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41 卦하경
䷨

損 손

아래괘 兌 못 · 위괘 艮 산

이 차례에 놓인 까닭서괘전

느슨해지면 반드시 잃는 바가 있으므로 손괘로 이었다.

괘사

한문 원문

有孚,元吉。无咎,可貞,利有攸往。曷之用?二簋可用享。

한국어 번역

유부, 원길. 무구, 가정, 이유유왕. 갈지용? 이궤가용향.

믿음이 있으면 크게 길하다. 허물이 없고, 바르게 지킬 수 있으며, 갈 바를 두는 것이 이롭다. 무엇을 쓰겠는가? 두 개의 제기만으로도 제사를 올릴 수 있다.

단전

한문 원문

損,損下益上,其道上行。損而有孚,元吉,无咎,可貞,利有攸往。曷之用?二簋可用享;二簋應有時。損剛益柔有時,損益盈虛,與時偕行。

한국어 번역

손은 아래를 덜어 위를 보태는 것이니, 그 도가 위로 행한다. 덜면서 믿음이 있으면 크게 길하고, 허물이 없으며, 바르게 지킬 수 있고, 갈 바를 두는 것이 이롭다. 무엇을 쓰겠는가? 두 개의 제기만으로도 제사를 올릴 수 있으나, 두 제기를 쓰는 데에도 맞는 때가 있어야 한다. 굳센 것을 덜고 부드러운 것을 보태는 데에도 때가 있다. 덜고 보태며 차고 비는 것이 때와 함께 행한다.

대상전

한문 원문

山下有澤,損;君子以懲忿窒欲。

한국어 번역

산 아래에 못이 있는 것이 손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분노를 억누르고 욕심을 막는다.

여섯 효

제1효 · 初九
자리로 따지면양효가 제자리에넷째 효와 응한다이 효가 변하면 04 蒙 몽

효사

한문 원문

已事遄往,无咎,酌損之。

한국어 번역

이사천왕, 무구, 작손지.

자신의 일을 마치고 빨리 나아가면 허물이 없다. 헤아려 덜어 준다.

소상전

한문 원문

已事遄往,尚合志也。

한국어 번역

자신의 일을 마치고 빨리 나아가는 것은 위와 뜻이 합하기 때문이다.

제2효 · 九二
자리로 따지면가운데 자리이나 제자리는 아님다섯째 효와 응한다이 효가 변하면 27 頤 이

효사

한문 원문

利貞,征凶,弗損益之。

한국어 번역

이정, 정흉, 불손익지.

바르게 지키는 것이 이롭고, 나아가면 흉하다. 덜지 않는 것이 보태는 것이다.

소상전

한문 원문

九二利貞,中以為志也。

한국어 번역

구이가 바르게 지키는 것이 이로운 것은 가운데를 뜻으로 삼기 때문이다.

제3효 · 六三
자리로 따지면음효가 자리에 어긋남여섯째 효와 응한다이 효가 변하면 26 大畜 대축

효사

한문 원문

三人行,則損一人;一人行,則得其友。

한국어 번역

삼인행, 즉손일인. 일인행, 즉득기우.

세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을 덜고, 한 사람이 가면 그 벗을 얻는다.

소상전

한문 원문

一人行,三則疑也。

한국어 번역

한 사람이 가야 하는 것은 셋이면 의심하기 때문이다.

제4효 · 六四
자리로 따지면음효가 제자리에첫째 효와 응한다이 효가 변하면 38 睽 규

효사

한문 원문

損其疾,使遄有喜,无咎。

한국어 번역

손기질, 사천유희, 무구.

그 병폐를 덜어 빨리 기쁨이 있게 하면 허물이 없다.

소상전

한문 원문

損其疾,亦可喜也。

한국어 번역

그 병폐를 더는 것은 또한 기뻐할 만하다.

제5효 · 六五
자리로 따지면가운데 자리이나 제자리는 아님둘째 효와 응한다이 효가 변하면 61 中孚 중부

효사

한문 원문

或益之,十朋之龜弗克違,元吉。

한국어 번역

혹익지, 십붕지귀불극위, 원길.

누군가 그에게 보태 주니, 열 붕 값의 거북점도 이를 어기지 못한다. 크게 길하다.

소상전

한문 원문

六五元吉,自上佑也。

한국어 번역

육오가 크게 길한 것은 위로부터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제6효 · 上九
자리로 따지면양효가 자리에 어긋남셋째 효와 응한다이 효가 변하면 19 臨 림

효사

한문 원문

弗損益之,无咎,貞吉,利有攸往,得臣无家。

한국어 번역

불손익지, 무구, 정길, 이유유왕, 득신무가.

덜지 않고 보태니 허물이 없다. 바르게 하면 길하고, 갈 바를 두는 것이 이롭다. 신하를 얻되 한 집에만 매이지 않는다.

소상전

한문 원문

弗損益之,大得志也。

한국어 번역

덜지 않고 보태는 것은 뜻을 크게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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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

왕필(王弼) 《주역주》 — 64괘 주석

이 64괘 주석의 저자는 왕필(王弼)이다. 한강백(韓康伯)은 계사전 등 일부 십익 주석의 저자로, 이 층과 구분한다.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한문 원문

艮為陽兊為隂凡隂順於陽者也陽止於上隂說而順損下益上上行之義也

損之為道損下益上損剛益柔也損下益上非補不足也損剛益柔非長君子之道也為損而可以獲吉其惟有孚乎損而有孚則元吉无咎而可正利有攸往矣損剛益柔不以消剛損下益上不以盈上損剛而不為邪益上而不為諂則何咎而可正雖不能拯濟大難以斯有往物无距也

曷辭也曷之用言何用豐為也

二簋質簿之器也行損以信雖二簋而可用享

至約之道不可常也

下不敢剛貴於上行損剛益柔之謂也剛為徳長損之不可以為常也

自然之質各定其分短者不為不足長者不為有餘損益將何加焉非道之常故必與時偕行也

山下有澤損之象也

可損之善莫善忿欲也

損之為道損下益上損剛益柔以應其時者也居於下極損剛奉柔則不可以逸處損之始則不可以盈事已則往不可宴安乃獲无咎也剛以奉柔雖免乎咎猶未親也故既獲无咎復自酌損乃得合志也遄速也

尚合於志故速往也

柔不可全益剛不可全削下不可以无正初九巳損剛以順柔九二履中而復損已以益柔則剥道成焉故不可遄往而利貞也進之乎柔則凶矣故曰征凶也故九二不損而務益以中為志也

損之為道損下益上其道上行三人謂自六三已上三隂也三隂竝行以承於上則上失其友内无其主名之曰益其實乃損故天地相應乃得化淳男女匹配乃得化生隂陽不對生可得乎故六三獨行乃得其友三隂俱行則必疑矣

履得其位以柔納剛能損其疾也疾何可久故速乃有喜損疾以離其咎有喜乃免故使速乃有喜有喜乃无咎也

以柔居尊而為損道江海處下百谷歸之履尊以損則或益之矣朋黨也龜者決疑之物也隂非先唱柔非自任尊以自居損以守之故人用其力事竭其功知者慮能明者慮䇿弗能違也則衆才之用盡矣獲益而得十朋之龜足以盡天人之助也

處損之終上无所奉損終反益剛徳不損乃反益之而不憂於咎用正而吉不制於柔剛徳遂長故曰弗損益之无咎貞吉利有攸往也居上乘柔處損之極尚夫剛徳為物所歸故曰得臣得臣則天下為一故无家也

한국어 전체 번역

간은 양이고 태는 음이다. 무릇 음은 양을 따르는 것이다. 양이 위에서 멈추고 음이 기뻐하며 따르니, 아래를 덜어 위에 보태어 위로 올라가는 뜻이다.

손의 도는 아래를 덜어 위에 보태고, 굳센 것을 덜어 부드러운 것에 보태는 것이다. 아래를 덜어 위에 보태는 것은 부족한 것을 보충하려는 일이 아니며, 굳센 것을 덜어 부드러운 것에 보태는 것은 군자의 도를 자라게 하는 일이 아니다. 덜어내면서도 길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덜어내되 믿음이 있으면 크게 길하고 허물이 없으며, 바르게 할 수 있고 갈 곳을 두는 것이 이롭다. 굳센 것을 덜어 부드러운 것에 보태더라도 굳셈을 없애지 않고, 아래를 덜어 위에 보태더라도 위를 가득 채우지 않는다. 굳셈을 덜면서 사악해지지 않고 위를 보태면서 아첨하지 않는다면 무슨 허물이 있으며 어찌 바르게 할 수 없겠는가. 비록 큰 어려움을 구제할 수는 없어도 이처럼 나아가면 사물이 거부하지 않는다.

갈(曷)은 묻는 말이다. ‘무엇에 쓰겠는가’라는 말은 무엇 때문에 풍성하게 하느냐는 뜻이다.

두 대그릇은 소박하고 얇은 그릇이다. 믿음으로 덜어내는 일을 행하면 두 대그릇만으로도 제향할 수 있다.

지극히 간략한 도는 늘 행할 수 없다.

아래가 감히 굳세게 하지 않고 위로 올라가는 것을 귀하게 여기니, 굳센 것을 덜어 부드러운 것에 보탠다는 말이다. 굳셈은 덕의 어른이므로 그것을 덜어내는 일은 늘 해서는 안 된다.

자연의 바탕은 저마다 그 분수가 정해져 있어 짧은 것이 부족한 것이 아니고 긴 것이 남는 것이 아니다. 덜고 보탠들 무엇을 더하겠는가. 일정한 도가 아니므로 반드시 때와 함께 행해야 한다.

산 아래 못이 있으니 손의 상이다.

덜어내야 할 좋은 대상 가운데 분노와 욕망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손의 도는 아래를 덜어 위에 보태고 굳센 것을 덜어 부드러운 것에 보태어 때에 호응하는 것이다. 아래의 끝에 있으면서 굳셈을 덜어 부드러움을 받들기 때문에 한가로이 있을 수 없다. 손괘의 시작에 있으므로 일을 가득 채울 수도 없다. 일을 마치면 곧 가서 감히 편안히 쉬지 않아야 허물이 없다. 굳셈으로 부드러움을 받들어 비록 허물은 면하더라도 아직 친합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미 허물이 없게 된 뒤 다시 스스로 헤아려 덜어야 뜻이 합한다. 천(遄)은 빠르다는 뜻이다.

뜻에 합하는 것을 높이므로 빨리 간다.

부드러움은 온전히 보탤 수 없고 굳셈은 온전히 깎을 수 없으며, 아래는 바름이 없어서는 안 된다. 초구가 이미 굳셈을 덜어 부드러움을 따랐는데, 구이마저 중도를 밟고 다시 자신을 덜어 부드러움에 보태면 박괘의 도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빨리 가서는 안 되고 바름을 지키는 것이 이롭다. 부드러움 쪽으로 나아가면 흉하므로 ‘가면 흉하다’고 한다. 구이는 자신을 덜지 않고 보태는 데 힘쓰며 중도를 뜻으로 삼는다.

손의 도는 아래를 덜어 위에 보태니 그 길이 위로 올라간다. 세 사람은 육삼부터 위의 세 음을 말한다. 세 음이 함께 가서 위를 받들면 위는 벗을 잃고 안에는 주인이 없어진다. 이를 보탬이라고 이름 붙이지만 실상은 덜어냄이다. 천지가 서로 호응해야 조화가 순수해지고 남녀가 짝을 이루어야 생겨남이 이루어진다. 음양이 마주하지 않고서 생겨남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육삼이 홀로 가야 벗을 얻고, 세 음이 함께 가면 반드시 의심한다.

제자리를 밟고 부드러움으로 굳셈을 받아들이니 자신의 병을 덜 수 있다. 병을 어찌 오래 둘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빨리 하면 기쁨이 있다. 병을 덜어 허물에서 벗어나고 기쁨이 있어야 면하므로 빨리 하여 기쁨이 있게 한다. 기쁨이 있어야 허물이 없다.

부드러움으로 존귀한 데 있으면서 덜어냄의 도를 행한다. 강과 바다는 낮은 데 처하여 온 골짜기의 물이 돌아간다. 존귀한 자리를 밟고 덜어내므로 누군가가 보태 준다. 붕(朋)은 무리이며 거북은 의심을 결단하는 존재다. 음은 먼저 주장하지 않고 부드러운 자는 스스로 떠맡지 않는다. 존귀한 데 있어도 스스로 차지하지 않고 덜어냄으로 지킨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힘을 다하고 일마다 공을 다하며, 지혜로운 이는 생각을 다하고 밝은 이는 계책을 다하여 어길 수 없다. 이렇게 여러 재능의 쓰임이 다한다. 보탬을 얻고 열 붕의 거북을 얻었으니 천도와 사람의 도움을 다 얻기에 충분하다.

손괘의 끝에 있어 위로 받들 대상이 없다. 덜어냄이 끝나면 도리어 보탬이 된다. 굳센 덕을 덜지 않고 도리어 보태며 허물을 걱정하지 않으니, 바름을 쓰면 길하다. 부드러움에 제약되지 않아 굳센 덕이 마침내 자라므로 ‘덜지 않고 보태며 허물이 없고, 바르게 하면 길하며 갈 곳을 두는 것이 이롭다’고 한다. 위에 있으면서 부드러운 음을 타고 손괘의 끝에 처하여 굳센 덕을 숭상하므로 사물이 귀의한다. 신하를 얻으면 천하가 하나가 되므로 따로 집이 없다.

손은 아래와 굳셈을 덜어 위와 부드러움에 보태지만, 그 덜어냄이 아첨·약화·과잉 증대로 흐르면 안 된다. 믿음과 때가 기준이며, 분노와 욕망을 덜고 굳센 덕을 보전할 때 손의 끝은 오히려 보탬과 귀의로 바뀐다.

교감·번역 주
  • 왕필 《周易注》의 해당 괘 본주를 사고전서본 정문에 따라 문단 순서 그대로 옮겼다. 이체자와 표기는 original에서 교정하지 않았다.
출처: 周易註 (四庫全書本)/卷04 ↗

네 해석의 갈림길

갈리는 지점주희는 손괘의 구조를 백성을 깎아 군주를 받드는 위험으로 날카롭게 읽는 반면, 정약용은 같은 절제도 봄이라는 때에 맞아야 한다는 시의성의 문제로 접근한다.

왕필

손은 아래와 굳셈을 덜어 위와 부드러움에 보태지만, 그 덜어냄이 아첨·약화·과잉 증대로 흐르면 안 된다. 믿음과 때가 기준이며, 분노와 욕망을 덜고 굳센 덕을 보전할 때 손의 끝은 오히려 보탬과 귀의로 바뀐다.

정이천

정이는 손을 개인적 절약이 아니라 아래를 덜어 위를 보태는 위험한 구조에서 출발시킨다. 덜어냄이 정당하려면 지극한 성실, 중도(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알맞은 길), 지속 가능성이 있어야 하며, 말단의 과잉을 덜어 근본을 회복하되 필요한 문식까지 없애서는 안 된다. 수양에서는 분노와 욕망을 덜어야 한다.

효사(각 효에 붙은 판단문)는 공을 차지하지 않는 지원, 무조건적 복종 대신 중을 지키는 충성, 관계의 전일함, 잘못을 신속히 고치는 일, 마음을 비운 군주가 공론을 얻는 일, 끝내 위가 아래를 덜지 않고 오히려 보태는 전환을 다룬다.

주희

주희는 손괘의 괘체(효와 상·하괘가 이룬 괘의 전체 구조)에서 아래의 양을 덜어 위의 음에 보태는 구조, 곧 백성을 깎아 군주를 받드는 위험을 분명히 본다. 그러나 마땅히 덜어야 할 것을 신뢰 속에서 덜면 크게 길하며, 손의 때에는 제향도 두 그릇으로 충분할 수 있다.

효사(각 효에 붙은 판단문)에서는 위를 돕는 정도를 헤아리고, 자신의 중정(알맞은 가운데와 바른 자리를 지킴)한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며, 관계를 전일하게 하고, 잘못을 빨리 고쳐야 한다. 상구에서는 위가 자기 것을 소모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아래를 널리 이롭게 하는 단계로 전환한다.

정약용

정약용은 손괘를 임금이 자신의 부유함을 덜어 백성에게 보태는 정치적 절제로 읽는다. 제사에 두 그릇만 쓰는 검약조차 무조건적인 축소가 아니라 봄이라는 때에 맞아야 하며, 차고 빔을 살펴 문질과 관맹을 조절하는 것이 손의 핵심이다.

각 효에서는 공을 마친 뒤 물러남, 정벌보다 아래를 보탬, 둘의 신의와 셋의 의심, 병을 덜어 내는 기쁨, 하늘과 거북점도 어길 수 없는 보탬, 신하를 얻는 임금의 도리를 풀이한다. 덜어 냄은 궁핍을 강요하는 행위가 아니라 시의와 분별을 갖추어 사익을 줄이고 공동체를 살리는 수양이자 정사이다.

현대적으로 읽기

손괘(덜어 냄으로 지나침을 바로잡고 기반을 살리는 상황)

손(損)은 무조건 줄이라는 명령이 아니라 무엇이 과잉이고 무엇이 기반인지 판단하는 원칙이다. 육삼(셋째 자리의 음효)의 ‘셋이 가면 한 사람을 덜고, 한 사람이 가면 그 벗을 얻는다’는 숫자를 줄이는 일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신뢰할 관계를 남기는 일이 핵심임을 보여 준다.

상구(맨 위 자리의 양효)의 ‘덜지 않고 보태니 허물이 없다. 신하를 얻되 한 집에만 매이지 않는다’는 절감의 끝이 아래의 희생을 멈추고 넓게 환원하는 데 있어야 함을 보여 준다.

교감·번역 주
  • 簋는 곡식을 담아 제사에 올리는 그릇이다. 二簋는 손의 때에는 형식의 풍성함보다 때에 맞는 정성이 중요하다는 제례의 비유다. 享은 이 문맥에서 제사를 올린다는 뜻이므로 ‘향’으로 읽었다.
  • 已事는 자기 일을 마치거나 멈춘다는 뜻이고, 酌損之는 자신의 형편과 상대에게 필요한 정도를 헤아려 덜어 준다는 뜻이다.
  • 朋은 거북 껍질을 세거나 그 가치를 나타내는 단위로 풀이된다. 十朋之龜는 매우 귀한 점구를 뜻하며, 그러한 거북점조차 이 도움의 길함을 뒤집을 수 없다는 말이다.
  • 得臣无家는 은혜가 사사로운 한 집에 한정되지 않아 널리 사람을 얻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본문은 ‘한 집에만 매이지 않는다’로 그 함축을 보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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