효가 사이에 끼어 이룬다〉 제사의 괘다. 이 괘는 대과괘를 교역하여 이루어진다. 〔괘상:䷛〕 〈택풍괘를 교역한다.〉 대과괘는 괘 전체가 감괘가 되니, 〈위아래가 사이에 끼어 이룬다〉 큰 돼지가 된다. 〈감은 돼지다.〉 아래에도 손괘가 있고 위에도 손괘가 있으니, 〈위에는 거꾸로 된 손괘가 있다〉 또한 물고기와 생선의 상이 있다. 〈우번의 역학에서는 손을 물고기로 삼는다.〉 이를 교역하여 중부가 되면 물고기는 비록 예전과 같지만, 〈위아래가 모두 손이다〉 예전의 큰 돼지는 이제 작은 불깐 돼지가 된다. 〈대축괘에서는 손을 불깐 돼지로 삼는다.〉 돼지의 작은 것을 돈(豚)이라 하니, 〈돼지의 새끼다〉 제사에 올리는 것이 새끼돼지와 물고기일 뿐이다. 제물과 음식의 박함이 이보다 더할 수 없다. 〈뜻은 아래에 보인다.〉 그러나 대과괘의 때에는 정성과 믿음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큰 감괘는 의심이다〉 이제는 큰 리괘의 정성으로 〈세 획을 겸하여 그린다〉 속을 비워 다스린다. 〈《예기》 〈제의〉의 글이다.〉 가운데에서 이미 믿음이 이루어졌으므로 새끼돼지와 물고기만 쓰더라도 또한 길하다. 이는 제사 희생을 점친 점사다. 대과괘의 때에는 큰 감괘의 내를 〈위아래가 사이에 끼어 이룬다〉 건너 지나갈 수 없다. 〈대과괘 상육에 보인다.〉 이를 교역하여 중부가 되면 진괘의 배가 속이 비고 〈호체 진은 나무다〉 감괘의 험난함을 마침내 지나왔으므로, 〈이제 감괘가 없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대과괘의 때에는 감괘의 덕이 바르고 굳세다. 이를 교역하여 중부가 되면 백성의 뜻은 기뻐하고 〈태괘가 아래에 있다〉 우러러 천명에 순종하여 〈손괘가 위에 있다〉 그 일을 마칠 수 있으므로, 〈이제 감괘가 없다〉 일을 주관하는 것이 이롭다. 〈‘이정(利貞)’은 일을 주관함에 이롭다는 뜻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호병문이 돈어(豚魚)를 복어와 강돌고래로 풀이한 것은 잘못이다. 옛날 희생에는 다섯 등급이 있었다. 〈《의례》에 보인다.〉 대뢰·소뢰·특생은 후한 제물이다. 새끼돼지 한 마리만 한 솥에 올리는 것은 제물이 가장 박한 경우다. 〈솥이 셋이면 물고기도 있다.〉 《국어》에서 관역보가 말하였다. “선비는 물고기를 먹고, 제사에는 새끼돼지 한 마리를 쓰며, 서인은 채소를 먹고, 제사에는 물고기를 쓴다.” 〈《예기》 〈왕제〉에서는 “서인은 보리를 물고기와 함께 올린다”라고 하였다.〉 또 초나라 굴건은 “선비에게는 새끼돼지와 개를 올리는 전(奠)이 있고, 서인에게는 구운 물고기를 올리는 천(薦)이 있다”라고 하였다. 돈어는 희생과 제찬 가운데 박한 등급의 제물이다. 완고하고 무지한 사물을 논하려는 것이라면 어찌 유독 새끼돼지와 물고기뿐이겠는가.
{〔괘상:䷼〕} 「단전」에서 말하였다. “중부는 유가 안에 있고 강이 가운데를 얻은 것이다. 기뻐하고 공손하므로 믿음이 마침내 나라를 교화한다. ‘새끼돼지와 물고기를 올려도 길하다’는 것은 믿음이 새끼돼지와 물고기에까지 미치는 것이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는 것은 나무를 타고 배의 속이 비었기 때문이다. 중부로써 바르게 함이 이로운 것은 곧 하늘에 응하는 것이다.”
리괘에서는 강효가 안에 있고 〈삼효와 사효가 강효다〉 유효가 가운데를 얻는다. 〈이효와 오효가 유효다.〉 이를 변하여 중부괘로 만들면 리괘와는 떨어져 버렸는데도, 〈세 획을 겸하여 그린다〉 유가 안에 있고 강이 가운데를 얻는다. 공자가 이를 말한 것은 이 괘가 리괘를 변하여 이루어졌음을 밝힌 것이다. 단사의 말은 교역의 상을 사용하였으므로 〈대과괘를 교역하였다〉 공자가 이를 보충하여 밝힌 것이다. 〈소과괘도 같다.〉 간괘의 성읍에서 〈삼효에서 오효까지의 호체다〉 진괘의 주인이 안에 있고, 〈이효에서 사효까지의 호체다〉 리괘의 믿음으로 교화하니, 〈이효와 오효가 사이에 끼어 이룬다〉 믿음이 마침내 나라를 교화하는 것이다. 〈기뻐하며 손순한 명령이다.〉 믿음이 새끼돼지와 물고기에까지 미친다는 것은, 리괘의 밝음과 믿음이 〈지금은 큰 리괘다〉 비록 새끼돼지와 물고기처럼 박한 제물에 대해서도 미치지 않는 데가 없다는 뜻이다. 《춘추좌씨전》에서 “진실로 밝음과 믿음이 있다면 산골짜기·시내·못가 물풀도 신명에게 올릴 수 있다”라고 한 것도 이 뜻이다. 《주역》에서 ‘믿음이 있다’고 말한 것은 모두 제사에 관한 점이다. “믿음이 있어야 약제(禴祭)를 올리는 것이 이롭다”라고 한 것과 〈췌괘와 승괘다〉 “믿음이 질그릇에 가득하다”라고 한 것, 〈비괘 초육이다〉 “믿음이 있어 우러러보는 듯하다”라고 한 것 〈관괘 「단전」이다〉 따위는 사람과 신명이 감응하는 이치 아닌 것이 없다. 하물며 중부괘이겠는가. 지금 《주역》을 읽는 이들은 ‘믿음이 새끼돼지와 물고기에 미친다’를 한유가 악어에게 제문을 지어 물러가게 한 일처럼 여기니, 본뜻에서 매우 멀다. 두 음이 강효를 타고 있으니 〈이효에서 사효까지의 호체다〉 이것이 나무를 타는 것이고, 괘 전체의 속이 비었으니 〈삼효와 사효가 유효다〉 이것이 배의 속이 빈 것이다. 속 빈 배로 내를 건너는데 어찌 짐을 빠뜨릴 이치가 있겠는가. 정약용이 살피건대, 호씨가 이를 강돌고래라 한 설을 근래 유학자들이 자못 따랐다. 《본초》에서는 “강돌고래는 저어(猪魚)라고도 한다. 동풍이 불면 입을 벌려 동쪽을 향하고 〈진은 동쪽이다〉 서풍이 불면 입을 벌려 서쪽을 향하며, 〈태는 서쪽이다〉 바람이 일면 모습을 드러내어 〈현(現)한다〉 마치 그림자가 형체에 따르고 메아리가 소리에 응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손은 바람이다.〉 이것이 이 괘의 상과 우연히 맞는 듯하지만, 강돌고래라는 이름은 구경(九經)에 보이지 않는다. 또한 ‘돈어길(豚魚吉)’ 세 글자는 문리를 이룰 수 없어 그렇게 읽을 수 없다. 박한 제사라는 뜻에 이르면 《주역》의 말에서 거듭 언급된다. “동쪽 이웃은 소를 잡지만 서쪽 이웃은 약제를 올린다”라고 한 것과 〈기제괘의 효사다〉 “두 대그릇을 써서 제향할 수 있다”라고 한 것, 〈손괘의 단사다〉 “믿음이 있어야 약제를 올리는 것이 이롭다”라고 한 것, 〈췌괘와 승괘다〉 “야윈 돼지가 믿고서 뛰어오른다”라고 한 것 〈구괘 초육이다〉 따위는 다 열거할 수 없다. 새끼돼지와 물고기를 올려도 길하다는 말도 이 뜻이다. 후세에는 법도가 무너지고 어지러워져 서인의 제사도 소를 잡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경상(卿相)의 집안 의식은 왕실보다 더 번다해졌다. 세상의 교화를 맡은 사람은 마땅히 이를 바로잡고 구제해야 한다.
{〔괘상:䷺〕} 초구는 우제를 지내면 길하다. 다른 일이 생기면 잔치하지 못한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초구가 우제를 지내 길한 것은 뜻이 아직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중부괘가 환괘로 변한 경우다. ‘우길(虞吉)’은 우제(虞祭)를 지내 길하다는 뜻이다. 환괘는 비괘에서 왔다. 〈사효가 이효로 간다.〉 비괘는 태괘와 서로 교역한다. 〈지천괘를 교역한다.〉 나라 성문의 북쪽에서 〈곤과 간이 위에 있다〉 건괘의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나니, 〈건이 밖으로 나간다〉 아버지를 장사 지내는 괘다. 〈《예기》 〈단궁〉에서 “북방에 장사 지내고 머리를 북쪽으로 둔다”라고 하였다.〉 이를 옮겨 환괘로 만들면 〈사효가 이효로 간다〉 혼의 정기를 맞이하여 돌아오고, 〈건은 정기다〉 감괘의 궁으로 돌아가 〈사효가 이효로 간다〉 간괘의 사당을 리괘로 보게 되니, 〈호체 간이 있고 리괘로 드러난다〉 반우(反虞)가 아니겠는가. 곤괘의 소와 감괘의 돼지를 〈아래는 본래 곤이다〉 손괘로 정결히 하니, 〈위는 이제 손이다〉 우제를 지내는 것이다. 옛날에는 장사 지낸 날 반드시 우제를 지냈고 한낮에 의식을 행하였다. 〈《예기》 〈단궁〉에 보인다.〉 리괘 자리의 가운데에서 〈이효가 가운데다〉 이 감괘의 일을 행하니, 〈감은 일이다〉 한낮에 우제를 지내는 것이다. 환괘는 비괘에서 왔다. 〈이효가 사효로 간다.〉 비괘의 때에는 건괘가 손님이고 손괘가 주인이 되어 〈삼효에서 오효까지가 손이다〉 장차 곤괘의 봉양을 받으려 한다. 〈비괘의 아래가 곤이다.〉 이를 옮겨 환괘로 만들면 감괘의 우환이 갑자기 닥치고 〈아래는 이제 감이다〉 건괘의 손님이 마침내 떠나가니, 〈이제 건괘가 없다〉 이것이 다른 일이 생겨 잔치하지 못하는 것이다. 〈잔치하며 마시지 못한다.〉 혹은 병이고 혹은 비인데, 〈모두 감괘의 상이다〉 그 상이 일정하지 않으므로 ‘다른 일’이라 하였다. 〈비괘와 대과괘도 이와 같다.〉 중부괘는 본래 서로 만나는 예의 괘이고, 〈세 획을 겸하여 그린 리괘다〉 태괘의 음식과 손괘의 사양함이 있으므로 또한 잔치하고 즐기는 상이다. 그래서 그 점사가 이와 같다. 큰 리괘는 아직 바뀌지 않았으니, 〈이효와 오효가 사이에 끼어 이룬다〉 뜻이 아직 변하지 않은 것이다. 효자가 부모에게 우제를 지낼 때에는 오직 정성과 믿음일 뿐이다.
{〔괘상:䷩〕} 구이는 우는 학이 그늘진 곳에 있고 그 새끼가 이에 화답하는 것이다. 내가 좋은 벼슬을 두었으니, 내가 너와 함께 이에 순종한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그 새끼가 이에 화답하는 것은 마음속으로 바라기 때문이다.”
이는 중부괘가 익괘로 변한 경우다. 리괘는 나는 새다. 〈순상의 《구가역》에서 말하였다.〉 중부는 큰 새이고 손괘는 깨끗하고 희니, 〈「설괘전」의 글이다〉 그 상이 학이다. 두 입이 서로 마주하고 〈위에는 거꾸로 된 태괘가 있다〉 두 진괘가 마주하여 우니, 〈위에는 뒤집힌 진괘가 있다〉 서로 화답하여 우는 상이다. 변하여 익괘가 되면 곤괘가 어미가 되므로 〈이제 호체에 곤이 있다〉 어미 학이 우는 것이다. 〈진은 울음이다.〉 태괘의 못은 북쪽에 있고, 〈위에는 거꾸로 된 태괘가 있다〉 물의 남쪽을 음(陰)이라 하므로 〈《이아》에서 말하였다〉 우는 학이 그늘진 곳에 있는 것이다. 간괘는 새끼가 되니, 〈삼효에서 오효까지의 호체다〉 저기서 화답하여 우는 것은 새끼 학이다. 익괘는 비괘에서 왔다. 〈사효가 초효로 간다.〉 ‘나’는 건괘의 왕이다. 건괘의 왕이 위에 있으면서 손괘의 명령으로 〈비괘의 호체가 손이다〉 간괘의 소남을 봉하여 〈이효에서 사효까지의 호체다〉 진괘의 제후가 되게 하고, 〈사효가 초효로 간다〉 곤괘의 나라를 주관하게 하니, 〈이효에서 사효까지의 호체다〉 이것이 ‘내가 좋은 벼슬을 두었다’는 뜻이다. 〈‘너’는 간괘의 소남이다.〉 미(靡)는 순종함이다. 진괘의 풀이 아래에서 〈아래는 이제 진이다〉 위의 손풍을 우러러 순종하니, 〈위는 본래 손이다〉 그 상이 풀이 바람에 쓰러지는 미(靡)다. 〈풀이 바람에 눕는 것을 미라 한다.〉 건괘의 왕과 진괘의 제후가 〈비괘의 위가 건이다〉 모두 손괘의 명령에 순종하니, 〈본래 천명이다〉 이것이 ‘내가 너와 함께 이에 순종한다’는 뜻이다. 천왕의 집안에서는 장자가 제기를 주관하므로 〈태자가 된다〉 제후로 봉하지 않고, 오직 어린 아들만 작위를 나누어 받고 땅을 나누어 가진다. 이것이 간괘의 소남이 작위를 받는 까닭이다. ‘마음속’은 정성이고 ‘바람’은 사랑이다. 리괘는 정성이 되고 〈이효와 오효가 사이에 끼어 이룬다〉 두 태괘가 서로 기뻐하니, 〈반대괘가 없으므로 거꾸로 된 상을 취한다〉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육적의 판본에는 미(靡)가 미(䌕)로 되어 있고 〈《비창》에는 또 미(縻)로 되어 있다〉 미(縻)는 매어 둔다는 뜻이다. 〈정자는 “마음에 매이고 사모함이다”라고 하였다.〉 경방의 판본에는 마(劘)로 되어 있는데, 〈음은 마(磨)이며 화(和)와 운이 맞는다〉 마(劘)는 나누어 흩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괘상에 맞지 않으므로 두 뜻이 모두 옳지 않다. 호병문은 “알에서 태어나는 것을 부(孚)라 하므로 학의 어미와 새끼의 상을 취하였다”라고 하였다.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가 그 집에 있으면서 〈진괘의 남편과 손괘의 아내가 함께 사는 곳을 집이라 한다〉 말을 내어 〈태괘의 말을 진괘로 내어 보낸다〉 선하면 〈진은 어짊이다〉 천 리 밖에서도 〈호체 간이 곤의 국경 밖에 있다〉 이에 응한다. 〈이효가 유효이고 오효가 강효다.〉 하물며 가까운 사람이겠는가. 〈초효가 강효이고 이효가 유효다.〉 그 집에 있으면서 말을 내어 〈아래는 본래 태괘다〉 선하지 않으면 〈본래 진괘가 아니다〉 천 리 밖에서도 이를 거스른다. 〈이효와 오효가 본래 모두 강효다.〉 하물며 가까운 사람이겠는가. 〈초효와 이효가 모두 강효다.〉 말은 몸에서 나와 〈진괘에서 나온다〉 백성에게 미치고, 〈이효에서 사효까지가 곤이다〉 행실은 가까운 데서 일어나 〈진은 행함이다〉 먼 곳에 나타난다. 〈곤괘 나라의 밖이다.〉 말과 행실은 〈태와 진이다〉 군자의 지도리와 쇠뇌 장치다. 〈간괘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이다.〉 지도리와 쇠뇌 장치가 움직이는 것이 영화와 치욕의 주인이 된다. 〈진은 영화이고 손은 굽혀 욕됨이다.〉 말과 행실은 군자가 천지를 움직이는 수단이니, 〈비괘의 천지가 움직여 익괘가 된다〉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호체 간은 절제함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중부는 감응하는 괘다. 풍뢰익괘는 같은 소리가 서로 응하는 괘이므로 그 상이 우는 학이 서로 화답하는 것이 되었다. 공자가 말한 “선하면 천 리 밖에서도 이에 응한다”는 것도 같은 소리가 서로 응한다는 뜻이다. 〈바람과 우레는 본래 같은 소리다.〉
{〔괘상:䷼〕} 육삼은 적을 만난다. 혹 북을 치고 혹 그만두며, 혹 울고 혹 노래한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혹 북을 치고 혹 그만두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중부괘가 소축괘로 변한 경우다. 큰 리괘의 군대에서 〈세 획을 겸하여 그린다〉 두 장수가 마주 진을 친다. 〈위의 호체 역시 거꾸로 된 진괘다.〉 태괘의 쇠와 손괘의 나무가 서로 치고 베니, 〈쇠가 나무를 이긴다〉 적을 만나는 괘다. 이 괘의 두 호체가 곧 이괘를 이룬다. 〈산뢰괘다.〉 이괘 육삼이 변한 괘는 비괘다. 〔괘상:䷕〕 반대괘가 없는 괘이므로 본래 거꾸로 된 상을 취한다. 〈중부는 반대괘가 없다.〉 비괘를 거꾸로 보면 서합괘다. 〔괘상:䷔〕 서합괘로 보면 리괘의 가죽에 진괘가 울리니 그 상이 북이 된다. 〈리괘는 속이 비어 북의 상이 있다.〉 리괘의 기쁨에 진괘의 소리가 나므로 그 상이 노래가 된다. 〈기뻐하며 소리 내는 것을 노래라 한다.〉 비괘로 보면 비록 리괘의 가죽이 있어도 진괘로 울리지 않으니, 〈비괘의 위가 간이다〉 혹 그만두는 것이다. 〈파(罷)는 그침이고 간은 그침이다.〉 리괘의 눈에 물이 있으나 〈비괘의 호체가 감이다〉 진괘의 소리가 나지 않으니, 〈비괘의 위가 간이다〉 혹 우는 것이다. 〈눈물만 있고 소리가 없는 것을 읍(泣)이라 한다.〉 정괘와 거꾸로 된 괘, 곧 〈거꾸로 보면 서합이고 바로 보면 비다〉 두 상이 일정하지 않고 서로 반대되므로 ‘혹’이라 하여 의심한 것이다. 무슨 뜻인가. 진괘의 장수가 이미 죽고 〈이괘의 위는 간이다〉 감괘의 수레가 시체를 싣는데, 〈비괘의 호체가 감이다〉 이를 감추어 알리지 않고 적을 속인다. 〈강유가 제갈공명의 죽음을 숨긴 일과 같다.〉 그러므로 혹 북을 치고 혹 그만두며, 혹 울고 혹 노래하는 것이다. 자리가 마땅하지 않다는 것은 본괘의 상이다. 〈음이 삼효에 있다.〉 본래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므로 여러 상이 길하지 않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이 효는 리괘 구삼과 그 상이 같다. 〈그 효에도 북과 노래가 있다.〉 저쪽은 중리괘이고 이쪽은 세 획을 겸하여 그린 리괘이니, 괘의 덕이 서로 다르지 않다. 〈저쪽도 비괘와 서합괘다.〉 또 정약용이 살피건대, 순상의 《구가역》에서 진괘를 북으로 삼은 것은 옳지 않다. 북의 상은 리괘에 있다.
{〔괘상:䷉〕} 육사는 달이 거의 보름이 되었을 때 말 한 필이 없어지는 것이다. 허물이 없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말 한 필이 없어지는 것은 그 무리를 끊고 위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는 중부괘가 리괘로 변한 경우다. 리괘는 쾌괘에서 왔으며, 〈상효가 삼효로 간다〉 또한 쾌괘를 교역한 괘다. 〈택천괘를 교역한다.〉 쾌괘의 때에 〔괘상:䷪〕 감괘의 달이 있을 자리는 사·오·상효인데, 태괘의 이지러진 달이 아직 차지 않아 〈쾌괘의 위가 태다〉 거의 건괘의 둥근달이 되려 한다. 〈진을 거쳐 태를 거쳐 건이 된다.〉 이것이 달이 거의 보름이 되는 것이다. 〈《괄례》에 보인다.〉 건괘의 말이 아래에 있으니 〈쾌괘의 아래가 건이다〉 나에게 말 한 필이 있는 것이다. 〈필(匹)의 뜻은 아래에 보인다.〉 이를 교역하여 리괘가 되면 나의 말 한 필이 〈안쪽이 나다〉 홀연히 없어져 저쪽에 있게 되니, 〈리괘의 위가 건이다〉 말 한 필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날이 어느 날인가. 달이 거의 보름이 되는 때다. 쾌괘에서는 한 음이 아래에서 다섯 강효를 타고 있었지만, 이제 건괘로 내려왔으니 〈상효가 삼효로 간다〉 의리상 허물이 없다. 〈허물을 잘 보충하였다.〉 쾌괘의 한 강효가 〈셋째 획이다〉 그 무리를 끊고 〈아래는 본래 건이다〉 위로 올라가 두 양을 따르니, 〈삼효가 상효로 간다〉 이것이 그 무리를 끊고 위로 올라간다는 뜻이다. 〈상(上)은 올라감이다.〉 리괘는 끊음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달이 거의 보름이라는 것은 참으로 가득 참을 경계하는 말이지만 점치는 집에서는 여전히 그 날짜를 점칠 수 있다. 소축괘의 흉함은 달이 거의 보름이 된 저녁에는 출정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고, 귀매괘의 길함은 달이 거의 보름이 된 저녁에는 누이를 시집보낼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정약용이 살피건대, 정자는 말 두 마리를 필(匹)이라 하였다. 그러나 《주례》 〈교인〉의 주에는 네 필을 승(乘)이라 하였고, 〈또 세 승을 조(皁)라 한다〉 말 한 마리를 한 필이라 하였다. 말을 필이라 하는 것은 두 복마와 두 참마가 반드시 각각 짝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 한 마리라도 또한 필마(匹馬)라 이름한다.
{〔괘상:䷨〕} 구오는 믿음이 있어 손이 굽은 듯하니 허물이 없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믿음이 있어 손이 굽은 듯하다는 것은 자리가 바르고 마땅하기 때문이다.”
이는 중부괘가 손괘로 변한 경우다. 련(攣)은 손이 굽은 것이다. 〈《설문해자》에서 말하였다.〉 오효가 이미 변하면 간괘의 팔이 마침내 꺾이니, 〈본래의 호체가 간이다〉 그 상이 손이 굽은 것이다. 한 팔이 비록 꺾여도 한 팔은 아직 온전하여 〈위는 이제 간이다〉 그것을 믿고 손으로 삼아 좌우가 서로 구한다. 〈한 손으로 다른 손을 구한다.〉 이것이 ‘믿음이 있어 손이 굽은 듯하다’는 뜻이다. 〈부(孚)는 믿고 의지함이다.〉 큰 리괘가 여전히 예전과 같으므로 〈손괘에도 큰 리괘가 있다〉 믿음이 있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손괘는 태괘에서 왔다. 〈삼효가 상효로 간다.〉 태괘의 때에는 남쪽 이웃이 부유하고 가득하지만 〈아래의 세 양이다〉 북쪽 이웃은 줄어들어 비어 있다. 〈위의 세 음이다.〉 〔괘상:䷨〕 이를 옮겨 손괘로 만들면 남쪽을 덜어 북쪽에 보태므로, 〈삼효가 상효로 간다〉 부를 홀로 차지하지 않고 〈그 이웃을 구한다〉 뜻이 서로 믿게 된다. 〈여섯 자리가 모두 응하므로 믿음이 있다.〉 소축괘 구오와 함께 살펴야 한다. 태괘의 때에는 유가 강을 타고 있었지만, 〈곤괘가 위에 있다〉 이제 강이 이미 올라갔으므로 〈삼효가 상효로 간다〉 허물이 없다. 자리가 바르고 마땅하다는 것은 본괘의 상이다. 〈양이 오효에 있다.〉
{〔괘상:䷻〕} 상구는 닭 울음소리가 하늘에 오르는 것이다. 바르게 하여도 흉하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닭 울음소리가 하늘에 오르는 것이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이는 중부괘가 절괘로 변한 경우다. 이 괘는 대과괘를 교역하여 이루어진다. 〈택풍괘를 교역한다.〉 대과괘의 때에는 손괘의 닭이 아래에 있다. 〔괘상:䷛〕 이를 교역하여 바꾸면 손괘의 닭이 위로 올라간다. 〈지금 위가 손이다.〉 닭을 한음(翰音)이라 한다. 〈《예기》 〈곡례〉의 글이다.〉 그 자리가 하늘에 있으니, 〈오효와 상효가 하늘의 자리다〉 닭 울음소리가 하늘에 오르는 것이다. 진괘로 그것을 울리므로 〈이효에서 사효까지의 호체다〉 소리가 있고, 가운데의 리괘로 날아 〈이효에서 오효까지가 사이에 끼어 이룬다〉 하늘로 올라간다. 변하여 감괘가 되면 〈위는 이제 감이다〉 닭이 없어지니, 괘의 상이 〈손괘가 이제 없어졌다〉 이와 같다. 비록 감괘의 바르고 굳셈이 있더라도 〈위는 이제 감이다〉 일에는 흉하다. 닭은 넓적다리로 걸으므로 〈손은 넓적다리다〉 높이 날 수 없다. 잠시 올랐다가 반드시 떨어지니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높이 오른 용이 오래갈 수 없는 것과 같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세상 사람들이 주박이 갑자기 삼공의 자리에 오른 일을 ‘닭 울음소리가 하늘에 올랐다’고 평한 것도 이 뜻이다.
정약용은 중부를 단순한 심리적 신뢰가 아니라 ‘속이 비어 감응하는 구조’로 읽는다. 대과괘를 교역하면 가운데를 막던 네 양이 풀리고 큰 리괘의 밝음과 믿음이 드러난다. 그래서 새끼돼지와 물고기처럼 박한 제물만 올려도 정성이 신명에게 미치고, 속 빈 배가 험한 내를 건널 수 있다고 해석한다. 돈어를 강돌고래로 풀이한 설은 경전과 제례의 등급을 들어 배척한다.
여섯 효에서는 우제, 학의 모자 화답, 전쟁터의 북과 곡성, 보름 무렵 사라지는 말, 이웃을 돕는 굽은 손, 하늘에 오른 닭을 차례로 해명한다. 괘의 교역·도상·예제와 글자 고증을 촘촘히 결합하며, 말과 행실이 먼 곳까지 감응한다는 원리를 중부의 핵심으로 삼는다. 그러나 신뢰는 허황한 상승이 아니라 비움과 절제에 뿌리내려야 하므로, 분수 밖으로 오른 닭은 오래갈 수 없다고 경계한다.
교감·번역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