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過 대과
아래괘 巽 바람 · 위괘 兌 못
기르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으므로 대과괘로 이었다.
괘사
棟橈,利有攸往,亨。
동요, 이유유왕, 형.
들보가 휘어진다. 갈 바를 두는 것이 이롭고 형통한다.
단전
大過,大者過也。棟橈,本末弱也。剛過而中,巽而說行,利有攸往,乃亨。大過之時義大矣哉!
대과는 큰 것이 지나친 것이다. 들보가 휘어지는 것은 뿌리와 끝이 약하기 때문이다. 굳센 양이 지나치게 많지만 가운데를 얻었고, 공손하면서 기뻐하여 행하므로 갈 바를 두는 것이 이로우며 이에 형통한다. 대과라는 때의 뜻이 크도다!
대상전
澤滅木,大過。君子以獨立不懼,遯世无悶。
못물이 나무를 잠기게 하는 것이 대과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홀로 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에서 물러나도 답답해하지 않는다.
여섯 효
효사
藉用白茅,无咎。
자용백모, 무구.
흰 띠풀을 깔개로 쓰니 허물이 없다.
소상전
藉用白茅,柔在下也。
흰 띠풀을 깔개로 쓰는 것은 부드러운 음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효사
枯楊生稊,老夫得其女妻,无不利。
고양생제, 노부득기녀처, 무불리.
마른 버드나무에서 뿌리싹이 난다. 늙은 남자가 젊은 아내를 얻으니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
소상전
老夫女妻,過以相與也。
늙은 남자와 젊은 아내가 상례를 넘어 서로 함께하는 것이다.
효사
棟橈,凶。
동요, 흉.
들보가 휘어지니 흉하다.
소상전
棟橈之凶,不可以有輔也。
들보가 휘어져 흉한 것은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효사
棟隆,吉。有它吝。
동륭, 길. 유타린.
들보가 솟아 굳건하니 길하다. 다른 데 뜻을 두면 어려움이 있다.
소상전
棟隆之吉,不橈乎下也。
들보가 솟아 길한 것은 아래로 휘지 않기 때문이다.
효사
枯楊生華,老婦得其士夫,无咎无譽。
고양생화, 노부득기사부, 무구무예.
마른 버드나무에 꽃이 핀다. 늙은 여자가 젊은 남편을 얻으니 허물도 없고 칭송도 없다.
소상전
枯楊生華,何可久也。老婦士夫,亦可丑也。
마른 버드나무에 꽃이 피는 것이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늙은 여자와 젊은 남편의 결합도 또한 부끄러울 만하다.
효사
過涉滅頂,凶,无咎。
과섭멸정, 흉, 무구.
지나치게 물을 건너다가 정수리까지 잠긴다. 흉하지만 허물은 없다.
소상전
過涉之凶,不可咎也。
지나치게 물을 건너 흉하지만 탓할 수는 없다.
네 해석의 갈림길
갈리는 지점상육을 정이천은 이치를 넘어 스스로 화를 부르는 잘못으로 보지만, 주희는 몸을 죽여서라도 인을 이루는 의리로 보아 오히려 허물이 없다고 읽는다.
왕필
대과는 지극히 쇠한 때에 보통을 넘어서는 큰 역량으로 위기를 떠받치는 도다. 왕필은 지나침도 중을 얻고 약함을 구제할 때에만 이롭고, 사적 응에 매이거나 자기 자리만 지키면 들보가 휜다고 본다.
정이천
정이는 대과를 이치를 벗어나는 잘못이 아니라 평상에서 보기 어려운 큰일과 비상한 덕·공업으로 풀이한다. 가운데 네 양이 무거운 책임을 지지만 양끝의 음이 약해 대들보가 휘므로, 강단에 중도(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알맞은 길)·손순함·화열함과 타인의 도움이 결합해야 위기를 구제할 수 있다.
효사(각 효에 붙은 판단문)는 지나치게 삼가도 안전한 시작, 부드러움과 결합해 생명력을 회복하는 구이(둘째 자리의 양효), 독단 때문에 무거운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구삼, 알맞은 강유를 유지하는 구사, 뿌리 없는 겉치레에 그치는 구오, 이치를 넘어 스스로 화를 부르는 상육을 대비한다.
주희
주희는 가운데 네 양이 지나치게 성하고 양끝의 두 음이 무게를 이기지 못해 대들보가 휘는 괘체(효와 상·하괘가 이룬 괘의 전체 구조)로 대과를 풀이한다. 다만 구이(둘째 자리의 양효)·구오(다섯째 자리의 양효)가 가운데를 얻고 안은 손순하며 밖은 기뻐하므로 위기 속에서도 나아가 형통할 길이 있다.
초육의 과도한 삼감은 허물이 없고, 구이는 음과 결합해 생육을 회복하지만, 구삼은 지나치게 굳세 책임을 이기지 못한다. 구사는 강유를 맞춰 솟고, 구오는 겉으로 꽃만 피워 오래가지 못한다. 상육은 재질은 약하지만 몸을 죽여 인을 이룬 의리로 보아 허물이 없다고 해석한다.
정약용
대과는 네 양이 지나치게 많고 뿌리와 끝의 음이 약해, 괘 전체가 휘어진 마룻대가 되는 때이다. 정약용은 중부괘와의 교역, 둔괘·대장괘에서의 추이(효가 옮겨 변한 관계를 살펴 괘를 읽는 법), 정괘와 도괘의 상을 교차 검증한다. 흰 띠풀·마른 버드나무·마룻대·도섭의 효상(한 효에서 드러나는 상징)은 ‘지나침’이 지극한 삼감과 구제가 될 수도 있고, 지탱할 수 없는 과도함이 될 수도 있음을 자리와 변괘(효가 음양으로 바뀐 뒤의 괘)에 따라 나누어 보여 준다.
현대적으로 읽기
대과괘(감당할 무게가 지나쳐 특별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
대과(大過)는 시스템의 중심부에 책임과 업무가 과도하게 몰리고 양끝의 기반이 약해진 위기다. 초육(첫째 자리의 음효)의 ‘흰 띠풀을 깔개로 쓰니 허물이 없다’는 위태로운 국면일수록 깨끗하고 신중하게 시작해야 함을 보여 준다.
구삼(셋째 자리의 양효)의 ‘들보가 휘어지니 흉하다’는 혼자 강하게 밀어붙일 때의 결과이고, 구사(넷째 자리의 양효)의 ‘들보가 솟아 굳건하니 길하다’는 부드러운 보완과 협력을 받아들여 기반을 살렸을 때의 결과다. 뿌리 없는 가시적 성과는 금세 시든다.
왕필(王弼) 《주역주》 — 64괘 주석
이 64괘 주석의 저자는 왕필(王弼)이다. 한강백(韓康伯)은 계사전 등 일부 십익 주석의 저자로, 이 층과 구분한다.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大者乃能過也
初為本而上為末也
謂二也居陰過也處二中也拯弱興衰不失其中也
㢲而說行以此救難難乃濟也
危而弗持則將安用故往乃亨
是君子有為之時也
此所以為大過非凡所及也
以柔處下過而可以无咎其唯慎乎
稊者楊之秀也以陽處陰能過其本而救其弱者也上无其應心无特吝處過以此无衰不濟也故能令枯楊更生稊老夫更得少妻拯弱興衰莫盛斯爻故无不利也老過則枯小過則稚以老分少則稚者長以稚分老則枯者榮過以相與之謂也大過至衰而巳至壯以至壯輔至衰應斯義也
居大過之時處下體之極不能救危拯弱以隆其棟而以陽處陽自守所居又應於上係心在一宜其淹溺而凶衰也
體屬上體以陽處陰能拯其弱不為下所橈者也故棟隆吉也而應在初用心不𢎞故有它吝也
處得尊位而以陽處陽未能拯危處得尊位亦未有橈故能生華不能生稊能得夫不能得妻處棟橈之世而為无咎无譽何可長哉故生華不可久士夫誠可醜也
處大過之極過之甚也渉難過甚故至于滅頂凶志在救時故不可咎也
雖凶无咎不害義也
큰 자라야 능히 지나칠 수 있다.
초효는 근본이고 상효는 말단이다.
구이를 말한다. 음의 자리에 있으니 지나친 것이고, 이효에 있으니 중을 얻은 것이다. 약함을 구제하고 쇠함을 일으키면서 중도를 잃지 않는다.
공손히 들어가고 기뻐하며 행하여 이로써 어려움을 구제하면 어려움이 해결된다.
위태로운데도 붙들지 않는다면 장차 어디에 쓰겠는가. 그러므로 가야 형통한다.
이는 군자가 일을 해낼 때다.
이것이 대과가 되는 까닭이며 보통 사람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부드러움으로 아래에 처하여 지나치면서도 허물이 없을 수 있으니, 오직 삼가는 데 달려 있다.
‘제’는 버드나무의 새싹이다. 양으로 음의 자리에 있어 자기 근본을 지나쳐 약한 것을 구제할 수 있는 자다. 위로 응하는 자가 없어 마음에 특별히 얽매이거나 인색함이 없다. 지나친 때에 이와 같이 처하면 구제하지 못할 쇠함이 없다. 그러므로 마른 버드나무에 다시 새싹이 나고 늙은 남편이 젊은 아내를 얻는다. 약함을 구제하고 쇠함을 일으키는 일이 이 효보다 성대한 데가 없으므로 이롭지 않음이 없다. 늙음이 지나치면 마르고, 젊음이 지나치면 어리다. 늙은 이가 젊은 이에게 나누어 주면 어린 것이 자라고, 어린 이가 늙은 이에게 나누어 주면 마른 것이 영화로워진다. 지나치게 서로 함께한다는 뜻이다. 대과는 지극히 쇠한 때인데 자신은 지극히 장성한 데 이르렀으므로 지극히 장성함으로 지극히 쇠함을 돕는 것이 이 뜻에 맞는다.
대과의 때에 하괘의 극점에 있으면서 위태로움을 구제하고 약함을 도와 들보를 높이지 못한다. 양으로 양의 자리에 있어 자기가 있는 곳만 지키고, 또 상육에 응하여 마음을 한곳에만 매어 두므로 들보가 휘어져 흉함이 마땅하다.
몸은 상괘에 속하고 양으로 음의 자리에 있어 그 약함을 구제하며 아래의 힘에 휘지 않는 자다. 그러므로 들보가 솟아 길하다. 그러나 응함이 초육에 있어 마음 씀씀이가 넓지 못하므로 다른 일에는 부끄러움이 있다.
존위를 얻었으나 양으로 양의 자리에 있어 아직 위태로움을 구제하지 못한다. 존위를 얻었으므로 또한 아직 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꽃은 피울 수 있으나 새싹을 낼 수 없고, 남편은 얻을 수 있으나 아내는 얻을 수 없다. 들보가 휘는 세상에 있으면서 허물도 없고 명예도 없다 한들 어찌 오래가겠는가. 그러므로 꽃은 오래갈 수 없고, 선비가 늙은 부인을 얻는 일은 참으로 부끄럽다.
대과의 극점에 있어 지나침이 심하다. 어려움을 건너는 일이 지나쳐 머리까지 잠기는 흉함에 이른다. 그러나 뜻이 때를 구제하는 데 있으므로 허물할 수 없다.
비록 흉하나 허물이 없다는 것이 의를 해치지는 않는다.
대과는 지극히 쇠한 때에 보통을 넘어서는 큰 역량으로 위기를 떠받치는 도다. 왕필은 지나침도 중을 얻고 약함을 구제할 때에만 이롭고, 사적 응에 매이거나 자기 자리만 지키면 들보가 휜다고 본다.
교감·번역 주
정이천 《이천역전》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巽下兑上〉
大過序卦曰頤者養也不養則不可動故受之以大過凡物養而後能成成則能動動則有過大過所以次頤也為卦上兑下巽澤在木上滅木也澤者潤養於木乃至滅沒於木為大過之義大過者陽過也故為大者過過之大與大事過也聖賢道徳功業大過於人凡事之大過於常者皆是也夫聖人盡人道非過於理也其制事以天下之正理矯失之用小過於中者則有之如行過乎恭䘮過乎哀用過乎儉是也盖矯之小過而後能及於中乃求中之用也所謂大過者常事之大者耳非有過於理也惟其大故不常見以其比常所見者大故謂之大過如堯舜之禪譲湯武之放伐皆由道也道无不中无不常以世人所不常見故謂之大過於常也
大過棟橈利有攸往亨
小過隂過於上下大過陽過於中陽過於中而上下弱矣故為棟橈之象棟取其勝重四陽聚於中可謂重矣九三九四皆取棟象謂任重也橈取其本末弱中強而本末弱是以橈也隂弱而陽強君子盛而小人衰故利有攸往而亨也棟今人謂之檁
彖曰大過大者過也
大者過謂陽過也在事為事之大者過與其過之大
棟橈本末弱也
謂上下二隂衰弱陽盛則隂衰故為大者過在小過則曰小者過隂過也
剛過而中巽而説行利有攸往乃亨
言卦才之善也剛雖過而二五皆得中是處不失中道也下巽上兑是以巽順和説之道而行也在大過之時以中道巽説而行故利有攸往乃所以能亨也
大過之時大矣哉
大過之時其事甚大故贊之曰大矣哉如立非常之大事興百世之大功成絶俗之大徳皆大過之事也
象曰澤滅木大過君子以獨立不懼遯世无悶
澤潤養於木者也乃至滅沒於木則過甚矣故為大過君子觀大過之象以立其大過人之行君子所以大過人者以其能獨立不懼遯世无悶也天下非之而不顧獨立不懼也舉世不見知而不悔遯世无悶也如此然後能自守所以為大過人也
初六藉用白茅无咎
初以隂柔巽體而處下過于畏慎者也以柔在下用茅藉物之象不錯諸地而藉以茅過於慎也是以无咎茅之為物雖薄而用可重者以用之能成敬慎之道也慎守斯術而行豈有失乎大過之用也繫辭云苟錯諸地而可矣藉之用茅何咎之有慎之至也夫茅之為物薄而用可重也慎斯術也以往其无所失矣言敬慎之至也茅雖至薄之物然用之可甚重以之藉薦則為重慎之道是用之重也人之過於敬慎為之非難而可以保其安而无過苟能慎斯道推而行之於事其无所失矣
象曰藉用白茅柔在下也
以隂柔處卑下之道惟當過於敬慎而已以柔在下為以茅藉物之象敬慎之道也
九二枯楊生稊老夫得其女妻无不利
陽之大過比隂則合故二與五皆有生象九二當大過之初得中而居柔與初密比而相與初既切比於二二復无應於上其相與可知是剛過之人而能以中自處用柔相濟者也過剛則不能有所為九三是也得中用柔則能成大過之功九二是也楊者陽氣易感之物陽過則枯矣楊枯槁而復生稊陽過而未至於極也九二陽過而與初老夫得女妻之象老夫而得女妻則能成生育之功二得中居柔而與初故能復生稊而无過極之失无所不利也在大過陽爻居隂則善二與四是也二不言吉方言无所不利未遽至吉也稊根也劉琨勸進表云生繁華於枯荑謂枯根也鄭𤣥易亦作荑字與稊同
象曰老夫女妻過以相與也
老夫之説少女少女之順老夫其相與過於常分謂九二初六隂陽相與之和過於常也
九三棟橈凶
夫居大過之時興大過之功立大過之事非剛柔得中取於人以自輔則不能也既過於剛強則不能與人同常常之功尚不能獨立况大過之事乎以聖人之才雖小事必取於人當天下之大任則可知矣九三以大過之陽復以剛自居而不得中剛過之甚者也以過甚之剛動則違於中和而拂於衆心安能當大過之任乎故不勝其任如棟之橈傾敗其室是以凶也取棟為象者以其无輔而不能勝重任也或曰三巽體而應於上豈无用柔之象乎曰言易者貴乎識勢之重輕時之變易三居過而用剛巽既終而且變豈復有用柔之義應者謂志相從也三方過剛上能繫其志乎
象曰棟橈之凶不可以有輔也
剛強之過則不能取於人人亦不能親輔之如棟橈折不可支輔也棟當室之中不可加助是不可以有輔也
九四棟隆吉有它吝
四居近君之位當大過之任者也居柔為能用柔相濟既不過剛則能勝其任如棟之隆起是以吉也隆起取不下橈之義大過之時非陽剛不能濟以剛處柔為得宜矣若又與初六之隂相應則過也既剛柔得宜而志復應隂是有它也有它則有累於剛雖未至於大害亦可吝也盖大過之時動則過也有它謂更有它志吝為不足之義謂可少也或曰二比初則无不利四若應初則為吝何也曰二得中而比於初為以柔相濟之義四與初為正應志相繫者也九既居四剛柔得宜矣復牽繫於隂以害其剛則可吝也
象曰棟隆之吉不橈乎下也
棟隆起則吉不橈曲以就下也謂不下繫於初也
九五枯楊生華老婦得其士夫无咎无譽
九五當大過之時本以中正居尊位然下无應助固不能成大過之功而上比過極之隂其所相濟者如枯楊之生華枯楊下生根稊則能復生如大過之陽興成事功也上生華秀雖有所發无益於枯也上六過極之隂老婦也五雖非少比老婦則為壯矣於五无所賴也故反稱婦得過極之隂得陽之相濟不為无益也以士夫而得老婦雖无罪咎殊非羙也故云无咎无譽象復言其可醜也
象曰枯楊生華何可久也老婦士夫亦可醜也
枯楊不生根而生華旋復枯矣安能久乎老婦而得士夫豈能成生育之功為可醜也
上六過渉滅頂凶无咎
上六以隂柔處過極是小人過常之極者也小人之所謂大過非能為大過人之事也直過常越理不恤危亡履險蹈禍而已如過渉於水至滅沒其頂其凶可知小人狂躁以自禍盖其宜也復將何尤故曰无咎言自為之无所怨咎也因澤之象而取渉義
象曰過渉之凶不可咎也
過渉至溺乃自為之不可以有咎也言无所怨咎
대과괘는 아래가 손이고 위가 태다. 「서괘전」은 ‘이는 기름이다. 기르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으므로 대과괘로 받았다’고 했다. 모든 사물은 길러진 뒤에야 이루어지고, 이루어진 뒤에야 움직일 수 있다. 움직이면 지나침이 생기므로 대과괘가 이괘 다음에 온다. 괘는 위가 태이고 아래가 손이다. 못이 나무 위에 있어 나무를 잠기게 한다. 못은 본래 나무를 적셔 기르지만 나무를 잠기게 하는 데까지 이르렀으므로 대과의 뜻이 된다. 대과는 양이 지나친 것이므로 큰 것이 지나친 괘다. 지나침이 크다는 뜻과 큰일이 보통을 지나섰다는 뜻이 모두 있다. 성현의 도덕과 공업이 보통 사람보다 크게 뛰어난 일, 모든 일이 평상보다 크게 지나친 것이 모두 해당한다. 성인은 인도를 다할 뿐 이치를 지나치지 않는다. 일을 제정할 때 천하의 바른 이치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중에서 조금 지나치게 쓰는 경우는 있다. 행동이 공손함보다 지나치고, 상례가 슬픔보다 지나치며, 쓰임이 검소함보다 지나친 경우가 그러하다. 조금 지나치게 바로잡은 뒤에야 중에 미칠 수 있으니 중을 구하는 작용이다. 이른바 대과는 평상적인 일 가운데 큰 것일 뿐 이치를 지나친 것이 아니다. 다만 큰 일이어서 늘 볼 수 없고, 평소 보던 것보다 크므로 평상을 크게 지나쳤다고 한다. 요·순이 왕위를 선양하고 탕·무가 군주를 추방하거나 정벌한 일도 모두 도를 따른 것이다. 도는 중이 아니거나 떳떳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세상 사람이 늘 보던 일이 아니므로 평상을 크게 지나친 일이라고 한다.
[괘사] ‘대과는 대들보가 휘어진다. 나아가는 것이 이롭고 형통하다.’ 소과는 음이 위아래에서 지나치고, 대과는 양이 가운데에서 지나친다. 양이 가운데에서 지나치면 위아래가 약해지므로 대들보가 휘는 상이다. 대들보는 무거운 것을 이겨 내는 데서 취했다. 네 양이 가운데 모였으니 무겁다고 할 만하다. 구삼과 구사에서 모두 대들보의 상을 취한 것은 무거운 책임을 맡았기 때문이다. 휘어진다는 것은 뿌리와 끝이 약한 데서 취했다. 가운데는 강하고 뿌리와 끝은 약하므로 휘어진다. 음은 약하고 양은 강하며 군자가 성하고 소인이 쇠하므로 나아가는 것이 이롭고 형통하다. 棟은 지금 사람들이 도리라고 부르는 들보다.
[단전] ‘대과는 큰 것이 지나친 것이다.’ 큰 것이 지나쳤다는 것은 양이 지나친다는 뜻이다. 일로 말하면 큰일이 평상을 지나고 그 지나침이 큰 것이다. ‘대들보가 휘는 것은 뿌리와 끝이 약하기 때문이다.’ 위아래 두 음이 쇠약함을 말한다. 양이 성하면 음이 쇠하므로 큰 것이 지나친 괘다. 소과에서는 작은 것이 지나쳤다고 했으니 음이 지나친 괘다.
‘굳셈이 지나치지만 가운데를 얻고, 손순하면서 기뻐하여 행하니, 나아가는 것이 이로워 형통한다.’ 괘의 재질이 선함을 말한다. 굳셈이 지나치지만 구이와 구오가 모두 가운데를 얻어 처신에서 중도를 잃지 않는다. 아래는 손이고 위는 태라 손순하고 화열한 도로 행한다. 대과의 때에 중도와 손순함과 기쁨으로 행하므로 나아가는 것이 이롭고, 이 때문에 형통할 수 있다.
‘대과의 때가 크도다.’ 대과의 때에는 그 일이 매우 크므로 찬탄했다. 비상한 큰일을 세우고 백세에 남을 큰 공을 일으키며 세속을 뛰어넘는 큰 덕을 이루는 것이 모두 대과의 일이다.
[대상전] ‘못이 나무를 잠기게 하는 것이 대과다. 군자는 이로써 홀로 서서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피해도 답답해하지 않는다.’ 못은 나무를 적셔 기르는 것인데 도리어 나무를 잠기게 하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지나침이 심하다. 그래서 대과다. 군자는 대과의 상을 보고 보통 사람보다 크게 뛰어난 행실을 세운다. 군자가 사람보다 크게 뛰어난 것은 홀로 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에서 물러나도 답답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천하 사람이 그르다고 해도 돌아보지 않는 것이 홀로 서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고, 온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는 것이 세상을 피해도 답답해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한 뒤에야 자신을 지킬 수 있으므로 보통 사람보다 크게 뛰어나다.
[초육] ‘깔개로 흰 띠풀을 쓰니 허물이 없다.’ 초육은 음유하고 손체이며 아래에 있어 두려워하고 삼감이 지나친 자다. 부드러운 것으로 아래에 있어 띠풀을 깔고 물건을 올리는 상이다. 물건을 땅에 바로 놓지 않고 띠풀을 깔아 놓으니 지나치게 삼간 것이다. 그래서 허물이 없다. 띠풀은 얇은 물건이지만 쓰임은 중하게 여길 수 있다. 삼가고 조심하는 도를 이루는 데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을 삼가 지켜 행하면 어찌 잘못이 있겠는가. 대과에서의 쓰임이다. 「계사전」은 ‘물건을 땅에 놓아도 괜찮은데 띠풀을 깔았으니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삼감이 지극하다. 띠풀은 얇은 물건이지만 쓰임은 중하게 여길 수 있다. 이 삼가는 방법으로 나아가면 잃는 바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공경과 삼감이 지극함을 말한다. 띠풀은 지극히 얇은 물건이지만 제물을 그 위에 놓으면 정중하고 삼가는 도가 되니 쓰임이 무겁다. 사람이 공경과 삼감에 지나치는 일은 어렵지 않으면서 평안을 보전하고 과오를 없앨 수 있다. 이 도를 삼가 일에 미루어 행하면 잃는 바가 없다. [소상전] ‘깔개로 흰 띠풀을 쓰는 것은 부드러운 것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음유로 낮은 자리에 처하는 도는 오직 공경과 삼감을 지나치게 하는 것뿐이다. 부드러운 것이 아래에 있어 띠풀을 깔고 물건을 올리는 상이니 공경하고 삼가는 도다.
[구이] ‘마른 버드나무 뿌리에서 새싹이 나고, 늙은 남자가 젊은 아내를 얻으니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 대과는 양이 지나친 괘지만 음과 가까이하면 서로 합하므로 구이와 구오에 모두 새로 생겨나는 상이 있다. 구이는 대과의 시작에 있고 가운데를 얻어 부드러운 자리에 있으며 초육과 바짝 가까워 함께한다. 초육도 구이에 바짝 가깝고 구이는 위에 응하는 효가 없으니 서로 함께함을 알 수 있다. 굳셈이 지나친 사람이 중도로 자신을 처신하고 부드러움으로 보완하는 자다. 굳셈이 지나치면 어떤 일도 이루지 못하니 구삼이 그러하고, 중을 얻어 부드러움을 쓰면 대과의 공을 이룰 수 있으니 구이가 그러하다. 버드나무는 양기를 쉽게 느끼는 나무다. 양이 지나치면 마르지만, 마른 버드나무에서 다시 뿌리 싹이 나는 것은 양의 지나침이 아직 극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이는 양이 지나쳤지만 초육과 함께하므로 늙은 남자가 젊은 아내를 얻은 상이다. 늙은 남자가 젊은 아내를 얻으면 생육의 공을 이룰 수 있다. 구이는 중을 얻고 부드러운 자리에 있으며 초육과 함께하므로 다시 뿌리 싹을 내어 지나침의 극에 이르는 잘못이 없고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 대과에서 양효가 음자리에 있으면 선하니 구이와 구사가 그러하다. 구이가 길하다고 하지 않고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 것은 아직 바로 길함에 이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稊는 뿌리다. 유곤의 권진표에 ‘마른 뿌리에서 무성한 꽃이 난다’고 한 것도 마른 뿌리를 말한다. 정현본 《주역》에도 荑로 되어 있는데 稊와 같다. [소상전] ‘늙은 남자와 젊은 아내가 함께하는 것은 보통의 분수를 지나 서로 함께하는 것이다.’ 늙은 남자가 어린 여자를 기뻐하고 어린 여자가 늙은 남자에게 순종하니, 서로 함께함이 보통의 분수를 지나친다. 구이와 초육의 음양이 화합하여 함께하는 것이 보통을 지났다는 뜻이다.
[구삼] ‘대들보가 휘니 흉하다.’ 대과의 때에 대과의 공을 일으키고 대과의 일을 세우려면 굳셈과 부드러움이 중을 얻고 남의 도움을 취해 자신을 보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지나치게 굳세면 남과 함께할 수 없고, 평상적인 공도 혼자 세울 수 없는데 하물며 대과의 일이겠는가. 성인의 재질을 지닌 자도 작은 일을 할 때 반드시 남에게서 취하는데, 천하의 큰 책임을 맡을 때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구삼은 대과의 양으로 다시 굳센 자리에 있고 중을 얻지 못해 굳셈이 매우 지나친 자다. 지나친 굳셈으로 움직이면 중화에 어긋나고 여러 사람의 마음을 거스른다. 어떻게 대과의 책임을 감당하겠는가. 무거운 책임을 이기지 못하여 대들보가 휘고 집이 무너지는 것과 같으므로 흉하다. 대들보를 상으로 취한 것은 도움 없이 무거운 책임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구삼이 손체이고 상육과 응하니 부드러움을 쓰는 상이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주역》을 말할 때는 형세의 경중과 때의 변화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구삼은 지나침에 있으면서 굳셈을 쓰고, 손체는 이미 끝나 장차 변한다. 어떻게 다시 부드러움을 쓴다는 뜻이 있겠는가. 응한다는 것은 뜻이 서로 따른다는 말인데, 구삼이 한창 지나치게 굳센데 상육이 그 뜻을 붙잡을 수 있겠는가. [소상전] ‘대들보가 휘어 흉한 것은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굳셈이 지나치면 남의 도움을 취하지 못하고 남도 가까이하여 돕지 못한다. 휘어 꺾인 대들보를 다시 받칠 수 없는 것과 같다. 대들보는 방 한가운데 있어 도움을 덧댈 수 없으므로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구사] ‘대들보가 솟아오르니 길하다. 다른 뜻이 있으면 곤궁하다.’ 구사는 임금에 가까운 자리에서 대과의 책임을 맡은 자다. 부드러운 자리에 있어 부드러움을 써서 보완할 수 있으므로 지나치게 굳세지 않고 책임을 이길 수 있다. 대들보가 솟아오르는 것과 같아 길하다. 솟아오른다는 것은 아래로 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과의 때에는 양강이 아니면 구제할 수 없는데 굳센 것으로 부드러운 자리에 처하니 마땅함을 얻었다. 그러나 다시 초육이라는 음과 응하면 지나치다. 이미 굳셈과 부드러움이 알맞은데 뜻이 다시 음에게 응하면 다른 뜻이 있는 것이다. 다른 뜻이 있으면 굳셈에 누가 된다. 큰 해에 이르지는 않아도 곤궁하고 부끄럽다. 대과의 때에는 움직이면 지나치기 쉽다. ‘다른 것’은 별도의 다른 뜻이 있다는 말이고, 吝은 부족하여 작아진다는 뜻이다. 어떤 이는 구이는 초육과 가까워 이롭지 않은 것이 없는데 구사가 초육과 응하면 곤궁한 까닭을 묻는다. 구이는 중을 얻고 초육과 가까우므로 부드러움으로 보완하는 뜻이다. 구사는 초육과 정응하여 뜻이 서로 매인 관계다. 구사가 이미 사효에 있어 굳셈과 부드러움이 알맞은데 다시 음에게 끌려 굳셈을 해치면 곤궁하다. [소상전] ‘대들보가 솟아올라 길한 것은 아래로 휘어 맞추지 않기 때문이다.’ 대들보가 솟으면 길하다. 아래의 초육에게 매여 굽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구오] ‘마른 버드나무에 꽃이 피고 늙은 여자가 젊은 남편을 얻으니 허물도 없고 명예도 없다.’ 구오는 대과의 때에 본래 중정으로 존귀한 자리에 있다. 그러나 아래에 응하여 돕는 효가 없으므로 대과의 공을 이룰 수 없고, 위로 지나침이 극에 이른 음과 가까워 서로 보완하는 바가 마른 버드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마른 버드나무가 아래에서 뿌리 싹을 내면 다시 살 수 있어 대과의 양이 일을 일으켜 공을 이루는 것과 같다. 그러나 위에서 꽃이 피면 겉으로 드러나는 바는 있어도 마른 나무에는 이익이 없다. 상육은 지나침이 극에 이른 음이므로 늙은 여자다. 구오도 젊지는 않지만 늙은 여자와 견주면 장성한 남자다. 구오가 상육에게 의지할 바가 없으므로 오히려 ‘늙은 여자가 젊은 남편을 얻었다’고 했다. 지나침이 극에 이른 음이 양의 도움을 얻었으므로 전혀 이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젊은 남자가 늙은 여자를 얻는 것은 죄와 허물은 없어도 아름다운 일은 아니므로 허물도 없고 명예도 없다고 했다. 「상전」은 다시 부끄러울 만하다고 했다. [소상전] ‘마른 버드나무에 꽃이 피니 어찌 오래가겠는가. 늙은 여자가 젊은 남편을 얻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마른 버드나무가 뿌리를 내지 않고 꽃만 피우면 곧 다시 마르니 어떻게 오래가겠는가. 늙은 여자가 젊은 남편을 얻어도 생육의 공을 이룰 수 없으므로 부끄럽다.
[상육] ‘지나치게 물을 건너다가 머리까지 잠기니 흉하지만 탓할 데는 없다.’ 상육은 음유로 지나침의 극에 있으니 소인이 평상을 지나친 극이다. 소인이 말하는 대과는 보통 사람보다 크게 뛰어난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평상을 넘고 이치를 어기면서 위태로움과 죽음을 돌보지 않고 험난을 밟아 화에 뛰어드는 것일 뿐이다. 물을 지나치게 건너다가 머리 꼭대기까지 잠기는 것과 같으니 흉함을 알 수 있다. 소인이 미치고 조급하여 스스로 화를 부른 것은 마땅한 일이니 다시 누구를 탓하겠는가. 그래서 허물이 없다고 했다. 스스로 저질러 원망하고 탓할 데가 없다는 뜻이다. 못의 상에 따라 물을 건너는 뜻을 취했다. [소상전] ‘지나치게 물을 건너 흉한 것은 누구도 탓할 수 없다.’ 물을 지나치게 건너다가 빠진 것은 자신이 만든 일이므로 남을 탓할 수 없다. 원망하고 탓할 데가 없다는 말이다.
정이는 대과를 이치를 벗어나는 잘못이 아니라 평상에서 보기 어려운 큰일과 비상한 덕·공업으로 풀이한다. 가운데 네 양이 무거운 책임을 지지만 양끝의 음이 약해 대들보가 휘므로, 강단에 중도(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알맞은 길)·손순함·화열함과 타인의 도움이 결합해야 위기를 구제할 수 있다.
효사(각 효에 붙은 판단문)는 지나치게 삼가도 안전한 시작, 부드러움과 결합해 생명력을 회복하는 구이(둘째 자리의 양효), 독단 때문에 무거운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구삼, 알맞은 강유를 유지하는 구사, 뿌리 없는 겉치레에 그치는 구오, 이치를 넘어 스스로 화를 부르는 상육을 대비한다.
주희 《주역본의》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巽下兌上〉
大過棟橈利有攸往亨〈橈乃教反○大陽也四陽居中過盛故為大過上下二隂不勝其重故有棟橈之象又以四陽雖過而二五得中内巽外說有可行之道故利有所往而得亨也〉○彖曰大過大者過也〈以卦體釋卦名義〉棟橈本末弱也〈復以卦體釋卦辭本謂初末謂上弱謂隂柔〉剛過而中巽而說行利有攸往乃亨〈說音悅○又以卦體卦徳釋卦辭〉大過之時大矣哉〈大過之時非有大過人之材不能濟也故歎其大〉○象曰澤滅木大過君子以獨立不懼遯世无悶〈澤滅於木大過之象也不懼无悶大過之行也〉○初六藉用白茅无咎〈藉在夜反○當大過之時以隂柔居巽下過於畏慎而无咎者也故其象占如此白茅物之潔者〉象曰藉用白茅柔在下也○九二枯楊生梯老夫得其女妻无不利〈梯吐兮反○陽過之始而比初隂故其象占如此梯根也榮於下者也榮於下則生於上矣夫雖老而得女妻猶能成生育之功也〉象曰老夫女妻過以相與也○九三棟橈凶〈三四二爻居卦之中棟之象也九三以剛居剛不勝其重故象橈而占凶〉象曰棟橈之凶不可以有輔也○九四棟隆吉有它吝〈它湯何反○以陽居隂過而不過故其象隆而占吉然下應初六以柔濟之則過於柔矣故又戒以有它則吝也〉象曰棟隆之吉不橈乎下也○九五枯楊生華老婦得其士夫无咎无譽〈華如字○九五陽過之極又比過極之隂故其象占皆與二反〉象曰枯楊生華何可久也老婦士夫亦可醜也○上六過涉滅頂凶无咎〈處過極之地才弱不足以濟然於義為无咎矣蓋殺身成仁之事故其象占如此〉象曰過涉之凶不可咎也
대과괘는 아래가 손이고 위가 태다. [괘사] ‘대과는 대들보가 휘어진다. 나아가는 것이 이롭고 형통하다.’ 橈는 내교의 반절로 읽는다. 大는 양이다. 네 양이 가운데 있어 지나치게 성하므로 대과가 된다. 위아래 두 음은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므로 대들보가 휘는 상이 있다. 또 네 양이 비록 지나치지만 구이와 구오는 가운데를 얻었고, 안은 손순하고 밖은 기뻐하여 행할 수 있는 도가 있다. 그래서 나아가는 것이 이롭고 형통함을 얻는다.
[단전] ‘대과는 큰 것이 지나친 것이다.’ 괘체로 괘 이름의 뜻을 풀이했다. ‘대들보가 휘는 것은 뿌리와 끝이 약하기 때문이다.’ 다시 괘체로 괘사를 풀이했다. 뿌리는 초육이고 끝은 상육이며, 약하다는 것은 음유함을 말한다. ‘굳셈이 지나치지만 가운데를 얻고, 손순하면서 기뻐하여 행하니 나아가는 것이 이로워 형통한다.’ 說은 열의 소리로 읽는다. 다시 괘체와 괘덕으로 괘사를 풀이했다. ‘대과의 때가 크도다.’ 대과의 때에는 보통 사람보다 크게 뛰어난 재목이 아니면 구제할 수 없으므로 그 큼을 찬탄했다.
[대상전] ‘못이 나무를 잠기게 하는 것이 대과다. 군자는 이로써 홀로 서서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피해도 답답해하지 않는다.’ 못이 나무를 잠기게 하는 것이 대과의 상이고, 두려워하지 않고 답답해하지 않는 것이 보통을 크게 뛰어넘는 행실이다.
[초육] ‘깔개로 흰 띠풀을 쓰니 허물이 없다.’ 藉는 재야의 반절로 읽는다. 대과의 때에 음유로 손괘의 맨 아래에 있어 두려워하고 삼감이 지나치지만 허물이 없다. 그래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다. 흰 띠풀은 깨끗한 물건이다.
[구이] ‘마른 버드나무 뿌리에서 새싹이 나고, 늙은 남자가 젊은 아내를 얻으니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 梯는 토혜의 반절로 읽는다. 양이 지나치기 시작한 때에 초육의 음과 가까우므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다. 梯는 뿌리이고 아래에서 무성해지는 것이다. 아래에서 무성하면 위에서도 살아난다. 남자가 늙었어도 젊은 아내를 얻으면 생육의 공을 이룰 수 있다.
[구삼] ‘대들보가 휘니 흉하다.’ 구삼과 구사는 괘의 가운데에 있어 대들보의 상이다. 구삼은 굳센 것으로 굳센 자리에 있어 무거운 책임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휘는 상이 되고 점은 흉하다.
[구사] ‘대들보가 솟아오르니 길하다. 다른 뜻이 있으면 곤궁하다.’ 它는 탕하의 반절로 읽는다. 양으로 음자리에 있어 지나치면서도 지나치지 않으므로 대들보가 솟는 상이고 점은 길하다. 그러나 아래로 초육과 응해 부드러움으로 보완하면 지나치게 부드러워진다. 그래서 다른 뜻이 있으면 곤궁하다고 다시 경계했다.
[구오] ‘마른 버드나무에 꽃이 피고 늙은 여자가 젊은 남편을 얻으니 허물도 없고 명예도 없다.’ 華는 본래 소리로 읽는다. 구오는 양의 지나침이 극에 이른 자이고 또 지나침이 극에 이른 상육의 음과 가까우므로 그 상과 점이 모두 구이와 반대다.
[상육] ‘지나치게 물을 건너다가 머리까지 잠기니 흉하지만 탓할 데는 없다.’ 지나침의 극에 있는 자리에서 재질이 약하여 구제하기 부족하다. 그러나 의리상 허물은 없다. 자신의 몸을 죽여 인을 이룬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다.
주희는 가운데 네 양이 지나치게 성하고 양끝의 두 음이 무게를 이기지 못해 대들보가 휘는 괘체(효와 상·하괘가 이룬 괘의 전체 구조)로 대과를 풀이한다. 다만 구이(둘째 자리의 양효)·구오(다섯째 자리의 양효)가 가운데를 얻고 안은 손순하며 밖은 기뻐하므로 위기 속에서도 나아가 형통할 길이 있다.
초육의 과도한 삼감은 허물이 없고, 구이는 음과 결합해 생육을 회복하지만, 구삼은 지나치게 굳세 책임을 이기지 못한다. 구사는 강유를 맞춰 솟고, 구오는 겉으로 꽃만 피워 오래가지 못한다. 상육은 재질은 약하지만 몸을 죽여 인을 이룬 의리로 보아 허물이 없다고 해석한다.
정약용(丁若鏞) 《주역사전》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雜卦傳曰大過。顚也。〇程子曰大過者。陽過也。〇鏞案過者。越也度也。小過以頤交易。〈雷山卦〉四陰相過以成卦。〈交過之〉小者過也。大過以中孚交易。〈澤風卦〉四陽相過以成卦。〈交過之〉大者過也。陽卦多陰。陰卦多陽。〈大傳文〉故小畜主陰。〈巽一陰〉大畜主陽。〈艮一陽〉而二過之卦。反於是例者。以其過也。小過者陰太過也。〈四陰勝二陽〉大過者陽太過也。〈四陽勝二陰〉又過者愆也眚也。二過之卦。本皆虛中。〈中孚頤〉交而過之。皆成坎眚。小過猶小。〈中二剛〉大過太大。〈中四剛〉此二卦之所以名也。又卦自遯大壯來。剛自上來。〈遯上之二〉過以得中。〈過三陽而來〉剛自下往。〈大壯一之五〉過以得中。〈過三陽而往〉此彖傳之所言也。此卦亦顚倒以取象。故曰大過顚也。〈九二九五詞。皆取倒象。〉
{〔卦象:䷛〕}大過。棟橈。利有攸往。亨。
此大過之不變者也。卦無反對。故亦取倒象。〈義見上〉兩巽之木。〈上倒巽〉首尾殺小。〈上下陰〉以據大坎之宮。〈上下夾〉其象爲棟。〈全卦爲一棟〉其形爲撓也。風以撓之。〈說卦文〉巽之德固撓也。棟者屋檼也。屋檼者屋極也。〈負棟者曰梁〉大壯以震爲棟。〇卦自大壯來。〈五之一〉剛往得位。〈一之五〉亦自遯來。〈二之上〉柔往得位。〈上位陰〉利有攸往也。兌則爲利。〇往必得位。上下無壅。〈大坎通〉其道亨也。〈亨通也〉〇案荀九家以坎爲棟。非也。本末雖弱。中剛太短。安能爲棟。唯大過爲棟也。
彖曰大過。大者過也。棟撓本末弱也。剛過而中。巽以說行。利有攸往。乃亨。大過之時。大矣哉。
大者陽也。過者太過也。〈義見上〉本末弱者。上下銳也。〈陰則小〉下巽爲根。〈本在下〉上巽爲稍。〈末在上〉上下皆小。〈皆一陰〉本末弱也。〈又兌之形銳〉棟之爲物。兩頭小也。〇二五爲中。雖過而得中也。〈義見上〉
{〔卦象:䷛〕}初六。藉用白茅。無咎。〇象曰藉用白茅。柔在下也。
此大過之夬也。卦以中孚交易。〈本風澤〉离誠旣孚。〈本大离〉巽齊又潔。〈上下巽〉祭祀之卦也。卦自大壯。〈五之一〉大兌之牲。〈兌爲羊〉下無所藉。〈全卦只是羊〉移之大過。〈五之一〉則兌牲之下。〈上今兌〉巽草爲苴。〈下今巽〉是何物也。本以震草。〈自五來〉有乾三脊。〈本下乾〉其象茅也。〈三脊草〉今以巽白。〈說卦文〉是白茅也。初位在地。〈三才位〉其用爲藉。〈薦於地曰藉〉藉用白茅也。〇大壯之時。二陰乘剛。〈雷乘乾〉其象厲也。移而降之。〈五之一〉陰乃巽伏。〈柔在下〉是無咎也。〈善補過〉〇柔在下者本象也。初爲卦主。故不取變象。〇案士虞禮苴刌茅長五寸。〈束之實于筐〉佐食取黍稷。祭于苴。又取膚祭于苴。藉用白茅。蓋指此禮也。〇又按虞仲翔直以巽爲白茅。疏矣。〈三脊之義見泰卦〉
孔子曰苟錯諸地而可矣。〈一二地〉藉之用茅。何咎之有。愼之至也。〈大坎以敬之〉夫茅之爲物薄。而用可重也。〈一陰薄〉愼斯術也以往。其無所失矣。〈一剛往得位〉〇案卦德爲過。藉用白茅者。過於愼重也。
{〔卦象:䷞〕}九二。枯楊生稊。老夫得其女妻。無不利。〇象曰老夫女妻。過以相與也。
此大過之咸也。巽爲柔木。〈異震剛〉卦德顚倒。〈見雜卦〉柔而且倒。於木楊也。〈木之倒垂者爲楊〉本自中孚。〈交易之〉离則爲槁。〈說卦文〉是枯楊也。二之旣變。倒震反生。〈下今艮〉旉而蕃鮮。〈說卦文〉枯楊生稊也。〈與荑通〉葉始生曰稊。〈說文云。〉〇震男最長。〈下倒震〉是老夫也。上配兌女。〈婚配之卦。本倒合。〉老夫得其女妻也。〈女未嫁。在室之禰。〉枯楊生稊。非是象乎。〇咸自否來。〈上之三〉兌女之配我也。損其一陽。以來益我。〈上之三〉無不利也。兌則爲利。〈義之和〉〇過以相與者。否之一陰。過四五而上交。〈三之上〉亦其一陽。過五四而下交也。〈上之三〉年紀已老。不與女而相敵。此過時以相與也。〈又三與上應。爲相與也。〉〇案夏小正云正月柳梯。〈梯發荂也。與荑同。〉古者氷冸爲婚。正是柳梯之時也。鄭玄本梯作荑。〈鄭云木新生〉荑與䄺通。荑者茅始生也。葉始生亦爲荑。〇又按卦德爲過。六爻皆播性也。
{〔卦象:䷮〕}九三。棟撓。凶。〇象曰棟撓之凶。不可以有輔也。
此大過之困也。否移爲困。〈上之二〉則坎宮之上。〈下今坎〉巽木橫措。〈上倒巽〉其象棟也。乃此巽棟上邊虛陷。〈巽倒故〉棟之撓也。〈向下而撓曲〉棟橈乎下。〈如心字下畫〉必致摧折。〈兌爲折〉不已凶乎。〇遂成坎輿。〈下今坎〉輿則有輔。〈車之兩旁木〉上當兌折。不可輔也。輔者助力也。棟之方折。誰其輔之。〇案通卦爲大棟。是竪看也。〈合六畫而爲一棟〉分卦〈上下卦〉爲小棟。〈上倒巽〉是橫看也。〈每以一巽爲一棟〉〇學圃云困自否來。故其象凶。
{〔卦象:䷯〕}九四。棟隆吉。有它吝。〇象曰棟隆之吉。不撓乎下也。
此大過之井也。泰移爲井。〈一之五〉則坎宮之內。〈上今坎〉巽木橫措。〈下今巽〉其象棟也。今之巽棟。下邊虛陷。〈正巽故〉是亦撓也。〈撓曲也〉然而曰隆者。不撓乎下也。〈棟之上脊隆〉棟撓乎上。則穹然其隆。而爲硬脊之屋也。〈棟如虹〉故曰吉。〈撓雖同而吉凶別〉又巽爲高。〈說卦文〉隆者高也。〇有它。猶言有故也。坎爲疾病。〈說卦文〉爲盜爲雨。〈亦說卦〉凡祭祀燕饗之筮。若遇此爻。有他故也。〈比初六。中孚初九亦同。〉坎眚不改。〈本大坎〉其占爲吝。〇不撓乎下者。明九三之棟撓乎下也。〇案卦德爲過。棟撓棟隆者。過於直而曲者也。〇學圃云井自泰來。故其象吉。
{〔卦象:䷟〕}九五。枯楊生華。老婦得其士夫。無咎無譽。〇象曰枯楊生華。何可久也。老婦士夫。亦可醜也。
此大過之恒也。倒巽之楊。〈上本兌〉亦自中孚。〈交易之〉是枯楊也。〈离爲科上槁〉變而爲震。〈上今震〉其𧀮蕃鮮。〈說卦文〉枯楊生華也。〇下巽老婦也。〈長女卦〉今配倒艮。〈牉合。故必取倒象。〉得士夫也。〈艮少男〉詩云吉士誘之。士者未娶之稱也。〇昔自大壯。兌已乘剛。泰卦亦然。〈陰在上〉移之爲恒。〈四之一〉陰乃卑降。遂以巽伏。〈下今巽〉是無咎也。悅言乎兌。〈說卦文〉今兌旣變。〈上今震〉亦無譽也。〇老婦色衰。強爲容飾。如枯楊之華。不可久也。詩云桑之落矣。其黃而隕。亦此意也。〇古者三十而娶。二十而嫁。〈內則文〉今婦老男少。亦可醜也。或曰九二再娶之占也。九五改嫁之占也。〇案古文華荂旉𧀮。竝相通。
{〔卦象:䷪〕}上六。過涉滅頂。凶。〇象曰過涉之凶。不可咎也。
此大過之姤也。卦自遯來。〈二之上〉遯走之人。乾以爲首。〈上本乾〉乾之上剛。又其頂也。〈頂覆在首上〉移之大過。〈二之上〉則坎水上溢。〈上下夾〉險津旣過。〈已至上〉乾頂遂滅。〈上今兌〉過涉而滅頂也。〈乾首沒於坎水中〉不亦凶乎。上爲卦主。故言其本象。〇以柔居陰。〈上本柔〉位非不當。旣過而渰。患生不虞。不可咎也。
「잡괘전」에서 말하였다. “대과는 뒤집힘이다.” 정자는 말하였다. “대과는 양이 지나친 것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과(過)는 넘어감이고 건넘이다. 소과괘는 이괘와 효를 교역하여 (뇌산소과괘이다.) 네 음이 서로 건너가 괘를 이루니 (서로 교차하여 지나간다.) 작은 것이 지나친 것이다. 대과괘는 중부괘와 효를 교역하여 (택풍대과괘이다.) 네 양이 서로 건너가 괘를 이루니 (서로 교차하여 지나간다.) 큰 것이 지나친 것이다. 양괘에는 음이 많고 음괘에는 양이 많다. (《대전》의 글이다.) 그러므로 소축괘는 음을 주인으로 삼고 (손괘의 음 하나이다.) 대축괘는 양을 주인으로 삼는다. (간괘의 양 하나이다.) 그런데 두 과괘가 이 법칙과 반대되는 것은 그 수가 지나쳤기 때문이다. 소과는 음이 너무 지나친 것이고 (네 음이 두 양을 이겼다.) 대과는 양이 너무 지나친 것이다. (네 양이 두 음을 이겼다.) 또 과는 허물이며 재앙이다. 두 과괘는 본래 모두 가운데가 비었으나 (중부괘와 이괘이다.) 서로 교역하여 지나가면 모두 감괘의 재앙을 이룬다. 소과는 그래도 작고 (가운데에 두 강한 양이 있다.) 대과는 너무 크니 (가운데에 네 강한 양이 있다.), 이것이 두 괘를 그렇게 이름 붙인 까닭이다. 또 괘는 둔괘와 대장괘에서 왔다. 강한 양이 위에서 내려와 (둔괘의 상효가 이효로 왔다.) 세 양을 지나 가운데를 얻고, (세 양을 지나 내려왔다.) 강한 양이 아래에서 올라가 (대장괘의 초효가 오효로 갔다.) 세 양을 지나 가운데를 얻는다. (세 양을 지나 올라갔다.) 이것이 「단전」에서 말한 내용이다. 이 괘는 또한 거꾸로 뒤집어 상을 취하므로 “대과는 뒤집힘이다”라고 하였다. (구이와 구오의 효사는 모두 거꾸로 된 상을 취한다.)
[괘상: ䷛] 대과는 마룻대가 휘어진다. 가는 바를 두는 것이 이롭고 형통하다.
이는 대과괘가 변하지 않은 경우이다. 이 괘에는 뒤집어 짝이 되는 다른 괘가 없으므로 또한 거꾸로 된 상을 취한다. (뜻은 위에 보인다.) 두 손괘의 나무는 (위가 거꾸로 된 손괘이다.) 머리와 꼬리가 가늘고 작으며 (위아래가 음이다.) 큰 감괘인 집에 걸쳐 있으니 (위아래가 음으로 낀다.) 그 상은 마룻대가 되고 (전체 괘가 하나의 마룻대이다.) 그 형상은 휘어짐이 된다. 바람이 그것을 휘게 하고 (「설괘전」의 글이다.) 손괘의 덕도 본래 굽힘이다. 마룻대는 집의 도리이며 집의 도리는 집의 맨 꼭대기이다. (마룻대를 받치는 것이 들보이다.) 대장괘에서는 진괘를 마룻대로 삼는다. 괘는 대장괘에서 와서 (오효가 초효로 왔다.) 강한 양이 올라가 제자리를 얻었고 (초효가 오효로 갔다.), 또한 둔괘에서 와서 (이효가 상효로 왔다.) 유순한 음이 가서 제자리를 얻었으므로 (상효의 자리는 음의 자리이다.) 가는 바를 두는 것이 이롭다. 태괘는 이로움이다. 가면 반드시 자리를 얻고 위아래에 막힘이 없어 (큰 감괘는 통한다.) 그 도가 형통하다. (형(亨)은 통함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순상의 《구가역》에서 감괘를 마룻대로 삼은 것은 잘못이다. 뿌리와 끝이 비록 약하더라도 가운데의 강한 양이 너무 짧다면 어떻게 마룻대가 될 수 있겠는가? 오직 대과괘 전체가 마룻대가 된다.
「단전」에서 말하였다. “대과는 큰 것이 지나친 것이다. ‘마룻대가 휘어짐’은 뿌리와 끝이 약하기 때문이다. 강한 양이 지나치게 많으나 가운데를 얻고, 손괘의 공손함으로 태괘의 기쁨을 따라가므로 가는 바를 두는 것이 이로워 이에 형통하다. 대과의 때가 크도다.”
큰 것은 양이고 지나침은 너무 지나친 것이다. (뜻은 위에 보인다.) 뿌리와 끝이 약하다는 것은 위아래가 뾰족하다는 뜻이다. (음은 작다.) 아래 손괘는 뿌리이고 (뿌리는 아래에 있다.) 위의 거꾸로 된 손괘는 가지 끝이니 (끝은 위에 있다.) 위아래가 모두 작다. (모두 음 하나이다.) 이것이 뿌리와 끝이 약하다는 말이다. (또 태괘의 형상이 뾰족하다.) 마룻대라는 물건은 두 끝이 작다. 이효와 오효는 가운데 자리이니, 강한 양이 비록 지나치게 많아도 가운데를 얻는다. (그 뜻은 위에 보인다.)
[괘상: ䷛] 초육. 흰 띠풀을 깔개로 쓰니 허물이 없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흰 띠풀을 깔개로 씀’은 유순한 음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과괘가 쾌괘로 변한 경우이다. 괘는 중부괘와 효를 교역하였다. (본래 풍택중부괘이다.) 리괘인 성실함이 이미 미덥고 (본래 큰 리괘이다.) 손괘의 가지런함이 다시 깨끗하니 (위아래가 손괘이다.) 제사의 괘이다. 괘는 대장괘에서 왔다. (오효가 초효로 갔다.) 큰 태괘인 희생물은 (태괘는 양이다.) 아래에 까는 것이 없었지만 (전체 괘가 오직 양일 뿐이다.), 효를 옮겨 대과괘가 되면 (오효가 초효로 갔다.) 태괘인 희생물 아래에 (위가 이제 태괘이다.) 손괘인 풀이 깔개가 된다. (아래가 이제 손괘이다.) 이것은 무슨 물건인가? 본래 진괘인 풀인데 (오효에서 왔다.) 건괘의 세 줄기 등성이가 있어 (아래가 본래 건괘였다.) 띠풀의 상이 된다. (세 줄기 등성이가 난 풀이다.) 이제 손괘인 흰빛을 띠므로 (「설괘전」의 글이다.) 흰 띠풀이다. 초효의 자리는 땅이니 (삼재의 자리이다.) 그 쓰임은 까는 것이다. (땅에 올려놓는 것을 ‘자(藉)’라 한다.) 이것이 흰 띠풀을 깔개로 쓴다는 말이다. 대장괘 때에는 두 음이 강한 양을 타고 있어 (우레가 건괘를 탔다.) 위태로운 상이지만, 효를 옮겨 내려놓자 (오효가 초효로 왔다.) 음이 손괘로 엎드려 (유순한 음이 아래에 있다.) 허물이 없다. (허물을 잘 보충한다.) ‘유순한 음이 아래에 있음’은 본래의 상이다. 초육이 괘의 주인이므로 변한 상을 취하지 않았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사의례》 〈사우례〉에는 “띠풀을 잘라 다섯 치 길이의 깔개를 만든다”고 하였다. (묶어서 광주리에 넣는다.) 좌식이 기장과 피를 가져다 띠풀 깔개 위에 제사하고, 또 고기를 가져다 그 깔개 위에 제사한다. ‘흰 띠풀을 깔개로 쓴다’는 말은 아마 이 예를 가리킬 것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우중상은 곧바로 손괘를 흰 띠풀로 삼았으니 소략하다. (세 줄기 등성이의 뜻은 태괘에 보인다.)
공자는 말하였다. “진실로 물건을 땅에 놓기만 해도 괜찮은데 (초효와 이효는 땅의 자리이다.) 띠풀을 깔아 놓았으니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삼가기를 지극히 한 것이다. (큰 감괘로 공경한다.) 띠풀이란 물건은 하찮지만 그 쓰임은 중하게 할 수 있다. (음 하나는 얇고 하찮다.) 삼가는 이 방법을 지켜 앞으로 가면 잃는 바가 없을 것이다. (강한 양 하나가 가서 제자리를 얻는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괘의 덕이 지나침이므로 흰 띠풀을 깔개로 쓴 것은 삼가고 존중하기를 지나치게 한 것이다.
[괘상: ䷞] 구이. 마른 버드나무에서 어린 싹이 나고, 늙은 지아비가 젊은 아내를 얻으니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늙은 지아비와 젊은 아내’는 때를 지나 서로 짝한 것이다.”
이는 대과괘가 함괘로 변한 경우이다. 손괘는 부드러운 나무로서 (진괘의 굳센 나무와 다르다.) 괘의 덕이 거꾸로 뒤집혀 있다. (「잡괘전」에 보인다.) 부드러우면서 거꾸로 드리우는 나무이므로 버드나무이다. (나무 가운데 거꾸로 드리우는 것이 버드나무이다.) 본래 중부괘에서 왔고 (중부괘와 교역했다.) 리괘는 마름이 되므로 (「설괘전」의 글이다.) 마른 버드나무이다. 이효가 변하고 나면 거꾸로 된 진괘가 도리어 살아나 (아래가 이제 간괘이다.) 널리 퍼지고 무성하여 싱싱해지므로 (「설괘전」의 글이다.) 마른 버드나무에서 어린 싹이 난다. (‘제(稊)’는 ‘이(荑)’와 통한다.) 잎이 처음 돋는 것을 ‘제’라 한다. (《설문》의 말이다.) 진괘인 남자는 가장 나이가 많아 (아래의 거꾸로 된 진괘이다.) 늙은 지아비이고, 위의 태괘인 여자와 짝하므로 (혼인하여 짝하는 괘이며 본래 거꾸로 합한다.) 늙은 지아비가 젊은 아내를 얻은 것이다. (여자는 아직 시집가지 않아 집 안에 있는 젊은 여자이다.) 마른 버드나무에서 어린 싹이 나는 것이 바로 이런 상이 아니겠는가? 함괘는 비괘에서 왔다. (상효가 삼효로 갔다.) 태괘인 여자가 나와 짝할 때 자신의 양 하나를 덜어 나를 보태므로 (상효가 삼효로 갔다.)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 태괘는 이로움이다. (의가 조화를 이룬 것이다.) ‘때를 지나 서로 짝함’은 비괘의 음 하나가 사효와 오효를 지나 위로 올라가 사귀고 (삼효가 상효로 갔다.), 또한 양 하나가 오효와 사효를 지나 아래로 내려와 사귄 것이다. (상효가 삼효로 갔다.) 나이가 이미 늙어 젊은 여자와 나이가 맞지 않으니, 이는 정상적인 때를 지나 서로 짝한 것이다. (또 삼효와 상효가 응하여 서로 짝한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하소정》에서 “정월에 버드나무 싹이 난다”고 하였다. (‘제(梯)’는 꽃이 피는 것이며 ‘이(荑)’와 같다.) 옛날에는 얼음이 녹을 때 혼인했으니 바로 버드나무 싹이 나는 때이다. 정현의 판본에는 ‘제(梯)’가 ‘이(荑)’로 되어 있다. (정현은 “나무에 새싹이 난다”고 하였다.) ‘이(荑)’는 ‘제(䄺)’와 통한다. 이는 띠풀이 처음 돋는 것이지만 잎이 처음 돋는 것도 ‘이’라 한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또 괘의 덕이 지나침이므로 여섯 효가 모두 그 성정을 나누어 드러낸다.
[괘상: ䷮] 구삼. 마룻대가 휘어져 흉하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마룻대가 휘어져 흉함’은 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대과괘가 곤괘로 변한 경우이다. 비괘의 효가 옮겨 곤괘가 되면 (상효가 이효로 갔다.) 감괘인 집 위에 (아래가 이제 감괘이다.) 손괘인 나무가 가로놓여 (위가 거꾸로 된 손괘이다.) 마룻대의 상이 된다. 그런데 이 손괘인 마룻대의 위쪽이 비어 꺼졌으니 (손괘가 거꾸로 되었기 때문이다.) 마룻대가 휜 것이다. (아래를 향해 굽었다.) 마룻대가 아래로 휘면 (‘심(心)’ 자의 아랫획과 같다.) 반드시 꺾이고 무너지는 데 이르니 (태괘는 꺾임이다.) 어찌 흉하지 않겠는가? 마침내 감괘인 수레를 이루는데 (아래가 이제 감괘이다.) 수레에는 보조목인 ‘보(輔)’가 있지만 (수레 양옆의 나무이다.) 위에서 태괘의 꺾임을 만나므로 도울 수 없다. ‘보’는 힘을 보태는 것이다. 마룻대가 막 부러지려 할 때 누가 그것을 도울 수 있겠는가? 정약용이 살피건대, 전체 괘가 큰 마룻대가 되는 것은 세로로 보는 것이다. (여섯 획을 합하여 하나의 마룻대로 삼는다.) 상괘와 하괘를 나누어 작은 마룻대로 삼는 것은 (위의 거꾸로 된 손괘이다.) 가로로 보는 것이다. (손괘 하나하나를 마룻대 하나로 삼는다.) 정학유는 말하였다. “곤괘는 비괘에서 왔으므로 그 상이 흉하다.”
[괘상: ䷯] 구사. 마룻대가 솟아올라 길하다. 다른 일이 있으면 부끄럽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마룻대가 솟아올라 길함’은 아래로 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대과괘가 정괘로 변한 경우이다. 태괘의 효가 옮겨 정괘가 되면 (초효가 오효로 갔다.) 감괘인 집 안에 (위가 이제 감괘이다.) 손괘인 나무가 가로놓여 (아래가 이제 손괘이다.) 마룻대의 상이 된다. 지금 이 손괘인 마룻대는 아래쪽이 비어 꺼졌으므로 (정방향 손괘이기 때문이다.) 이 또한 휘어진 것이다. (휘어 굽은 것이다.) 그런데도 ‘솟았다’고 한 것은 아래로 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룻대 위의 등성이가 솟는다.) 마룻대가 위로 휘면 활처럼 솟아 단단한 용마루를 이룬다. (마룻대가 무지개와 같다.) 그러므로 길하다. (휘어진 것은 같지만 길흉은 다르다.) 또 손괘는 높음이므로 (「설괘전」의 글이다.) 융(隆)은 높다는 뜻이다. ‘다른 일이 있다[有它]’는 것은 까닭이 있다는 말과 같다. 감괘는 질병이 되고 (「설괘전」의 글이다.) 도둑과 비가 되니 (역시 「설괘전」의 글이다.), 제사나 잔치의 점에서 이 효를 만나면 다른 사고가 생긴다. (비괘 초육과 중부괘 초구도 같다.) 감괘의 재앙은 바뀌지 않으므로 (본래 큰 감괘이다.) 그 점이 부끄럽다. ‘아래로 휘지 않음’은 구삼의 마룻대가 아래로 휘는 것과 대조하여 밝힌 말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괘의 덕이 지나침이므로 마룻대가 휘거나 솟는 것은 곧게 뻗은 상태를 지나쳐 굽은 것이다. 정학유는 말하였다. “정괘는 태괘에서 왔으므로 그 상이 길하다.”
[괘상: ䷟] 구오. 마른 버드나무에 꽃이 피고, 늙은 부인이 젊은 지아비를 얻으니 허물도 없고 명예도 없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마른 버드나무에 꽃이 핌’이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늙은 부인과 젊은 지아비’는 또한 부끄러울 만하다.”
이는 대과괘가 항괘로 변한 경우이다. 거꾸로 된 손괘의 버드나무가 (위가 본래 태괘이다.) 또한 중부괘에서 왔으니 (효를 교역했다.) 마른 버드나무이다. (리괘는 가지가 성글고 위가 마름이다.) 변하여 진괘가 되면 (위가 이제 진괘이다.) 그 꽃이 번성하고 싱싱해지므로 (「설괘전」의 글이다.) 마른 버드나무에 꽃이 핀다. 아래 손괘는 늙은 부인이고 (장녀의 괘이다.) 이제 거꾸로 된 간괘와 짝하여 (남녀가 짝하므로 반드시 거꾸로 된 상을 취한다.) 젊은 지아비를 얻는다. (간괘는 소남이다.) 《시경》에서 “훌륭한 젊은 선비가 그를 이끈다”고 하였으니, ‘사(士)’는 아직 장가들지 않은 남자를 일컫는다. 예전에 대장괘에서는 태괘가 이미 강한 양을 타고 있었고 태괘도 그러했지만 (음이 위에 있다.), 효를 옮겨 항괘가 되면 (사효가 초효로 갔다.) 음이 낮은 곳으로 내려와 마침내 손괘로 엎드리므로 (아래가 이제 손괘이다.) 허물이 없다. “태괘에서 기쁨을 말한다”고 하였는데 (「설괘전」의 글이다.) 이제 태괘가 이미 변했으므로 (위가 이제 진괘이다.) 또한 명예도 없다. 늙은 부인은 얼굴빛이 쇠했는데 억지로 꾸미니 마른 버드나무의 꽃과 같아 오래갈 수 없다. 《시경》에서 “뽕나무가 떨어질 때 누렇게 되어 잎이 진다”고 한 것도 같은 뜻이다. 옛날에는 남자는 서른에 장가들고 여자는 스물에 시집갔다. (《예기》 〈내칙〉의 글이다.) 지금 여자는 늙고 남자는 젊으니 또한 부끄러울 만하다. 어떤 이는 “구이는 재혼하는 점이고, 구오는 개가하는 점이다”라고 한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고문에서 ‘화(華)’·‘부(荂)’·‘부(旉)’·‘화(𧀮)’는 모두 서로 통한다.
[괘상: ䷪] 상육. 지나치게 건너다가 머리끝까지 물에 잠기니 흉하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지나치게 건너서 흉함’은 탓할 수 없다.”
이는 대과괘가 구괘로 변한 경우이다. 괘는 둔괘에서 왔다. (이효가 상효로 갔다.) 둔괘에서 달아나는 사람은 건괘를 머리로 삼고 (위가 본래 건괘이다.) 건괘의 맨 위 강한 양을 또 정수리로 삼는다. (정수리는 머리 위를 덮는다.) 효를 옮겨 대과괘가 되면 (이효가 상효로 갔다.) 감괘인 물이 위로 넘쳐흐르고 (위아래가 음으로 낀다.) 험한 나루를 이미 지나 맨 위에 이르러 (이미 상효에 이르렀다.) 건괘인 정수리가 마침내 잠긴다. (상효가 이제 태괘이다.) 이것이 지나치게 건너다가 머리끝까지 잠기는 것이다. (건괘인 머리가 감괘의 물속에 잠겼다.) 어찌 흉하지 않겠는가? 상육은 괘의 주인이므로 그 본래의 상을 말하였다. 유순한 음으로 음의 자리에 있어 (상효가 본래 음이다.) 자리가 부당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지나쳐 물에 잠겼고 근심이 헤아리지 못한 데서 생겼으니 탓할 수 없다.
대과는 네 양이 지나치게 많고 뿌리와 끝의 음이 약해, 괘 전체가 휘어진 마룻대가 되는 때이다. 정약용은 중부괘와의 교역, 둔괘·대장괘에서의 추이(효가 옮겨 변한 관계를 살펴 괘를 읽는 법), 정괘와 도괘의 상을 교차 검증한다. 흰 띠풀·마른 버드나무·마룻대·도섭의 효상(한 효에서 드러나는 상징)은 ‘지나침’이 지극한 삼감과 구제가 될 수도 있고, 지탱할 수 없는 과도함이 될 수도 있음을 자리와 변괘(효가 음양으로 바뀐 뒤의 괘)에 따라 나누어 보여 준다.
교감·번역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