无妄 무망
아래괘 震 우레 · 위괘 乾 하늘
돌아오면 함부로 하지 않으므로 무망괘로 이었다.
괘사
元亨。利貞。其匪正有眚,不利有攸往。
원형. 이정. 기비정유생, 불리유유왕.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롭다.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으니, 갈 바를 두는 것이 이롭지 않다.
단전
无妄,剛自外來,而為主於內。動而健,剛中而應,大亨以正,天之命也。其匪正有眚,不利有攸往。无妄之往,何之矣? 天命不佑,行矣哉?
무망은 굳센 양이 밖에서 와 안에서 주인이 된 것이다. 움직이면서 굳세고, 굳센 양이 가운데에 있어 호응하며, 크게 형통하고 바른 것은 하늘의 명이다.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으니 갈 바를 두는 것이 이롭지 않다. 무망한데도 나아간다면 어디로 가겠는가? 하늘의 명이 돕지 않는데 행할 수 있겠는가?
대상전
天下雷行,物與无妄;先王以茂對時,育萬物。
하늘 아래 우레가 다니며 만물이 무망을 부여받는 것이 무망이다. 선왕은 이를 본받아 힘써 때에 응하고 만물을 기른다.
여섯 효
효사
无妄,往吉。
무망, 왕길.
망령됨이 없이 나아가니 길하다.
소상전
无妄之往,得志也。
망령됨이 없이 나아가는 것은 뜻을 이루기 때문이다.
효사
不耕穫,不菑畬,則利有攸往。
불경확, 불치여, 즉리유유왕.
밭을 갈면서 수확을 바라지 않고, 새밭을 일구면서 묵은밭이 되기를 바라지 않으면, 갈 바를 두는 것이 이롭다.
소상전
不耕穫,未富也。
밭을 갈면서 수확을 바라지 않는 것은 부유해지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효사
无妄之災,或系之牛,行人之得,邑人之災。
무망지재, 혹계지우, 행인지득, 읍인지재.
망령된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닥치는 재앙이다. 누군가 소를 매어 두었는데 길 가던 사람이 얻고, 고을 사람이 재앙을 당한다.
소상전
行人得牛,邑人災也。
길 가던 사람이 소를 얻고 고을 사람이 재앙을 당한다.
효사
可貞,无咎。
가정, 무구.
바르게 지킬 수 있으니 허물이 없다.
소상전
可貞无咎,固有之也。
바르게 지켜 허물이 없는 것은 본래 가진 바를 굳게 지키기 때문이다.
효사
无妄之疾,勿藥有喜。
무망지질, 물약유희.
망령된 일이 없는데도 생긴 병이다. 약을 쓰지 않으면 기쁜 일이 있다.
소상전
无妄之藥,不可試也。
망령된 일이 없는데도 생긴 병에는 약을 시험해 보아서는 안 된다.
효사
无妄,行有眚,无攸利。
무망, 행유생, 무유리.
망령됨이 없더라도 행하면 재앙이 있으니, 이로운 바가 없다.
소상전
无妄之行,窮之災也。
망령됨이 없이 행하더라도 흉한 것은 궁극에 이르러 생기는 재앙이기 때문이다.
네 해석의 갈림길
갈리는 지점왕필은 무망을 사욕과 망령됨이 사라진 상태로 보지만, 정이천은 의도가 없어도 이치와 때에 맞지 않으면 이미 망령됨이라는 더 엄격한 기준을 세운다.
왕필
무망은 사욕과 망령됨이 사라져 강직한 도가 안에서 주인이 되는 상태다. 왕필은 바르지 않은 채 억지로 나아가지 말고, 뜻밖의 재앙도 망령된 처방으로 키우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정이천
정이는 무망을 지극한 성실함이자 만물의 성명을 바르게 하는 천도(하늘과 자연의 변화가 따르는 질서)로 풀이한다. 사특한 의도가 없어도 바른 이치와 때에 합하지 않으면 이미 망령됨이다. 무망의 도는 억지로 일을 만들거나 결과의 부유함을 계산하지 않고, 사리상 당연한 일을 때에 맞춰 행하는 데 있다.
효사(각 효에 붙은 판단문)는 내면의 성실함으로 행하는 길함, 결과를 미리 탐하지 않는 실천, 망령된 이득과 그에 따르는 손실, 이미 바른 상태를 지키는 절제, 외부의 병을 억지로 공격하다 자신까지 망령되게 되는 위험, 무망이 극에 이른 뒤 더 나아가는 과오를 보여 준다.
주희
주희는 무망을 꾸밈없는 실제 이치가 자연스레 그러한 상태로 풀이하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얻는다는 《사기》의 無望 표기도 함께 소개한다. 진의 움직임과 건의 건강함, 구오(다섯째 자리의 양효)와 육이(둘째 자리의 음효)의 중정(알맞은 가운데와 바른 자리를 지킴)한 응이 크게 형통할 근거지만 바름을 잃으면 천명이 돕지 않는다.
효에서는 사사로운 기대 없이 때와 이치에 따라 움직이는 태도, 까닭 없이 닥치는 재앙, 더 행동하지 않고 굳게 지키는 점, 이미 무망한 상태에 불필요한 치료를 더하지 않는 절제를 강조한다.
정약용
무망은 제멋대로 달아나는 망동을 거두고 천명(하늘이 맡긴 것으로 이해한 공적 사명)에 순응하는 지극한 성실함이다. 정약용은 둔괘·중부괘에서의 추이(효가 옮겨 변한 관계를 살펴 괘를 읽는 법), 두 호괘(가운데 효들을 겹쳐 따로 이룬 괘)가 이루는 점괘, 진·간·손·이의 물상을 함께 대조하여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다’는 조건을 밝힌다. 여섯 효에서는 수확·소·질병·행로의 상을 통해, 때와 자리를 잃은 억지 행동이 어떻게 뜻밖의 재앙으로 바뀌는지를 검증한다.
현대적으로 읽기
무망괘(억지와 사심 없이 사실과 때에 맞게 행동하는 상황)
무망(无妄)은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는 순진함이 아니라, 결과를 조작하려는 사심 없이 사실·원칙·때에 맞게 행동하는 태도다. 육이(둘째 자리의 음효)의 ‘밭을 갈면서 수확을 바라지 않는다’에 소상전은 ‘부유해지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 덧붙인다.
구오(다섯째 자리의 양효)의 ‘망령된 일이 없는데도 생긴 병에는 약을 쓰지 않으면 기쁜 일이 있다’는 이미 잘 작동하는 것을 불안 때문에 과잉 교정하지 말라는 경고다.
왕필(王弼) 《주역주》 — 64괘 주석
이 64괘 주석의 저자는 왕필(王弼)이다. 한강백(韓康伯)은 계사전 등 일부 십익 주석의 저자로, 이 층과 구분한다.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謂震也
震動而乾健也
謂五也
剛自外來而為主於内動而愈健剛中而應威剛方正私欲不行何可以妄使有妄之道滅无妄之道成非大亨利貞而何剛自外來而為主於内則柔邪之道消矣動而愈健則剛直之道通矣剛中而應則齊明之徳著矣故大亨以正也天之敎命何可犯乎何可妄乎是以匪正則有眚而不利有攸往也
匪正有眚不求改以從正而欲有所往居不可以妄之時而欲以不正有所往將欲何之天命之所不祐行矣哉
與辭也猶皆也天下雷行物皆不可以妄也
茂盛也物皆不敢妄然後萬物乃得各全其性對時育物莫盛於斯也
體剛處下以貴下賤行不犯妄故往得其志
不耕而穫不穫菑而畬代終巳成而不而造也不擅其美乃盡臣道故利有攸往
以陰居陽行違謙順是无妄之所以為災也牛者稼穡之資也二以不耕而穫利有攸往而三為不順之行故或繋之牛是有司之所以為獲彼人之所以為災也故曰行人之得邑人之災也
處无妄之時以陽居陰以剛乘柔履於謙順比近至尊故可以任正固有所守而无咎也
居得尊位為无妄之主者也下皆无妄害非所致而取藥焉疾之甚也非妄之災勿治自復非妄而藥之則凶故曰勿藥有喜
藥攻有妄者也而反攻无妄故不可試也
處不可妄之極唯宜靜保其身而已故不可以行也
진을 말한다.
진은 움직이고 건은 강건하다.
구오를 말한다.
강한 것이 밖에서 와 안에서 주인이 되고, 움직일수록 더욱 강건하며, 강함으로 중에 있고 응한다. 위엄 있고 강하며 방정하여 사욕이 행해지지 않으니 어찌 망령됨을 부릴 수 있겠는가. 망령된 도가 사라지고 무망의 도가 이루어지니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로운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강한 것이 밖에서 와 안에서 주인이 되면 부드럽고 사악한 도가 사라지고, 움직일수록 더욱 강건하면 강직한 도가 통하며, 강함으로 중에 있고 응하면 가지런하고 밝은 덕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한다. 하늘의 가르침과 명을 어찌 범할 수 있고 어찌 망령되게 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고 가는 바를 두는 것이 이롭지 않다.
바르지 않아 재앙이 있는데도 고쳐 바름을 따르려 하지 않고 가려 한다. 망령되게 해서는 안 되는 때에 있으면서 바르지 않은 채 가려 하니 장차 어디로 가겠는가. 하늘의 명이 돕지 않는데 행할 수 있겠는가.
함께한다는 말로, 모두와 같다. 천하에 우레가 움직이면 사물이 모두 망령되게 해서는 안 된다.
무성하다는 뜻이다. 사물이 모두 감히 망령되게 하지 않은 뒤에야 만물이 각기 자기 본성을 온전히 할 수 있다. 때에 맞추어 만물을 기르는 일로 이보다 성대한 것이 없다.
강함을 몸으로 삼아 아래에 있고 존귀한 몸으로 비천한 데 내려간다. 행함이 망령됨을 범하지 않으므로 가서 뜻을 얻는다.
밭을 갈지 않고도 수확하며, 새 밭을 일구지 않고도 묵은 밭의 수확을 얻는다는 것은 남이 마무리해 이미 이루어 놓은 일을 대신 이어받아 새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독차지하지 않아야 신하의 도를 다하므로 가는 바를 두는 것이 이롭다.
음으로 양의 자리에 있어 행함이 겸손과 순응을 어긴다. 이것이 무망이 재앙을 만나는 까닭이다. 소는 농사의 밑천이다. 육이는 밭을 갈지 않고 수확하여 가는 바가 있어 이롭지만, 육삼은 순응하지 않는 행실을 한다. 그러므로 누군가 소를 매어 두면 관리는 그것을 얻고 그곳 사람은 재앙을 당한다. 그래서 ‘길 가는 사람은 얻고 고을 사람은 재앙을 입는다’고 한다.
무망의 때에 양으로 음의 자리에 있고 강함으로 부드러움을 올라타며 겸손과 순응을 밟는다. 지존과 가까이 있으므로 바름에 맡겨 굳게 지킬 바가 있어도 허물이 없다.
존위를 얻어 무망의 주인이 된 자다. 아래가 모두 망령됨이 없으니 해로움은 자초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약을 먹는다면 병을 더 심하게 한다. 망령됨 없이 생긴 재앙은 치료하지 않아도 저절로 회복된다. 망령됨이 없는데 약을 쓰면 흉하므로 ‘약을 쓰지 않으면 기쁨이 있다’고 한다.
약은 망령됨이 있는 것을 공격하는 것인데, 도리어 망령됨이 없는 것을 공격하므로 시험해서는 안 된다.
망령되게 해서는 안 되는 극점에 있으니 오직 고요히 자기 몸을 보전할 뿐이다. 그러므로 행해서는 안 된다.
무망은 사욕과 망령됨이 사라져 강직한 도가 안에서 주인이 되는 상태다. 왕필은 바르지 않은 채 억지로 나아가지 말고, 뜻밖의 재앙도 망령된 처방으로 키우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교감·번역 주
정이천 《이천역전》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震下乾上〉
无妄序卦復則不妄矣故受之以无妄復者反於道也既復於道則合正理而无妄故復之後受之以无妄也為卦乾上震下震動也動以天為无妄動以人欲則妄矣无妄之義大矣哉
无妄元亨利貞其匪正有眚不利有攸往
无妄者至誠也至誠者天之道也天之化育萬物生生不窮各正其性命乃无妄也人能合无妄之道則所謂與天地合其徳也无妄有大亨之理君子行无妄之道則可以大亨矣无妄天之道也卦言人由无妄之道也利貞法无妄之道利在貞正失貞正則妄也雖无邪心苟不合正理則妄也乃邪心也故有匪正則為過眚既已无妄不宜有往往則妄也
彖曰无妄剛自外來而為主於内
謂初九也坤初爻變而為震剛自外而来也震以初爻為主成卦由之故初為无妄之主動以天為无妄動而以天動為主也以剛變柔為以正去妄之象又剛正為主於内无妄之義也九居初正也
動而健剛中而應大亨以正天之命也
下動而上健是其動剛健也剛健无妄之體也剛中而應五以剛居中正二復以中正相應是順理而不妄也故其道大亨通而貞正乃天之命也天命謂天道也所謂无妄也
其匪正有眚不利有攸往无妄之往何之矣天命不祐行矣哉
所謂无妄正而已小失於正則為有過乃妄也所謂匪正盖由有往若无妄而不往何由有匪正乎无妄者理之正也更有往將何之矣乃入於妄也往則悖於天理天道所不祐可行乎哉
象曰天下雷行物與无妄先王以茂對時育萬物雷行於天下隂陽交和相薄而成聲於是驚蟄蔵振萌芽發生萬物其所賦與洪纎髙下各正其性命无有差妄物與无妄也先王觀天下雷行發生賦與之象而以茂對天時養育萬物使各得其宜如天與之无妄也茂盛也茂對之為言猶盛行永言之比對時謂順合天時天道生萬物各得其性命而不妄王者體天之道養育人民以至昆蟲草木使各得其宜乃對時育物之道也
初九无妄往吉
九以陽剛為主於内无妄之象以剛實變柔而居内中誠不妄者也以无妄而往何所不吉卦辭言不利有攸往謂既无妄不可復有往也過則妄矣爻言往吉謂以无妄之道而行則吉也
象曰无妄之往得志也
以无妄而往无不得其志也盖誠之於物无不能動以之修身則身正以之治事則事得其理以之臨人則人感而化无所往而不得其志也
六二不耕穫不菑畬則利有攸往
凡理之所然者非妄也人所欲為者乃妄也故以耕穫菑畬譬之六二居中得正又應五之中正居動體而柔順為動能順乎中正乃无妄者也故極言无妄之義耕農之始穫其成終也田一嵗曰菑三嵗曰畬不耕而穫不菑而畬謂不首造其事因其事理所當然也首造其事則是人心所作為乃妄也因事之當然則是順理應物非妄也穫與畬是也盖耕則必有穫菑則必有畬是事理之固然非心意之所造作也或曰聖人制作以利天下者皆造端也豈非妄乎曰聖人隨時制作合乎風氣之宜未嘗先時而開之也若不待時則一聖人足以盡為矣豈待累聖繼作也時乃事之端聖人隨時而為也
象曰不耕穫未富也
未者非必之辭臨卦曰未順命是也不耕而穫不菑而畬因其事之當然既耕則必有穫既菑則必成畬非必以穫畬之富而為也其始耕菑乃設心在於求穫畬是以其富也心有欲而為者則妄也
六三无妄之災或繫之牛行人之得邑人之災
三以隂柔而不中正是為妄者也又志應於上欲也亦妄也在无妄之道為災害也人之妄動由有欲也妄動而得亦必有失雖使得其所利其動而妄失已大矣况復凶悔隨之乎知者見妄之得則知其失必與稱也故聖人因六三有妄之象而發明其理云无妄之災或繫之牛行人之得邑人之災言如三之為妄乃无妄之災害也設如有得其失隨至如或繫之牛或謂設或也或繫得牛行人得之以為有得邑人失牛乃是災也借使邑人繫得馬則行人失馬乃是災也言有得則有失不足以為得也行人邑人但言有得則有失非以為彼已也妄得之福災亦隨之妄得之得失亦稱之固不足以為得也人能知此則不為妄動矣
象曰行人得牛邑人災也
行人得牛乃邑人之災也有得則有失何足以為得乎
九四可貞无咎
四剛陽而居乾體復无應與无妄者也剛而无私豈有妄乎可貞固守此自无咎也九居隂得為正乎曰以陽居乾體若復處剛則為過矣過則妄也居四无尚剛之志也可貞與利貞不同可貞謂其所處可貞固守之利貞謂利於貞也
象曰可貞无咎固有之也
貞固守之則无咎也
九五无妄之疾勿藥有喜
九以中正當尊位下復以中正順應之可謂无妄之至者也其道无以加矣疾為之病者也以九五之无妄如其有疾勿以藥治則有喜也人之有疾則以藥石攻去其邪以養其正若氣體平和本无疾病而攻治之則反害其正矣故勿藥則有喜也有喜謂疾自亡也无妄之所謂疾者謂若治之而不治率之而不從化之而不革以妄而為无妄之疾舜之有苖周公之管蔡孔子之叔孫武叔是也既已无妄而有疾之者則當自如无妄之疾不足患也若遂自攻治乃是渝其无妄而遷於妄也五既處无妄之極故惟戒在動動則妄矣
象曰九妄之藥不可試也
人之有妄理必修改既无妄矣復藥以治之是反為妄也其可用乎故云不可試也試暫用也猶曰少嘗之也
上九无妄行有𤯝无攸利
上九居卦之終无妄之極者也極而復行過於理也過於理則妄也故上九而行則有過眚而无所利矣
象曰无妄之行窮之災也
无妄既極而復加進乃為妄矣是窮極而為災害也
무망괘는 아래가 진이고 위가 건이다. 「서괘전」은 ‘돌아오면 망령되지 않으므로 무망괘로 받았다’고 했다. 복은 도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미 도로 돌아오면 바른 이치에 합하여 망령됨이 없으므로 복괘 뒤에 무망괘가 온다. 괘는 위가 건이고 아래가 진이다. 진은 움직임이다. 하늘의 도로 움직이면 무망이고, 사람의 욕심으로 움직이면 망령됨이다. 무망의 뜻이 크도다.
[괘사] ‘무망은 크게 형통하고 바름이 이롭다.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어 나아가는 것이 이롭지 않다.’ 무망은 지극한 성실함이다. 지극한 성실함은 하늘의 도다. 하늘은 만물을 변화시키고 길러 낳고 또 낳기를 다함없이 하며, 각각 그 성명(性命)을 바르게 하니 무망이다. 사람이 무망의 도에 합할 수 있으면 이른바 천지와 그 덕을 합하는 것이다. 무망에는 크게 형통할 이치가 있다. 군자가 무망의 도를 행하면 크게 형통할 수 있다. 무망은 하늘의 도이고, 괘에서는 사람이 무망의 도를 따르는 일을 말한다. ‘바름이 이롭다’는 것은 무망의 도를 본받을 때 바르고 곧게 하는 데 이로움이 있다는 뜻이다. 바르고 곧음을 잃으면 망령됨이다. 비록 사특한 마음이 없더라도 바른 이치에 합하지 않으면 망령된 것이고, 그것이 곧 사특한 마음이다. 그러므로 바르지 않으면 과오와 재앙이 있다. 이미 무망에 이르렀다면 다시 나아가려 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면 망령됨이 된다.
[단전] ‘무망은 굳센 것이 밖에서 와서 안에서 주인이 된다.’ 초구를 말한다. 곤의 초효가 변해 진이 되었으니 굳센 것이 밖에서 온 것이다. 진은 초효를 주인으로 삼고 괘가 그 효 때문에 이루어졌으므로 초구가 무망의 주인이 된다. 하늘의 도로 움직이는 것이 무망이고, 움직일 때 하늘의 움직임을 주인으로 삼는다. 굳센 것이 부드러운 것을 바꾼 것은 바름으로 망령됨을 제거하는 상이고, 또 굳세고 바른 것이 안에서 주인이 되었으므로 무망의 뜻이다. 구가 초효에 있으니 바른 자리다.
‘움직이면서 건강하고, 굳센 것이 가운데이며 응한다. 크게 형통하고 바른 것은 하늘의 명이다.’ 아래는 움직이고 위는 건강하니 그 움직임이 굳세고 건강하다. 굳세고 건강함은 무망의 바탕이다. 굳센 것이 가운데에 있고 응한다는 것은 구오가 굳센 것으로 중정한 자리에 있고 육이도 중정하여 서로 응하는 것이다. 이치를 순종해 망령되지 않으므로 그 도가 크게 형통하고 바른 것이 하늘의 명이다. 천명은 천도이며, 이른바 무망이다.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고 나아가는 것이 이롭지 않다. 무망인데 나아간들 어디로 가겠는가. 천명이 돕지 않는데 어찌 행하겠는가.’ 무망은 바름일 뿐이다. 조금이라도 바름을 잃으면 과오가 생기니 망령됨이다. 바르지 않게 되는 것은 나아가려는 데서 비롯된다. 무망에 있으면서 나아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바르지 않게 되겠는가. 무망은 이치의 바름이다. 여기서 다시 나아간다면 어디로 가겠는가. 결국 망령됨으로 들어간다. 나아가면 천리에 어긋나고 천도가 돕지 않으니 행할 수 있겠는가.
[대상전] ‘하늘 아래에서 우레가 다니니 사물마다 무망을 부여받는다. 선왕은 이로써 하늘의 때에 성대하게 응하여 만물을 기른다.’ 우레가 하늘 아래에서 다니면 음양이 교합하고 화합하여 서로 부딪쳐 소리를 낸다. 이에 겨울잠을 자던 것이 놀라 깨어나고 싹이 떨쳐 나와 만물이 생겨난다. 크고 작은 것, 높고 낮은 것마다 부여받은 성명을 바르게 하여 어긋나거나 망령된 것이 없다. 이것이 사물마다 무망을 부여받는다는 뜻이다. 선왕은 하늘 아래에서 우레가 다녀 만물을 발생시키고 자질을 부여하는 상을 보고, 하늘의 때에 성대하게 응해 만물을 길러 각각 마땅함을 얻게 한다. 하늘이 무망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茂는 성대함이다. ‘성대하게 응한다’는 말은 ‘성대하게 행한다’, ‘길이 말한다’고 하는 표현과 비슷하다. 때에 응한다는 것은 천시에 순응하고 합한다는 뜻이다. 천도는 만물을 낳아 각각 그 성명을 얻어 망령됨이 없게 한다. 왕은 천도를 체득하여 백성을 기르고 벌레와 초목에 이르기까지 각각 마땅함을 얻도록 한다. 이것이 때에 응해 만물을 기르는 도다.
[초구] ‘무망으로 나아가면 길하다.’ 초구는 양강으로 안에서 주인이 되어 무망의 상이다. 굳세고 충실한 것이 부드러운 것을 바꾸고 안에 머물러 내면의 성실함이 망령되지 않는다. 무망으로 나아가면 어디인들 길하지 않겠는가. 괘사에서 나아가는 것이 이롭지 않다고 한 것은 이미 무망에 이르렀으면 다시 더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지나치면 망령됨이 된다. 효사에서 나아가면 길하다고 한 것은 무망의 도로 행하면 길하다는 뜻이다. [소상전] ‘무망으로 나아가면 뜻을 얻는다.’ 무망으로 나아가면 뜻을 얻지 못할 곳이 없다. 성실함은 사물을 감동시키지 못함이 없다. 자신을 닦는 데 쓰면 몸이 바르게 되고, 일을 다스리는 데 쓰면 일이 이치를 얻으며, 사람에게 임하는 데 쓰면 사람이 감동하여 교화된다. 어디로 가든 뜻을 얻는다.
[육이] ‘밭갈이를 앞세워 수확을 바라지 않고, 새 밭을 일구어 묵은 밭을 바라지 않으면 나아가는 것이 이롭다.’ 이치상 당연한 것은 망령됨이 아니고, 사람이 욕심으로 하려는 것이 망령됨이다. 그래서 밭갈이와 수확, 새 밭과 묵은 밭으로 비유했다. 육이는 가운데에 있고 바름을 얻었으며 구오의 중정과 응한다. 움직이는 몸체에 있으면서 부드럽고 순하여, 움직임이 중정을 따르니 무망인 자다. 그래서 무망의 뜻을 극진히 말했다. 밭갈이는 농사의 시작이고 수확은 그 완성이다. 밭을 일군 첫해를 菑, 삼 년 된 밭을 畬라 한다. ‘밭갈이를 앞세우지 않고 수확하며, 새 밭을 앞세우지 않고 묵은 밭을 얻는다’는 것은 일을 먼저 만들어 내지 않고 일의 이치상 당연한 바를 따른다는 뜻이다. 일을 먼저 만들어 내면 사람 마음이 작위한 것이므로 망령됨이다. 일의 당연함을 따르면 이치를 따르고 사물에 응한 것이므로 망령됨이 아니다. 수확과 묵은 밭이 그러하다. 밭을 갈면 반드시 수확하고 새 밭을 일구면 반드시 묵은 밭이 되는 것은 사리상 본래 그러한 것이지 마음이 조작한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성인이 제도를 만들어 천하를 이롭게 한 일도 모두 단서를 새로 연 것인데 망령됨이 아니냐고 묻는다. 성인이 때에 맞춰 제도를 만든 것은 풍속과 기운의 마땅함에 합한 것이며, 때보다 앞서 열어젖힌 적은 없다. 때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면 성인 한 사람만으로 모든 제도를 다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어찌 여러 성인이 이어서 만들어야 했겠는가. 때가 곧 일의 단서이고 성인은 때에 따라 행한다. [소상전] ‘밭갈이를 앞세워 수확을 바라지 않는 것은 부유함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未는 반드시 그렇다는 단정의 말이 아니며, 림괘의 ‘아직 명을 순종한 것이 아니다’에서도 이와 같다. 밭을 앞세우지 않고 수확하며 새 밭을 앞세우지 않고 묵은 밭을 얻는 것은 일의 당연함을 따르는 것이다. 이미 갈면 반드시 수확하고 이미 새 밭을 일구면 반드시 묵은 밭이 된다. 수확과 묵은 밭에서 얻을 부유함을 반드시 목적으로 삼아 행한 것이 아니다. 처음 갈고 개간할 때 마음을 수확과 묵은 밭을 구하는 데 두면 부유함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욕심을 품고 행하면 망령됨이다.
[육삼] ‘무망의 재앙이다. 누군가 소를 매어 두었는데 길 가는 사람이 얻고 마을 사람이 재앙을 당한다.’ 육삼은 음유하고 중정하지 못하므로 망령된 자다. 또 뜻이 상구에 응해 욕심을 품었으니 역시 망령됨이다. 무망의 도에서 보면 재앙과 해가 된다. 사람이 망령되게 움직이는 것은 욕심 때문이다. 망령되게 움직여 얻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것도 있다. 이익을 얻었다고 해도 움직임이 망령되어 잃은 바가 이미 크며, 하물며 흉함과 후회가 다시 따르는 경우이겠는가. 지혜로운 자는 망령되게 얻은 것을 보면 그에 맞먹는 손실도 반드시 있음을 안다. 성인은 육삼에게 망령됨의 상이 있으므로 그 이치를 밝혔다. 누군가 소를 매어 두었는데 길 가는 사람이 소를 얻어 얻은 바가 있는 듯하지만, 마을 사람은 소를 잃어 재앙을 당한다. 假設의 ‘혹’이다. 반대로 마을 사람이 말을 매어 얻었다면 길 가는 사람이 말을 잃어 재앙을 당한 셈이다. 얻음이 있으면 잃음이 있으니 얻었다고 하기 부족하다는 뜻이다. 길 가는 사람과 마을 사람은 다만 얻음이 있으면 잃음이 있다는 것을 말할 뿐, 저쪽과 이쪽을 특별히 가리킨 것이 아니다. 망령되게 얻은 복에는 재앙도 따르고, 망령되게 얻은 이익에는 그에 맞는 손실도 따른다. 본래 얻었다고 할 수 없다. 사람이 이를 알면 망령되게 움직이지 않는다. [소상전] ‘길 가는 사람이 소를 얻은 것은 마을 사람의 재앙이다.’ 한쪽이 얻으면 다른 쪽이 잃으니 어찌 참된 얻음이라 하겠는가.
[구사] ‘바름을 굳게 지킬 수 있으니 허물이 없다.’ 구사는 양강하고 건체에 있으며 응하거나 함께하는 효가 없으므로 무망인 자다. 굳세면서 사사로움이 없으니 어찌 망령됨이 있겠는가. 이 상태를 바르게 굳혀 지키면 저절로 허물이 없다. 구가 음자리에 있는데 바르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양으로 건체에 있는데 다시 굳센 자리에 있었다면 지나쳤을 것이다. 지나치면 망령됨이다. 사효에 있어 굳셈을 높이려는 뜻이 없으므로 바름을 굳게 지킬 수 있다. ‘바름을 굳게 지킬 수 있다’와 ‘바름이 이롭다’는 다르다. 전자는 현재 처한 바를 굳게 지킬 수 있다는 뜻이고, 후자는 바름을 취하는 데 이롭다는 뜻이다. [소상전] ‘바름을 굳게 지켜 허물이 없는 것은 본래 가지고 있던 것을 지키는 것이다.’ 바름을 굳게 지키면 허물이 없다.
[구오] ‘무망의 병은 약을 쓰지 말아야 기쁨이 있다.’ 구오는 중정으로 존귀한 자리에 있고 아래에서도 중정한 육이가 순응해 서로 응하니 무망의 지극한 자라 할 수 있다. 그 도에 더할 것이 없다. 병은 이를 해치는 것이다. 구오처럼 무망한 자에게 병이 생겨도 약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기쁨이 있다. 사람이 병이 생기면 약과 침으로 사기를 공격해 없애고 정기를 길러야 한다. 그러나 기체가 평화롭고 본래 병이 없는데 공격해 치료하면 도리어 정기를 해친다. 그러므로 약을 쓰지 않으면 기쁨이 있다. 기쁨이 있다는 것은 병이 저절로 사라진다는 뜻이다. 무망의 병은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고 이끌어도 따르지 않으며 교화해도 고치지 않는 자가 망령됨으로써 무망한 자의 병이 되는 경우다. 순임금에게 유묘가 있었고, 주공에게 관숙·채숙이 있었으며, 공자에게 숙손무숙이 있었던 것과 같다. 자신이 이미 무망한데 병이 되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자신의 무망을 그대로 지키면 된다. 무망의 병은 걱정하기에 부족하다. 이를 공격하고 다스리려 들면 자신의 무망을 바꾸어 망령됨으로 옮겨가게 된다. 구오는 무망의 극에 있으므로 오직 움직임을 경계한다. 움직이면 망령됨이다. [소상전] ‘무망의 병에 약을 시험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 망령됨이 있으면 이치상 반드시 고치고 닦아야 한다. 그러나 이미 무망인데 다시 약으로 다스리면 도리어 망령됨이 된다. 어찌 쓸 수 있겠는가. 試는 잠시 써 본다는 뜻으로 조금 맛본다는 말과 같다.
[상구] ‘무망인데 행하면 재앙이 있어 이로운 바가 없다.’ 상구는 괘의 끝, 무망의 극에 있다. 극에 이른 뒤 다시 행하면 이치를 지나친다. 이치를 지나치면 망령됨이다. 그러므로 상구가 다시 행하면 과오와 재앙이 있어 이로운 바가 없다. [소상전] ‘무망인데 행하는 것은 궁극에 이른 데서 생긴 재앙이다.’ 무망이 이미 극에 이르렀는데 다시 더 나아가면 망령됨이 된다. 궁극에 이른 데서 재앙이 생긴 것이다.
정이는 무망을 지극한 성실함이자 만물의 성명을 바르게 하는 천도(하늘과 자연의 변화가 따르는 질서)로 풀이한다. 사특한 의도가 없어도 바른 이치와 때에 합하지 않으면 이미 망령됨이다. 무망의 도는 억지로 일을 만들거나 결과의 부유함을 계산하지 않고, 사리상 당연한 일을 때에 맞춰 행하는 데 있다.
효사(각 효에 붙은 판단문)는 내면의 성실함으로 행하는 길함, 결과를 미리 탐하지 않는 실천, 망령된 이득과 그에 따르는 손실, 이미 바른 상태를 지키는 절제, 외부의 병을 억지로 공격하다 자신까지 망령되게 되는 위험, 무망이 극에 이른 뒤 더 나아가는 과오를 보여 준다.
주희 《주역본의》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震下乾上〉
无妄元亨利貞其匪正有眚不利有攸往〈无妄實理自然之謂史記作无望謂无所期望而有得焉者其義亦通為卦自訟而變九自二來而居於初又為震主動而不妄者也故為无妄又二體震動而乾健九五剛中而應六二故其占大亨而利於正若其不正則有眚而不利有所往也〉○彖曰无妄剛自外來而為主於内動而健剛中而應大亨以正天之命也其匪正有眚不利有攸往无妄之往何之矣天命不祐行矣哉〈以卦變卦徳卦體言卦之善如此故其占當獲大亨而利於正乃天命之當然也其有不正則不利有所往欲何往哉蓋其逆天之命而天不祐之故不可以有行也〉○象曰天下雷行物與无妄先王以茂對時育萬物〈天下雷行震動𤼵生萬物各正其性命是物物而與之以无妄也先王法此以對時育物因其所性而不為私焉〉○初九无妄往吉〈以剛在内誠之主也如是而往其吉可知故其象占如此〉象曰无妄之往得志也○六二不耕穫不菑畬則利有攸往〈菑側其反畬音餘○柔順中正因時順理而无私意期望之心故有不耕穫不菑畬之象言其无所為於前无所冀於後也占者如是則利有所往矣〉象曰不耕穫未富也〈富如非富天下之富言非計其利而為之也〉○六三无妄之災或繫之牛行人之得邑人之災〈卦之六爻皆无妄者也六三處不得正故遇其占者无故而有災如行人牽牛以去而居者反遭詰捕之擾也〉象曰行人得牛邑人災也○九四可貞无咎〈陽剛乾體下无應與可固守而无咎不可以有為之占也〉象曰可貞无咎固有之也〈有猶守也〉○九五无妄之疾勿藥有喜〈乾剛中正以居尊位而下應亦中正无妄之至也如是而有疾勿藥而自愈矣故其象占如此〉象曰无妄之藥不可試也〈既已无妄而復藥之則反為妄而生疾矣試謂少嘗之也〉○上九无妄行有眚无攸利〈上九非有妄也但以其窮極而不可行耳故其象占如此〉象曰无妄之行窮之災也
무망괘는 아래가 진이고 위가 건이다. [괘사] ‘무망은 크게 형통하고 바름이 이롭다.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어 나아가는 것이 이롭지 않다.’ 무망은 꾸밈없는 실제 이치가 저절로 그러한 것을 말한다. 《사기》에는 無望으로 되어 있는데, 기대하는 바가 없는데도 얻는 것이 있다는 뜻으로 읽어도 통한다. 괘변으로 보면 송괘에서 변해 구가 이효에서 와 초효에 머물렀다. 또 초구는 진의 주인이 되어 움직이면서 망령되지 않는다. 그래서 무망괘가 된다. 두 몸체는 진으로 움직이고 건으로 건강하며, 구오는 굳세고 가운데에 있고 육이와 응한다. 그러므로 그 점은 크게 형통하고 바름에 이롭다.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어 나아가는 것이 이롭지 않다.
[단전] ‘무망은 굳센 것이 밖에서 와서 안에서 주인이 되고, 움직이면서 건강하며, 굳센 것이 가운데이고 응한다. 크게 형통하고 바른 것은 하늘의 명이다.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어 나아가는 것이 이롭지 않다. 무망인데 나아간들 어디로 가겠는가. 천명이 돕지 않는데 어찌 행하겠는가.’ 괘변·괘덕·괘체로 괘의 선함이 이와 같음을 말했다. 그래서 그 점은 크게 형통하고 바름에 이로우니 곧 천명상 당연한 일이다. 바르지 않으면 나아가는 것이 이롭지 않다. 어디로 가려는가. 하늘의 명을 거스르므로 하늘이 돕지 않아 행할 수 없다.
[대상전] ‘하늘 아래에서 우레가 다니니 사물마다 무망을 부여받는다. 선왕은 이로써 하늘의 때에 성대하게 응하여 만물을 기른다.’ 하늘 아래에서 우레가 다니며 만물을 떨쳐 발생시키고 각각 그 성명을 바르게 하니, 사물마다 무망을 부여한 것이다. 선왕은 이를 본받아 때에 응하고 만물을 기르되, 각 사물이 타고난 본성을 따라 기르며 사사로이 작위하지 않았다.
[초구] ‘무망으로 나아가면 길하다.’ 굳센 것이 안에 있어 성실함의 주인이 된다. 이처럼 나아가면 길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다.
[육이] ‘밭갈이를 앞세워 수확을 바라지 않고, 새 밭을 일구어 묵은 밭을 바라지 않으면 나아가는 것이 이롭다.’ 菑는 측기의 반절, 畬는 여의 음으로 읽는다. 부드럽고 순하며 중정하여 때를 따르고 이치에 순응하며 사사로운 뜻과 기대하는 마음이 없다. 그래서 앞에서 무엇을 도모하지 않고 뒤에서 무엇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밭갈이를 앞세워 수확을 바라지 않고 새 밭을 일구어 묵은 밭을 바라지 않는 상이 있다. 점친 사람이 이와 같으면 나아가는 것이 이롭다. [소상전] 富는 ‘천하를 부유함으로 삼지 않는다’고 할 때의 부유함과 같다. 이익을 계산하여 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육삼] ‘무망의 재앙이다. 누군가 소를 매어 두었는데 길 가는 사람이 얻고 마을 사람이 재앙을 당한다.’ 괘의 여섯 효는 모두 무망한 자지만 육삼은 처한 자리가 바르지 않다. 그래서 이 점을 얻은 자는 까닭 없이 재앙을 당한다. 길 가는 사람이 소를 끌고 가 버렸는데 거주하는 사람이 도리어 추궁과 체포의 소란을 당하는 것과 같다.
[구사] ‘바름을 굳게 지킬 수 있으니 허물이 없다.’ 양강이고 건체이며 아래에 응하여 함께하는 효가 없다. 굳게 지켜 허물이 없을 수 있으나, 어떤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소상전] 有는 지킨다는 뜻과 같다.
[구오] ‘무망의 병은 약을 쓰지 말아야 기쁨이 있다.’ 건의 굳세고 중정함으로 존귀한 자리에 있고 아래의 응도 중정하여 무망의 지극함이다. 이와 같은데 병이 생겼다면 약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낫는다. 그래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다. [소상전] 이미 무망인데 다시 약을 쓰면 도리어 망령됨이 되어 병이 생긴다. 試는 조금 맛본다는 뜻이다.
[상구] ‘무망인데 행하면 재앙이 있어 이로운 바가 없다.’ 상구에게 망령됨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궁극에 이르러 더 행할 수 없을 뿐이다. 그래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다.
주희는 무망을 꾸밈없는 실제 이치가 자연스레 그러한 상태로 풀이하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얻는다는 《사기》의 無望 표기도 함께 소개한다. 진의 움직임과 건의 건강함, 구오(다섯째 자리의 양효)와 육이(둘째 자리의 음효)의 중정(알맞은 가운데와 바른 자리를 지킴)한 응이 크게 형통할 근거지만 바름을 잃으면 천명이 돕지 않는다.
효에서는 사사로운 기대 없이 때와 이치에 따라 움직이는 태도, 까닭 없이 닥치는 재앙, 더 행동하지 않고 굳게 지키는 점, 이미 무망한 상태에 불필요한 치료를 더하지 않는 절제를 강조한다.
정약용(丁若鏞) 《주역사전》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雜卦傳曰無妄。災也。〇程子曰動以天。爲無妄。〈下震而上乾〉〇朱子曰史記作無望。謂無所期望而有得焉者。其義亦通。〇鏞案卦自遯來。二陰纔生。四陽外逃。妄之至也。〈女逃而亡爲妄也。遯以巽女而亡。〉今也挽其一陽而爲主於內。〈下今震〉曰無妄往矣。此之謂無妄。無妄者勿遯也。〈逃亡之謂妄〉又無妄者至誠也。卦自中孚來。中孚者至誠也。〈大离之虛中〉移之爲卦。至誠猶舊。〈下大离〉此之謂無妄也。上有乾巽。〈三五巽〉下有震艮。〈二四艮〉或動或止。〈艮以止〉一聽天命。〈巽爲命〉所以爲無妄也。〈案史記雖作無望。馬融、鄭玄、王肅本皆作皆주-D002無妄。〉
{〔卦象:䷘〕}無妄。元亨利貞。其匪正。有眚。不利有攸往。
此無妄之不變者也。卦自遯來。〈一之三〉陰道浸長。群陽外遯。〈上四陽〉於此之時。而剛反爲主。〈三之一爲主〉震以體仁。二五有應。〈剛柔應〉始而亨也。〈震君道之亨〉坎爲堅固。〈上今乾〉其德大正。〈乾卦之形正〉利於貞也。〈宜幹事〉又自中孚來。〈四之二〉震元兌利。〈彼互震〉中孚之所有也。〇其非正者。互卦之謂也。〈互卦非正卦〉卦之兩互。〈艮而巽〉其卦爲漸〔卦象:䷴〕。漸乃有坎。〈二四互〉坎多眚也。〈說卦文〉卦本無眚。〈無妄本無坎〉漸乃有之。〈兩互則有眚〉其匪正有眚也。卦有大途。〈無妄則下震〉利有攸往。〈震爲行〉漸乃有艮。〈漸下艮〉徑路前迷。〈說卦文〉不利有攸往也。
彖曰無妄。剛自外來而爲主於內。動而健。剛中而應。大亨以正。天之命也。其匪正有眚。不利有攸往。無妄之往。何之矣。天命不祐。行矣哉。
剛自外來者。遯之移也。〈三之一〉來而爲震。〈下今震〉爲主於內也。〈以單卦則一內而三外。〉〇五剛二柔。剛中而應也。〇天命者。乾天之巽命也。〈上互巽。〉〇無妄之義。無妄往也。〈義見前〉往將何之。〔卦象:䷴〕漸以艮止。竟不行也。無妄之卦。順受天命。〈中無阻〉漸乃不然。本以小人。〈艮之象〉行險由徑。〈坎而艮〉雖有巽命。〈上猶巽〉自我阻梗。〈艮拒之〉命之不佑。何以行矣。〇案匪正者不正也。穆姜遇隨。自知不吉。〈見隨卦〉若是者。宜占之以兩互也。
{〔卦象:䷘〕}初九。無妄往。〈句〉吉。〇象曰無妄之往。得志也。
此無妄之否也。卦自遯來。柔往自初。〈一之三〉剛乃得反。〈三之一〉無妄而往也。初爲卦主。故言其本象。〇剛之旣移。遂成离志。〈初四夾〉是得志也。
{〔卦象:䷉〕}六二。不耕穫。不菑畬。則利有攸往。〇象曰不耕穫。未富也。
此無妄之履也。履自夬姤來。〈法見表〉夬則巽耒向上。〈巽耒之倒者〉地不破塊。〈一二無坤土〉是不耕也。移之爲履。〈上之三〉遂以兌銍。〈下今兌〉刈此震稼。〈下本震〉不耕穫也。姤則巽草在下。〈姤一陰〉蒿萊不除。〈巽耒入地。非不耕也。唯不去草。〉是不菑也。〈火去草曰菑〉移之爲履。〈一之三〉遂用离燒。〈二四互〉收此震稼。〈下本震〉不菑畬也。〈火種田曰畬〉無妄之福。非謂是乎。〇以姤則柔往而成兌。〈一之三〉以夬則剛往。故成兌。〈三之上〉兌則爲利。〈義見下〉利有攸往也。〇未富者不乾也。〈乾爲富〉雖加一剛。〈二今剛〉猶未成乾。〈下今兌〉不耕之穫。未易富也。〇案兌爲秋〈西方卦〉爲利。〈義之和〉利者象以刀刈禾也。〈字從禾從刀〉故曰兌爲穫。〇又按大傳以益之巽木。爲耒耜之象。又菑與災烖竝通。初墾之田。必先焚蒿萊。故田一歲曰菑。二歲曰畬。
孔子曰〈見坊記〉禮之先幣帛也。〈震爲玄黃幣〉欲民之先事〈震爲行〉而後祿也。〈兌爲祿〉先財而後禮〈今互离爲禮〉則民利。〈兌爲利〉無辭而行情則民爭。〈兩口相向。如爭訟。〉故君子於有饋者。弗能見〈离相見〉則不視其饋。〈兌爲食〉易曰不耕穫不菑畬。凶。以此防民。〈离爲防〉民猶貴祿而賤行。〈貴兌而賤震〉〇案坊記有凶字。
{〔卦象:䷘〕}六三。無妄之災。或繫之牛。行人之得。邑人之災。〇象曰行人得牛。邑人災也。
此無妄之同人也。行于大途。震者行人也。止于城邑。艮者邑人也。卦自遯來。〈三之一〉大巽之繩。〈兼畫三〉以繫巽牛。〈易例离巽皆爲牛〉繫之牛也。〈互巽牛〉卦有二母。〈遯中孚〉象不雙溯。〈獨取自遯來之象〉其占可疑。〈見損益〉疑則或之。〈見乾卦〉或繫之牛也。遯之時。邑人爲主。〈艮在內〉移之無妄。〈三之一〉震乃爲主。〈剛自外來爲主於內〉行人得牛也。〈爲牛主〉邑人遂亡。〈艮今亡〉邑人之災也。〈离爲災〉曷云哉。遯者獸走也。〈本馬走之卦〉無妄者勿遯也。〈無妄往之義〉牛之方走。繫之巽木。固使之勿遯也。〈使之無妄往〉勿遯之故。艮剛遂折。〈三今柔〉無妄之災也。推移之跡在三。故言其本象。
{〔卦象:䷩〕}九四。可貞。無咎。〇象曰可貞無咎。固有之也。
此無妄之益也。益自否來。〈一之四〉坎爲堅固。〈上三陽〉可以幹事。移之爲益。則入爲震主。〈四之一〉以治內事。〈互离治〉是可貞也。〇否之旣移。位德相當。〈四與一〉是無咎也。〈本不得位今得之〉〇益自否來。〈四之一〉乾固富有。〈上三陽〉故能以益下。〈四之一〉固有之也。〈益九三亦云〉
{〔卦象:䷔〕}九五。無妄之疾。勿藥有喜。〇象曰無妄之藥。不可試也。
此無妄之噬嗑也。噬嗑自否來。〈五之一〉坎爲堅固。〈上三陽〉心血有病。〈五爲坎之心〉是有疾也。天命本順。〈否上乾互巽〉無妄之疾也。自姤以來。連用巽藥。〈巽爲草木爲香臭〉三劑不效。〈姤遯否〉將以艮死。〈遯否皆有艮〉移之噬嗑。〈五之一〉巽藥遂滅。〈卦無巽〉是勿藥也。雖則勿藥。坎拔其毒。〈五今柔〉震以回生。〈下今震〉离喜滿面。〈上今离〉憂心頓去。〈坎中亡〉勿藥而有喜也。〇坎則爲疑。〈中有梗〉疑則試之。〈孔子云〉今旣無疑。〈离虛中〉不可試也。
{〔卦象:䷐〕}上九。無妄行。〈句〉有眚。〈句〉無攸利。〇象曰無妄之行。窮之災也。
此無妄之隨也。隨自否來。〈上之一〉三陽外遯。〈遯而否〉旣無內援。〈內無陽〉上位高極。〈卽乾之亢龍〉其勢危矣。〈高而不得位〉移之爲隨。則上剛忽墮。〈上之一〉遂成震行。〈下今震〉是有行也。本由天命。〈否上乾互巽〉無妄之行也。〇遂成大坎。〈三六夾〉坎則多眚。〈說卦文〉是有眚也。眚者無妄之罪也。〈見書傳〉〇雖有兌巽。〈上今兌〉無攸利也。〈巽兌皆爲利〉〇窮者極也。位極必危。〈否上剛。本乾卦之亢龍。〉是有災也。离則爲災。〈今大离〉
「잡괘전」에서 말하였다. “무망(无妄)은 재앙이다.” 정자는 말하였다. “하늘의 도로써 움직이는 것이 무망이다.” (아래는 진괘이고 위는 건괘이다.) 주자는 말하였다. “《사기》에는 ‘무망(無望)’으로 되어 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얻는 바가 있음을 말하니, 그 뜻도 통한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이 괘는 둔괘에서 왔다. 두 음이 막 생겨나자 네 양이 바깥으로 도망하였으니, 망(妄)이 지극한 것이다. (여자가 도망하여 없어지는 것을 망이라 한다. 둔괘에는 손괘인 여자가 도망하여 없어진 뜻이 있다.) 이제 그 한 양을 끌어당겨 안에서 주인이 되게 하고는 (아래가 이제 진괘이다.) “도망하여 가지 말라.” 하였으니, 이것을 무망이라 한다. 무망은 곧 달아나지 말라는 뜻이다. (도망하여 없어지는 것을 망이라 한다.) 또 무망은 지극한 성실함이다. 괘가 중부괘에서 왔는데, 중부는 지극한 성실함이다. (큰 리괘가 가운데를 비운 상이다.) 이를 옮겨 괘를 만들었어도 지극한 성실함은 예전 그대로이니 (아래가 큰 리괘이다.), 이것을 무망이라 한다. 위에는 건괘와 손괘가 있고 (삼효부터 오효까지가 손괘이다.), 아래에는 진괘와 간괘가 있어 (이효부터 사효까지가 간괘이다.) 때로 움직이고 때로 멈추며 (간괘는 멈춤이다.), 한결같이 천명을 듣는다. (손괘는 명령이다.) 이것이 무망이 되는 까닭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사기》에는 비록 ‘무망(無望)’으로 되어 있으나, 마융·정현·왕숙의 판본은 모두 ‘무망(無妄)’으로 되어 있다.)
[괘상: ䷘] 무망은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롭다.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으니, 가는 바를 두는 것이 이롭지 않다.
이는 무망괘가 변하지 않은 경우이다. 괘는 둔괘에서 왔다. (초효가 삼효로 갔다.) 음의 도가 점차 자라나고 여러 양이 바깥으로 달아나는 때에 (위의 네 효가 양이다.), 강한 양이 도리어 안의 주인이 되었다. (삼효가 초효로 와 주인이 되었다.) 진괘로 인을 체현하고 이효와 오효가 서로 응하니 (강과 유가 서로 응한다.), 시작하여 형통하다. (진괘는 임금의 도가 형통함이다.) 감괘는 견고함이고 (위가 이제 건괘이다.), 그 덕은 크게 바르므로 (건괘의 형상이 바르다.) 바르게 일함이 이롭다. (일을 주관하기에 알맞다.) 또 이 괘는 중부괘에서 왔다. (사효가 이효로 갔다.) 진괘의 ‘원’과 태괘의 ‘리’는 (저 괘의 호괘가 진괘이다.) 중부괘가 본래 가진 것이다. 바르지 않은 것은 호괘를 말한다. (호괘는 정괘가 아니다.) 이 괘의 두 호괘인 간괘와 손괘를 합하면 그 괘는 점괘[䷴]가 된다. 점괘에는 곧 감괘가 있으니 (이효부터 사효까지의 호괘이다.), 감괘에는 재앙이 많다. (「설괘전」의 글이다.) 본괘에는 본래 재앙이 없지만 (무망 본괘에는 감괘가 없다.), 점괘가 되면 재앙이 생긴다. (두 호괘로 보면 재앙이 있다.) 이것이 ‘그 바르지 않음에는 재앙이 있다’는 말이다. 본괘에는 큰길이 있어 (무망의 아래가 진괘이다.) 가는 바를 두는 것이 이롭지만 (진괘는 감이다.), 점괘가 되면 간괘가 있어 (점괘의 아래가 간괘이다.) 지름길 앞에서 길을 잃으므로 (「설괘전」의 글이다.) 가는 바를 두는 것이 이롭지 않다.
「단전」에서 말하였다. “무망은 강한 양이 바깥에서 와 안에서 주인이 되고, 움직이면서 굳세며, 강한 양이 가운데를 얻고 유순한 음과 응한다. 크게 형통하되 바름으로써 하는 것은 하늘의 명이다.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어 가는 바를 두는 것이 이롭지 않다. 무망에서 간다면 어디로 가겠는가? 천명이 돕지 않는데 어찌 갈 수 있겠는가?”
강한 양이 바깥에서 왔다는 것은 둔괘에서 효가 옮겨 온 것을 말한다. (삼효가 초효로 왔다.) 와서 진괘가 되고 (아래가 이제 진괘이다.), 안에서 주인이 되었다. (한 소성괘로 말하면 초효는 안이고 삼효는 밖이다.) 오효의 강한 양과 이효의 유순한 음이 응하므로, 강한 양이 가운데를 얻어 응한 것이다. 천명은 건괘인 하늘과 손괘인 명령을 말한다. (위의 호괘가 손괘이다.) 무망의 뜻은 ‘도망하여 가지 말라’는 것이다. (그 뜻은 앞에 보인다.) 간다면 장차 어디로 가겠는가? [䷴] 점괘에는 간괘의 멈춤이 있어 끝내 가지 못한다. 무망괘는 천명을 순순히 받아들이지만 (가운데 막힘이 없다.), 점괘는 그렇지 않다. 본래 소인으로서 (간괘의 상이다.) 험한 곳으로 가면서 지름길을 따르고 (감괘와 간괘이다.), 비록 손괘의 명령이 있어도 (위에는 여전히 손괘가 있다.) 스스로 막고 거스른다. (간괘가 막는다.) 명이 돕지 않는데 어떻게 갈 수 있겠는가? 정약용이 살피건대, ‘비정(匪正)’은 바르지 않다는 뜻이다. 목강이 수괘를 얻고 스스로 길하지 않음을 알았던 경우가 그러하다. (수괘 해설에 보인다.) 이와 같은 때에는 두 호괘로 점을 판단해야 한다.
[괘상: ䷘] 초구. 도망하여 가지 않으니 길하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도망하여 가지 않음’은 뜻을 얻는 것이다.”
이는 무망괘가 비괘로 변한 경우이다. 괘는 둔괘에서 왔는데, 유순한 음이 초효에서 삼효로 가자 (초효가 삼효로 갔다.) 강한 양이 이에 되돌아올 수 있었다. (삼효가 초효로 왔다.) 도망하지 않고 와서 간 것이니, 초구가 괘의 주인이므로 그 본래의 상을 말하였다. 강한 양이 이미 옮겨 와 마침내 리괘인 뜻[志]의 상을 이루었으니 (초효와 사효가 양으로 리괘를 낀다.), 이것이 뜻을 얻은 것이다.
[괘상: ䷉] 육이. 밭 갈지 않고도 거두며, 묵은 밭을 개간하지 않고도 익은 밭의 수확을 얻는다. 그러므로 가는 바를 두는 것이 이롭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밭 갈지 않고도 거둔다’는 것은 아직 부유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무망괘가 리괘로 변한 경우이다. 리괘는 쾌괘와 구괘에서 왔다. (그 법은 표에 보인다.) 쾌괘에서는 손괘의 쟁기가 위를 향하여 (손괘인 쟁기가 거꾸로 된 것이다.) 땅의 흙덩이를 깨뜨리지 못하니 (초효와 이효에 곤괘인 흙이 없다.), 이것이 밭 갈지 않음이다. 효를 옮겨 리괘가 되면 (상효가 삼효로 갔다.) 마침내 태괘인 낫으로 (아래가 이제 태괘이다.) 이 진괘인 곡식을 베니 (아래가 본래 진괘였다.), 밭 갈지 않고도 거두는 것이다. 구괘에서는 손괘인 풀이 아래에 있어 (구괘의 초효가 음이다.) 쑥과 잡초를 없애지 못하니 (손괘인 쟁기가 땅에 들어갔으므로 밭을 갈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직 풀을 없애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새밭을 개간하지 않은 것이다. (불로 풀을 없애는 일을 ‘치(菑)’라 한다.) 효를 옮겨 리괘가 되면 (초효가 삼효로 갔다.) 마침내 리괘의 불을 써서 (이효부터 사효까지의 호괘이다.) 이 진괘인 곡식을 거두니 (아래가 본래 진괘였다.), 새밭을 개간하지 않고도 익은 밭의 수확을 얻는 것이다. (불로 밭에 종자를 심는 것을 ‘여(畬)’라 한다.) 무망의 복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구괘에서 오면 유순한 음이 가서 태괘를 이루고 (초효가 삼효로 갔다.), 쾌괘에서 오면 강한 양이 가서 태괘를 이룬다. (삼효가 상효로 갔다.) 태괘는 이로움이므로 (뜻은 아래에 보인다.) 가는 바를 두는 것이 이롭다. ‘아직 부유하지 못하다’는 말은 건괘를 이루지 못했다는 뜻이다. (건괘는 부유함이다.) 비록 강한 양 하나가 더해졌으나 (이효가 이제 양이다.) 아직 건괘를 이루지는 못했으니 (아래가 이제 태괘이다.), 밭 갈지 않고 얻는 수확으로는 쉽사리 부유해지지 못한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태괘는 가을이고 (서방의 괘이다.) 이로움이 된다. (의가 조화를 이룬 것이다.) ‘리(利)’라는 글자는 칼로 벼를 베는 모양이므로 (글자가 화(禾)와 도(刀)를 따른다.) “태괘는 수확이 된다”고 한 것이다. 정약용이 살펴보면, 또 《대전》에서는 익괘의 손괘인 나무를 쟁기와 보습의 상으로 삼았다. 또 ‘치(菑)’는 재(災)·재(烖)와 모두 통한다. 처음 개간하는 밭은 반드시 먼저 쑥과 잡초를 태우므로, 일 년 된 밭을 치라 하고 이 년 된 밭을 여라 한다.
공자는 말하였다. (《방기》에 보인다.) “예에서 폐백보다 예식을 앞세우는 것은 (진괘는 검고 누런 비단이다.) 백성이 일을 먼저 하고 (진괘는 행함이다.) 뒤에 녹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태괘는 녹이다.) 재물을 먼저 하고 예를 뒤에 하면 (지금 호괘인 리괘는 예이다.) 백성이 이익만 꾀하고 (태괘는 이로움이다.), 사양하는 말도 없이 정을 행하면 백성이 다툰다. (두 입이 서로 마주하여 다투고 송사하는 모양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선물을 준 사람이 만나 주지 못하면 (리괘는 서로 봄이다.) 그 선물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태괘는 음식이다.) 《역》에 ‘밭 갈지 않고도 거두며, 묵은 밭을 개간하지 않고도 익은 밭의 수확을 얻으면 흉하다’고 하였으니, 이로써 백성을 막은 것이다. (리괘는 막음이다.) 백성은 오히려 녹을 귀하게 여기고 행실을 천하게 여긴다. (태괘를 귀하게 여기고 진괘를 천하게 여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방기》에는 ‘흉하다’는 글자가 있다.
[괘상: ䷘] 육삼. 무망의 재앙이다. 누군가 소를 매어 두었는데, 길 가던 사람이 그것을 얻고 고을 사람이 재앙을 당한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길 가던 사람이 소를 얻어 고을 사람이 재앙을 당한다.”
이는 무망괘가 동인괘로 변한 경우이다. 큰길을 가는 진괘는 길 가는 사람이고, 성읍에서 멈추는 간괘는 고을 사람이다. 괘는 둔괘에서 왔다. (삼효가 초효로 왔다.) 큰 손괘의 노끈으로 (세 획을 겹쳐 그린 괘이다.) 손괘인 소를 매었으니 (《역》의 용례에서 리괘와 손괘는 모두 소가 된다.), 매어 둔 소이다. (호괘인 손괘가 소이다.) 이 괘에는 두 모괘인 둔괘와 중부괘가 있는데, 상을 둘로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고 (오직 둔괘에서 온 상만 취한다.) 그 점이 의심스러우므로 (손괘·익괘 해설에 보인다.) ‘혹(或)’이라 하였다. (건괘 해설에 보인다.) 그래서 ‘누군가 소를 매어 두었다’고 하였다. 둔괘 때에는 고을 사람이 주인이었으나 (간괘가 안에 있다.) 무망괘로 옮겨 오자 (삼효가 초효로 왔다.) 진괘가 주인이 되었으니 (강한 양이 바깥에서 와 안에서 주인이 되었다.) 길 가던 사람이 소를 얻은 것이다. (소의 주인이 되었다.) 고을 사람인 간괘는 마침내 없어졌으므로, 이것이 고을 사람의 재앙이다. (리괘는 재앙이다.) 어찌하여 이렇게 말했겠는가? 둔(遯)은 짐승이 달아나는 것이고 (본래 말이 달아나는 괘이다.), 무망은 달아나지 말라는 뜻이다. (무망에서 가지 말라는 뜻이다.) 소가 막 달아나려 할 때 손괘인 나무에 매어 단단히 달아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무망하여 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달아나지 못하게 한 까닭에 간괘의 강한 양이 마침내 꺾였으니 (삼효가 이제 음이다.), 이것이 무망의 재앙이다. 효가 옮겨 온 자취가 삼효에 있으므로 그 본래의 상을 말하였다.
[괘상: ䷩] 구사. 바르게 일을 주관할 수 있으니 허물이 없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바르게 할 수 있어 허물이 없음’은 본래부터 가진 것이 굳기 때문이다.”
이는 무망괘가 익괘로 변한 경우이다. 익괘는 비괘에서 왔다. (초효가 사효로 갔다.) 감괘는 견고하여 (위의 세 효가 양이다.) 일을 주관할 수 있다. 효를 옮겨 익괘가 되면 안으로 들어가 진괘의 주인이 되어 (사효가 초효로 왔다.) 안의 일을 다스리니 (호괘인 리괘는 다스림이다.), 이것이 바르게 일을 주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비괘의 효가 옮겨 온 뒤 자리와 덕이 서로 맞으므로 (사효와 초효이다.) 허물이 없다. (본래는 자리를 얻지 못했으나 이제 얻었다.) 익괘는 비괘에서 왔는데 (사효가 초효로 왔다.), 건괘가 굳세게 부유함을 지녔으므로 (위의 세 효가 양이다.) 아래를 보태 줄 수 있다. (사효가 초효로 왔다.) 이것이 본래부터 가진 것이 굳다는 말이다. (익괘 구삼에도 같은 말이 있다.)
[괘상: ䷔] 구오. 무망의 병이니 약을 쓰지 않아도 기쁜 일이 있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무망의 병에 약을 시험해서는 안 된다.”
이는 무망괘가 서합괘로 변한 경우이다. 서합괘는 비괘에서 왔다. (오효가 초효로 갔다.) 감괘는 견고한데 (위의 세 효가 양이다.) 마음과 피에 병이 있으니 (오효는 감괘의 중심이다.), 이것이 병이 있다는 말이다. 천명은 본래 순조로우므로 (비괘 위의 건괘와 호괘 손괘이다.) 무망의 병이라 한다. 구괘 이래로 손괘인 약을 잇달아 썼지만 (손괘는 풀과 나무, 향기와 냄새가 된다.) 세 첩이 효험을 내지 못하고 (구괘·둔괘·비괘이다.) 장차 간괘의 죽음에 이르려 했다. (둔괘와 비괘에는 모두 간괘가 있다.) 효를 옮겨 서합괘가 되자 (오효가 초효로 갔다.) 손괘인 약이 마침내 없어졌으니 (괘에 손괘가 없다.), 이것이 약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비록 약은 쓰지 않았으나 감괘가 그 독을 뽑아내고 (오효가 이제 음이다.), 진괘가 생명을 되돌리며 (아래가 이제 진괘이다.), 리괘의 기쁨이 얼굴에 가득하여 (위가 이제 리괘이다.) 근심하던 마음이 단번에 사라진다. (가운데의 감괘가 없어졌다.) 그러므로 약을 쓰지 않고도 기쁜 일이 있다. 감괘는 의심이 된다. (가운데 막힌 것이 있다.) 의심하면 그것을 시험한다. (공자의 말이다.) 이제 이미 의심이 없으므로 (리괘는 가운데가 비어 있다.) 시험해서는 안 된다.
[괘상: ䷐] 상구. 무망에서 가면 재앙이 있고 이로운 바가 없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무망에서 가는 것은 궁극에 이른 재앙이다.”
이는 무망괘가 수괘로 변한 경우이다. 수괘는 비괘에서 왔다. (상효가 초효로 갔다.) 세 양이 바깥으로 달아난 뒤 (둔괘를 거쳐 비괘가 되었다.) 이미 안의 도움이 없고 (안에 양이 없다.), 상효의 자리는 높음이 극에 이르렀으니 (곧 건괘의 항룡이다.) 그 형세가 위태롭다. (높으면서 자리를 얻지 못했다.) 효를 옮겨 수괘가 되면 위의 강한 양이 갑자기 떨어져 (상효가 초효로 갔다.) 마침내 진괘의 행함을 이루니 (아래가 이제 진괘이다.), 이것이 나아감이 있다는 말이다. 본래 천명에서 말미암았으므로 (비괘 위의 건괘와 호괘 손괘이다.) 무망에서 가는 것이다. 마침내 큰 감괘를 이루어 (삼효부터 상효까지가 감괘의 상을 낀다.) 감괘에는 재앙이 많으니 (「설괘전」의 글이다.), 이것이 재앙이 있다는 말이다. ‘생(眚)’은 뜻하지 않은 죄이다. (《서전》에 보인다.) 비록 태괘와 손괘가 있으나 (위가 이제 태괘이다.) 이로운 바가 없다. (손괘와 태괘가 모두 이로움이 된다.) ‘궁(窮)’은 극진함이니, 자리가 극에 이르면 반드시 위태로워 (비괘의 상효가 강한 양이며 본래 건괘의 항룡이다.) 재앙이 있다. 리괘가 곧 재앙이 된다. (지금 큰 리괘이다.)
무망은 제멋대로 달아나는 망동을 거두고 천명(하늘이 맡긴 것으로 이해한 공적 사명)에 순응하는 지극한 성실함이다. 정약용은 둔괘·중부괘에서의 추이(효가 옮겨 변한 관계를 살펴 괘를 읽는 법), 두 호괘(가운데 효들을 겹쳐 따로 이룬 괘)가 이루는 점괘, 진·간·손·이의 물상을 함께 대조하여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다’는 조건을 밝힌다. 여섯 효에서는 수확·소·질병·행로의 상을 통해, 때와 자리를 잃은 억지 행동이 어떻게 뜻밖의 재앙으로 바뀌는지를 검증한다.
교감·번역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