頤 이
아래괘 震 우레 · 위괘 艮 산
사물이 쌓인 뒤에야 기를 수 있으므로 이괘로 이었다.
괘사
貞吉。觀頤,自求口實。
정길. 관이, 자구구실.
바르게 하면 길하다. 기르는 도를 살피고, 스스로 입에 채울 것을 구한다.
단전
頤貞吉,養正則吉也。觀頤,觀其所養也;自求口實,觀其自養也。天地養萬物,聖人養賢,以及萬民;頤之時義大矣哉!
이괘가 바르면 길한 것은 바르게 기르면 길하기 때문이다. 기르는 도를 살핀다는 것은 그 기르는 바를 살피는 것이고, 스스로 입에 채울 것을 구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기르는 방식을 살피는 것이다. 하늘과 땅은 만물을 기르고, 성인은 현자를 길러 만민에게까지 미치게 한다. 이괘의 때와 뜻이 크도다!
대상전
山下有雷,頤;君子以慎言語,節飲食。
산 아래에 우레가 있는 것이 이괘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말을 삼가고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한다.
여섯 효
효사
舍爾靈龜,觀我朵頤,凶。
사이령귀, 관아타이, 흉.
네 신령한 거북을 버려두고 내가 턱을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니 흉하다.
소상전
觀我朵頤,亦不足貴也。
내가 턱을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또한 귀하게 여길 만하지 않다.
효사
顛頤,拂經,于丘頤,征凶。
전이, 불경, 우구이, 정흉.
기름을 거꾸로 구하여 떳떳한 법도를 어긴다. 언덕 위에서 길러 주기를 구하니, 나아가면 흉하다.
소상전
六二征凶,行失類也。
육이가 나아가면 흉한 것은 행하면서 같은 부류를 잃기 때문이다.
효사
拂頤,貞凶,十年勿用,无攸利。
불이, 정흉, 십년물용, 무유리.
기르는 도를 어긴다. 바르게 하더라도 흉하다. 십 년 동안 쓰지 말라. 이로운 바가 없다.
소상전
十年勿用,道大悖也。
십 년 동안 쓰지 말라는 것은 도를 크게 거스르기 때문이다.
효사
顛頤吉,虎視眈眈,其欲逐逐,无咎。
전이길, 호시탐탐, 기욕축축, 무구.
기름을 거꾸로 구하지만 길하다. 범이 노려보듯 전념하고, 바라는 것을 거듭 구해도 허물이 없다.
소상전
顛頤之吉,上施光也。
기름을 거꾸로 구하여 길한 것은 위에서 베푸는 일이 빛나기 때문이다.
효사
拂經,居貞吉,不可涉大川。
불경, 거정길, 불가섭대천.
떳떳한 법도를 어기지만, 바르게 머물면 길하다. 큰 내를 건너서는 안 된다.
소상전
居貞之吉,順以從上也。
바르게 머물러 길한 것은 순종하여 위를 따르기 때문이다.
효사
由頤,厲吉,利涉大川。
유이, 려길, 이섭대천.
기름이 여기에서 말미암는다. 위태롭게 여기면 길하고,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소상전
由頤厲吉,大有慶也。
기름이 여기에서 말미암아 위태롭게 여기면 길한 것은 큰 경사가 있기 때문이다.
네 해석의 갈림길
갈리는 지점기름의 범위를 정이천은 생명과 몸, 덕과 타인까지 한없이 넓히지만, 주희는 말과 음식을 삼가는 가장 절실한 실천 하나로 다시 좁혀 되돌린다.
왕필
이는 말과 음식을 비롯해 자신과 남을 어떻게 기를지를 묻는다. 왕필은 총애와 녹을 조급히 구하지 말고 바름과 돈후함으로 양과 현자를 길러야 한다고 본다.
정이천
정이는 이를 생명·몸·덕·타인을 기르는 모든 도로 확장한다. 말과 음식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덕과 천하의 정치에까지 이어지는 핵심이며, 누구를 무엇으로 기르고 자신이 무엇을 구해 먹는지를 보면 선악과 길흉(길함과 흉함, 즉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을 알 수 있다.
효사(각 효에 붙은 판단문)는 자립할 재질이 있어도 욕망에 굴복하는 위험, 부적절한 대상에게 기름을 구하는 모욕, 바른 도를 어긴 기름, 아래 현자의 도움으로 천하를 기르는 대신, 현명한 사부에게 의지하는 유약한 임금, 천하의 기름을 맡은 신하의 막중한 책임과 경계를 보여 준다.
주희
주희는 위아래 두 양과 가운데 네 음, 위의 멈춤과 아래의 움직임에서 턱과 입의 상을 보고 기름의 뜻을 밝힌다. 남을 기르는 방법과 자신을 기르는 방법이 모두 바르면 길하며, 말과 음식을 삼가는 것이 덕과 몸을 기르는 가장 절실한 일이다.
효에서는 욕망에 움직이는 자립 능력의 상실, 자기 부류가 아닌 대상에게 기름을 구하는 흉함, 아래 현자에게 의지해 베푸는 길함, 상구(맨 위 자리의 양효)에게 의존하는 군주의 한계, 천하의 기름을 맡은 양강(양의 굳세고 능동적인 성질)한 현자의 책임을 상과 점으로 제시한다.
정약용
이괘는 위턱은 멈추고 아래턱은 움직이며 속은 빈 형상에서, 입과 봉양이라는 두 뜻을 함께 밝힌다. 정약용은 관괘·임괘에서의 추이(효가 옮겨 변한 관계를 살펴 괘를 읽는 법)와 괘의 정방향·도괘를 구분하여 누가 누구를 어떻게 기르는지 검증한다. 여섯 효는 녹을 탐해 턱을 늘어뜨리는 경우, 언덕에서 봉양을 기다리는 경우, 큰 내를 건너는 경우를 대비하며, 기르는 대상과 스스로를 기르는 방식이 모두 바르게 맞아야 길하다고 판정한다.
현대적으로 읽기
이괘(말과 음식과 자원을 바르게 기르고 공급하는 상황)
이(頤)는 음식만이 아니라 정보·언어·관계·자원을 무엇으로 채우고 누구에게 공급하는지 묻는다. 초구(첫째 자리의 양효)의 ‘네 신령한 거북을 버려두고 내가 턱을 움직이는 것을 바라본다’는 자립할 능력이 있어도 욕망 때문에 외부의 인정에 매달리면 스스로를 잃는다는 경고다.
육사(넷째 자리의 음효)의 ‘기름을 거꾸로 구하지만 길하다. 범이 노려보듯 전념한다’는 리더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유능한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길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다만 권위만 빌리고 책임을 넘겨서는 안 된다.
왕필(王弼) 《주역주》 — 64괘 주석
이 64괘 주석의 저자는 왕필(王弼)이다. 한강백(韓康伯)은 계사전 등 일부 십익 주석의 저자로, 이 층과 구분한다.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言語飲食猶慎而節之而况其餘乎
朶頥者嚼也以陽處下而為動始不能令物由巳養動而求養者也夫安身莫若不競修巳莫若自保守道則福至求禄則辱來居養賢之世不能貞其所履以全其徳而舍其靈龜之明兆羡我朶頥而躁求離其致養之至道闚我寵䘵而競進凶莫甚焉
養下曰顛拂違也經猶義也丘所履之常也處下體之中无應於上反而養初居下不奉上而反養下故曰顚頥拂經于丘也以此而養未見其福也以此而行未見有與故曰頥征凶
類皆上養而二處下養初
履夫不正以養於上納上以謟者也拂養正之義故曰拂頥貞凶也處頥而為此行十年見棄者也立行於斯无施而利
體屬上體居得其位而應於初以上養下得頥之義故曰顚頥吉也下交不可以凟故虎視眈眈威而不猛不惡而嚴養徳施賢何可有利故其欲逐逐尚敦實也修此二者然後乃得全其吉而无咎觀其自養則履正察其所養則養陽頥爻之貴斯為盛矣
以陰居陽拂頥之義也行則失類故宜居貞也无應於下而比於上故可守貞從上得頥之吉雖得居貞之吉處頥違謙難未可涉也
以陽處上而履四陰陰不能獨為主必宗於陽也故莫不由之以得其養故曰由頥為衆陰之主不可瀆也故厲乃吉有似家人悔厲之義貴而无位是以厲也髙而有民是以吉也為養之主物莫之違故利涉大川也
말과 음식도 오히려 삼가고 절제해야 하는데 하물며 그 밖의 일이겠는가.
‘턱을 늘어뜨린다’는 것은 씹는다는 뜻이다. 양으로 아래에 있고 움직임의 처음이 되어 사물이 자기를 통해 길러지게 하지 못하고, 움직여서 길러 주기를 구하는 자다. 몸을 편안히 하는 데는 다투지 않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고, 자기를 닦는 데는 스스로 보전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도를 지키면 복이 오고 녹을 구하면 치욕이 온다. 현자를 기르는 세상에 있으면서 자기가 밟은 바를 바르게 하여 덕을 온전히 하지 못하고, 신령한 거북의 밝은 조짐을 버린 채 나의 움직이는 턱을 부러워하며 조급히 구한다. 길러지는 지극한 도를 떠나 나의 총애와 녹을 엿보고 다투어 나아가니 흉함이 이보다 심할 수 없다.
아래를 기르는 것을 ‘거꾸로’라 하고 ‘불’은 어김이다. ‘경’은 의와 같고 언덕은 늘 밟는 곳이다. 하괘의 가운데에 있으면서 위로 응함이 없고, 도리어 초구를 기른다. 아래에 있으면서 위를 받들지 않고 도리어 아래를 기르므로 ‘거꾸로 기르며 법도를 어기고 언덕에서 구한다’고 한다. 이와 같이 길러서는 그 복을 볼 수 없고, 이와 같이 행해서는 함께할 이를 볼 수 없다. 그러므로 ‘기르기 위해 나아가면 흉하다’고 한다.
같은 무리는 모두 위가 아래를 기르는데 육이만 아래에 있으면서 초구를 기른다.
바르지 않은 자리를 밟고 위로부터 길러지며, 윗사람을 받아들이면서 아첨하는 자다. 기르는 바른 뜻을 어기므로 ‘기르는 도를 어기니 바르게 해도 흉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이의 때에 처해 이런 행실을 하면 십 년 동안 버림받는다. 이런 행실을 세우면 베풀어 이롭게 할 곳이 없다.
몸은 상괘에 속하고 제자리를 얻어 초구에 응하며, 위에서 아래를 길러 이의 뜻을 얻는다. 그러므로 ‘거꾸로 기르니 길하다’고 한다. 아래와 사귈 때는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범이 노려보듯 위엄은 있으나 사납지 않고, 미워하지 않아도 엄정하다. 덕을 기르고 현자에게 베푸는 일에 어찌 이익을 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바라는 바가 잇달아도 여전히 돈후하고 성실하다. 이 두 가지를 닦은 뒤에야 그 길함을 온전히 하고 허물이 없을 수 있다. 스스로 기르는 바를 보면 바름을 밟고, 길러 주는 대상을 살피면 양을 기른다. 이괘의 효 가운데 귀함이 여기에서 가장 성하다.
음으로 양의 자리에 있어 기르는 뜻을 어긴다. 나아가면 같은 무리를 잃으므로 바르게 머무는 것이 마땅하다. 아래에 응함은 없지만 위와 가까우므로 바름을 지켜 위를 따르면 길러짐의 길함을 얻을 수 있다. 비록 바르게 머무는 길함을 얻어도 이의 때에 겸손을 어겼으니 어려움을 아직 건널 수 없다.
양으로 맨 위에 있고 네 음효 위를 밟는다. 음은 홀로 주인이 될 수 없어 반드시 양을 받든다. 그러므로 모두 이 효를 말미암아 길러짐을 얻으니 ‘이로 말미암아 기른다’고 한다. 뭇 음의 주인이 되어 함부로 할 수 없으므로 위태로움을 알아야 길하다. 가인괘의 ‘후회하고 위태롭게 여기면 길하다’는 뜻과 비슷하다. 존귀하지만 지위가 없으므로 위태롭고, 높이 있으면서 백성을 소유하므로 길하다. 기름의 주인이 되어 사물이 어기지 않으므로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이는 말과 음식을 비롯해 자신과 남을 어떻게 기를지를 묻는다. 왕필은 총애와 녹을 조급히 구하지 말고 바름과 돈후함으로 양과 현자를 길러야 한다고 본다.
교감·번역 주
정이천 《이천역전》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震下艮上〉
頥序卦物畜然後可養故受之以頥夫物既畜聚則必有以養之无養則不能存息頥所以次大畜也卦上艮下震上下二陽爻中含四隂上止而下動外實而中虚人頥頷之象也頥養也人口所以飲食養人之身故名為頥聖人設卦推養之義大至於天地養育萬物聖人養賢以及萬民與人之養生養形養徳養人皆頥養之道也動息節宣以養生也飲食衣服以養形也威儀行義以養徳也推已及物以養人也
頥貞吉觀頥自求口實
頥之道以正則吉也人之養身養徳養人養於人皆以正道則吉也天地造化養育萬物各得其宜者亦正而已矣觀頥自求口實觀人之所頥與其自求口實之道則善惡吉凶可見矣
彖曰頥貞吉養正則吉也觀頥觀其所養也自求口實觀其自養也
貞吉所養者正則吉也所養謂所養之人與養之之道自求口實謂其自求養身之道皆以正則吉也
天地養萬物聖人養賢以及萬民頤之時大矣哉聖人極言頤之道而贊其大天地之道則養育萬物養育萬物之道正而已矣聖人則養賢才與之共天位使之食天祿俾施澤於天下養賢以及萬民也養賢所以養萬民也夫天地之中品物之衆非養則不生聖人裁成天地之道輔相天地之宜以養天下至於鳥獸草木皆有養之之政其道配天地故夫子推頤之道贊天地與聖人之功曰頤之時大矣哉或云義或云用或止云時以其大者也萬物之生與養時為大故云時
象曰山下有雷頤君子以慎言語節飲食
以二體言之山下有雷雷震於山下山之生物皆動其根荄發其萌芽為養之象以上下之義言之艮止而震動上止下動頤頷之象以卦形言之上下二陽中含四隂外實中虚頤口之象口所以養身也故君子觀其象以養其身慎言語以養其徳節飲食以養其體不唯就口取養義事之至近而所繫至大者莫過於言語飲食也在身為言語於天下則凡命令政教出於身者皆是慎之則必當而无失在身為飲食於天下則凡貨資財用養於人者皆是節之則適宜而无傷推養之道養徳養天下莫不然也
初九舍爾靈龜觀我朶頤凶
蒙之初六蒙者也爻乃主發蒙而言頤之初九亦假外而言爾謂初也舍爾之靈龜乃觀我而朶頤我對爾而設初之所以朶頤者四也然非四謂之也假設之辭爾九陽體剛明其才智足以養正者也龜能咽息不食靈龜喻其明智而可以不求養於外也才雖如是然以陽居動體而在頤之時求頤人所欲也上應於四不能自守志在上行説所欲而朶頥者也心既動則其自失必矣迷欲而失已以陽而從隂則何所不至是以凶也朶頥為朶動其頥頷又人見食而欲之則動頥垂涎故以為象
象曰觀我朶頥亦不足貴也
九動體朶頥謂其説隂而志動既為欲所動則雖有剛健明智之才終必自失故其才亦不足貴也人之貴乎剛者為其能立而不屈於欲也貴乎明者為其能照而不失於正也既惑所欲而失其正何剛明之有為可賤也
六二顛頥拂經于丘頥征凶
女不能自處必從男隂不能獨立必從陽二隂柔不能自養待養於人者也天子養天下諸侯養一國臣食君上之祿民頼司牧之養皆以上養下理之正也二既不能自養必求養於剛陽若反下求於初則為顛倒故云顛頥顛則拂違經常不可行也若求養於丘則往必有凶丘在外而髙之物謂上九也卦止二陽既不可顛頥于初若求頥于上九往則有凶在頥之時相應則相養者也上非其應而往求養非道妄動是以凶也顛頥則拂經不獲其養爾妄求於上往則得凶也今有人才不足以自養見在上者勢力足以養人非其族類妄往求之取辱得凶必矣六二中正在他卦多吉而凶何也曰時然也隂柔既不足以自養初上二爻皆非其與故往求則悖理而得凶也
象曰六二征凶行失類也
征而從上則凶者非其類故也往求而失其類得凶宜矣行往也
六三拂頥貞凶十年勿用无攸利
頤之道唯正則吉三以隂柔之質而處不中正又在動之極是柔邪不正而動者也其養如此拂違於頤之正道是以凶也得頤之正則所養皆吉求養養人則合於義自養則成其徳三乃拂違正道故戒以十年勿用十數之終謂終不可用无所徃而利也
象曰十年勿用道大悖也
所以戒終不可用以其所由之道大悖義理也
六四顛頤吉虎視眈眈其欲逐逐无咎
四在人上大臣之位六以隂居之隂柔不足以自養况養天下乎初九以剛陽居下在下之賢也與四為應四又柔順而正是能順於初賴初之養也以上養下則為順今反求下之養顛倒也故曰顛頤然已不勝其任求在下之賢而順從之以濟其事則天下得其養而已无曠敗之咎故為吉也夫居上位者必有才徳威望為下民所尊畏則事行而衆心服從若或下易其上則政出而人違刑施而怨起輕於陵犯亂之由也六四雖能順從剛陽不廢厥職然質本隂柔賴人以濟人之所輕故必養其威嚴耽耽然如虎視則能重其體貌下不敢易又從於人者必有常若間或无繼則其政敗矣其欲謂所須用者必逐逐相繼而不乏則其事可濟若取於人而无繼則困窮矣既有威嚴又所施不窮故能无咎也二顛頤則拂經四則吉何也曰二在上而反求養於下下非其應類故為拂經四則居上位以貴下賤使在下之賢由已以行其道上下之志相應而施於民何吉如之自三以下養口體者也四以上養徳義者也以君而資養於臣以上位而賴養於下皆養德也
象曰顛頤之吉上施光也
顛倒求養而所以吉者盖得剛陽之應以濟其事已居上之徳施光明被于天下吉孰大焉
六五拂經居貞吉不可渉大川
六五頤之時居君位養天下者也然其隂柔之質才不足以養天下上有剛陽之賢故順從之賴其養己以濟天下君者養人者也反賴人之養是違拂於經常既以己之不足而順從於賢師傅上師傅之位也必居守貞固篤於委信則能輔翼其身澤及天下故吉也隂柔之質无貞剛之性故戒以能居貞則吉以隂柔之才雖𠋣賴剛賢能持循於平時不可處艱難變故之際故云不可渉大川也以成王之才不至甚柔弱也當管蔡之亂幾不保於周公况其下者乎故書曰王亦未敢誚公頼二公得終信故艱險之際非剛明之主不可恃也不得已而濟艱險者則有矣發此義者所以湥戒於為君也於上九則據為臣致身盡忠之道言故不同也
象曰居貞之吉順以從上也
居貞之吉者謂能堅固順從於上九之賢以養天下也
上九由頤厲吉利渉大川
上九以剛陽之徳居師傅之任六五之君柔順而從於己賴已之養是當天下之任天下由之以養也以人臣而當是任必常懐危厲則吉也如伊尹周公何嘗不憂勤兢畏故得終吉夫以君之才不足而𠋣賴於己身當天下大任宜竭其才力濟天下之艱危成天下之治安故曰利渉大川得君如此之專受任如此之重苟不濟天下艱危何足稱委遇而謂之賢乎當盡誠竭力而不顧慮然惕厲則不可忘也
象曰由頤厲吉大有慶也
若上九之當大任如是能兢畏如是天下被其徳澤是大有福慶也
이괘는 아래가 진이고 위가 간이다. 「서괘전」은 ‘사물이 쌓인 뒤에야 기를 수 있으므로 이괘로 받았다’고 했다. 사물이 이미 모여 쌓이면 반드시 그것을 길러 주어야 한다. 기름이 없으면 생존하고 번식할 수 없으므로 이괘가 대축괘 다음에 온다. 괘는 위가 간이고 아래가 진이다. 위아래 두 양효가 가운데 네 음효를 품고, 위에서는 멈추고 아래에서는 움직이며, 밖은 충실하고 안은 비어 있으니 사람의 턱과 입 모양이다. 頤는 기름이다. 사람의 입은 음식을 먹어 몸을 기르므로 괘 이름을 이라 했다. 성인은 괘를 세워 기른다는 뜻을 미루었다. 크게는 천지가 만물을 양육하는 일, 성인이 현자를 길러 만민에게 미치게 하는 일에서부터 사람이 생명을 기르고 몸을 기르고 덕을 기르고 남을 기르는 일까지 모두 이양의 도다. 움직임과 쉼을 절도 있게 펴는 것은 생명을 기르는 일이고, 음식과 의복은 몸을 기르는 일이며, 위의와 의로운 행실은 덕을 기르는 일이고, 자기에게서 미루어 남에게 미치는 것은 남을 기르는 일이다.
[괘사] ‘이는 바르게 하면 길하다. 기르는 바를 살펴보고 스스로 입에 채울 것을 구한다.’ 이양의 도가 바르면 길하다. 사람이 몸과 덕과 남을 기르는 일, 남에게서 길러지는 일이 모두 바른 도로 이루어지면 길하다. 천지의 조화가 만물을 양육하여 각각 마땅함을 얻게 하는 것도 바름일 뿐이다. 남이 무엇을 기르는지와 스스로 입에 채울 것을 구하는 방법을 보면 선악과 길흉을 알 수 있다.
[단전] ‘이가 바르면 길하다는 것은 바르게 길러야 길하다는 말이다. 기르는 바를 본다는 것은 그가 무엇을 기르는지 보는 것이고, 스스로 입에 채울 것을 구한다는 것은 그가 자신을 어떻게 기르는지 보는 것이다.’ 바르면 길하다는 것은 기르는 대상과 방법이 바르면 길하다는 말이다. 기르는 대상은 길러 주는 사람과 기르는 방법을 함께 뜻하고, 스스로 입에 채울 것을 구한다는 것은 스스로 몸을 기르는 방법을 말한다. 모두 바르면 길하다.
‘천지는 만물을 기르고 성인은 현자를 길러 만민에게 미친다. 이양의 때가 크도다.’ 성인이 이양의 도를 극진히 말하고 그 큼을 찬탄했다. 천도의 일은 만물을 양육하는 것이고, 만물을 양육하는 도는 바름일 뿐이다. 성인은 현자를 길러 하늘의 지위를 함께 누리고 하늘의 녹을 먹게 하며 천하에 은택을 베풀게 한다. 이것이 현자를 길러 만민에게 미치는 일이다. 현자를 기르는 것은 만민을 기르기 위해서다. 천지 사이 수많은 종류의 사물은 기름이 없으면 생겨날 수 없다. 성인은 천지의 도를 재단해 이루고 천지의 마땅함을 도와 천하를 기르며, 새와 짐승과 초목에까지 기르는 정치를 미친다. 그 도가 천지와 짝하므로 공자가 이양의 도를 미루어 천지와 성인의 공을 찬탄하고 ‘이양의 때가 크도다’라고 했다. 어떤 괘에서는 뜻이 크다고 하고, 어떤 괘에서는 쓰임이 크다고 하며, 어떤 괘에서는 다만 때가 크다고 한다. 각각 크게 보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만물이 생겨나고 길러지는 데에는 때가 가장 중요하므로 여기서는 때라고 했다.
[대상전] ‘산 아래에 우레가 있는 것이 이다. 군자는 이로써 말을 삼가고 음식을 절제한다.’ 두 몸체로 말하면 산 아래에 우레가 있다. 우레가 산 아래에서 떨치면 산에서 생기는 사물의 뿌리가 모두 움직이고 싹이 나므로 기르는 상이다. 위아래의 뜻으로 말하면 간은 멈추고 진은 움직이므로 위는 멈추고 아래는 움직여 턱의 상이 된다. 괘 모양으로 말하면 위아래 두 양이 가운데 네 음을 품어 밖은 충실하고 안은 비어 있으므로 입의 상이다. 입은 몸을 기른다. 군자는 이 상을 보고 자신의 몸을 길러, 말을 삼가 덕을 기르고 음식을 절제해 몸을 기른다. 입에서 기름의 뜻을 취했을 뿐 아니라, 일상에서 가장 가깝고 관계되는 바가 가장 큰 것이 말과 음식보다 큰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한 몸에서는 말이고 천하에 대해서는 몸에서 나오는 모든 명령과 정치와 교화가 해당한다. 이를 삼가면 반드시 마땅하여 잘못이 없다. 한 몸에서는 음식이고 천하에 대해서는 사람을 기르는 재화와 물자가 모두 해당한다. 이를 절제하면 마땅함에 맞아 상함이 없다. 기르는 도를 미루면 덕을 기르고 천하를 기르는 일이 모두 이와 같다.
[초구] ‘너의 신령한 거북을 버리고 나를 보며 턱을 늘어뜨리니 흉하다.’ 몽괘의 초육은 어리석은 자이지만 효사는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주체의 입장에서 말했다. 이괘의 초구도 바깥 대상을 빌려 말했다. ‘너’는 초구다. ‘너의 신령한 거북을 버리고 나를 보며 턱을 늘어뜨린다’고 했는데, ‘나’는 ‘너’에 상대하여 설정한 말이고 초구가 턱을 늘어뜨리게 만든 대상은 육사다. 그러나 육사가 직접 한 말은 아니고 가정하여 말한 것이다. 초구는 구양으로 몸체가 굳세고 밝아 재지로 바르게 자신을 기를 수 있다. 거북은 숨만 쉬고 먹지 않아도 사니, 신령한 거북은 밝고 지혜로워 밖에서 기름을 구하지 않아도 됨을 비유한다. 재질은 그러하지만 양으로 움직이는 몸체에 있고 이양의 때에 있어 기름을 구하려 한다. 기름은 사람의 욕구다. 위로 육사와 응하여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고, 뜻이 위로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것에 기뻐하여 턱을 늘어뜨린다. 마음이 움직인 뒤에는 반드시 자신을 잃는다. 욕망에 미혹되어 자신을 잃고 양으로 음을 따르면 무슨 일인들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흉하다. 턱을 늘어뜨린다는 것은 턱이 움직이는 모습이다. 사람이 음식을 보고 먹고 싶으면 턱을 움직이고 침을 흘리므로 상으로 삼았다. [소상전] ‘나를 보며 턱을 늘어뜨리니 또한 귀하게 여길 만하지 않다.’ 초구는 움직이는 몸체다. 턱을 늘어뜨린다는 것은 음을 기뻐하여 뜻이 움직이는 것이다. 욕망에 움직이면 굳세고 건강하며 밝고 지혜로운 재질이 있어도 끝내 자신을 잃으므로 그 재질도 귀하게 여길 만하지 않다. 사람이 굳셈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스스로 서서 욕망에 굽히지 않기 때문이고, 밝음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비추어 보고 바름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욕망에 미혹되어 바름을 잃었는데 무슨 굳셈과 밝음이 있겠는가. 천하게 여길 만하다.
[육이] ‘거꾸로 길러지려 하여 상도를 어긴다. 언덕에 있는 자에게 기름을 구하러 가면 흉하다.’ 여자는 스스로 처할 수 없어 반드시 남자를 따르고, 음은 홀로 설 수 없어 반드시 양을 따른다. 육이는 음유하여 스스로 기르지 못하고 남에게 기름을 기다리는 자다. 천자는 천하를 기르고 제후는 한 나라를 기르며 신하는 임금의 녹을 먹고 백성은 목민관의 기름에 의지한다. 모두 위에서 아래를 기르는 것이 바른 이치다. 육이는 스스로 기르지 못하므로 양강에게 기름을 구해야 한다. 아래의 초구에게 도리어 기름을 구하면 위아래가 뒤집힌 것이므로 ‘거꾸로 기른다’고 했다. 거꾸로 되면 상도를 어겨 행할 수 없다. 언덕에 있는 자에게 기름을 구하면 가서 반드시 흉하다. 언덕은 바깥의 높은 사물로 상구를 말한다. 괘에는 양효가 둘뿐이다. 초구에게 거꾸로 기름을 구할 수 없다고 해서 상구에게 기름을 구하러 가도 흉하다. 이양의 때에는 서로 응하는 자끼리 서로 기르는데 상구는 육이의 응이 아니다. 기름을 구하러 가는 것이 도가 아니고 망령된 움직임이므로 흉하다. 아래에서 거꾸로 기름을 구하면 상도를 어겨 기름을 얻지 못할 뿐이고, 위에 망령되게 구하러 가면 흉함을 얻는다. 재질이 스스로를 기르기에 부족한 사람이 위의 권세 있는 자가 사람을 길러 줄 만하다고 보고, 같은 부류도 아닌데 망령되게 가서 구하면 모욕과 흉함을 취하게 된다. 육이는 중정하여 다른 괘에서는 흔히 길한데 여기서 흉한 까닭은 때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음유하여 스스로 기르기 부족하고 초구·상구 모두 함께할 대상이 아니므로 가서 구하면 이치를 어겨 흉하다. [소상전] ‘육이가 가면 흉한 것은 가서 같은 부류를 잃기 때문이다.’ 위의 상구를 따르면 흉한 것은 같은 부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서 기름을 구하면서 자기 부류를 잃으니 흉함이 마땅하다. 行은 간다는 뜻이다.
[육삼] ‘기름의 도를 어긴다. 바름을 지켜도 흉하다. 십 년 동안 쓰지 말아야 하고 이로운 바가 없다.’ 이양의 도는 오직 바르게 해야 길하다. 육삼은 음유한 자질로 중정하지 않은 자리에 있고 움직임의 극에 있으므로, 부드럽고 사특하며 바르지 않은데다 망령되게 움직이는 자다. 그 기르는 방식이 이양의 바른 도를 어기므로 흉하다. 이양의 바름을 얻으면 기르는 것이 모두 길하다. 기름을 구하거나 남을 길러도 의리에 맞고, 자신을 기르면 덕을 이룬다. 육삼은 바른 도를 어겼으므로 십 년 동안 쓰지 말라고 경계했다. 십은 수의 끝이니 끝내 쓸 수 없다는 뜻이고, 어디로 가도 이로움이 없다. [소상전] ‘십 년 동안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은 도를 크게 어겼기 때문이다.’ 끝내 쓸 수 없다고 경계한 것은 따르는 도가 의리를 크게 어겼기 때문이다.
[육사] ‘거꾸로 기름을 구하지만 길하다. 호랑이가 노려보듯 엄숙하고 원하는 바를 계속해서 구하면 허물이 없다.’ 육사는 사람 위에 있는 대신의 자리다. 육으로 그 자리에 있어 음유한 재질로는 자신도 기르기 부족한데 하물며 천하를 기를 수 있겠는가. 초구는 양강으로 아래에 있는 현자이고 육사와 응한다. 육사는 부드럽고 순하며 바르므로 초구에게 순응하고 초구의 기름에 의지할 수 있다. 위에서 아래를 기르는 것이 순리인데 지금 도리어 아래의 기름을 구하므로 거꾸로다. 그러나 자신이 임무를 감당하지 못함을 알고 아래 현자를 구해 순종하며 일을 구제하면 천하가 기름을 얻고 자신도 직무를 비워 실패한 허물이 없으므로 길하다. 높은 자리에 있는 자는 반드시 재덕과 위엄과 명망이 있어 아래 백성의 존경과 두려움을 받아야 일이 시행되고 여러 마음이 복종한다. 아래 사람이 위를 가볍게 보면 정령을 내려도 거스르고 형벌을 시행하면 원망이 일어나며, 업신여기고 침범하여 혼란이 생긴다. 육사는 양강한 현자에게 순응하여 직무를 폐하지 않지만 본래 음유한 자질로 남에게 의지해 구제하므로 사람들이 가볍게 여길 수 있다. 반드시 호랑이가 노려보듯 위엄을 길러야 몸가짐이 무게를 얻고 아래에서 감히 가볍게 보지 못한다. 또 사람에게서 취하는 자는 반드시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 때때로 끊겨 이어지지 않으면 정치가 무너진다. ‘원하는 바’는 필요한 쓰임을 뜻하고, 계속해서 뒤따르게 하여 모자람이 없어야 일을 구제할 수 있다. 사람에게서 취하면서 뒤가 이어지지 않으면 곤궁해진다. 위엄이 있고 시행이 다함없으므로 허물이 없다. 육이는 거꾸로 길러지려 하면 상도를 어기고 육사는 길한 까닭은 무엇인가. 육이는 위에 있으면서 아래에 기름을 구하지만 아래 효가 응하는 부류가 아니므로 상도를 어긴다. 육사는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존귀한 자가 비천한 자에게 낮추고, 아래 현자가 자신을 통해 도를 행하게 한다. 위아래의 뜻이 서로 응하여 백성에게 베푸니 이보다 길할 일이 무엇인가. 육삼 이하에서는 입과 몸을 기르는 뜻이고 육사 이상에서는 덕과 의리를 기르는 뜻이다. 임금이 신하의 도움을 받아 기름을 얻고 위의 자리에 있는 자가 아래의 도움에 의지하는 것은 모두 덕을 기르는 일이다. [소상전] ‘거꾸로 기름을 구하면서도 길한 것은 위에서 베푸는 덕이 빛나기 때문이다.’ 거꾸로 기름을 구하고도 길한 까닭은 양강한 응을 얻어 일을 구제하여, 자신이 위에 있는 덕이 빛나게 천하에 미치기 때문이다. 이보다 큰 길함이 어디 있겠는가.
[육오] ‘상도를 어기지만 바름에 머물면 길하다. 큰 내는 건너서는 안 된다.’ 육오는 이양의 때에 임금 자리에 있어 천하를 기르는 자다. 그러나 음유한 자질로 재능이 천하를 기르기에 부족하고, 위에 양강한 현자가 있으므로 그를 순종하여 자신의 기름을 의지하고 천하를 구제한다. 임금은 본래 남을 기르는 자인데 도리어 남의 기름에 의지하므로 상도를 어긴다. 그러나 자신이 부족함을 알고 현명한 사부에게 순종한다. 상구는 사부의 자리다. 반드시 바름에 머물고 신임을 돈독하게 해야 상구가 몸을 돕고 천하에 은택을 미칠 수 있으므로 길하다. 음유한 자질은 굳세고 바르게 지키는 성질이 없으므로, 바름에 머물 수 있어야 길하다고 경계했다. 음유한 재질로 양강한 현자에게 의지하면 평상시의 질서를 유지할 수는 있지만 어려움과 변고의 때에 처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큰 내를 건너서는 안 된다. 성왕의 재질도 심하게 유약하지는 않았지만 관숙과 채숙의 난을 당해 주공을 거의 보전하지 못할 뻔했다. 그보다 못한 자는 어떻겠는가. 그래서 《서경》은 ‘왕도 아직 감히 주공을 꾸짖지 않았다’고 했다. 태공과 소공 덕분에 끝내 주공을 믿을 수 있었다. 어려움과 험난의 때에는 굳세고 밝은 군주가 아니면 의지할 수 없다. 부득이하여 험난을 구제한 경우도 있기는 하다. 이 뜻을 밝힌 것은 임금 된 자에게 깊이 경계하려는 것이다. 상구에서는 신하가 몸을 바쳐 충성을 다하는 도로 말했으므로 뜻이 다르다. [소상전] ‘바름에 머물러 길한 것은 순응하여 위의 현자를 따르기 때문이다.’ 바름에 머물러 길하다는 것은 상구의 현자에게 굳건히 순종하여 천하를 기를 수 있다는 뜻이다.
[상구] ‘천하가 이 효를 말미암아 길러진다. 위태롭게 여기면 길하고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상구는 양강한 덕으로 사부의 임무에 있고, 육오의 임금은 부드럽고 순하여 자신을 따른다. 임금이 상구의 기름에 의지하므로 천하의 기름을 맡아 천하가 이 효를 말미암아 길러진다. 신하로서 이런 임무를 맡으면 반드시 늘 위태로움을 품어야 길하다. 이윤과 주공이 어찌 근심하고 부지런하며 조심하고 두려워하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끝내 길함을 얻었다. 임금의 재질이 부족하여 자신에게 의지하고 자신은 천하의 큰 임무를 맡았으니, 마땅히 재능과 힘을 다해 천하의 어려움과 위태로움을 구제하고 천하의 안정과 다스림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서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임금의 전적인 신임을 이처럼 얻고 맡은 책임이 이처럼 무거운데 천하의 어려움을 구제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지우에 걸맞고 현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마땅히 성실함과 힘을 다하고 다른 생각을 돌보지 말아야 하지만, 위태롭게 여기고 두려워하는 마음은 잊어서는 안 된다. [소상전] ‘천하가 이 효를 말미암아 길러지고 위태롭게 여겨 길한 것은 큰 경사가 있는 것이다.’ 상구처럼 큰 임무를 맡고 이처럼 조심하고 두려워하면 천하가 그 덕과 은택을 받으므로 큰 복과 경사가 있다.
정이는 이를 생명·몸·덕·타인을 기르는 모든 도로 확장한다. 말과 음식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덕과 천하의 정치에까지 이어지는 핵심이며, 누구를 무엇으로 기르고 자신이 무엇을 구해 먹는지를 보면 선악과 길흉(길함과 흉함, 즉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을 알 수 있다.
효사(각 효에 붙은 판단문)는 자립할 재질이 있어도 욕망에 굴복하는 위험, 부적절한 대상에게 기름을 구하는 모욕, 바른 도를 어긴 기름, 아래 현자의 도움으로 천하를 기르는 대신, 현명한 사부에게 의지하는 유약한 임금, 천하의 기름을 맡은 신하의 막중한 책임과 경계를 보여 준다.
주희 《주역본의》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震下艮上〉
頥貞吉觀頥自求口實〈頥以之反○頥口旁也口食物以自養故為養義為卦上下二陽内含四隂外實内虛上止下動為頥之象養之義也貞吉者占者得正則吉觀頥謂觀其所養之道自求口實謂觀其所以養身之術皆得正則吉也〉○彖曰頥貞吉養正則吉也觀頥觀其所養也自求口實觀其自養也〈釋卦辭〉天地養萬物聖人養賢以及萬民頥之時大矣哉〈極言養道而贊之〉○象曰山下有雷頥君子以慎言語節飲食〈二者養徳養身之切務〉○初九舍爾靈龜觀我朶頥凶〈舍音捨朶多果反○靈龜不食之物朶垂也朶頥欲食之貌初九陽剛在下足以不食乃上應六四之隂而動於欲凶之道也故其象占如此〉象曰觀我朶頥亦不足貴也○六二顛頥拂經于丘頥征凶〈求養於初則顛倒而違於常理求養於上則往而得凶丘土之高者上之象也〉象曰六二征凶行失類也〈初上皆非其類也〉○六三拂頥貞凶十年勿用无攸利〈隂柔不中正以處動極拂於頥矣既拂於頥雖正亦凶故其象占如此〉象曰十年勿用道大悖也○六四顛頥吉虎視眈眈其欲逐逐无咎〈眈都含反○柔居上而得正所應又正而賴其養以施於下故雖顛而吉虎視眈眈下而專也其欲逐逐求而繼也又能如是則无咎矣〉象曰顛頥之吉上施光也〈施始䜴反〉○六五拂經居貞吉不可涉大川〈六五隂柔不正居尊位而不能養人反賴上九之養故其象占如此〉象曰居貞之吉順以從上也○上九由頥厲吉利涉大川〈六五賴上九之養以養人是物由上九以養也位高任重故厲而吉陽剛在上故利涉川〉象曰由頥厲吉大有慶也
이괘는 아래가 진이고 위가 간이다. [괘사] ‘이는 바르게 하면 길하다. 기르는 바를 살펴보고 스스로 입에 채울 것을 구한다.’ 頤는 이지의 반절로 읽는다. 이는 입의 가장자리다. 입은 사물을 먹어 자신을 기르므로 기른다는 뜻이 된다. 괘는 위아래 두 양이 안의 네 음을 품어 밖은 충실하고 안은 비었으며, 위에서는 멈추고 아래에서는 움직이므로 턱과 입의 상이자 기름의 뜻이다. 바르면 길하다는 것은 점친 사람이 바름을 얻으면 길하다는 말이다. 기르는 바를 본다는 것은 그가 사람과 사물을 기르는 방법을 살피는 것이고, 스스로 입에 채울 것을 구한다는 것은 그가 몸을 기르는 방법을 살피는 것이다. 모두 바름을 얻으면 길하다.
[단전] ‘이가 바르면 길하다는 것은 바르게 길러야 길하다는 말이다. 기르는 바를 본다는 것은 그가 무엇을 기르는지 보는 것이고, 스스로 입에 채울 것을 구한다는 것은 그가 자신을 어떻게 기르는지 보는 것이다.’ 괘사를 풀이했다. ‘천지는 만물을 기르고 성인은 현자를 길러 만민에게 미친다. 이양의 때가 크도다.’ 기르는 도를 극진히 말하고 찬탄했다.
[대상전] ‘산 아래에 우레가 있는 것이 이다. 군자는 이로써 말을 삼가고 음식을 절제한다.’ 이 두 가지는 덕과 몸을 기르는 데 가장 절실한 일이다.
[초구] ‘너의 신령한 거북을 버리고 나를 보며 턱을 늘어뜨리니 흉하다.’ 舍는 捨의 음이고 朶는 다과의 반절로 읽는다. 신령한 거북은 먹지 않는 사물이고, 朶는 늘어뜨린다는 뜻이니 턱을 늘어뜨리는 것은 먹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초구는 양강으로 아래에 있어 먹지 않고도 자립할 수 있는데, 위로 육사라는 음과 응하여 욕망에 움직인다. 흉한 도이므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다.
[육이] ‘거꾸로 길러지려 하여 상도를 어긴다. 언덕에 있는 자에게 기름을 구하러 가면 흉하다.’ 초구에게 기름을 구하면 거꾸로 되어 상리를 어기고, 상구에게 기름을 구하면 가서 흉함을 얻는다. 언덕은 흙이 높은 것으로 상구의 상이다. [소상전] 초구와 상구 모두 육이와 같은 부류가 아니다.
[육삼] ‘기름의 도를 어긴다. 바름을 지켜도 흉하다. 십 년 동안 쓰지 말아야 하고 이로운 바가 없다.’ 음유하고 중정하지 않은 채 움직임의 극에 있어 이양의 도를 어긴다. 이미 이양의 도를 어겼으므로 비록 바르더라도 흉하다. 그래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다.
[육사] ‘거꾸로 기름을 구하지만 길하다. 호랑이가 노려보듯 엄숙하고 원하는 바를 계속해서 구하면 허물이 없다.’ 眈은 도함의 반절로 읽는다. 부드러운 것으로 위에 있으면서 바른 자리를 얻고, 응하는 초구도 바르다. 초구의 기름에 의지하여 아래에 베푸므로 비록 거꾸로지만 길하다. 호랑이가 노려보는 것은 아래를 향해 전일한 모습이고, 원하는 바가 이어지는 것은 구하는 일이 계속된다는 뜻이다. 또 이처럼 할 수 있으면 허물이 없다. 施는 시고의 반절로 읽는다.
[육오] ‘상도를 어기지만 바름에 머물면 길하다. 큰 내는 건너서는 안 된다.’ 육오는 음유하고 바르지 않은 채 존귀한 자리에 있어 사람을 기르지 못하고 도리어 상구의 기름에 의지한다. 그래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다.
[상구] ‘천하가 이 효를 말미암아 길러진다. 위태롭게 여기면 길하고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육오가 상구의 기름에 의지해 사람을 기르므로 사물이 상구를 말미암아 길러진다. 자리는 높고 책임은 무거우므로 위태롭게 여겨야 길하다. 양강으로 위에 있으므로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주희는 위아래 두 양과 가운데 네 음, 위의 멈춤과 아래의 움직임에서 턱과 입의 상을 보고 기름의 뜻을 밝힌다. 남을 기르는 방법과 자신을 기르는 방법이 모두 바르면 길하며, 말과 음식을 삼가는 것이 덕과 몸을 기르는 가장 절실한 일이다.
효에서는 욕망에 움직이는 자립 능력의 상실, 자기 부류가 아닌 대상에게 기름을 구하는 흉함, 아래 현자에게 의지해 베푸는 길함, 상구(맨 위 자리의 양효)에게 의존하는 군주의 한계, 천하의 기름을 맡은 양강(양의 굳세고 능동적인 성질)한 현자의 책임을 상과 점으로 제시한다.
정약용(丁若鏞) 《주역사전》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序卦傳曰頤者。養也。〇雜卦傳曰頤。養正也。〇程子曰卦上止而下動。外實而中虛。頤頷之象也。〇鏞案卦自臨來。兌口坤養。〈地澤臨〉本有自養之象。〈內爲我〉又自觀來。巽施坤養。〈風地觀〉亦有養人之象。〈坤在下〉移之爲頤。則上止而下動。〈山雷頤〉如人之方食。上齶止而下齶動。〈震爲動〉此卦之所以名頤。頤之所以爲養也。以卦義則頤者養也。以字義則頤者頷也。〈後世字書直訓頤爲養。誤矣。〉頷者含也。坤之膚肉。〈中四陰〉含之在中也。
{〔卦象:䷚〕}頤。貞吉。觀頤。自求口實。
此頤之不變者也。養萬物者坤也。〈說卦文〉震以生之。〈雷在下〉坤以養之。〈中四陰〉艮以成之。〈艮在上〉凡頤養之事吉。〈貞事也〉故曰頤貞吉。〈三字當連讀〉〇卦自觀來。〈五之一〉可以觀也。〈今大离〉本以隱士。〈觀上巽爲隱〉下就坤養。〈五之一〉唯視禮貌。〈如魯公臺無饋。楚王設醴類。〉此觀頤也。〈觀而頤〉又自臨來。〈二之上〉本以兌口。〈臨下兌〉往求艮實。〈艮爲果〉亦以坤養。〈中四陰〉自求口實也。〈艮爲求〉〇案侯果曰此本觀卦五降于二。虞翻曰臨二之上。〈又云兌爲口。故有口實。〉推移之脈。綿綿如此。
彖曰頤貞吉。養正則吉也。觀頤。觀其所養也。自求口實。觀其自養也。天地養萬物。聖人養賢。以及萬民。頤之時。大矣哉。
貞者正事也。卦德物象。本有國君養賢之義。〈義見上。〉所養非正則爲費廩。〈所致養非賢。〉所自養不正則爲干祿。〈所自養者非其道。〉上下交正。其占方吉。〇觀其所養者。視國君之禮貌也。〈离爲禮〉觀其自養者。視賢者之志操也。〈視廉潔〉〇卦自觀來。五六天位也。一二地位也。觀之爲頤也。或自天降。〈五之一〉或自地升。〈一之五〉而羣物芸芸。〈中四陰〉咸得其養。〈坤爲養〉此天地養萬物也。又自臨來。大震聖人也。〈大君子〉互震賢者也。〈其德小〉臨之爲頤也。本以大震。〈兼畫三〉升其小震。〈二之上〉而聖賢相遇。致其尊養。〈坤爲養〉此聖人養賢也。坤之萬民。〈中四陰〉咸囿大化之中。〈大离以化之〉及萬物也。頤之爲用。不亦大矣哉。〈案天地養萬物。聖人養賢。此孔子之衍義。非彖詞之本旨。讀者詳之。〉
{〔卦象:䷚〕}初九。舍爾靈龜。觀我朶頤。凶。〇象曰觀我朶頤。亦不足貴也。
此頤之剝也。程子日龜能咽息不食。靈龜喩其明智。可以不求養於外也。〈朱子曰靈龜不食之物。〉周禮天龜曰靈。〈龜人文〉靈龜者大龜也。通卦爲大离。〈上下夾〉离則爲龜。〈說卦文〉此靈龜也。〇卦以上下兩剛爲卦主。爾者上剛也。我者下剛也。〈內爲我〉卦自觀來。〈五之一〉自遯而否。爾我二人。〈觀二剛〉與之偕隱。〈巽爲隱〉巽德高潔。〈上本巽〉我之方降。爾乃獨留。〈上不移〉遂成離虛。〈今大离〉雖有靈明。將何食矣。此靈龜之不食也。我乃棄爾。視彼兌食。〈臨下兌〉移入國中。〈五之一〉遂得震爵。〈震長民〉顚兌之口。〈上巽爲顚兌〉張而向下。〈五之一〉此朶頤之象也。〈朶下垂也〉貪戀爵祿之人。反指高擧遠引之士而笑之。此所謂舍爾靈龜。觀我朶頤也。卦自觀來。故謂之觀我。〇可貴者震爵也。然以若高潔。〈觀上巽〉今卒卑下。〈自上而落下〉亦不足貴也。〇初爲卦主。故取其本象。然變而爲剝。〈初爻動〉上剛無恙。下剛遂滅。此靈龜之免禍。而朶頤者速亡也。故曰凶。〇案字書以手捉物謂之頤。〈本出雞肋篇。〉王弼以此注經。非矣。朶者木下垂也。巽木下垂。〈五之一〉朶頤者垂頤也。
{〔卦象:䷨〕}六二。顚頤。〈句〉拂經于丘。〈句〉頤。〈句〉征凶。〇象曰六二征凶。行失類也。
此頤之損也。顚頤者。倒卦也。倒看則頤之益也〔卦象:䷩〕。〈六二爲六五〉諸卦皆有反對。〈五十六〉唯頤大過中孚小過等卦。〈又坎离〉顚倒皆同。〈無反對〉故聖人於此。兼取倒象。〈已見表〉此其發例者也。〇拂高擧也。〈又矯也〉經吭通。又與頸通。〈義見下〉拂經者引頸也。〈猶言矯首也〉益自否來。〈四之一〉否之時。三陽偕遯。〈否上乾〉于彼艮丘。〈否互艮〉移之爲益。則一剛反國。〈四之一〉以就坤養。〈否下坤〉而兩剛之留爲巽者。〈上今巽爲隱〉艮丘之上。〈否互艮〉矯其乾首。〈巽爲高〉拂經于丘也。丘園之中。盻望祿養。〈巽眼以盻之〉有是象也。六五之詞。亦云拂經。〈見下文〉顚頤之爲倒看審矣。〇頤征凶者。不倒之象也。特書曰頤者。謂倒卦則其象爲拂經。〈六二如六五〉正卦則其象爲征凶也。〈頤之損〉頤變爲損。〈二爻動〉損自泰來。〈三之上〉剛往敵國。〈三之上〉遂以艮死。〈上今艮〉敵拓其疆。〈泰上坤〉侵及我境。〈上之三〉以征伐則凶也。〇泰之時。三陽類聚。〈下本乾〉移之爲損。〈三之上〉剛乃獨往。〈上一陽〉行失類也。〈震爲行而兌爲失〉〇案經音徑。〈去聲〉漢書以經死爲絶吭。〈吭頸通〉莊子云緣督以爲經。〈道書云熊經引吭也。〉拂經者。引吭也。〇學稼云禮拂其首。漢王莽傳拂其頸衝其胸刃其軀。以此言之。拂經或是縊死之謂。
{〔卦象:䷕〕}六三。拂頤。貞凶。十年勿用。無攸利。〇象曰十年勿用。道大悖也。
此頤之賁也。拂者高擧也。〈義見上〉三之旣變。〈三今剛〉下震上艮。〈今互震〉又成一頤。〈山雷頤〉是何象也。拂其頤也。〈擧頤卦而高升之〉賁自泰來。〈二之上〉君子道長。〈三震陽〉兌祿旣榮。〈泰互兌〉而拂然出外。〈二之上〉以自成頤。〈三與上〉此拂頤之凶也。〈三多凶〉〇昔之震道。〈泰之道〉忽以艮窮。〈上今艮〉君恩中絶。〈乾今斷〉坎勞無應。〈三與六不應〉以幹事則凶也。〇自艮至震。不過二年。〈據文王卦位〉而坤陰在中。〈間於震〉地數十也。〈坤爲旬〉旣過二年。〈坤間之〉必至十年。〈自震而數。又歷八年。始可以至震。〉十年勿用也。坎罪有律。〈下互坎〉艮限有止。〈又爲退〉所以勿用。〇兌和亦亡。〈泰互兌今亡〉無攸利也。〈利者義之和〉〇悖者乖也。昔之震道。〈泰之道〉忽以艮窮。〈又坎亂〉道大悖也。
{〔卦象:䷔〕}六四。顚頤。吉。虎視耽耽。其欲逐逐。無咎。〇象曰顚頤之吉。上施光也。
此頤之噬嗑也。顚頤者倒卦也。倒看則頤之賁也。〈六四爲六三〉頤自臨來。〈二之上〉本兌虎也。〈臨下兌〉變而爲頤。〈二之上〉离目大明。〈頤大离〉虎之視也。〈兌虎以离見〉變而爲賁〔卦象:䷕〕。〈三爻動〉上离下离。〈上大离〉离目閃爍。〈离爲目〉虎視耽耽也。〈兩离故疊文〉坎豕在近。〈二四互〉艮狗頗遠。〈艮在上〉耽耽者。視近而志遠也。〈許愼說文云〉坤之貪慾。〈泰上坤〉入於离心。〈上之二〉虎多慾也。〈損之大象坤爲慾〉兩禽在前。〈豕與狗〉其慾逐逐也。〈兩禽故疊文〉虎者獸之肉食者也。虎遇兩禽。焂視近而忽視遠。其目耽耽。此其象也。〈筮貴賤者遇是爻。則爲食肉富貴之象。〉〇無咎亦倒象也。以剛居四。〈謂噬嗑〉非其位也。卦旣倒看。三之剛也。〈陽得位〉故曰無咎。〇倒之雖賁。其卦則噬嗑也。〈義見下〉上离之光。〈火雷卦〉施及下离。〈五之一〉上施光也。〇案頤中有物曰噬嗑。〈彖傳文〉噬嗑者食肉之卦也。虎視耽耽。亦以噬嗑。〈食肉象〉特以顚頤之義。非倒不明。故直書曰頤之賁。而其實噬嗑之倒象。〈食肉象〉非取賁卦之正象也。若云此爻直是賁卦。則六三旣凶。此爻安得獨吉乎。〈同是頤之賁〉在內者占以正頤。〈內爲我〉自外者占以顚頤。所以異也。〇又案漢書逐作浟。又古本或作攸。〈子夏傳〉或作悠。〈荀爽本〉或作跾。說文云跾音式六。〈與逐聲相近〉其義則悠遠也。總之逐逐爲正。〇又案荀九家以艮爲虎。蓋以推移不明。爻變不知。至於顚頤之爲倒卦。尤非所意。故第以艮而爲虎也。艮若爲虎。則坎震兩禽。〈噬嗑則下震〉皆在虎後。何視何逐。
{〔卦象:䷩〕}六五。拂經。〈句〉居貞。吉。不可涉大川。〇象曰居貞之吉。順以從上也。
此頤之益也。拂經之義見六二。〈彼本六五象〉於此再言者。明六二之詞。爲倒象也。〇居貞者居止之事也。益自否來。〈一之四〉艮止重疊。〈上三陽皆艮〉坤德安靜。〈否下坤〉移之爲益。剛自外反。〈四之一〉仰順巽命。〈上今巽〉居貞吉也。〈屯之初九宜參看。〉〇頤者利涉之卦也。〈見上九〉交以小過。〈雷山爲山雷〉涉其坎川。〈小過本大坎〉幾及艮岸。〈三之上〉忽以巽入。〈上今巽〉不可涉也。頤益兩卦。皆利涉之卦。而頤之益則不可涉川。故爻詞特著之。〇巽命在上。〈上今巽〉坤乃順之。順以從上也。此所謂用靜吉。〈洪範云〉
{〔卦象:䷚〕}上九。由頤。〈句〉厲吉。利涉大川。〇象曰由頤厲吉。大有慶也。
此頤之復也。卦自臨來。剛往在上。〈二之上〉頤由以成。〈頤卦由此成〉此由頤也。〈如豫九四之由豫〉上爲卦主。故言其本象。〇臨之時。兌以乘剛。〈臨下兌〉其象厲也。〈見易例〉移之爲頤。則주-D004升于上。〈二之上〉兌形遂滅。〈下今震〉又何厲焉。厲終吉也。〇頤者小過之交易也。〈雷山爲山雷〉小過之時。大坎爲川。〈兼畫三〉震舟中汎。〈下倒震〉交之爲頤。則坎險已過。〈坎今亡〉震舟泊岸。〈艮爲岸〉利涉大川也。〇震以一剛。爲主於內。〈下今震〉大有慶也。
「서괘전」에서 말하였다. “이(頤)는 기른다는 뜻이다.” 「잡괘전」에서 말하였다. “이괘는 바르게 기르는 것이다.” 정자는 말하였다. “괘의 위는 멈추고 아래는 움직이며, 바깥은 차 있고 안은 비어 있으니 턱의 상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괘는 임괘에서 왔다. 태괘인 입과 곤괘인 기름이 있어 (지택림괘이다.) 본래 스스로를 기르는 상이 있다. (안은 나이다.) 또 관괘에서 왔다. 손괘가 베풀고 곤괘가 길러 (풍지관괘이다.) 또한 남을 기르는 상이 있다. (곤괘가 아래에 있다.) 효를 옮겨 이괘가 되면 위는 멈추고 아래는 움직이니 (산뢰이괘이다.) 사람이 막 먹을 때 위턱은 멈추고 아래턱은 움직이는 것과 같다. (진괘는 움직임이다.) 이것이 괘를 이(頤)라고 이름 붙인 까닭이며, 이가 기름이 되는 까닭이다. 괘의 뜻으로 말하면 이는 기름이고, 글자의 뜻으로 말하면 이는 턱이다. (후세 자서에서 곧바로 ‘이’를 기른다는 뜻으로만 풀이한 것은 잘못이다.) 함(頷)은 머금는다는 뜻이니, 곤괘인 살과 살갗이 (가운데의 네 음이다.) 안에 머금어져 있다.
[괘상: ䷚] 이는 일을 바르게 하면 길하다. 기르는 일을 살펴보며, 스스로 입에 채울 것을 구한다.
이는 이괘가 변하지 않은 경우이다. 만물을 기르는 것은 곤괘이다. (「설괘전」의 글이다.) 진괘로 낳고 (우레가 아래에 있다.), 곤괘로 기르며 (가운데의 네 음이다.), 간괘로 완성하므로 (간괘가 위에 있다.) 모든 기르는 일이 길하다. (정(貞)은 일이다.) 그러므로 “이괘의 일은 길하다”고 하였다. (‘이정길’ 세 글자를 이어 읽어야 한다.) 괘는 관괘에서 왔으므로 (오효가 초효로 갔다.) 살펴볼 수 있다. (지금 큰 리괘이다.) 본래 은사로서 (관괘의 상괘 손괘는 숨는 것이다.) 아래로 내려가 곤괘의 봉양을 받을 때 (오효가 초효로 갔다.) 오직 예모를 살피니 (노공이 관대를 세웠으나 음식을 보내지 않았고, 초왕이 단술을 마련했던 부류와 같다.), 이것이 기르는 일을 살펴보는 것이다. (살펴보고서 기른다.) 또 임괘에서 왔는데 (이효가 상효로 갔다.), 본래 태괘인 입으로 (임괘의 아래가 태괘이다.) 간괘인 열매를 구하러 가고 (간괘는 열매이며 구함이다.) 또한 곤괘의 길러 줌을 받으니 (가운데의 네 음이다.), 이것이 스스로 입에 채울 것을 구하는 것이다. (간괘는 구함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후과는 “이 괘는 본래 관괘로 오효가 이효로 내려왔다”고 했고, 우번은 “임괘의 이효가 상효로 갔다”고 하였다. (또 “태괘가 입이므로 입에 채울 것이 있다”고 하였다.) 효가 옮겨 온 맥락이 이처럼 끊임없이 이어진다.
「단전」에서 말하였다. “‘이의 일을 바르게 하면 길함’은 바르게 기르면 길하다는 뜻이다. ‘기르는 일을 살펴봄’은 그가 기르는 대상을 살펴보는 것이고, ‘스스로 입에 채울 것을 구함’은 그가 자신을 기르는 방식을 살펴보는 것이다. 천지는 만물을 기르고 성인은 어진 이를 길러 만민에게까지 미치게 한다. 이괘의 때가 크도다.”
정(貞)은 바른 일이다. 괘의 덕과 물상에는 본래 나라의 임금이 어진 이를 기른다는 뜻이 있다. (그 뜻은 위에 보인다.) 기르는 대상이 바르지 않으면 창고의 곡식을 헛되이 쓰는 것이 되고 (길러 부르는 이가 어진 이가 아니다.), 자신을 기르는 방법이 바르지 않으면 녹을 구걸하는 일이 된다. (자기를 기르는 방법이 도가 아니다.) 위아래가 서로 바른 뒤에야 그 점이 비로소 길하다. ‘그 기르는 대상을 살펴봄’은 나라의 임금이 보이는 예모를 살피는 것이고 (리괘는 예이다.), ‘자기를 기르는 방식을 살펴봄’은 어진 이의 뜻과 지조를 살피는 것이다. (청렴하고 깨끗한지를 본다.) 괘는 관괘에서 왔다. 오효와 상효는 하늘의 자리이고 초효와 이효는 땅의 자리이다. 관괘가 이괘가 될 때 어떤 것은 하늘에서 내려오고 (오효가 초효로 갔다.) 어떤 것은 땅에서 올라가, (초효가 오효로 갔다.) 수많은 사물이 무성하게 움직이며 (가운데의 네 음이다.) 모두 길러짐을 얻으니 (곤괘는 기름이다.) 이것이 천지가 만물을 기르는 것이다. 또 임괘에서 왔다. 큰 진괘는 성인이고 (큰 군자이다.) 호괘인 진괘는 어진 이이다. (그 덕이 작다.) 임괘가 이괘가 될 때 본래 큰 진괘가 (세 획을 겹쳐 그린 것이다.) 작은 진괘를 위로 올려 (이효가 상효로 갔다.) 성인과 현자가 서로 만나 존중하여 길러 주니 (곤괘는 기름이다.), 이것이 성인이 어진 이를 기르는 것이다. 곤괘인 만민이 (가운데의 네 음이다.) 모두 큰 교화 안에 포용되므로 (큰 리괘가 교화한다.) 만물에게까지 미친다. 이괘의 쓰임이 또한 크지 않은가? 정약용이 살피건대, “천지가 만물을 기르고 성인이 어진 이를 기른다”는 말은 공자가 뜻을 넓힌 것이지 단사의 본래 뜻은 아니다. 독자는 이를 자세히 살펴야 한다.
[괘상: ䷚] 초구. 너의 신령한 거북을 버리고 내가 턱을 늘어뜨린 것을 바라보니 흉하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내가 턱을 늘어뜨린 것을 바라봄’은 또한 귀하게 여길 만하지 않다.”
이는 이괘가 박괘로 변한 경우이다. 정자는 말하였다. “거북은 숨을 삼키며 먹지 않을 수 있다. 신령한 거북은 그 밝은 지혜를 비유하니, 바깥에서 길러 주기를 구하지 않을 수 있는 존재이다.” (주자는 “신령한 거북은 먹지 않는 동물이다”라고 하였다.) 《주례》에서 천귀(天龜)를 영(靈)이라 하였으니 (〈귀인〉의 글이다.), 신령한 거북은 큰 거북이다. 전체 괘가 큰 리괘이고 (위아래가 양으로 낀다.) 리괘는 거북이 되니 (「설괘전」의 글이다.) 이것이 신령한 거북이다. 괘는 위아래의 두 강한 양을 괘의 주인으로 삼는다. ‘너’는 위의 강한 양이고 ‘나’는 아래의 강한 양이다. (안은 나이다.) 괘는 관괘에서 왔다. (오효가 초효로 갔다.) 둔괘에서 비괘를 거쳐 관괘가 되었을 때 너와 나 두 사람이 (관괘의 두 강한 양이다.) 함께 은둔하여 (손괘는 숨음이다.) 손괘의 덕을 높고 깨끗하게 지켰다. (위가 본래 손괘였다.) 내가 막 내려오자 너만 홀로 남아 (상효는 옮겨 오지 않았다.) 마침내 리괘의 빈 속을 이루었으니 (지금 큰 리괘이다.), 비록 신령한 밝음이 있어도 장차 무엇을 먹겠는가? 이것이 신령한 거북이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곧 너를 버리고, 저 태괘인 음식이 (임괘의 아래 태괘이다.) 나라 안으로 옮겨 들어오는 것을 보아 (오효가 초효로 갔다.) 마침내 진괘인 작위를 얻었다. (진괘는 백성의 우두머리이다.) 거꾸로 된 태괘의 입이 (위의 손괘는 거꾸로 된 태괘이다.) 벌어져 아래를 향하니 (오효가 초효로 갔다.) 이것이 턱을 늘어뜨린 상이다. (‘타(朶)’는 아래로 드리운다는 뜻이다.) 작위와 녹을 탐내는 사람이 도리어 높이 들려 멀리 떠난 선비를 가리키며 비웃으니, 이것이 이른바 “너의 신령한 거북을 버리고 내가 턱을 늘어뜨린 것을 바라본다”는 말이다. 괘가 관괘에서 왔으므로 ‘나를 바라본다’고 하였다. 귀하게 여길 만한 것은 진괘인 작위이지만, 그처럼 높고 깨끗하던 이가 (관괘의 위 손괘이다.) 이제 마침내 낮은 곳으로 내려왔으니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또한 귀하게 여길 만하지 않다. 초구가 괘의 주인이므로 그 본래의 상을 취하였다. 그러나 변하여 박괘가 되면 (초효가 움직였다.) 위의 강한 양은 아무 탈이 없고 아래의 강한 양은 마침내 없어지니, 신령한 거북은 화를 면하고 턱을 늘어뜨린 자는 빨리 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흉하다고 하였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자서에서는 손으로 물건을 잡는 것을 ‘이(頤)’라고 한다. (본래 《계륵편》에서 나왔다.) 왕필이 이 뜻으로 경문에 주를 단 것은 잘못이다. ‘타(朶)’는 나무가 아래로 드리우는 것이다. 손괘인 나무가 아래로 드리우므로 (오효가 초효로 갔다.) ‘타이(朶頤)’는 턱을 늘어뜨린다는 뜻이다.
[괘상: ䷨] 육이. 거꾸로 보아 기름이다. 언덕 위에서 목을 치켜든다. 이괘의 정방향으로 보면, 나아갈 경우 흉하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육이가 나아가면 흉한 것은 함께할 무리를 잃고 가기 때문이다.”
이는 이괘가 손괘로 변한 경우이다. ‘전이(顚頤)’는 괘를 거꾸로 보는 것이다. 거꾸로 보면 이괘는 익괘[䷩]이다. (육이는 육오가 된다.) 모든 괘에는 뒤집어 짝이 되는 괘가 있지만 (쉰여섯 괘이다.) 이·대과·중부·소과 등의 괘와 (또 감괘와 리괘이다.) 같은 경우는 거꾸로 해도 모두 같다. (따로 짝이 되는 괘가 없다.) 그러므로 성인이 여기에서는 거꾸로 된 상을 함께 취하였다. (이미 표에 보인다.) 이 효가 그 용례를 드러낸 것이다. ‘불(拂)’은 높이 드는 것이며 (또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경(經)’은 목구멍과 통하고 또 목과도 통한다. (뜻은 아래에 보인다.) ‘불경(拂經)’은 목을 치켜든다는 뜻이다. (머리를 치켜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익괘는 비괘에서 왔다. (사효가 초효로 갔다.) 비괘 때에는 세 양이 함께 달아나 (비괘의 위가 건괘이다.) 저 간괘인 언덕에 있었는데 (비괘의 호괘가 간괘이다.), 효를 옮겨 익괘가 되자 강한 양 하나가 나라로 돌아와 (사효가 초효로 갔다.) 곤괘의 봉양을 받았다. (비괘의 아래가 곤괘이다.) 남아서 손괘가 된 두 강한 양은 (위가 이제 손괘로서 숨음이다.) 간괘인 언덕 위에서 (비괘의 호괘가 간괘이다.) 건괘인 머리를 높이 드니 (손괘는 높음이다.) 이것이 언덕 위에서 목을 치켜드는 것이다. 언덕과 동산 안에서 녹봉과 봉양을 바라보는 (손괘인 눈으로 바라본다.) 상이 있다. 육오의 효사에도 ‘불경’이라 하였으니 (아래 글에 보인다.) ‘전이’가 거꾸로 본다는 뜻임이 분명하다. ‘이괘로 나아가면 흉하다’는 말은 거꾸로 하지 않은 상이다. 일부러 ‘이(頤)’를 따로 쓴 것은 괘를 거꾸로 보면 그 상이 언덕에서 목을 치켜드는 것이지만 (육이는 육오와 같다.), 정괘로 보면 그 상이 나아가면 흉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괘가 손괘로 변한다.) 이괘가 변하여 손괘가 되고 (이효가 움직였다.), 손괘는 태괘에서 왔다. (삼효가 상효로 갔다.) 강한 양이 적국으로 가서 (삼효가 상효로 갔다.) 마침내 간괘의 죽음에 이르고 (위가 이제 간괘이다.) 적국이 그 영토를 넓혀 (태괘의 위가 곤괘이다.) 우리의 경계까지 침범하니 (상효가 삼효로 왔다.) 정벌하러 가면 흉하다. 태괘 때에는 세 양이 무리를 이루었으나 (아래가 본래 건괘이다.) 효를 옮겨 손괘가 되자 (삼효가 상효로 갔다.) 강한 양이 홀로 갔으니 (위에 양 하나가 있다.) 함께할 무리를 잃고 간 것이다. (진괘는 행함이고 태괘는 잃음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경(經)’의 음은 ‘경(徑)’과 같아 거성이다. 《한서》에서는 ‘경사(經死)’를 목구멍이 끊어진 것으로 풀이했다. (항(吭)과 경(頸)은 통한다.) 《장자》에서 “독맥을 따라 경(經)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도서에서 “곰이 목을 치켜든다”고 하였다.) ‘불경’은 목을 치켜드는 것이다. 정학연은 말하였다. “《예기》에는 ‘그 머리를 친다’고 하였고, 《한서》 〈왕망전〉에는 ‘그 목을 치고 가슴을 들이받으며 몸을 칼로 찌른다’고 하였다. 이로써 말하면 ‘불경’은 혹 목매어 죽는다는 뜻일 수도 있다.”
[괘상: ䷕] 육삼. 기르는 도를 높이 들어 거스른다. 일을 바르게 하면 흉하다. 십 년 동안 쓰지 말아야 하며 이로운 바가 없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십 년 동안 쓰지 말라’는 것은 도가 크게 어그러졌기 때문이다.”
이는 이괘가 비괘로 변한 경우이다. ‘불(拂)’은 높이 드는 것이다. (뜻은 위에 보인다.) 삼효가 변하고 나면 (삼효가 이제 양이다.) 아래 진괘와 위 간괘가 다시 하나의 이괘를 이룬다. (산뢰이괘이다.) 이것은 무슨 상인가? 이괘 전체를 높이 들어 올린 것이다. (이괘를 들어 높이 올렸다.) 비괘는 태괘에서 왔다. (이효가 상효로 갔다.) 군자의 도가 자라 (세 양인 진괘이다.) 태괘의 녹이 이미 영화로운데도 (태괘의 호괘가 태괘이다.) 높이 들려 바깥으로 나가 (이효가 상효로 갔다.) 스스로 이괘를 이룬다. (삼효와 상효이다.) 이것이 ‘불이(拂頤)’의 흉함이다. (삼효에는 흉함이 많다.) 예전의 진괘인 도가 (태괘의 도이다.) 갑자기 간괘에서 궁해지고 (위가 이제 간괘이다.) 임금의 은혜가 중간에서 끊어지며 (건괘가 이제 끊겼다.) 감괘의 수고로움이 응함을 얻지 못하므로 (삼효와 상효가 응하지 않는다.) 일을 주관하면 흉하다. 문왕 팔괘의 방위로 보면 간괘에서 진괘까지는 이 년에 불과하지만, 곤괘인 음이 그 사이에 있어 (진괘와의 사이에 곤괘가 있다.) 땅의 수인 십이 된다. (곤괘는 열흘이다.) 이미 이 년을 지나 (곤괘가 그 사이에 끼어 있다.) 다시 팔 년을 지나야 비로소 진괘에 이르므로 십 년이 된다. 그래서 십 년 동안 쓰지 말라는 것이다. 감괘의 죄에는 법이 있고 (아래 호괘가 감괘이다.) 간괘의 경계에는 멈춤이 있으므로 (또 물러남이 된다.) 쓰지 말라고 하였다. 태괘의 조화도 없어져 (태괘의 호괘가 이제 없어졌다.) 이로운 바가 없다. (이로움은 의의 조화이다.) ‘패(悖)’는 어긋남이다. 옛 진괘의 도가 (태괘의 도이다.) 갑자기 간괘에서 궁해지고 (또 감괘에서 어지러워져.) 도가 크게 어그러진다.
[괘상: ䷔] 육사. 거꾸로 보아 기르니 길하다. 호랑이가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며, 욕심이 연이어 뒤따른다. 허물이 없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거꾸로 보아 기름이 길함’은 위의 빛이 아래에 베풀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이괘가 서합괘로 변한 경우이다. ‘전이(顚頤)’는 괘를 거꾸로 보는 것이다. 거꾸로 보면 이괘가 변한 괘는 비괘가 된다. (육사는 육삼이 된다.) 이괘는 임괘에서 왔다. (이효가 상효로 갔다.) 본래 태괘인 호랑이였는데 (임괘의 아래가 태괘이다.) 변하여 이괘가 되자 (이효가 상효로 갔다.) 리괘인 눈이 크게 밝아져 (리괘 전체가 큰 리괘이다.) 호랑이가 바라본다. (태괘인 호랑이가 리괘로 본다.) 변하여 비괘[䷕]가 되면 (삼효가 움직였다.) 위에도 리괘, 아래에도 리괘가 있어 (위가 큰 리괘이다.) 리괘인 눈이 번쩍거리니 (리괘는 눈이다.) 호랑이가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는 것이다. (두 리괘이므로 말을 거듭하였다.) 감괘인 돼지는 가까이 있고 (이효부터 사효까지의 호괘이다.) 간괘인 개는 꽤 멀리 있으니 (간괘가 위에 있다.), ‘담담(耽耽)’은 가까운 것을 보면서 뜻은 먼 데 있다는 말이다. (허신의 《설문》에 보인다.) 곤괘의 탐욕이 (태괘의 위가 곤괘이다.) 리괘의 마음으로 들어가니 (상효가 이효로 왔다.) 호랑이는 욕심이 많다. (손괘의 「대상전」에서 곤괘를 욕심으로 삼았다.) 두 짐승이 앞에 있으므로 (돼지와 개이다.) 그 욕심이 잇달아 뒤따른다. (두 짐승이므로 말을 거듭하였다.) 호랑이는 짐승 가운데 고기를 먹는 것이다. 호랑이가 두 짐승을 만나면 갑자기 가까운 것을 보다가 문득 먼 것을 보아 눈을 부릅뜨니, 이것이 그 상이다. (귀천을 점치는 사람이 이 효를 얻으면 고기를 먹는 부귀의 상이 된다.) ‘허물이 없다’는 말도 거꾸로 된 상이다. 강한 양이 사효에 있으면 (서합괘를 말한다.) 제자리가 아니지만, 괘를 이미 거꾸로 보았으므로 삼효의 강한 양이 되어 (양이 제자리를 얻는다.) 허물이 없다고 하였다. 거꾸로 보면 비괘이지만 그 정괘는 서합괘이다. (뜻은 아래에 보인다.) 위 리괘의 빛이 (화뢰서합괘이다.) 아래의 리괘에까지 베풀어지니 (오효가 초효로 갔다.) 위의 빛이 베풀어진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턱 안에 물건이 있는 것을 서합이라 한다”는 것은 (「단전」의 글이다.) 서합괘가 고기를 먹는 괘라는 뜻이다. “호랑이가 눈을 부릅뜨고 바라본다”는 말도 서합괘로써 취하였다. (고기를 먹는 상이다.) 다만 전이의 뜻은 거꾸로 보지 않으면 분명해지지 않으므로 곧바로 “이괘가 변하여 비괘가 된다”고 썼지만, 실제로는 서합괘를 거꾸로 본 상이다. (고기를 먹는 상이다.) 비괘의 정방향 상을 취한 것은 아니다. 만약 이 효가 곧 비괘일 뿐이라면 육삼은 이미 흉한데 이 효만 어떻게 홀로 길할 수 있겠는가? (둘 다 이괘가 비괘로 변한다.) 안에 있는 사람은 이괘의 정방향으로 점하고 (안은 나이다.), 바깥에서 온 사람은 거꾸로 된 이괘로 점하므로 서로 다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한서》에는 ‘축(逐)’이 ‘유(浟)’로 되어 있고, 옛 판본 가운데 ‘유(攸)’로 된 것도 (《자하전》이다.), ‘유(悠)’로 된 것도 (순상의 판본이다.), ‘숙(跾)’으로 된 것도 있다. 《설문》에서는 “숙(跾)의 음은 식육(式六)이다”라고 했으니 (‘축’과 소리가 가깝다.), 그 뜻은 길고 먼 것이다. 종합하면 ‘축축(逐逐)’이 바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순상의 《구가역》에서는 간괘를 호랑이로 삼았는데, 이는 효의 추이를 밝히지 못하고 효변도 알지 못했으며, 특히 전이가 거꾸로 된 괘라는 점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간괘를 호랑이로 삼은 것이다. 간괘가 호랑이라면 감괘와 진괘인 두 짐승은 (서합괘에서는 아래가 진괘이다.) 모두 호랑이 뒤에 있으니,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뒤쫓겠는가.
[괘상: ䷩] 육오. 언덕에서 목을 치켜든다. 머물러 일을 바르게 하면 길하다. 큰 내를 건너서는 안 된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머물러 일을 바르게 함이 길함’은 유순하게 위를 따르기 때문이다.”
이는 이괘가 익괘로 변한 경우이다. ‘불경(拂經)’의 뜻은 육이에 보인다. (그 효사는 본래 육오의 상이다.) 여기에서 다시 말한 것은 육이의 효사가 거꾸로 된 상임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거정(居貞)’은 머물러 멈추는 일이다. 익괘는 비괘에서 왔다. (초효가 사효로 갔다.) 간괘의 멈춤이 겹쳐 있고 (위의 세 양이 모두 간괘를 이룬다.) 곤괘의 덕이 편안하고 고요하다. (비괘의 아래가 곤괘이다.) 효를 옮겨 익괘가 되면 강한 양이 바깥에서 돌아와 (사효가 초효로 왔다.) 위에 있는 손괘의 명령을 우러러 따르므로 (위가 이제 손괘이다.) 머물러 일을 바르게 하면 길하다. (준괘 초구를 함께 보아야 한다.) 이괘는 건너는 데 이로운 괘이다. (상구에 보인다.) 소과괘와 교역하면 (뇌산괘가 산뢰괘가 된다.) 감괘인 내를 건너 (소과괘는 본래 큰 감괘이다.) 거의 간괘인 언덕에 이르지만 (삼효가 상효로 갔다.) 갑자기 손괘로 들어가므로 (위가 이제 손괘이다.) 건널 수 없다. 이괘와 익괘는 모두 건너는 데 이로운 괘인데, 이괘가 익괘로 변한 경우에는 내를 건널 수 없으므로 효사에서 특별히 이를 드러냈다. 손괘인 명령이 위에 있고 (위가 이제 손괘이다.) 곤괘가 이에 순응하니, 유순하게 위를 따른다는 말이다. 이것이 《홍범》에서 이른바 “고요함을 쓰면 길하다”는 것이다.
[괘상: ䷚] 상구. 기름이 이 효로 말미암는다. 위태롭지만 길하며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기름이 이 효로 말미암고 위태롭지만 길함’은 큰 경사가 있는 것이다.”
이는 이괘가 복괘로 변한 경우이다. 괘는 임괘에서 왔고 강한 양이 가서 위에 있으므로 (이효가 상효로 갔다.) 이괘가 그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 (이괘가 이 효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 이것이 ‘유이(由頤)’이다. (예괘 구사의 ‘유예(由豫)’와 같다.) 상구가 괘의 주인이므로 그 본래의 상을 말하였다. 임괘 때에는 태괘가 강한 양을 타고 있으므로 (임괘의 아래가 태괘이다.) 위태로운 상이다. (《역》의 용례에 보인다.) 효를 옮겨 이괘가 되면 굳센 양이 위로 올라가 (이효가 상효로 갔다.) 태괘의 형상이 마침내 없어지니 (아래가 이제 진괘이다.) 다시 무슨 위태로움이 있겠는가? 위태롭지만 끝내 길하다. 이괘는 소과괘와 교역한 것이다. (뇌산괘가 산뢰괘가 된다.) 소과괘 때에는 큰 감괘가 내를 이루고 (세 획을 겹쳐 그린 것이다.) 진괘인 배가 그 가운데 떠 있었으나 (아래의 거꾸로 된 진괘이다.), 교역하여 이괘가 되면 감괘의 험함을 이미 지나 (감괘가 이제 없어졌다.) 진괘인 배가 간괘인 언덕에 정박하므로 (간괘는 언덕이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진괘는 한 강한 양으로 안에서 주인이 되니 (아래가 이제 진괘이다.) 큰 경사가 있다.
이괘는 위턱은 멈추고 아래턱은 움직이며 속은 빈 형상에서, 입과 봉양이라는 두 뜻을 함께 밝힌다. 정약용은 관괘·임괘에서의 추이(효가 옮겨 변한 관계를 살펴 괘를 읽는 법)와 괘의 정방향·도괘를 구분하여 누가 누구를 어떻게 기르는지 검증한다. 여섯 효는 녹을 탐해 턱을 늘어뜨리는 경우, 언덕에서 봉양을 기다리는 경우, 큰 내를 건너는 경우를 대비하며, 기르는 대상과 스스로를 기르는 방식이 모두 바르게 맞아야 길하다고 판정한다.
교감·번역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