井 정
아래괘 巽 바람 · 위괘 坎 물
위에서 곤궁해진 것은 반드시 아래로 돌아오므로 정괘로 이었다.
괘사
改邑不改井,无喪无得,往來井井。汔至亦未繘井。羸其瓶,凶。
개읍불개정, 무상무득, 왕래정정. 흘지역미율정. 이기병, 흉.
고을은 바꾸어도 우물은 바꾸지 않는다. 잃는 것도 얻는 것도 없고, 오가는 이들이 모두 그 우물물을 긷는다. 거의 다 이르렀어도 아직 우물물을 길어 올리지 못했다. 두레박을 깨뜨리니 흉하다.
단전
巽乎水而上水,井;井養而不窮也。改邑不改井,乃以剛中也。汔至亦未繘井,未有功也。羸其瓶,是以凶也。
물 아래로 들어가 물을 위로 올리는 것이 정이다. 우물은 길러 주면서도 다하지 않는다. ‘고을은 바꾸어도 우물은 바꾸지 않는다’고 한 것은 굳센 효가 가운데를 얻었기 때문이다. ‘거의 다 이르렀어도 아직 우물물을 길어 올리지 못했다’고 한 것은 아직 공이 없다는 말이다. 두레박을 깨뜨렸으므로 흉하다.
대상전
木上有水,井;君子以勞民勸相。
나무 위에 물이 있는 것이 정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백성을 위로하고 서로 돕도록 권한다.
여섯 효
효사
井泥不食,舊井无禽。
정니불식, 구정무금.
우물이 진흙으로 흐려 마실 수 없고, 묵은 우물에는 새도 오지 않는다.
소상전
井泥不食,下也。舊井无禽,時舍也。
우물이 진흙으로 흐려 마실 수 없는 것은 맨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묵은 우물에 새도 오지 않는 것은 때에 버림받았기 때문이다.
효사
井谷射鮒,瓮敝漏。
정곡사부, 옹폐루.
우물 구멍에서 붕어에게 물을 뿜을 뿐이고, 독은 깨져 샌다.
소상전
井谷射鮒,无與也。
우물 구멍에서 붕어에게 물을 뿜을 뿐인 것은 호응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효사
井渫不食,為我心惻,可用汲,王明,并受其福。
정설불식, 위아심측, 가용급, 왕명, 병수기복.
우물을 깨끗이 쳤는데도 마시지 않아 내 마음이 슬프다. 물을 길어 쓸 수 있으니, 왕이 밝으면 모두 그 복을 받는다.
소상전
井渫不食,行惻也。求王明,受福也。
우물을 깨끗이 쳤는데도 마시지 않으니 길 가는 이도 슬퍼한다. 왕이 밝기를 구하면 복을 받는다.
효사
井甃,无咎。
정추, 무구.
우물 벽을 벽돌로 쌓아 고치니 허물이 없다.
소상전
井甃无咎,修井也。
우물 벽을 쌓아 허물이 없는 것은 우물을 수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효사
井冽,寒泉食。
정렬, 한천식.
우물이 맑으니 차가운 샘물을 마신다.
소상전
寒泉之食,中正也。
차가운 샘물을 마실 수 있는 것은 가운데와 바름을 얻었기 때문이다.
효사
井收勿幕,有孚元吉。
정수물막, 유부원길.
우물물을 길어 올리되 우물을 덮지 말라. 믿음이 있으면 크게 길하다.
소상전
元吉在上,大成也。
맨 위에서 크게 길한 것은 크게 이루었기 때문이다.
네 해석의 갈림길
갈리는 지점정이천은 물이 다 올라와도 실제로 쓰이지 못하면 공이 전혀 없다고 완성의 실질을 강조하지만, 정약용은 두레박의 움직임을 재구성하고 흘·부·설 같은 글자 뜻까지 따져 우물의 작동을 검증한다.
왕필
정은 자리를 바꾸지 않고 아래의 물을 위로 길어 만물을 기르는 우물의 도다. 물의 깨끗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실제로 길어 쓰여야 공이 이루어지며, 완성된 우물은 이로움을 독점하지 않아야 끝없이 사람들이 귀의한다.
정이천
정이천은 우물의 도를 한결같음과 두루 미치는 쓰임으로 설명한다. 고을은 옮겨도 우물은 옮기지 않고, 길어도 마르지 않으며 그대로 두어도 넘치지 않는다. 그러나 물이 거의 올라왔어도 끝내 쓰이지 못하거나 그릇을 깨뜨리면 공이 전혀 없는 것과 같으므로, 사물을 실제로 구제하는 완성이 중요하다.
효는 물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 실제 쓰임이 되는 과정을 보인다. 초육(첫째 자리의 음효)은 진흙으로 버려지고, 구이(둘째 자리의 양효)는 재질이 있어도 도움을 얻지 못해 아래로 새며, 구삼(셋째 자리의 양효)은 깨끗한 재능이 쓰이지 않아 슬퍼한다. 육사는 널리 베풀지는 못해도 자신과 제도를 수리하여 허물을 면하고, 구오는 지극히 좋은 샘이지만 아직 위로 나오지 않아 길하다고 하지 않는다. 상육에 이르러 비로소 길어 쓰고 덮지 않아 널리 베푸는 우물의 공이 완성된다.
주희
주희는 손의 나무가 감의 물 아래로 들어가 물을 위로 올리는 괘상(괘의 효 모양에서 드러나는 상징)으로 정을 풀이한다. 점에서는 기존 상태가 유지되어 득실(얻음과 잃음)이 없으며, 거의 일을 이루고도 마지막에 도구를 깨뜨리지 않도록 공경하고 힘쓰라고 경계한다. 이효와 오효의 굳세고 중도(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알맞은 길)인 성질이 우물의 변하지 않는 덕을 이룬다.
초육부터 상육까지 샘물이 나지 않음, 아래로 샘, 깨끗하지만 쓰이지 않음, 수리, 맑은 샘의 실제 쓰임, 위로 길어 내어 덮지 않음이 단계적으로 나타난다. 각 효의 상은 점치는 이의 덕과 행동 조건이 된다. 상육은 양효가 아니지만 감괘의 열린 입에서 물이 위로 나오며, 끊이지 않는 근원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크게 길하다.
정약용
정약용은 우물을 ‘제자리에 머물면서도 물과 혜택은 옮겨 가는 덕’으로 해석한다. 태괘에서 정괘로 옮아가는 추이(효가 옮겨 변한 관계를 살펴 괘를 읽는 법)와 환괘의 상하가 사귀어 바뀌는 구조를 함께 써서, 손의 용두레와 두레박줄이 물속으로 들어가고 감의 물이 위로 올라오는 실제 우물의 작동을 재현한다. 고을은 옮겨도 샘의 자리는 바뀌지 않으며, 군자(사사로운 이익보다 공적 원칙을 지키는 사람)도 자기 몸을 잃지 않으면서 백성에게 혜택을 나누어야 한다.
여섯 효는 진흙 든 폐정에서 시작하여, 새는 항아리와 흘러나간 붕어, 깨끗이 쳐도 쓰이지 않는 인재, 벽돌을 쌓은 수리, 맑고 찬 샘, 누구나 길어 쓰도록 덮지 않은 우물로 차츰 완성된다. 정약용은 판본과 어휘도 촘촘히 판별하여 흘(汔)을 물의 마름으로, 부(鮒)를 실제 붕어로, 설(渫)을 우물의 더러움을 쳐내는 일로 풀이하며, 상과 점의 쓰임이 다르면 한 가지 해석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결론짓는다.
현대적으로 읽기
정괘(공동 자원을 오래 길어 모두에게 나누는 상황)
정(井)은 좋은 자원과 능력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것을 실제로 전달하는 통로가 끝까지 작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구삼(셋째 자리의 양효)의 ‘우물을 깨끗이 쳤는데도 마시지 않아 내 마음이 슬프다’는 당장 큰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기반과 절차를 정비하는 일이 다음 쓰임을 준비함을 말한다.
상육(맨 위 자리의 음효)의 ‘우물물을 길어 올리되 우물을 덮지 말라’는 자원을 독점하거나 덮어 두지 않고 고갈되지 않는 방식으로 공동의 쓰임에 연결해야 함을 뜻한다. 거의 완성된 프로젝트라도 마지막 인수인계가 무너지면 아직 공이 없는 것과 같다.
왕필(王弼) 《주역주》 — 64괘 주석
이 64괘 주석의 저자는 왕필(王弼)이다. 한강백(韓康伯)은 계사전 등 일부 십익 주석의 저자로, 이 층과 구분한다.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井以不變為徳者也
徳有常也
不渝變也
已來至而未出井也
井道以已出為功也幾至而覆與未汲同也
以剛處中故能定居其所而不變也
井以已成為功
木上有水井之象也上水以養養而不窮者也相猶助也可以勞民勸助莫若養而不窮也
最在井底上又无應沈滯滓穢故曰井泥不食也井泥而不可食則是久井不見渫治者也久井不見渫治禽所不嚮而況人乎一時所共棄舍也井者不變之物居徳之地恒徳至賤物无取也
谿谷出水從上注下水常射焉井之為道以下給上者也而无應于上反下與初故曰井谷射鮒鮒謂初也失井之道水不上出而反下注故曰甕敝漏也夫處上宜下處下宜上井已下矣而復下注其道不交則莫之與也
渫不停汚之謂也處下卦之上履得其位而應于上得井之義也當井之義而不見食脩已全潔而不見用故為我心惻也為猶使也不下注而應上故可用汲也王明則見照明既嘉其行又欽其用故曰王明竝受其福也
行感于誠故曰惻也
得位而无應自守而不能給上可以修井之壞補過而已
洌潔也居中得位體剛不撓不食不義中正髙潔故井洌寒泉然後乃食也
處井上極水已出井井功大成在此爻矣故曰井収也羣下仰之以濟淵泉由之以通者也幕猶覆也不擅其有不私其利則物歸之往无窮矣故曰勿幕有孚元吉也
우물은 변하지 않음을 덕으로 삼는다.
덕에 일정함이 있다.
변하지 않는다.
이미 와서 이르렀으나 아직 우물에서 나오지 못했다.
우물의 도는 물을 이미 길어 내는 것을 공으로 삼는다. 거의 이르러 엎질러지면 아직 긷지 않은 것과 같다.
굳센 양으로 가운데에 있으므로 그 자리에 안정하여 변하지 않을 수 있다.
우물은 이미 이루어진 것을 공으로 삼는다.
나무 위에 물이 있으니 우물의 상이다. 물을 위로 올려 길러 주되 다하지 않는다. 상(相)은 돕는다는 뜻이다. 백성을 수고롭게 하며 돕도록 권하는 데 기르기를 다하지 않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우물의 가장 밑에 있고 위로 호응도 없어 가라앉아 막히고 찌꺼기로 더럽다. 그러므로 우물에 진흙이 있어 먹지 못한다. 진흙이 있어 먹지 못한다면 오랫동안 쳐내어 다스리지 않은 우물이다. 오래도록 쳐내지 않은 우물에는 새도 향하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한때 모두가 버리는 것이다. 우물은 변하지 않는 물건이며 덕에 머무는 곳이다. 한결같은 덕이 지극히 천하면 아무도 취하지 않는다.
계곡의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 늘 쏟아진다. 우물의 도는 아래에서 위로 공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위에 호응하지 않고 도리어 아래의 초육과 함께하므로 우물 골짜기에서 붕어에게 물을 쏜다고 한다. 붕어는 초육을 말한다. 도에 어긋나 물이 위로 나오지 않고 도리어 아래로 쏟아지므로 항아리가 깨져 샌다고 한다. 위에 있으면 아래로 내려 주고 아래에 있으면 위로 올라가야 한다. 우물은 이미 낮은데 다시 아래로 쏟으니 그 도가 서로 통하지 않아 함께하는 이가 없다.
설(渫)은 더러움이 머물지 않게 하는 것이다. 아래 괘의 위에 있고 제자리를 밟으며 위와 호응하여 우물의 뜻을 얻었다. 우물의 뜻에 맞는데도 먹히지 않으니 자신을 닦아 온전히 깨끗하지만 쓰이지 못해 내 마음을 슬프게 한다. 위는 ‘하게 한다’는 뜻이다. 아래로 쏟지 않고 위에 호응하므로 길어 쓸 수 있다. 왕이 밝으면 비추어 알아보며, 밝은 왕이 이미 그 행실을 아름답게 여기고 또 그 쓰임을 공경하므로 왕과 더불어 그 복을 받는다.
행실이 정성에 감응하므로 슬프다고 한다.
자리를 얻었지만 호응이 없어 스스로 지킬 뿐 위로 공급하지 못한다. 무너진 우물을 수리하고 허물을 보충할 수 있을 뿐이다.
열(冽)은 깨끗하다는 뜻이다. 가운데에 있고 자리를 얻었으며 몸이 굳세어 꺾이지 않고 의롭지 않은 것을 먹지 않는다. 중정하고 높고 깨끗하므로 우물이 맑고 찬 샘물이 된 뒤에야 먹는다.
우물의 맨 위 끝에 있어 물이 이미 우물 밖으로 나왔다. 우물의 공이 크게 이루어짐이 이 효에 있으므로 우물이 거두어졌다고 한다. 아래의 무리가 우러러 의지해 구제되고 깊은 샘이 이로 말미암아 통한다. 막(幕)은 덮는다는 뜻이다. 그 소유를 독점하지 않고 그 이로움을 사사로이 하지 않으면 사물이 귀의하여 나아감이 끝이 없다. 그러므로 덮지 말며 믿음이 있으면 크게 길하다고 한다.
정은 자리를 바꾸지 않고 아래의 물을 위로 길어 만물을 기르는 우물의 도다. 물의 깨끗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실제로 길어 쓰여야 공이 이루어지며, 완성된 우물은 이로움을 독점하지 않아야 끝없이 사람들이 귀의한다.
교감·번역 주
정이천 《이천역전》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巽下坎上〉
井序卦困乎上者必反下故受之以井承上升而不已必困為言謂上升不已而困則必反於下也物之在下者莫如井井所以次困也為卦坎上巽下坎水也巽之象則木也巽之義則入也木器之象木入於水下而上乎水汲井之象也
井改邑不改井无䘮无得往來井井
井之為物常而不可改也邑可改而之他井不可遷也故曰改邑不改井汲之而不竭存之而不盈无䘮无得也至者皆得其用往來井井也无䘮无得其徳也常往來井井其用也周常也周也井之道也
汔至亦未繘井羸其瓶凶
汔幾也繘綆也井以濟用為功幾至而未及用亦與未下繘於井同也君子之道貴乎有成所以五榖不熟不如荑稗掘井九仞而不及泉猶為棄井有濟物之用而未及物猶无有也羸敗其瓶而失之其用䘮矣是以凶也羸毁敗也
彖曰巽乎水而上水井井養而不窮也
改邑不改井乃以剛中也
巽入於水下而上其水者井也井之養於物不有窮已取之而不竭徳有常也邑可改井不可遷亦其徳之常也二五之爻剛中之徳其常乃如是卦之才與義合也
汔至亦未繘井未有功也羸其瓶是以凶也
雖使幾至既未為用亦與未繘井同井以濟用為功水出乃為用未出則何功也瓶所以上水而致用也羸敗其瓶則不為用矣是以凶也
象曰木上有水井君子以勞民勸相
木承水而上之乃器汲水而出井之象君子觀井之象法井之徳以勞徠其民而勸勉以相助之道也勞徠其民法井之用也勸民使相助法井之施也
初六井泥不食舊井无禽
井與鼎皆物也就物以為義六以隂柔居下上无應援无上水之象不能濟物乃井之不可食也井之不可食以泥汙也在井之下有泥之象井之用以其水之養人也无水則舍置不用矣井水之上人獲其用禽鳥亦就而求焉舊廢之井人既不食水不復上則禽鳥亦不復往矣蓋无以濟物也井本濟人之物六以隂居下无上水之象故為不食井之不食以泥也猶人當濟物之時而才弱无援不能及物為時所舍也
象曰井泥不食下也舊井无禽時舍也
以隂而居井之下泥之象也无水而泥人所不食也人不食則水不上无以及禽鳥禽鳥亦不至矣見其不能濟物為時所舍置不用也若能及禽鳥是亦有所濟也舍上聲與乾之時舍音不同
九二井谷射鮒甕敝漏
二雖剛陽之才而居下上无應而比於初不上而下之象也井之道上行者也澗谷之水則旁出而就下二居井而就下失井之道乃井而如谷也井上出則養人而濟物今乃下就汚泥注於鮒而已鮒或以為蝦或以為蟇井泥中微物耳射注也如谷之下流注於鮒也甕敝漏如甕之破漏也陽剛之才本可以養人濟物而上无應援故不能上而就下是以无濟用之功如水之在甕本可為用乃破敝而漏之不為用也井之初二无功而不言悔咎何也曰失則有悔過則為咎无應援而不能成用非悔咎也居二比初豈非過乎曰處中非過也不能上由无援非以比初也
象曰井谷射鮒无與也
井以上出為功二陽剛之才本可濟用以在下而上无應援是以下比而射鮒若上有與之者則當汲引而上成井之功矣
九三井渫不食為我心惻可用汲王明並受其福三以陽剛居得其正是有濟用之才者也在井下之上水之清潔可食者也井以上為用居下未得其用也陽之性上又志應上六處剛而過中汲汲於上進乃有才用而切於施為未得其用則如井之渫治清潔而不見食為心之惻怛也三居井之時剛而不中故切於施為異乎用之則行舍之則藏者也然明王用人豈求備也故王明則受福矣三之才足以濟用如井之清潔可用汲而食也若上有明王則當用之而得其效賢才見用則已得行其道君得享其功下得被其澤上下並受其福也
象曰井渫不食行惻也求王明受福也
井渫治而不見食乃人有才知而不見用以不得行為憂惻也既以不得行為惻則豈免有求也故求王明而受福志切於行也
六四井甃无咎
四雖隂柔而處正上承九五之君才不足以廣施利物亦可自守者也故能修治則得无咎甃砌累也謂修治也四雖才弱不能廣濟物之功修治其事不至於廢可也若不能修治廢其養人之功則失井之道其咎大矣居髙位而得剛陽中正之君但能處正承上不廢其事亦可以免咎也
象曰井甃无咎修井也
甃者修治於井也雖不能大其濟物之功亦能修治不廢也故无咎僅能免咎而已若在剛陽自不至如是如是則可咎矣
九五井洌寒泉食
五以陽剛中正居尊位其才其徳盡善盡美井洌寒泉食也洌謂甘潔也井泉以寒為美甘潔之寒泉可為人食也於井道為至善也然而不言吉者井以上出為成功未至於上未及用也故至上而後言元吉
象曰寒泉之食中正也
寒泉而可食井道之至善者也九五中正之徳為至善之義
上六井收勿幕有孚元吉
井以上出為用居井之上井道之成也收汲取也幕蔽覆也取而不蔽其利无窮井之施廣矣大矣有孚有常而不變也博施而有常大善之吉也夫體井之用博施而有常非大人孰能他卦之終為極為變唯井與鼎終乃為成功是以吉也
象曰元吉在上大成也
以大善之吉在卦之上井道之大成也井以上為成功
【정이천】
䷯ 〈아래는 손괘(巽), 위는 감괘(坎)다〉
정괘(井卦). 『서괘전』에서 “위에서 곤궁한 것은 반드시 아래로 돌아가므로 정괘로 받았다”고 했다. 앞에서 올라가기를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곤궁해진다고 한 말을 이어, 위로 오르기를 그치지 않다가 곤궁해지면 반드시 아래로 돌아감을 말한다. 사물 가운데 우물보다 더 아래에 있는 것이 없으므로 정괘가 곤괘 다음에 놓였다. 괘는 위가 감이고 아래가 손이다. 감은 물이고 손의 형상은 나무이며 손의 뜻은 들어감이다. 나무 그릇이 물 아래로 들어가 물을 위로 올리니 우물에서 물을 긷는 형상이다.
「우물은 고을을 바꾸어도 바뀌지 않는다. 잃는 것도 얻는 것도 없고, 가는 이와 오는 이가 모두 우물을 우물로 쓴다.」
우물이라는 물건은 한결같아 바꿀 수 없다. 고을은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지만 우물은 옮길 수 없으므로 고을은 바꾸어도 우물은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길어도 마르지 않고 그대로 두어도 차 넘치지 않으니 잃음도 얻음도 없다. 오는 이가 모두 그 쓰임을 얻으니 가는 이와 오는 이가 모두 우물을 우물로 쓴다. 잃음도 얻음도 없다는 것은 그 덕이 한결같다는 뜻이고, 가는 이와 오는 이가 우물을 우물로 쓴다는 것은 그 쓰임이 두루 미친다는 뜻이다. 한결같음과 두루 미침이 우물의 도다.
「거의 이르렀어도 아직 두레박줄을 우물에서 다 끌어올리지 못했는데 물병을 깨뜨리면 흉하다.」
흘(汔)은 거의라는 뜻이고 율(繘)은 두레박줄이다. 우물은 쓰임을 구제해야 공이 있다. 거의 이르렀어도 아직 쓰임에 미치지 못하면 두레박줄을 아직 우물에 내리지 않은 것과 같다. 군자의 도는 성취를 귀하게 여긴다. 그래서 오곡이 익지 않으면 피나 돌피만 못하고, 우물을 아홉 길 파고도 샘에 이르지 못하면 버린 우물과 같다. 사물을 구제할 쓰임이 있어도 사물에 미치지 못하면 없는 것과 같다. 물병을 깨뜨려 잃으면 쓰임도 사라지므로 흉하다. 이(羸)는 훼손하고 깨뜨린다는 뜻이다.
「단전에서 말하였다. ‘나무가 물 아래로 들어가 물을 위로 올리는 것이 정이다. 우물은 길러 주면서도 다하지 않는다.’」
「고을은 바꾸어도 우물은 바뀌지 않는 것은 굳세고 중도이기 때문이다.」
나무가 물 아래로 들어가 물을 위로 올리는 것이 우물이다. 우물이 사물을 길러 줌은 다함이 없어서 길어도 마르지 않으니 덕이 한결같다. 고을은 바꾸어도 우물을 옮길 수 없음 역시 그 덕이 한결같기 때문이다. 이효와 오효에는 굳세고 중도인 덕이 있어 그 한결같음이 이와 같다. 괘의 재질과 뜻이 합한다.
「거의 이르렀어도 아직 두레박줄을 우물에서 다 끌어올리지 못하면 아직 공이 없는 것이며, 물병을 깨뜨리므로 흉하다.」
비록 거의 이르렀어도 아직 쓰지 못하면 두레박줄을 우물에서 끌어올리지 않은 것과 같다. 우물은 쓰임을 구제함을 공으로 삼아 물이 나와야 쓰인다. 나오지 않았는데 무슨 공이 있겠는가. 물병은 물을 올려 쓰임에 이르게 하는 도구다. 물병을 깨뜨리면 쓰이지 못하므로 흉하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나무 위에 물이 있는 것이 정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백성을 위로하고 서로 돕도록 권한다.’」
나무가 물을 받들어 올리니 그릇으로 물을 길어 우물에서 꺼내는 형상이다. 군자는 우물의 형상을 보고 우물의 덕을 본받아 백성을 위로해 오게 하고 서로 돕는 도를 권면한다. 백성을 위로해 오게 하는 것은 우물의 쓰임을 본받고, 서로 돕게 권하는 것은 우물의 베풂을 본받은 것이다.
「초육은 우물이 진흙투성이여서 먹지 않는다. 묵은 우물에는 새도 오지 않는다.」
정괘와 정괘(鼎卦)는 모두 물건이므로 물건 자체에 나아가 뜻을 취한다. 육은 음유로 아래에 있고 위로 호응해 돕는 이가 없어 물을 위로 올리는 형상이 없다. 사물을 구제하지 못하므로 먹을 수 없는 우물이다. 우물을 먹을 수 없는 것은 진흙이 더럽히기 때문이다. 우물 아래에 있어 진흙의 형상이 있다. 우물은 그 물로 사람을 기르는 데 쓰인다. 물이 없으면 버려 두고 쓰지 않는다. 우물물이 위로 오르면 사람이 쓰고 새도 와서 구하지만, 오래 버려진 우물은 사람이 먹지 않고 물도 다시 올라오지 않아 새도 오지 않는다. 사물을 구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물은 본래 사람을 구제하는 물건인데 육은 음으로 아래에 있어 물을 올리는 형상이 없으므로 먹지 않는다. 사람이 사물을 구제할 때 재질이 약하고 도움도 없어 사물에 미치지 못해 시대에 버림받는 것과 같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우물이 진흙투성이여서 먹지 않는 것은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묵은 우물에 새도 오지 않는 것은 때에 버림받았기 때문이다.’」
음으로 우물 아래에 있어 진흙의 형상이다. 물은 없고 진흙만 있으니 사람이 먹지 않는다. 사람이 먹지 않으면 물이 올라오지 않아 새에게까지 미칠 수 없고 새도 오지 않는다. 사물을 구제하지 못해 시대에 버려져 쓰이지 않음을 보여 준다. 사(舍)는 상성이며 건괘의 ‘때에 따라 머문다’에서의 사와 음이 다르다.
「구이는 우물 골짜기에서 붕어에게 물을 쏘고, 항아리가 깨져 샌다.」
이는 강양의 재질이지만 아래에 있고 위로 호응이 없으며 초와 가까워 위로 가지 않고 아래로 향하는 형상이다. 우물의 도는 위로 가는 것이지만 골짜기의 물은 곁으로 흘러 아래로 나아간다. 이는 우물에 있으면서 아래로 향하여 우물의 도를 잃었으므로 우물이면서 골짜기와 같다. 우물물이 위로 나오면 사람을 기르고 사물을 구제하지만 지금은 아래 진흙으로 흘러 붕어에게만 댄다. 부(鮒)는 새우라 하기도 하고 두꺼비라 하기도 하는데 우물 진흙 속의 작은 생물일 뿐이다. 사(射)는 물을 댄다는 뜻이다. 골짜기 물이 아래로 흘러 붕어에게 대는 것과 같다. 항아리가 깨져 샌다는 것은 물을 담아 본래 쓸 수 있어도 그릇이 깨져 새어 쓸 수 없는 것과 같다. 양강의 재질은 본래 사람을 기르고 사물을 구제할 수 있지만 위로 호응이 없어 올라가지 못하고 아래로 향하므로 구제하는 공이 없다. 초와 이에 공이 없으면서도 후회나 허물을 말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가. 잘못하면 후회가 있고 지나치면 허물이 있으나, 호응과 도움이 없어 쓰임을 이루지 못한 것은 후회나 허물이 아니다. 이가 초와 가까운 것이 어찌 잘못이 아닌가. 중도에 처했으므로 지나침이 아니다. 올라가지 못한 것은 도움이 없기 때문이지 초와 가까이했기 때문이 아니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우물 골짜기에서 붕어에게 물을 쏘는 것은 함께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우물은 위로 나와야 공이 있다. 이는 양강의 재질로 본래 구제해 쓰일 수 있지만 아래에 있고 위로 호응해 돕는 이가 없으므로 아래와 가까이하여 붕어에게 물을 댄다. 위에 함께하는 이가 있다면 끌어 올려 우물의 공을 이룬다.
「구삼은 우물을 깨끗이 쳤으나 먹지 않아 내 마음을 슬프게 한다. 길어 쓸 수 있으니 왕이 밝으면 베푸는 이와 받는 이가 함께 복을 받는다.」
삼은 양강으로 바른 자리에 있어 구제할 재질이 있다. 우물 하체의 위라 물이 깨끗하여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우물은 위로 나와야 쓰이는데 아래에 있어 아직 쓰이지 못한다. 양은 위로 향하는 성질이고 뜻은 상육과 호응하며, 굳센 자리에 있어 중도를 지나 위로 나아가기를 서두른다. 재주와 쓰임이 있어 베풀기를 절실히 바라지만 쓰이지 못하니, 깨끗이 친 우물을 먹지 않아 마음이 슬픈 것과 같다. 삼은 우물의 때에 굳세지만 중도를 얻지 못해 베풀기를 절실히 바란다. 써 주면 행하고 버리면 숨는 자와 다르다. 그러나 밝은 왕이 사람을 쓸 때 어찌 완전함만 요구하겠는가. 왕이 밝으면 복을 받는다. 삼의 재질은 깨끗한 우물처럼 길어 먹을 수 있어 구제에 충분하다. 위에 밝은 왕이 있으면 써서 효과를 얻는다. 현명한 인재가 쓰이면 자신은 도를 행하고 임금은 공을 누리며 아래는 은택을 입으니 위아래가 함께 복을 받는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우물을 깨끗이 쳤으나 먹지 않아 길 가는 이도 슬퍼한다. 밝은 왕을 구하면 복을 받는다.’」
우물을 깨끗이 쳐도 먹지 않는 것은 사람이 재능과 지혜가 있는데도 쓰이지 않아 행하지 못함을 슬퍼하는 것이다. 행하지 못함을 슬퍼하면 어찌 구하는 마음을 면하겠는가. 그러므로 밝은 왕을 구하여 복을 받는다고 했으니 뜻이 행함에 절실하다.
「육사는 우물을 벽돌로 쌓아 수리하니 허물이 없다.」
사는 음유하지만 바른 자리에 있고 위로 구오 임금을 받든다. 재질이 널리 베풀어 사물을 이롭게 하기에는 부족해도 자신을 지킬 수 있으므로 수리하면 허물이 없다. 추(甃)는 벽돌을 쌓아 수리한다는 뜻이다. 사는 재질이 약해 사물을 널리 구제하는 공은 이루지 못하지만 그 일을 수리하여 폐하지 않으면 된다. 수리하지 않아 사람을 기르는 공을 폐하면 우물의 도를 잃어 허물이 크다. 높은 자리에 있고 강양·중정한 임금을 만났으니 바르게 처하여 위를 받들고 일을 폐하지 않으면 허물을 면한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우물을 벽돌로 쌓아 허물이 없는 것은 우물을 수리하기 때문이다.’」
벽돌로 쌓는 것은 우물을 수리하는 것이다. 사물을 구제하는 공을 크게 이루지는 못해도 수리하여 폐하지 않으므로 허물이 없다. 겨우 허물을 면할 뿐이다. 강양이라면 본래 이 정도에 그치지 않을 것이니, 이 정도밖에 못 하면 허물이 될 수 있다.
「구오는 우물물이 맑고 찬 샘물을 먹는다.」
오는 양강하고 중정하며 존위에 있어 재질과 덕이 지극히 선하고 아름답다. 우물물이 맑고 찬 샘을 먹는 것이다. 열(洌)은 달고 깨끗하다는 뜻이다. 우물물은 찬 것을 아름답게 여기니 달고 깨끗한 찬 샘물을 사람이 먹을 수 있다. 우물의 도로 지극히 선하다. 그런데도 길하다고 하지 않은 것은 우물은 위로 나와야 성공하는데 아직 상효에 이르지 않아 쓰임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효에 이른 뒤 크게 길하다고 했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찬 샘물을 먹는 것은 중정하기 때문이다.’」
찬 샘물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우물의 도에서 지극히 선하다. 구오의 중정한 덕이 지극히 선하다는 뜻이다.
「상육은 우물을 길어 쓰되 덮지 않는다. 믿음이 있어 크게 길하다.」
우물은 위로 나와야 쓰인다. 우물 위에 있으니 우물의 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수(收)는 길어 취함이고 막(幕)은 가려 덮음이다. 길어 쓰면서 덮지 않으면 이로움이 다하지 않으니 우물의 베풂이 넓고 크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한결같아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널리 베풀면서 한결같으니 크게 선하여 길하다. 우물의 쓰임을 체득해 널리 베풀면서 한결같은 이는 대인이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는가. 다른 괘의 끝은 극함과 변함이 되지만 오직 정괘와 정괘(鼎卦)는 끝에 이르러야 성공하므로 길하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크게 길함이 위에 있다는 것은 크게 이루었기 때문이다.’」
크게 선한 길함이 괘의 위에 있으니 우물의 도가 크게 이루어진 것이다. 우물은 위로 나와야 성공한다.
정이천은 우물의 도를 한결같음과 두루 미치는 쓰임으로 설명한다. 고을은 옮겨도 우물은 옮기지 않고, 길어도 마르지 않으며 그대로 두어도 넘치지 않는다. 그러나 물이 거의 올라왔어도 끝내 쓰이지 못하거나 그릇을 깨뜨리면 공이 전혀 없는 것과 같으므로, 사물을 실제로 구제하는 완성이 중요하다.
효는 물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 실제 쓰임이 되는 과정을 보인다. 초육(첫째 자리의 음효)은 진흙으로 버려지고, 구이(둘째 자리의 양효)는 재질이 있어도 도움을 얻지 못해 아래로 새며, 구삼(셋째 자리의 양효)은 깨끗한 재능이 쓰이지 않아 슬퍼한다. 육사는 널리 베풀지는 못해도 자신과 제도를 수리하여 허물을 면하고, 구오는 지극히 좋은 샘이지만 아직 위로 나오지 않아 길하다고 하지 않는다. 상육에 이르러 비로소 길어 쓰고 덮지 않아 널리 베푸는 우물의 공이 완성된다.
주희 《주역본의》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巽下坎上〉
井改邑不改井无喪无得往來井井汔至亦未繘井羸其甁凶〈喪息浪反汔許訖反繘音橘羸律裴反○井者穴地出水之處以巽木入乎坎水之下而上出其水故為井改邑不改井故无喪无得而往者來者皆井其井也汔幾也繘綆也羸敗也汲井幾至未盡綆而敗其瓶則凶也其占為事仍舊无得喪而又當敬勉不可幾成而敗也〉○彖曰巽乎水而上水井井養而不窮也〈上時掌反○以卦象釋卦名義〉改邑不改井乃以剛中也汔至亦未繘井未有功也羸其甁是以凶也〈以卦體釋卦辭无喪无得往来井井兩句意與不改井同故不復出剛中以二五而言未有功而敗其甁所以凶也〉○象曰木上有水井君子以勞民勸相〈上如字又時掌反勞力報反相息亮反○木上有水津潤上行井之象也勞民者以君養民勸相者使民相養皆取井養之意〉○初六井泥不食舊井无禽〈泥乃計反○井以陽剛為泉上出為功初六以隂居下故為此象蓋井不泉而泥則人所不食而禽鳥亦莫之顧也〉象曰井泥不食下也舊井无禽時舍也〈舍音捨○言為時所棄〉○九二井谷射鮒甕敝漏〈谷余六反音育射石亦反鮒音附○九二剛中有泉之象然上无正應下比初六功不上行故其象如此〉象曰井谷射鮒无與也○九三井渫不食為我心惻可用汲王明並受其福〈渫息列反○渫不停汚也井渫不食而使人心惻可用汲矣王明則汲井以及物而施者受者並受其福也九三以陽居陽在下之上而未為時用故其象占如此〉象曰井渫不食行惻也求王明受福也〈行惻者行道之人皆以為惻也〉○六四井甃无咎〈甃側救反○以六居四雖得其正然陰柔不泉則但能脩治而无及物之功故其象為井甃而占則无咎占者能自脩治則雖无及物之功而亦可以无咎矣〉象曰井甃无咎脩井也○九五井洌寒泉食〈洌音列○洌潔也陽剛中正功及於物故為此象占者有其徳則契其象也〉象曰寒泉之食中正也○上六井收勿幕有孚元吉〈收詩救反又如字幕音莫○收汲取也晁氏云收鹿盧收繘者也亦通幕蔽覆也有孚謂其出有源而不窮也井以上出為功而坎口不揜故上六雖非陽剛而其象如此然占者應之必有孚乃元吉也〉象曰元吉在上大成也
【주희】
䷯ 〈아래는 손괘(巽), 위는 감괘(坎)다〉
「우물은 고을을 바꾸어도 바뀌지 않는다. 잃는 것도 얻는 것도 없고, 가는 이와 오는 이가 모두 우물을 우물로 쓴다. 거의 이르렀어도 아직 두레박줄을 우물에서 다 끌어올리지 못했는데 물병을 깨뜨리면 흉하다.」 〈상(喪)은 식랑반(息浪反), 흘(汔)은 허흘반(許訖反), 율(繘)은 음이 귤(橘), 이(羸)는 율배반(律裴反)이다. ○ 우물은 땅을 파 물을 내는 곳이다. 손괘의 나무가 감괘의 물 아래로 들어가 물을 위로 내므로 정괘가 된다. 고을은 바꾸어도 우물은 바뀌지 않으므로 잃음도 얻음도 없고 가는 이와 오는 이가 모두 그 우물을 우물로 쓴다. 흘은 거의이고 율은 두레박줄이며 이는 깨뜨림이다. 물을 긷다가 거의 이르렀어도 아직 줄을 다 끌어올리지 못한 채 병을 깨뜨리면 흉하다. 그 점은 일이 예전 그대로여서 얻거나 잃음이 없다는 것이며, 또 마땅히 공경하고 힘써 거의 이루고서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 ○ 「단전에서 말하였다. ‘나무가 물 아래로 들어가 물을 위로 올리는 것이 정이다. 우물은 길러 주면서도 다하지 않는다.’」 〈상(上)은 시장반(時掌反)이다. ○ 괘의 형상으로 괘 이름의 뜻을 풀이했다.〉 「고을은 바꾸어도 우물은 바뀌지 않는 것은 굳세고 중도이기 때문이다. 거의 이르렀어도 아직 두레박줄을 우물에서 다 끌어올리지 못하면 아직 공이 없는 것이며, 물병을 깨뜨리므로 흉하다.」 〈괘의 몸체로 괘사를 풀이했다. ‘잃음도 얻음도 없고 가는 이와 오는 이가 모두 우물을 우물로 쓴다’는 두 구절은 뜻이 ‘우물이 바뀌지 않는다’와 같으므로 다시 들지 않았다. 굳세고 중도라는 것은 이효와 오효를 말한다. 아직 공이 없는데 물병까지 깨뜨리므로 흉하다.〉 ○ 「상전에서 말하였다. ‘나무 위에 물이 있는 것이 정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백성을 위로하고 서로 돕도록 권한다.’」 〈상(上)은 본음으로 읽기도 하고 시장반으로 읽기도 하며, 노(勞)는 역보반(力報反), 상(相)은 식량반(息亮反)이다. ○ 나무 위에 물이 있어 진액이 젖어 위로 가니 우물의 형상이다. 백성을 위로함은 임금이 백성을 기르는 것이고 서로 돕게 권함은 백성이 서로 기르게 하는 것이니, 모두 우물이 기른다는 뜻을 취했다.〉 ○ 「초육은 우물이 진흙투성이여서 먹지 않는다. 묵은 우물에는 새도 오지 않는다.」 〈니(泥)는 내계반(乃計反)이다. ○ 우물은 강양을 샘으로 삼고 위로 나오는 것을 공으로 삼는다. 초육은 음으로 아래에 있으므로 이 형상이 있다. 우물에서 샘물이 나지 않고 진흙만 있으면 사람이 먹지 않고 새도 돌아보지 않는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우물이 진흙투성이여서 먹지 않는 것은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묵은 우물에 새도 오지 않는 것은 때에 버림받았기 때문이다.’」 〈사(舍)의 음은 사(捨)다. ○ 때에 버림받았다는 말이다.〉 ○ 「구이는 우물 골짜기에서 붕어에게 물을 쏘고, 항아리가 깨져 샌다.」 〈곡(谷)은 여육반(余六反)으로 음은 육(育)이고, 사(射)는 석역반(石亦反), 부(鮒)의 음은 부(附)다. ○ 구이는 굳세고 중도여서 샘의 형상이 있다. 그러나 위로 정응이 없고 아래로 초육과 가까워 공이 위로 가지 않으므로 그 형상이 이와 같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우물 골짜기에서 붕어에게 물을 쏘는 것은 함께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 「구삼은 우물을 깨끗이 쳤으나 먹지 않아 내 마음을 슬프게 한다. 길어 쓸 수 있으니 왕이 밝으면 베푸는 이와 받는 이가 함께 복을 받는다.」 〈설(渫)은 식렬반(息列反)이다. ○ 설은 더러운 것을 머물게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물을 깨끗이 쳤는데도 먹지 않아서 사람 마음을 슬프게 하지만 길어 쓸 수 있다. 왕이 밝으면 우물을 길어 사물에 미치므로 베푸는 이와 받는 이가 함께 복을 받는다. 구삼은 양으로 양의 자리에 있고 하체의 위에 있으나 아직 때에 쓰이지 못하므로 그 형상과 점이 이와 같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우물을 깨끗이 쳤으나 먹지 않아 길 가는 이도 슬퍼한다. 밝은 왕을 구하면 복을 받는다.’」 〈행척(行惻)은 길 가는 사람이 모두 슬퍼한다는 뜻이다.〉 ○ 「육사는 우물을 벽돌로 쌓아 수리하니 허물이 없다.」 〈추(甃)는 측구반(側救反)이다. ○ 육으로 사의 자리에 있어 비록 바름을 얻었으나 음유하여 샘물이 나지 않으므로 다만 수리할 뿐 사물에 미치는 공은 없다. 그러므로 형상은 우물을 벽돌로 쌓는 것이고 점은 허물이 없는 것이다. 점치는 이가 자신을 수리하면 비록 사물에 미치는 공이 없어도 허물이 없을 수 있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우물을 벽돌로 쌓아 허물이 없는 것은 우물을 수리하기 때문이다.’」 ○ 「구오는 우물물이 맑고 찬 샘물을 먹는다.」 〈열(洌)의 음은 열(列)이다. ○ 열은 깨끗함이다. 양강하고 중정하여 공이 사물에 미치므로 이 형상이 있다. 점치는 이가 그 덕을 지니면 이 형상에 부합한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찬 샘물을 먹는 것은 중정하기 때문이다.’」 ○ 「상육은 우물을 길어 쓰되 덮지 않는다. 믿음이 있어 크게 길하다.」 〈수(收)는 시구반(詩救反)이고, 또 글자 그대로 읽는다. 막(幕)의 음은 막(莫)이다. ○ 수는 길어 취함이다. 조씨는 수가 녹로에서 두레박줄을 거두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또한 통한다. 막은 가려 덮는 것이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물이 나오는 데 근원이 있어 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물은 위로 나와야 공이 있고 감괘의 입은 가려지지 않았으므로 상육이 양강은 아니어도 형상이 이와 같다. 그러나 점치는 이가 이에 응하려면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크게 길하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크게 길함이 위에 있다는 것은 크게 이루었기 때문이다.’」.
주희는 손의 나무가 감의 물 아래로 들어가 물을 위로 올리는 괘상(괘의 효 모양에서 드러나는 상징)으로 정을 풀이한다. 점에서는 기존 상태가 유지되어 득실(얻음과 잃음)이 없으며, 거의 일을 이루고도 마지막에 도구를 깨뜨리지 않도록 공경하고 힘쓰라고 경계한다. 이효와 오효의 굳세고 중도(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알맞은 길)인 성질이 우물의 변하지 않는 덕을 이룬다.
초육부터 상육까지 샘물이 나지 않음, 아래로 샘, 깨끗하지만 쓰이지 않음, 수리, 맑은 샘의 실제 쓰임, 위로 길어 내어 덮지 않음이 단계적으로 나타난다. 각 효의 상은 점치는 이의 덕과 행동 조건이 된다. 상육은 양효가 아니지만 감괘의 열린 입에서 물이 위로 나오며, 끊이지 않는 근원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크게 길하다.
정약용(丁若鏞) 《주역사전》
주석 원문과 전체 번역
大傳曰井。德之地也。〈巽伏爲坎。德之基。〉井居其所而遷。〈於坎位成坎〉井以辨義。〈兩互爲睽兌義而离辨〉〇程子曰巽入也。木器入於水下。汲井之象也。〇鏞案卦自泰來。坤邑之內。乾人聚居。〈地天卦〉不可以無井也。移之爲井。則於坎之位。〈四五六〉仍爲坎泉。〈五今剛〉不失其居。〈坎爲居〉而水則有遷。〈五之一〉玆所謂井居其所而遷也。井之爲德。不改其居。〈附地不可動〉而膏澤四散。〈人汲之而去〉君子居敬以徙義。不失其身。而民被其澤。有取於是也。又井者渙之交也。〈風水易〉渙之時。坎泉在下。巽繘在上。〈風在上〉交之爲井。則桔槹之繘。〈下巽木〉入於水底。而坎水上出。〈上今坎〉井之象也。然且上坎之水。不過是汲出者也。大坎在下。〈初四夾〉是井泉也。〈初六之詞。以大坎爲井。〉
{〔卦象:䷯〕}井。改邑不改井。無喪無得。往來井井。汔至。亦未繘井。羸其甁。凶。
此井之不變者也。卦自泰來。泰之坤邑。有徙有改。〈五之一〉是改邑也。〈改坤而爲坎〉於坎之位。〈四五六〉今仍爲坎。今之井泉。〈坎爲水〉猶昔之井泉。〈泰之時位坎〉不改井也。古人立邑。必相水泉。〈如公劉觀其流泉〉或水泉不利。則改邑以就井。此又改邑不改井之實理也。〇井以渙交。〈風水易〉〔卦象:䷺〕渙之坎水。雖則有遷。〈下遷上〉巽木之來。〈上遷下〉又鑿一泉。〈下大坎〉無喪無得也。〈若自泰來。則下喪上得。〉其往其來。〈交易之〉皆得有井。〈下大坎〉往來井井也。〈兩坎故疊文〉井之爲德。取之不竭。濡之不溢。無喪無得。所以贊其美也。〇汔者水涸也。〈說文云〉井之兩互。其卦睽也。〔卦象:䷥〕兌渟之上。离火乾燥。〈潤下而炎上〉井泉之汔至也。〈涸之極〉睽自中孚來。〈四之五〉中孚之時。巽繘在上。〈巽爲繩〉以級兌泉。〈渟水也〉今巽旣絶。〈睽上离〉亦未繘井也。睽自大壯來。〈上之三〉大壯之時。兌甁甚大。〈義見下〉渟水將盈。〈大兌澤〉今甁旣小。〈睽下兌〉羸其甁也。〈羸者形小也〉易例多陽爲羸。〈乾爲瘠〉井有三陰。睽乃四陽。所以羸也。兩互之占。不其凶乎。〇案諸家直訓甁爲缶。非也。〈器不同〉甁之爲物。下大上小。有口如兌。〈古箴云守口如甁〉兌者甁也。〈兌下大上小〉蘇子瞻訓汔爲燥。亦有所本矣。〈离爲燥〉〇虞翻曰卦自泰來。乾折坤五故改邑。初爲舊井故不改井。〈此不知爻變〉荀爽曰陰來居初爲無喪。失中爲無得。又云陽往居五爲井。陰來在下亦爲井。〈其說皆疏矣〉蜀才本羸作累。〈羸螺通。羸騾通。古字本相通。〉
彖曰巽乎水而上水井。〈句〉井。養而不窮也。改邑不改井。乃以剛中也。汔至亦未繘井。未有功也。羸其甁。是以凶也。
巽乎水而上水者。明卦與渙交也。渙之時。巽木在上。坎水在下。〔卦象:䷺〕交之爲井。則巽入水底。〈巽爲入〉而坎水升上矣。鄭玄曰巽木桔槹也。〈莊子漢陰丈人以桔槹汲水〉桔槹入水。激之使上。〈令水升〉然巽亦爲繩。〈說卦文〉入乎水者繘也。〇泰之時。坤德無疆。萬物致養。〈說卦文〉移之爲井。〈一之五〉又以坎通。養而不窮也。源泉混混。用之不竭。井之德也。〇剛中者。坎也。坎泉之故。改此坤邑。〈坤爲坎〉以剛中也。〇未有功者。未有坎也。〈坎爲功〉睽以离燥。〈睽上离〉未有坎泉。〈上無坎〉雖往汲而無功也。〇甁者汲器也。〈說文云〉水之旣涸。甁亦羸小。〈大兌今小兌〉是以凶也。
{〔卦象:䷯〕}初六。井泥不食。舊井無禽。〇象曰井泥不食。下也。舊井無禽。時舍也。
此井之需也。卦自泰來。〈五之一〉坤土下沈。〈泰上坤〉入于水底。〈五之一〉是井泥也。其變爲需。〈今水天〉需自中孚。〈三之上〉中孚之時。兌口仰啓。〈風澤卦〉可以食矣。移之爲需。則兌口不啓。〈下今乾〉井泥不食也。〇卦自泰來。〈五之一〉柔來爲坎。〈爲大坎〉是之謂井。〈下大坎爲泉〉井旣有水。〈大坎水〉巽鷄來飮。〈口向下〉今水旣乾。〈初爻動爲乾〉是舊井也。翰音亦亡。〈巽今滅〉舊井無禽也。〇下者地底也。時舍者。棄之不用也。君子有澤民之才。而潛於下位。棄之不用。則民不能被其澤。而求我者不至。此舊井之無禽也。〇案象義云北方謂轆轤之軸曰禽。此曲解也。雞鶩鳧鴨之醜。皆井畔之所本有也。
{〔卦象:䷦〕}九二。井谷。射鮒。甕敝漏。〇象曰井谷射鮒。無與也。
此井之蹇也。蹇自觀來。〈上之三〉大艮之山。〈兼畫三〉坎水流出。〈上下坎〉其象爲谷。〈山間水道曰谷〉井流而谷也。觀之巽魚。〈本上巽〉坤土滿腹。〈風地卦〉其麟黃黑。〈坤之色〉其象鮒也。〈卽所云金鮒〉移之爲蹇。則巽魚之體。忽中坎矢。〈上今坎〉井谷而射鮒也。井之旣毁。〈二今坼〉魚逐水流。則射之者至。〈矢及魚〉民之失依。有是象也。〇甕者震缶也。〈九家易〉泰之時。震甕之底。〈上互震〉三剛堅實。〈泰下乾〉移之爲井。旣損一剛。〈一之五〉變而爲蹇。又破一剛。〈二今坼〉俄而敝甕矣。甕底旣敝。坎水滲漏。〈今互坎〉甕之所滲。兩陰滴滴。〈下二陰〉甕敝漏也。〇二五俱剛。〈本象也〉本無交與。故井流甕漏。艱險在前。〈卦今蹇〉人可無與哉。〇案荀爽本射作耶。〈不可解〉子夏傳注鮒訓作蝦蟆。〈程傳亦從之〉程逈以爲蝸牛。〈朱子云〉徐幾以爲蛙屬。今井底實有鮒魚。井毁則魚露。不知何故猜疑如是也。左太冲吳都賦云雖復臨河而釣鯉。無異射鮒於井谷。陸佃曰鮒小魚。相卽而行名鯽。相附而行名鮒。〈儀禮少牢魚用鮒。〉〇程傳云射注也。〈謂水流而注於鮒。〉然溪蠻之俗。至今射魚。中國古俗亦然。故易詞如此。
{〔卦象:䷜〕}九三。井渫不食。爲我心惻。可用汲。〈句〉王明。竝受其福。〇象曰井渫不食。行惻也。求王明。受福也。
此井之坎也。坎自臨來。〈一之五〉兌澤之上。坤土塡塞。〈地澤卦〉井堙之象也。移之爲坎。則坎功旣勞。〈上下坎〉离乃修治。〈中大离〉井上井下。〈上下坎〉水泉淸澈。〈坎爲水〉治井曰渫也。〈又淸也〉井美如此。宜其食也。兌口今滅。〈臨下兌今亡〉井渫不食也。〇坎爲心痛。〈說卦文〉爲我心惻也。〈內爲我〉君子懷才抱美。自視淸澈。而民不被澤。誠足自傷也。〇當此之時。仰視君位。〈五今剛〉艮手下垂。〈三五互〉援而汲之。〈汲引之〉力非不足也。旣有离光。〈二五夾〉王實聖明也。亦离爲福。〈二五夾〉民將竝受也。苟援我而用之。〈可用汲〉我固爲福。〈內爲我〉王與民皆福也。〈坤爲民〉曷謂之福。坎自觀來。〈上之二〉有隕自天。〈上位天〉謂之福也。〇行惻者。惻隱之心。〈坎爲心〉將以震行也。〈震爲仁〉〇艮則爲求。〈三五互〉求王明也。〇案渫治井也。謂泄去其艸木之汙穢也。〈字從泄從木〉巽木今滅。正合字象。〈朱子曰渫不停汙也〉屈原傳井泄不食。去汙之意。
{〔卦象:䷛〕}六四。井甃。無咎。〇象曰井甃無咎。修井也。
此井之大過也。大過之卦。上不閉口。〈兌在上〉下不塞竇。〈下一陰〉井甃之象也。本以坤土。〈泰上坤〉燒以离火。〈三五互〉其物甃也。四之旣變。四剛層砌。〈二三四五剛〉若累甃然。是井甃也。〇大過之卦。本自大壯。〈五之一〉雷之乘乾。〈左傳云〉移乃巽伏。〈五之一爲巽〉剛往得位。〈一之五〉是無咎也。井之修甃。如人之補過。〇本有离治。〈三五互〉是用修井也。
{〔卦象:䷯〕}九五。井冽寒泉食。〇象曰寒泉之食。中正也。
此井之升也。卦自泰來。〈一之五〉坤則爲甘。〈見臨節〉移之爲井。〈五之一〉下乃巽潔。〈下今巽〉甘潔曰洌。〈程子云〉是井洌也。下坎爲井。〈在卑地曰井〉上坎爲泉也。〈在高處曰泉〉〇泰之時。坎水之位。〈四五六〉坤以爲溫。〈見左傳〉移之爲井。中得乾剛。〈一之五〉乾則爲寒。〈說卦文〉是寒泉也。〈坎爲北方卦。其氣亦寒。〉遂當兌口。〈二四互〉寒泉食也。五爲卦主。故言其本象。〇中正者。剛得五也。
{〔卦象:䷯〕}上六。井收勿幕。有孚。元吉。〇象曰元吉在上。大成也。
此井之巽也。收者斂也。卦位旣終。收井之時也。幕者冪塵也。〈帷在上曰幕〉渙之時。〔卦象:䷺〕〈井之文〉兩剛爲冪。〈渙上巽〉井水深隱。〈坎在內〉將誰汲之。交之爲井。則上無所冪。〈井上坎〉井水呈露。〈無所覆〉井收勿幕也。程子曰取而不蔽。其利無窮。〈丘富國云聖人之心。以博施濟衆爲公。〉〇其變爲巽。〈上今剛〉中孚之誠。〈巽自中孚來〉移亦不失。〈猶互离〉是有孚也。〇卦旣有孚。祭祀之占也。〈中孚本祭祀之卦〉遯移爲巽。〈二之四〉則下井上泉。〈上下坎〉潔而又潔。〈上下巽〉神所享也。誰其尸之。乾王之祭也。〈遯上乾〉王祭旣潔。〈今重巽〉其占元吉。〈君之吉〉〇大者陽也。卦以陽終。〈上今剛〉是大成也。〈卦之成〉〇案井收勿幕。養民之義也。有孚元吉。祭祀之占也。其用不同。故彼以勿幕爲吉。〈以上坼爲吉〉此以巽剛爲吉。〈以上剛爲吉〉不可拘也。〇荀爽本收作甃。〈聲誤也〉于寶本勿作罔。
《대전》에서 말하였다. ‘정(井)은 덕의 터전이다. 〈손이 엎드려 감이 되므로 덕의 기초이다.〉 우물은 제자리에 머물면서도 옮겨 간다. 〈감의 자리에서 감을 이룬다.〉 정괘로써 의리를 분별한다. 〈두 호괘가 규괘를 이루는데, 태는 의로움이고 리는 분별함이다.〉’ 정자는 말하였다. ‘손은 들어감이다. 나무 기구가 물 아래로 들어가니 우물물을 긷는 상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괘는 태괘에서 왔다. 곤의 고을 안에 건의 사람들이 모여 사니 〈지천태괘이다.〉 우물이 없을 수 없다. 옮겨 정괘가 되면 감의 자리에서 〈사·오·상효이다.〉 여전히 감의 샘이 되어 〈오효가 이제 굳센 양이다.〉 그 거처를 잃지 않지만 〈감은 거처이다.〉 물은 옮겨 간다. 〈오효가 초효로 간다.〉 이것이 이른바 ‘우물은 제자리에 머물면서도 옮겨 간다’는 것이다. 우물의 덕은 그 거처를 바꾸지 않으면서 〈땅에 붙어 움직일 수 없다.〉 기름진 혜택을 사방으로 흩는 것이다. 〈사람들이 길어 가 버린다.〉 군자가 공경에 거하여 의로 옮겨 가는 일도 자기 몸을 잃지 않으면서 백성이 그 혜택을 입게 하는 것이니, 여기에서 뜻을 취한 것이다. 또 정괘는 환괘가 사귀어 바뀐 것이다. 〈풍수환괘가 획을 바꾼다.〉 환괘 때에는 감의 샘이 아래에 있고 손의 두레박줄이 위에 있다. 〈바람이 위에 있다.〉 서로 바뀌어 정괘가 되면 용두레의 줄이 〈아래 손의 나무이다.〉 물 밑으로 들어가고 감의 물이 위로 나온다. 〈위가 이제 감이다.〉 이것이 우물의 상이다. 그러나 위 감의 물은 길어 올린 물에 불과하고, 아래의 큰 감이 〈초효와 사효가 양쪽에서 낀다.〉 곧 우물의 샘이다. 〈초육의 효사는 큰 감을 우물로 삼는다.〉
〔괘상: ䷯〕 정(井). 고을을 바꾸어도 우물은 바꾸지 않는다. 잃음도 없고 얻음도 없다. 오가는 이가 우물에서 우물물을 긷는다. 거의 다 이르렀으나 아직 우물에 두레박줄을 내리지 못하고 그 병을 작게 만드니 흉하다.
이는 정괘가 변하지 않은 경우다. 괘는 태괘에서 왔다. 태괘의 곤 고을은 옮기고 바뀌므로 〈오효가 초효로 간다.〉 고을을 바꾸는 것이다. 〈곤이 바뀌어 감이 된다.〉 감의 자리에서는 〈사·오·상효이다.〉 지금도 여전히 감이니, 지금의 우물물이 〈감은 물이다.〉 옛 우물물과 같다. 〈태괘 때에도 감의 자리였다.〉 우물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옛사람이 고을을 세울 때에는 반드시 물과 샘을 살폈다. 〈공류가 흐르는 샘을 살핀 것과 같다.〉 물과 샘이 이롭지 않으면 고을을 옮겨 우물에 나아갔으니, 이것 또한 고을은 바꾸어도 우물은 바꾸지 않는다는 실제 이치다. 정괘는 환괘와 획을 바꾼다. 〈풍수환괘가 서로 바뀐다.〉 환괘의 감수가 비록 옮겨 가지만 〈아래에서 위로 옮긴다.〉 손의 나무가 와서 〈위에서 아래로 옮긴다.〉 다시 샘 하나를 파므로 〈아래의 큰 감이다.〉 잃음도 없고 얻음도 없다. 〈태괘에서 왔다고 보면 아래는 잃고 위는 얻는다.〉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서로 바꾼다.〉 모두 우물을 갖게 되므로 〈아래의 큰 감이다.〉 오가는 이가 우물에서 우물물을 긷는 것이다. 〈두 감이어서 ‘정’을 거듭 썼다.〉 우물의 덕은 길어도 다하지 않고 적셔도 넘치지 않으니, 잃음도 없고 얻음도 없다는 말로 그 아름다움을 찬미하였다. ‘흘(汔)’은 물이 마르는 것이다. 〈《설문해자》의 말이다.〉 정괘의 두 호괘는 규괘〔䷥〕가 된다. 고인 태의 물 위에서 리의 불이 말리니 〈물은 아래를 적시고 불꽃은 위로 오른다.〉 우물물이 거의 말라 버리는 데 이른 것이다. 〈마름의 극치이다.〉 규괘는 중부괘에서 왔다. 〈사효가 오효로 간다.〉 중부괘 때에는 손의 두레박줄이 위에서 〈손은 줄이다.〉 태의 샘에 닿았지만 〈고인 물이다.〉 지금은 손이 이미 끊어졌으니 〈규괘의 위가 리이다.〉 아직 우물에 두레박줄을 내리지 못한다. 규괘는 대장괘에서 왔다. 〈상효가 삼효로 간다.〉 대장괘 때에는 태의 병이 매우 컸고 〈뜻은 아래에 보인다.〉 고인 물이 장차 가득 찰 참이었으나 〈큰 태의 못이다.〉 지금 병이 작아졌으니 〈규괘의 아래가 태이다.〉 그 병을 작게 만든 것이다. 〈리(羸)는 형체가 작다는 뜻이다.〉 《주역》의 법례에서는 양이 많을수록 리(羸)가 된다. 〈건은 여위고 메마름이다.〉 정괘에는 음이 셋인데 규괘에는 양이 넷이므로 작아진 것이다. 두 호괘의 점이 어찌 흉하지 않겠는가. 정약용이 살피건대, 여러 학자가 병(甁)을 곧바로 장군 부(缶)로 풀이한 것은 잘못이다. 〈그릇이 서로 다르다.〉 병은 아래가 크고 위가 작으며 태처럼 입이 있다. 〈옛 잠언에 ‘입 지키기를 병처럼 하라’고 하였다.〉 태가 병이다. 〈태는 아래가 크고 위가 작다.〉 소자첨이 흘(汔)을 마름으로 풀이한 것도 근거가 있다. 〈리는 건조함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우번은 ‘괘가 태괘에서 와서 건이 곤의 오효를 꺾으므로 고을을 바꾸며, 초효가 옛 우물이므로 우물을 바꾸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이는 효변을 알지 못한 것이다.〉, 순상은 ‘음이 와서 초효에 거하는 것이 잃음 없음이고 가운데를 잃는 것이 얻음 없음이다’라고 하고, 또 ‘양이 가서 오효에 거하므로 우물이며 음이 와서 아래에 있어도 우물이다’라고 하였으니 〈그 설명은 모두 엉성하다.〉 촉재의 판본에는 羸를 累로 썼다. 〈羸와 螺가 통하고 羸와 騾가 통하니, 옛글자는 본래 서로 통한다.〉
「단전」에서 말하였다. ‘물을 향해 들어가서 물을 위로 올리는 것이 정괘다. 우물은 길러 주면서도 다하지 않는다. 고을은 바꾸어도 우물을 바꾸지 않는 것은 곧 굳센 양이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거의 다 이르렀으나 아직 우물에 두레박줄을 내리지 못한 것은 아직 공이 없기 때문이다. 그 병을 작게 만드니 이 때문에 흉하다.’
‘물을 향해 들어가서 물을 위로 올린다’는 말은 이 괘가 환괘와 획을 바꾸었음을 밝힌 것이다. 환괘 때에는 손의 나무가 위에 있고 감의 물이 아래에 있다. 〔괘상: ䷺〕 서로 바뀌어 정괘가 되면 손이 물 밑으로 들어가고 〈손은 들어감이다.〉 감의 물이 위로 올라온다. 정현은 ‘손의 나무는 용두레다’라고 하였다. 〈《장자》에서 한음의 노인이 용두레로 물을 길었다.〉 용두레가 물에 들어가 물을 격동시켜 위로 오르게 한다. 〈물을 올라가게 한다.〉 그러나 손은 또 줄이 된다. 〈「설괘전」의 글이다.〉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두레박줄이다. 태괘 때에는 곤의 덕에 경계가 없어 만물을 길러 냈다. 〈「설괘전」의 글이다.〉 옮겨 정괘가 되면 〈초효가 오효로 간다.〉 다시 감으로 통하므로 길러 주면서도 다하지 않는다. 샘물이 세차게 솟아 써도 마르지 않는 것이 우물의 덕이다. 굳센 양이 가운데 있다는 것은 감이다. 감의 샘 때문에 이 곤의 고을을 바꾸었으니 〈곤이 감이 된다.〉 굳센 양이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아직 공이 없다는 것은 아직 감이 없다는 뜻이다. 〈감은 공효이다.〉 규괘는 리로 말리니 〈규괘의 위가 리이다.〉 아직 감의 샘이 없다. 〈위에 감이 없다.〉 그러므로 비록 가서 긷더라도 공효가 없다. 병은 물을 긷는 그릇이다. 〈《설문해자》의 말이다.〉 물이 이미 말랐는데 병도 작아졌으므로 〈큰 태가 이제 작은 태가 되었다.〉 이 때문에 흉하다.
〔괘상: ䷯〕 초육. 우물에 진흙이 있어 먹지 못한다. 낡은 우물에는 짐승도 없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우물에 진흙이 있어 먹지 못하는 것은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낡은 우물에 짐승도 없는 것은 때가 되어 버려졌기 때문이다.’
이는 정괘가 수괘로 가는 경우다. 괘는 태괘에서 왔다. 〈오효가 초효로 간다.〉 곤의 흙이 아래로 가라앉아 〈태괘의 위가 곤이다.〉 물 밑으로 들어가니 〈오효가 초효로 간다.〉 이것이 우물의 진흙이다. 변하여 수괘가 되는데 〈지금 수천수괘이다.〉 수괘는 중부괘에서 왔다. 〈삼효가 상효로 간다.〉 중부괘 때에는 태의 입이 위를 향해 열려 있어 〈풍택중부괘이다.〉 먹을 수 있었다. 옮겨 수괘가 되면 태의 입이 열리지 않으므로 〈아래가 이제 건이다.〉 우물에 진흙이 있어 먹지 못한다. 괘는 태괘에서 와서 〈오효가 초효로 간다.〉 부드러운 음이 와 큰 감을 이루니 〈큰 감이 된다.〉 이를 우물이라 한다. 〈아래의 큰 감이 샘이다.〉 우물에 이미 물이 있으면 〈큰 감의 물이다.〉 손의 닭이 와서 마신다. 〈입이 아래로 향한다.〉 지금은 물이 이미 말랐으니 〈초효가 움직여 건이 된다.〉 이것이 낡은 우물이다. 닭 울음도 사라졌으므로 〈손이 이제 없어졌다.〉 낡은 우물에는 짐승도 없다. ‘아래’는 땅 밑이다. ‘때가 되어 버려졌다’는 것은 버려서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군자가 백성에게 혜택을 줄 재주가 있는데도 낮은 자리에 잠겨 버림받아 쓰이지 못하면 백성이 그 혜택을 입지 못하고 나를 구하는 사람도 오지 않는다. 이것이 낡은 우물에 짐승도 없는 경우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상의》에서 ‘북방에서는 도르래의 굴대를 금(禽)이라 한다’고 하였으나 이는 억지로 돌려 풀이한 것이다. 닭·오리·집오리·물오리 같은 무리는 모두 본래 우물가에 있는 것들이다.
〔괘상: ䷦〕 구이. 우물이 골짜기처럼 흘러 붕어를 쏜다. 항아리가 깨져 샌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우물이 골짜기처럼 흘러 붕어를 쏘는 것은 함께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정괘가 건괘로 가는 경우다. 건괘는 관괘에서 왔다. 〈상효가 삼효로 간다.〉 큰 간의 산에서 〈세 획을 겸한 간이다.〉 감의 물이 흘러나오니 〈위아래가 감이다.〉 그 상이 골짜기다. 〈산 사이의 물길을 골짜기라 한다.〉 우물이 흘러 골짜기가 된다. 관괘의 손이 물고기인데 〈본래 위가 손이다.〉 곤의 흙이 배에 가득하고 〈풍지관괘이다.〉 비늘이 누렇고 검으니 〈곤의 색이다.〉 그 상이 붕어다. 〈곧 이른바 금빛 붕어이다.〉 옮겨 건괘가 되면 손의 물고기 몸이 갑자기 감의 화살에 맞으니 〈위가 이제 감이다.〉 우물이 골짜기처럼 흐르고 붕어를 쏘는 것이다. 우물이 이미 무너지면 〈이효가 이제 갈라졌다.〉 물고기가 흐르는 물을 따라 나가므로 쏘는 사람이 온다. 〈화살이 물고기에 미친다.〉 백성이 의지할 곳을 잃는 데 이러한 상이 있다. 항아리는 진의 질그릇이다. 〈《구가역》이다.〉 태괘 때에는 진의 항아리 밑바닥이 〈위 호괘가 진이다.〉 세 굳센 양으로 단단하고 충실했는데 〈태괘의 아래가 건이다.〉, 옮겨 정괘가 되면서 이미 굳센 양 하나를 덜었고 〈초효가 오효로 간다.〉 변하여 건괘가 되면서 또 굳센 양 하나를 깨뜨렸으니 〈이효가 이제 갈라졌다.〉 갑자기 깨진 항아리가 된다. 항아리 밑이 이미 깨져 감의 물이 스며 새고 〈지금 호괘가 감이다.〉 항아리에서 스며 나온 물이 두 음처럼 방울방울 떨어지니 〈아래의 두 음이다.〉 항아리가 깨져 새는 것이다. 이효와 오효가 모두 굳센 양이라 〈본괘의 상이다.〉 본래 서로 사귀고 함께함이 없으므로 우물은 흘러가고 항아리는 샌다. 어려움과 험함이 앞에 있으니 〈괘가 이제 건이다.〉 사람이 함께하는 이 없이 지낼 수 있겠는가. 정약용이 살피건대, 순상의 판본에는 사(射)를 야(耶)로 썼으나 〈풀이할 수 없다.〉, 《자하전》 주에서는 부(鮒)를 두꺼비로 풀이하였다. 〈《정전》도 이를 따랐다.〉 정형은 달팽이라 하였고 〈주자의 말이다.〉 서기는 개구리 무리라 하였다. 그러나 지금도 우물 밑에 실제 붕어가 있고 우물이 무너지면 물고기가 드러나는데, 무슨 까닭으로 이처럼 억측하는지 알 수 없다. 좌태충의 《오도부》에서는 ‘비록 다시 강에 나아가 잉어를 낚아도 우물 골짜기에서 붕어를 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하였다. 육전은 ‘부(鮒)는 작은 물고기이며, 서로 잇대어 가므로 즉(鯽)이라 하고 서로 붙어 가므로 부(鮒)라 한다’고 하였다. 〈《의례》의 소뢰에는 물고기로 붕어를 쓴다.〉 《정전》에서는 사(射)를 물을 댄다는 주(注)의 뜻으로 풀이하였다. 〈물이 흘러 붕어에게 부어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계곡 오랑캐의 풍속에서는 지금도 물고기를 쏘며, 중국의 옛 풍속도 그러했으므로 《주역》의 말이 이와 같다.
〔괘상: ䷜〕 구삼. 우물을 깨끗이 쳤는데도 먹지 않으니 나 때문에 마음이 슬프다. 길어다 쓸 수 있다. 왕이 밝으면 함께 그 복을 받는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우물을 깨끗이 쳤는데도 먹지 않으니 가면서 슬퍼한다. 왕의 밝음을 구하여 복을 받는다.’
이는 정괘가 감괘로 가는 경우다. 감괘는 임괘에서 왔다. 〈초효가 오효로 간다.〉 태의 못 위를 곤의 흙이 메우고 있어 〈지택임괘이다.〉 우물이 막힌 상이다. 옮겨 감괘가 되면 감의 공효가 이미 수고롭고 〈위아래가 감이다.〉 리로 마침내 수리하며 〈가운데 큰 리이다.〉 우물 위와 우물 아래가 모두 감이어서 〈위아래가 감이다.〉 샘물이 맑고 깨끗해진다. 〈감은 물이다.〉 우물을 손질하는 일을 설(渫)이라 한다. 〈또 맑음이라는 뜻이다.〉 우물이 이처럼 좋으니 마땅히 먹어야 하지만 태의 입이 이제 사라졌으므로 〈임괘의 아래 태가 이제 없어졌다.〉 깨끗이 친 우물을 먹지 않는다. 감은 마음의 아픔이 되므로 〈「설괘전」의 글이다.〉 ‘나 때문에 마음이 슬프다’고 한다. 〈안쪽이 나이다.〉 군자가 재주를 품고 아름다움을 간직하여 스스로 맑고 깨끗하지만 백성이 그 혜택을 입지 못한다면 참으로 스스로 슬퍼할 만하다. 이때 위로 임금 자리를 바라보면 〈오효가 이제 굳센 양이다.〉 간의 손이 아래로 드리워져 〈삼효에서 오효까지의 호괘이다.〉 끌어다가 물을 길을 수 있으니 〈길어 당긴다.〉 힘이 모자라지 않는다. 이미 리의 빛이 있으므로 〈이효와 오효가 양쪽에서 낀다.〉 왕은 실로 성스럽고 밝고, 또 리가 복이 되므로 〈이효와 오효가 양쪽에서 낀다.〉 백성이 장차 함께 복을 받을 것이다. 진실로 나를 끌어 써 준다면 〈길어다 쓸 수 있다.〉 나도 진실로 복을 받고 〈안쪽이 나이다.〉 왕과 백성도 모두 복을 받는다. 〈곤은 백성이다.〉 무엇을 복이라 하는가. 감괘는 관괘에서 왔으니 〈상효가 이효로 간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있어 〈상효의 자리는 하늘이다.〉 이를 복이라 한다. 가면서 슬퍼한다는 것은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감은 마음이다.〉 장차 진으로 행하려는 것이다. 〈진은 어짊이다.〉 간은 구함이 되므로 〈삼효에서 오효까지의 호괘이다.〉 왕의 밝음을 구한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설(渫)은 우물을 손질하는 것으로, 초목의 더러움을 쳐내는 일이다. 〈글자가 물 뺄 설(泄)과 나무 목(木)을 따른다.〉 손의 나무가 이제 사라졌으니 바로 글자의 상과 맞는다. 〈주자는 ‘설은 더러움을 머무르게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굴원전》의 ‘우물을 쳐도 먹지 않는다’에서도 더러움을 제거한다는 뜻이다.
〔괘상: ䷛〕 육사. 우물에 벽돌을 쌓는다. 허물이 없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우물에 벽돌을 쌓아 허물이 없는 것은 우물을 수리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괘가 대과괘로 가는 경우다. 대과괘는 위에서 입을 닫지 않고 〈태가 위에 있다.〉 아래에서 구멍을 막지 않으니 〈아래에 음 하나가 있다.〉 우물에 벽돌을 쌓은 상이다. 본래 곤의 흙을 〈태괘의 위가 곤이다.〉 리의 불로 구우니 〈삼효에서 오효까지의 호괘이다.〉 그 물건이 벽돌이다. 사효가 이미 변하면 네 굳센 양이 층층이 쌓여 〈이·삼·사·오효가 굳센 양이다.〉 마치 벽돌을 포개 놓은 듯하니, 이것이 우물에 벽돌을 쌓는 것이다. 대과괘는 본래 대장괘에서 왔다. 〈오효가 초효로 간다.〉 ‘우레가 건을 탄다’고 한 데서 〈《좌전》의 말이다.〉 옮겨 손으로 엎드리고 〈오효가 초효로 가면 손이 된다.〉 굳센 양이 가서 제자리를 얻으므로 〈초효가 오효로 간다.〉 허물이 없다. 우물을 수리하여 벽돌을 쌓는 것은 사람이 허물을 보충하는 것과 같다. 본래 리의 다스림이 있으므로 〈삼효에서 오효까지의 호괘이다.〉 우물을 수리한다.
〔괘상: ䷯〕 구오. 우물이 맑고 차가운 샘물을 먹는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차가운 샘물을 먹는 것은 가운데 있고 바르기 때문이다.’
이는 정괘가 승괘로 가는 경우다. 괘는 태괘에서 왔다. 〈초효가 오효로 간다.〉 곤은 단맛이 된다. 〈임괘와 절괘의 설명을 보라.〉 옮겨 정괘가 되면 〈오효가 초효로 간다.〉 아래는 손으로 정결해지므로 〈아래가 이제 손이다.〉 달고 깨끗한 것을 열(洌), 곧 맑다고 한다. 〈정자의 말이다.〉 이것이 우물이 맑다는 뜻이다. 아래 감은 낮은 땅에 있으므로 우물이고 〈낮은 땅에 있는 것을 우물이라 한다.〉, 위 감은 높은 곳에 있으므로 샘이다. 〈높은 곳에 있는 것을 샘이라 한다.〉 태괘 때에 감수의 자리에는 〈사·오·상효이다.〉 곤이 있어 따뜻해졌으나 〈《좌전》에 보인다.〉 옮겨 정괘가 되면 가운데에 건의 굳센 양을 얻어 〈초효가 오효로 간다.〉 건이 차가움이 되므로 〈「설괘전」의 글이다.〉 찬 샘이 된다. 〈감은 북방의 괘이므로 그 기운 또한 차갑다.〉 마침내 태의 입에 닿으니 〈이효에서 사효까지의 호괘이다.〉 찬 샘물을 먹는다. 오효는 괘의 주인이므로 그 본래의 상을 말하였다. 가운데 있고 바르다는 것은 굳센 양이 오효를 얻었다는 뜻이다.
〔괘상: ䷯〕 상육. 우물물을 거두어 쓰되 덮지 말라. 믿음이 있으니 크게 길하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크게 길함이 위에 있으니 큰 양이 완성한 것이다.’
이는 정괘가 손괘로 가는 경우다. ‘수(收)’는 거두어들임이다. 괘의 자리가 이미 끝났으므로 우물물을 거두어 쓰는 때다. ‘막(幕)’은 먼지를 막는 덮개다. 〈위에 있는 휘장을 막이라 한다.〉 환괘 때에는 〔괘상: ䷺〕 〈정괘의 글이다.〉 두 굳센 양이 덮개가 되어 〈환괘의 위가 손이다.〉 우물물이 깊이 숨었으니 〈감이 안에 있다.〉 장차 누가 길어 쓰겠는가. 서로 바뀌어 정괘가 되면 위에 덮개가 없어 〈정괘의 위가 감이다.〉 우물물이 드러나므로 〈덮인 곳이 없다.〉 우물물을 거두어 쓰되 덮지 않는 것이다. 정자는 ‘길어 쓰면서 가리지 않으니 그 이로움이 다함이 없다’고 하였다. 〈구부국은 ‘성인의 마음은 널리 베풀어 무리를 구제하는 일을 공적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변하여 손괘가 되면 〈상효가 이제 굳센 양이다.〉 중부괘의 정성이 〈손괘가 중부괘에서 왔다.〉 옮겨져도 잃어버리지 않으니 〈여전히 호괘 리가 있다.〉 믿음이 있는 것이다. 괘에 이미 믿음이 있으니 제사의 점이다. 〈중부괘는 본래 제사의 괘이다.〉 둔괘가 옮겨 손괘가 되면 〈이효가 사효로 간다.〉 아래는 우물이고 위는 샘이며 〈위아래가 감이다.〉 아래도 정결하고 위도 정결하니 〈위아래가 손이다.〉 신이 흠향한다. 누가 시동이 되어 제사를 주관하는가. 건의 왕이 올리는 제사다. 〈둔괘의 위가 건이다.〉 왕의 제사가 이미 정결하므로 〈지금 거듭된 손이다.〉 그 점이 크게 길하다. 〈임금의 길함이다.〉 ‘대(大)’는 양이다. 괘가 양으로 끝나므로 〈상효가 이제 굳센 양이다.〉 큰 양이 완성한 것이다. 〈괘의 완성이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우물물을 거두어 쓰되 덮지 말라’는 것은 백성을 기르는 뜻이고, ‘믿음이 있으니 크게 길하다’는 것은 제사의 점이다. 쓰임이 서로 다르므로 앞에서는 덮지 않는 것을 길함으로 삼고 〈위가 갈라진 것을 길함으로 삼는다.〉 여기에서는 손의 굳센 양을 길함으로 삼으니 〈위의 굳센 양을 길함으로 삼는다.〉 하나에 얽매어서는 안 된다. 정약용이 살피건대, 순상의 판본에는 수(收)를 추(甃)로 썼는데 〈소리가 잘못된 것이다.〉 우보의 판본에는 물(勿)을 망(罔)으로 썼다.
정약용은 우물을 ‘제자리에 머물면서도 물과 혜택은 옮겨 가는 덕’으로 해석한다. 태괘에서 정괘로 옮아가는 추이(효가 옮겨 변한 관계를 살펴 괘를 읽는 법)와 환괘의 상하가 사귀어 바뀌는 구조를 함께 써서, 손의 용두레와 두레박줄이 물속으로 들어가고 감의 물이 위로 올라오는 실제 우물의 작동을 재현한다. 고을은 옮겨도 샘의 자리는 바뀌지 않으며, 군자(사사로운 이익보다 공적 원칙을 지키는 사람)도 자기 몸을 잃지 않으면서 백성에게 혜택을 나누어야 한다.
여섯 효는 진흙 든 폐정에서 시작하여, 새는 항아리와 흘러나간 붕어, 깨끗이 쳐도 쓰이지 않는 인재, 벽돌을 쌓은 수리, 맑고 찬 샘, 누구나 길어 쓰도록 덮지 않은 우물로 차츰 완성된다. 정약용은 판본과 어휘도 촘촘히 판별하여 흘(汔)을 물의 마름으로, 부(鮒)를 실제 붕어로, 설(渫)을 우물의 더러움을 쳐내는 일로 풀이하며, 상과 점의 쓰임이 다르면 한 가지 해석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결론짓는다.
교감·번역 주